알마티, 2019년 여행 마무리 (2)
카자흐스탄의 역사적 중심지 알마티를 통해 집으로..
2019년 여행을 시작할 때 인천에서 아스타나를 거쳐 모스크바로 갔는데, 돌아올 때는 알마티를 거쳐서 인천으로 간다. 알마티는 1850년대에 러시아의 요새 도시로 역사를 시작하여 러시아 중앙아시아 통치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이후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와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를 잇는 투르케스탄-시베리아 철도의 주요 통과점이 되면서 급속히 성장했고, 소비에트 카자흐의 수도가 되었다. 현재 인구는 200만이고, 러시아인들이 여전히 많이 거주하는 카자흐스탄의 경제 중심지이다. 하지만 국토 동쪽에 지나치게 치우친 위치 때문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수도를 아스타나로 옮겼다.
알마티는 타슈켄트나 바쿠처럼 러시아적 풍경이 살아있으면서도 튀르크-페르시아 무슬림 세계의 문화가 묻어나는 매력적인 도시다.
셰레메티예보에서 알마티로 도착하니 해가 이미 중천이었다. 동쪽으로 이동하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무박으로 알마티에 있다가 인천으로 넘어가야 했는데 당연하게도 잠은 거의 자지 못했고, 한달에 가까운 여행으로 체력과 의지가 고갈되어 있던 상태라 알마티를 충실히 돌지 못한 것은 여전히 안타깝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택시를 아무거나 잡아탔는데, 택시 안에는 택시 기사와 그 노모가 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비싼 가격을 불러서 짜증났는데, 갑자기 자기 잔돈 없다며 냉큼 다 처먹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운전할 때도 계속 툴툴대서 안 그래도 기분이 나빴던지라 기어코 잔돈을 받아낸 다음에 택시에 내려서 문을 쾅 닫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경적을 빵 울리길래 쳐다봤더니 뭐라 쌍욕을 하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척 치켜 올렸다. 폭력을 훨씬 더 잘 쓰는 이 동네 사람들 성정을 생각해보면 꽤 위험한 짓을 한 것인데 다음에는 절대 성질 부리지 말고 얌전히 가야지.....
사진은 알마티-2역. 알마티에는 1역과 2역이 있다. 2역 앞에 서 있는 저 기마상은 카자흐 칸국의 주요 군주인 아블라이 칸이다. 카자흐 칸국은 역시 몽골 후계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 제국과 청 제국, 그리고 준가르 세력 사이에 끼어서 복잡한 외교를 통해 생존을 도모했다가 결국에는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현재 카자흐스탄이 처한 상황도 사실 여전히 이때와 본질적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알마티의 도시 풍광을 만드는 랜드마크는 뭐니뭐니 해도 도시 바로 수천m의 천산 산맥 고봉이 커튼처럼 도시를 감싸는 이 모습이다. 천산 산맥이 드리운 모습이 굉장히 웅장하다.
아동복, 여성복, 남성복을 모두 파는, 가장 저렴한 가격의 한국 옷 가게!
알마티의 대조국전쟁 기념 공원인 '판필로프 28 용사 공원'. 이 사진엔 카자흐어가 쓰여 있는데 옆에는 러시아어로도 써있다.
판필로프와 28 용사는 이반 판필로프가 지휘하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출신으로 주로 구성된 부대가 모스크바 코앞까지 쳐들어온 독일군에 맞서 영웅적으로 산화했다는 이야기가 보도되면서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진위 여부 논쟁이 있다. 사실 28 용사의 분투가 없었던 일인데 너무나 널리 영웅적 저항의 상징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신화를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
여기에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도 있고 알마티의 시민들이 나와서 망중한을 즐기는 주요 공원이기도 하다.
소련의 지도에서 용사들이 뛰쳐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기념상이 알마티 판필로프 공원의 가장 상징적인 기념물이다.
사회주의 예술에 취한다..
딘무하메드 쿠나예프. 브레즈네프 시기에 카자흐스탄 공화국 당의 제1서기를 맡으며 카자흐스탄을 통치했던 인물이다. 거의 20년에 가깝게 장기 집권을 했으니 사실상 카자흐스탄의 영수나 다름 없었다. 이는 우즈베키스탄의 샤로프 라시도프, 아제르바이잔의 헤이다르 알리예프와 비슷한 경력이다.
대체로 이 브레즈네프 시기의 장기 집권한 지도자들은 독립 이후에도 평이 매우 좋은 편이다. 민족 문화 창달에 힘쓰고 모스크바를 설득하여 각종 산업 투자를 유치한 공로를 인정 받기 때문이다. 독립 이후 지도자가 된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나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모두 브레즈네프 시기의 저 지도자들 밑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후배'인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고르바초프가 들어서면서 부패했다는 비난과 함께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그리고 이는 각 공화국들에 굉장히 큰 정치적 불만을 심었고 때로는 민족 분규로 이어지기도 했다. 중앙 권력과 지방 현실을 매개하던 이들 중개자들을 너무 성급하게 걷어찬 것은 제국 통치를 흔들었다..
드높은 천산 산맥과, 역시 천산 산맥을 형상화한 것 같은 독특한, 혹은 이상한 디자인의 건물...
쿠나예프가 고르바초프에 의해 실각하고 후임자로 들어온 이는 겐나디 콜빈이라는 러시아인이었다. 원래 개별 공화국의 제1서기는 해당 민족의 당간부가 맡는다는 거의 원칙에 가까운 관행이 있었기에, 러시아인이 카자흐 공화국의 수장으로 임명된 것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카자흐스탄에 산 적도 없는 러시아인이었기에 반발이 엄청났다. 1986년 12월에 이에 반발한 알마티 시민들의 집회가 있었고, 집회는 곧 폭동이 되었다. 군과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최소 168명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젤톡산 봉기'라고 하는데 젤톡산은 카자흐어로 12월을 뜻한다.
이후 그루지야, 타지키스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지에서 수많은 민족 분규가 분출했고 소련 제국은 해체된다.
정부 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소련식의 저 단순무식 웅장한 디자인에 카자흐스탄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변에서는 신랑 신부가 결혼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제 5년 전의 여행기를 모두 마무리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아제르바이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