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의 출구 바투미

흑해의 출구 바투미

흑해로 향하는 출구, 아자리야의 바투미

임명묵

쿠타이시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반~3시간에 걸쳐 버스를 타고 가면 그루지야의 주요 무역항인 바투미가 나온다. 이때도 좁아터진 마르쉬루트카(승합차 대중교통)에 덩치 큰 인간들끼리 낑겨 가면서 참으로 힘들게 갔다. 어쨌든 중앙아시의 한 가운데인 카자흐스탄을 거쳐 아르메니아의 첩첩산중으로 들어갔다가 드디어 바다가 나왔다! 버스정류장 바로 맞은 편이 바투미 항구여서 우리는 숙소에 가기 전에 먼저 바다부터 들렀다. 해군 장교 출신인 동행은 흑해의 물을 손으로 살짝 떠서 맛보기도 하였다.

본래 이곳 그루지야를 포함하여 우크라이나와 불가리아, 루마니아까지 모든 흑해 연안은 오스만 제국의 땅이었다. 하지만 강성해진 러시아 제국은 흑해로 향하는 출로를 찾고자 했고, 오스만 제국 치하의 정교회 교인에 대한 보호자를 자처하며 오스만 제국과 충돌을 빚었다. 18세기 말의 크림 칸국 정복, 19세기의 발칸 반도 국가들의 독립이 이어지며 오스만 제국은 위축되었다. 최후의 일격 중 하나는 1878년 러시아-오스만 전쟁 후에 맺어진 산스테파노 조약 및 베를린 조약이었다. 여기서 오늘날 터키 땅이기도 한 카르스와 아르다한을 포함하여, 바투미까지 러시아 제국에 할양된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할양된 바투미는 러시아 제국의 주요 흑해 항구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캅카스의 반대편에 있는 바쿠가 경험한 폭발적 성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쿠에서 노벨 형제의 주도 하에 석유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유럽 시장으로 바쿠 석유를 운송할 필요가 생겼다. 로스차일드 가문 등 유럽의 주요 자본이 캅카스 석유붐에 뛰어들었고, 바쿠 석유는 송유관을 통해 바투미까지 연결되었다. 바투미는 석유 운송, 해운, 정유 산업 등을 갖춘 도시로 성장했고, 자연스럽게 러시아 제국의 급진적 노동 운동도 발생했다. 청년 스탈린이 이곳에서 파업, 테러, 방화, 노동조합 조직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카스피해의 석유를 흑해로 뿜어내며 유럽으로 향하던 바투미 투어 시작.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BTS.. 이때면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저 녹색으로 방탄소년단 멤버 이름 써 있는 것도 아주 인상적이다..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이에 질세라 엑소를 써놓았다. 냉전 이후 최대의 분쟁이라는 엑방대전의 현장을 흑해의 바투미에서 보게 되다니...

성모마리아 바투미 대성당. 러시아 제국 시기에 도시의 가톨릭 교인들을 위해 건립된 가톨릭 교회다. 역시나 도시 중심가에 있다. 소련 시절에는 폐쇄되었다가 고전압 실험실로 사용되었다고... 훗날 가톨릭이 아니라 그루지야 정교회로 환원되었다. 가톨릭 교인들 입장에서는 속이 쓰릴 듯..

성당 내부.

이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요기를.. 그루지야의 대표 음식인 하차푸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종류인 하차푸리 아자룰리이다. 보트처럼 생긴 빵 가운데에 치즈, 계란을 듬뿍 넣어 먹는 하차푸리다. 드넓은 소련권에서도 누구나 알고 있는 명물 음식이다. 그리고 바로 이곳 바투미가 하차푸리 아자룰리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자룰리는 '아자르식'을 뜻하는데, 바투미가 바로 아자리아 자치 공화국의 수도이다. 그루지야 안에는 현재 러시아와 인접하여 러시아의 실질적 통제를 받고 있는 압하지야 자치 공화국, 남오세티아 자치 공화국과 함께 남서쪽의 아자리아 자치 공화국까지 세 자치 공화국이 있다. 아자르인들은 언어, 민족적으로는 그루지야인과 동일한테, 오스만 제국 통치의 영향으로 무슬림으로 개종한 그루지야인들이다. 이들은 트빌리시나 쿠타이시 중심의 정교회 그루지야인과는 또 다른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현재 아자리아 자치 공화국의 무슬림 인구는 약 40%로 추정된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국경 건너편 터키 공화국의 라즈인(터키 흑해 연안의 그루지야계 무슬림)과도 유관 민족이라 하겠다.

아자르인은 러시아 제국이 해체되었을 때, 오스만 제국 및 터키 공화국으로 편입될뻔 하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서 중앙 열강(Central powers, 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 동맹)에 굴욕적으로 패배할 때, 1878년에 오스만 제국에게서 할양 받은 영토를 넘겨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소련이 터키 독립 전쟁 시기 아타튀르크를 지원하며 국경을 새로 조정했고, 카르스-아르다한은 터키에 돌려주되 바투미가 있는 아자리아는 소련이 갖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1991년 소련 해체 시기에도 계속해서 분리주의 및 자치 운동이 발생했다. 하지만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야가 바로 북쪽에 붙어 있는 러시아의 힘을 손쉽게 빌릴 수 있던 것과 달리 아자리아 분리주의자들은 멀리 떨어진 러시아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어려웠다.

한편 내륙 산업 도시인 쿠타이시가 소련 해체의 혼란 속에서 쇠퇴하고, 그루지야 국토가 새롭게 터키 및 서구 국가들과 연결되며 바투미의 중요성은 엄청나게 올라갔다. 인구에서도 쿠타이시를 역전해 이제는 수도 트빌리시의 뒤를 이은 그루지야 제2의 도시가 되었다. 아자리아의 중요성이 올라갔고, 또 막강한 터키가 아자리아 무슬림을 지원하기 때문에 트빌리시 중앙 정부는 아자리아 자치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고 있다. 압하스인이나 오세트인과 달리 언어가 그루지야어와 같고 종교만 다르다는 게 아마 통합이 가능한 주요 이유 중 하나일 것 같다.

이 건축물은 성 니콜라스 교회인데, 오스만 제국 시기에 그리스인에 의해 지어진 그리스 정교회 건물이었다. 러시아 제국에 들어간 뒤에는 그루지야 정교회로 소속이 바뀐 것 같고 소련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종교 건축물 멋있는 게 많았는데 이때 상세히 살펴보지 못해서 아쉽다.

그루지야는 소련권 최대의 휴양지로 원래부터 명성이 드높았다. 그중에서도 흑해 연안 지역이야말로 그야말로 소련인들의 가장 인기 있는 휴가철 목적지였다. 날씨 따뜻하고, 인근 산지에서는 소련인들이 즐겨 마시는 차가 자라고, 음식과 술 맛있고, 바다에서 해수욕도 즐길 수 있으니 이곳보다 휴가를 가기 좋은 곳이 없었다.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그 매력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옐친의 혼란기가 끝나고, 푸틴 치하에서 중산층이 된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바투미로 와서 바투미 관광 경제를 지탱하고 있었다. 물론 러시아인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인이나 여타 소련권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게다가, 소련 해체 이후 그루지야가 외부 세계에도 문을 활짝 열면서 서유럽인, 중동인, 동아시아인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바투미 중심가 산보~

이 자리가 철거된 바투미 스탈린 박물관 자리였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다와 매우 가까운 바투미 도시 중앙. 카지노, 호텔 등이 많아서 전형적인 바닷가 관광지의 느낌이 물씬 난다.

바투미의 또 다른 명물인 메데이아 동상. 그루지야, 그중에서도 흑해 연안 지역은 이아손과 메데이아, 황금 양털의 신화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고대 콜키스 왕국이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에 그루지야 정부가 이를 기려서 황금양털을 들고 있는 메데이아 동상을 지었다.

이게 생각보다 진짜 크다.. 야당이 돈낭비라고 비판했는데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래도 거대 구조물과 기념비는 멋있기만 하면 언제나 옳은 것..

흑해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들. 샌들이 아니라 운동화라서 모래가 발에 들어갔다..

전망대 같은 곳에서 맥주 먹으면서 흑해의 바닷바람을 즐겼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바투미 중앙 모스크. 무슬림계 아자리아 자치 공화국의 수도지만 모스크는 이 곳 하나 밖에 없는 듯 했다. 오스만 제국 시기가 아니라 이후 러시아 제국 시기에 건립된 모스크다. 방문을 하니까 수많은 터키인 관광객 무리가 우리와 합류했다. 터키 국기를 달고 있는 단체 관광객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바로 국경 건너편이 터키인지라 단체 관광객이 많은 것이 당연했다. 모스크 앞에는 아다나 케밥이니 이스칸데르 케밥이니 하는 걸 파는 터키 식당들이 많았다.

이제 밤이 되었으니 또 술을 먹어야... 숙소 앞에 와인 집이 있었는데, 역시 그루지야는 와인이지 하면서 또 와인을 사러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뭐야. 정수기에 와인통을 올려놓고 와인을 페트병에 담아서 주는 곳이었다! 아무리 와인의 나라라지만 이렇게 줄 수도 있단 말인가. 각 정수기 통에는 수호이(드라이), 슬라드키(스위트), 폴슬라드키(세미스위트)라고 써있었다.

혹시 차차도 있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트빌리시 호스텔의 터키 아저씨를 만족시킬 수 있는 도수 높은 차차였다.. 자기들이 직접 만든 거라면서, 혹시 몇 도냐고 물어보니 불 붙는 거 보여주겠다고 한다. 선반 위에 차차를 살짝 따른 다음에 라이터로 불을 땡겼다. 문제는 차차가 흐르면서 저기 공책에 불이 옮겨붙을 뻔 했다는 거... 호기롭게 불 쇼를 보여주려 했다가 갑자기 당황하면서 황급히 불을 끄는 모습에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와인과 차차 일발 장전.. 바투미에서의 일정은 1박 2일이라 짧았다.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배편에 맞춰 일정을 짰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열심히 퍼먹기로 했는데 이때 저놈의 차차 때문에 다음날 숙취 장난 아니었다..

다음날. 해장을 겸하여 이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배를 타기 전에 그루지야 최후의 만찬을 즐긴다. 그루지야 음식 사진 대방출. 이건 전에도 소개했던 고기 감자 볶음인 오자쿠리(Ojakhuri).

내 기억으로는 차슈슐리(Chashushuli). 양파, 마늘, 토마토 페이스트 등등을 사용하여 만든 고기 요리인데 이건 닭의 간, 염통을 활용한 닭내장 차슈슐리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럴 것이다.. 이거도 참 맛있는 음식이다.

우유와 마늘로 만든 소스를 치킨에 부어 먹는 츠크메룰리(Chkmeruli)라는 음식이다. 이거도 처음 먹으면 맛있긴 한데 오래 두면 좀 눅눅해지고 느끼해서 후딱 해치워야 하는 음식이다.

이제 예레반에서 시작하여 바가르샤파트, 귬리, 고리, 트빌리시, 쿠타이시를 거쳐 바투미까지 7개 도시를 들린 캅카스 투어가 끝났다. 다음에 우리는 우크라이나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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