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emy Kalinovsky, Laboratory of Socialist Development: Cold War Politics and Decolonization in Soviet Tajikistan, Cornell University Press.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과거 소련의 구성원들이었던 탈소비에트 지역은 단지 소련의 한 지역이 아니라 독자적인 국제 정치의 새로운 무대로 떠오르게 되었다. 특히 중앙아시아는, 9.11 테러 이래로 미국이 정치적 이슬람(Political Islam)과 테러리즘과 대립하고, 나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시작하며 더욱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새롭게 등장한 독립국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갖는 영향력, 혹은 특질을 밝히는 것으로 맞춰졌다. 중앙아시아 각국의 빈곤과 사회적 불안정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성장으로 이어질지, 중앙아시아의 권위주의 정권들이 성공적으로 이슬람주의 반대 세력을 억압할지, 민족적 정체성의 핵심으로 부활한 이슬람이 여성 인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등에 관한 논의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슬람이 아니더라도 각국에서 권력의 향방을 파악하기 위해서, 중앙아시아의 오랜 전통으로 제시된 ‘파벌 정치(clan politics)’가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고 그 근원은 어떤지 탐구하는 등, 초점은 근대 이전으로 소급되는 중앙아시아 사회 고유의 ‘전통’에 항상 놓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중앙아시아 5개국의 직접적인 전사(前史)로서 소비에트 시대의 경험과 기억은 상대적으로 잊히거나, 주로 신생 민족 국가의 민족사 만들기의 논거로서 탐구되는 경우가 많았다. 민족사 서사에서는 모스크바의 식민적 권력과 중앙아시아의 전통이 대립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대체로 중앙아시아 이슬람 사회의 전통이 스탈린 시대의 잔혹하고 식민주의적 공격을 받아 억압되었다가, 통제가 느슨해진 후기 소비에트 시대에 다시 부활하여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에 만개하고 독립까지 이어지는 서사가, 이 지역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전형적인 틀로서 받아들여지고는 했다.

중앙아시아 현대사를 이해하는 틀은 당연하게도 전반적인 소련사를 이해하는 시각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 시대는 기본적으로 독재적인 정치 권력이 사회를 공격하고 해체하는 시대로 인식되었기에, 중앙아시아적 맥락에서는 스탈린이 행한 이슬람에 대한 공격, 여성들로 하여금 베일을 벗게끔 독려한 반(反) 베일 운동, 유목민 정착화 정책이 카자흐스탄 스텝에서 초래한 대대적인 기근이 스탈린 시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제시되었다. 스탈린 이후 시기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 이 시기에 관한 연구가 충분히 진척되지는 않았지만, 스탈린 이후 시기는 대규모 동원과 이데올로기적 열정이 지배했던 이전 시기와는 달리, 일종의 탈정치화, 탈이데올로기화된 시기로서 인식되는 듯하다. 긍정적으로 인식하든 부정적으로 인식하든, 소련 체제를 형성하는 대표적 이미지인 이데올로기가 영향력을 상실하고, 인민들은 소비 사회의 다양한 욕구, 종교를 비롯한 전통적 삶에 대한 관심,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과 시민 사회의 ‘등장’ 등, 소련이 여타 ‘서구 선진국’과 수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는 경제가 침체되고 체제의 약속이 구현되지 않으며 인민들이 공식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당내에서는 부패가 증대하고 사회 통제력이 약화되며 소련 해체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뿌려진 시기로도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