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해의 입구 안잘리 항구

카스피해의 입구 안잘리 항구

아직은 초라한 유라시아 물류혁명의 기점

임명묵

라슈트에서 한 시간 가량 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안잘리 항구가 나타난다. 아르다빌에서 라슈트로 나를 태워주었던 택시기사에게 연락해서 안잘리에 가자고 했는데, 늦어진다고 사람을 한참 기다리게 해서 원래 시각보다 3시간 가까이 늦게 안잘리에 도착했다. 그나마 여기 제일 유명한 박물관 폐장 시간은 넘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냥 취소하고 다른 거 타고 왔어야 하는데... 성질 부리니까 바가지 씌워서 돈도 더 뜯겼다.

여기는 카스피해 해군 박물관이다. 1930년대에 레자 샤 팔레비에 의해 지어졌고, 팔레비 양식 건축이다. 사실 안잘리라는 이름도 팔레비 시대에는 반다르-에 팔레비(팔레비 항구)였다. 당연히 혁명 이후 호메이니 정부에 의하여 안잘리라는 원래 이름으로 복귀.

건물에 때가 좀 끼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멋있다.

레자 샤가 된 기분으로 거닐어보자.

이란을 감싸는 두 개의 바다, 북쪽에 카스피해라면 남쪽에는 페르시아만. 이 사진은 남쪽 호람 샤흐르 항구의 모습이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그런데 호람 샤흐르는 엄청 더울텐데 저 복장하면 쪄죽지는 않나 몰라..

과거 왕정 시대의 모습을 전시해 놓은 방이다. 팔레비 폐하께서 여기서 집무도 보시고 그러셨겠지..

앞에는 노루즈 기념하는 하프트신이 놓여 있다. 곧 있으면 또 새로운 노루즈가 시작되겠구나.

시서화에 능하셨으나 근대화는 0점이셨던 나세르 앗딘 샤의 그림..

안잘리는 안잘리 석호라는 유명한 습지가 있는데, 석호로 들어가는 하천인 세피드-루드 강이 있어서 안잘리 시를 두 구역으로 나눈다. 이란도 환경 보호를 아예 손 놓은 나라는 아니지만 여러 제약 조건이 많아서 환경 상태는 매우 좋지 못해 보였다..

하천을 따라 놓인 알록달록한 가옥과 조그마한 어선들은 나름 안잘리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이맘 호메이니 공항에 내려서 입국장으로 들어갈 때 이란을 홍보하는 여러 사진 가운데 하나로도 선정이 되어 있다. 그런데 날도 우중충하고 저 녹슨 파이프까지 있으니 그다지 홍보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 되었을지도...

이때쯤 되면 오랜 여행으로 기력도 바닥나 있었고, 택시기사랑 드잡이질 하고 늦게 도착하기도 해서 여행할 기분도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카스피해는 보고 가야지 싶어서 발걸음을 이어갔다.

세피드-루드 천변 공원 도착!

그래도 바쁘게 움직이는 안잘리 항구의 크레인을 보니 마음이 정화된다. 러시아 제국-카자르 제국 시절부터 안잘리 항구는 이란과 러시아를 이어주는 주요 물류 거점이었고, 소련 해군이 적백내전 당시 백군을 쫓아서 안잘리에 상륙했을 정도였다. 현재는 양국이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 무역을 하게 해주는 주요 통로 중 하나로 기능 중이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러시아가 2014년 크림 반도 합병 이후로 공급망 다변화 정책을 취하면서, 러시아-이란 사이의 철도 및 항만 물류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크게 탄력을 받았다.

국제남북운송회랑. 이미지 출처: Induslens

특히 주목할 것은 안잘리에서 테헤란으로 통하는 직통 철도가 올해 6월 20일에 개통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러시아나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선박이 안잘리에 화물을 하역하면, 트럭으로 라슈트로 이동해서 라슈트에서 철도로 환적했다. 그런데 이제 안잘리-라슈트 노선이 개통하면서 이제 가즈빈을 거쳐 테헤란, 나아가 호르무즈해의 반다르 압바스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이 뚫린 것이다. 러시아와 이란은 이 노선을 통해 인도와 교역을 활성화하여 국제남북운송회랑을 완성하고자 한다.

항구의 크레인을 뒤로 하고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은... 옛날 대천 해수욕장에서 차타고 들어가는 아무도 안 찾는 해수욕장에 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날씨도 이게 참.. ㅋㅋㅋ

그래도 이란 젊은이들은 카펫을 깔아놓고 물담배를 서로 피면서 해변에서 나름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정박해 있는 이란 선박. 길란답게 '미르자 쿠첵 칸' 호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름 어메니티, 액티비티도 있는 것 같은데... 어째 강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느낌이 든다..

해가 넘어갈 때까지 천변 공원의 한 카페에서 머물렀다. 중간에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한국말로 말을 걸어온 젊은 이란인들의 인사도 있었다.

밤이 되어도 유라시아 물류 네트워크는 바쁘게 움직인다. 아직은 초라하지만 러시아와 이란이 제재에도 불구하고 숨통을 트며 경제를 운영할 수 있게 해주는 주요 거점이다.

이제 라슈트로, 그리고 다시 테헤란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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