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산: 문명으로서 스탈린주의

자석산: 문명으로서 스탈린주의

Stephen Kotkin의 Magnetic Mountain: Stalinism as a Civilizatio 서평

임명묵

소련은 어떤 나라인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퍼진 당이라는 조직의 수직적 체계로 작동하는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국가의 탄생은 서구 세계의 사람들에게 몹시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 혁명의 이상이 한창일 때에는 이 이질성에 매혹된 일군의 좌파들이 있었지만, 냉전 시대에 그 이질성은 주로 공포와 경멸로 다가왔다. 그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이론이 바로 ‘전체주의론’이었다.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공산주의 소련은 집단주의 이념에 따른 근대적 권력 기구가 사회 곳곳에 파고들어, 기존 사회의 자율성과 연대 의식을 파괴하고 지도자 내지는 권력 집단의 의지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단일체로 만들었다는 것이 전체주의론의 골자였다. 사회는 국가에 완전히 종속되고, 개인은 전체주의 이념을 완전히 내면화한 영혼 없는 주체가 되거나 아니면 국가의 감시망 속에서 고립된 채로 양심을 배반하며 살아야만 했다.

쉴라 피츠패트릭.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1970년대에 기존 러시아의 사회사를 연구하던 이들이 러시아 혁명과 소련으로 연구 범위를 넓히면서 이같은 전체주의론에 대한 반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련으로 학술 교류를 떠날 수 있었던 젊은 학자들은 소련 초기의 인민위원회 같은 정부 문서나, 나치 독일이 노획해 온 스몰렌스크 지역 당의 행정 문서를 바탕으로 소련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이들이 파악한 소련 공산당은 혁명과 내전, 국가 재건의 혼란 속에 내던져진 무기력한 존재들이었다. 이전부터 존재했던 사회적 갈등, 지역적 정체성, 부처 정체성 등이 고스란히 살아남은 상태였고, 소련인들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당과 국가 기구를 이용하며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여느 다른 사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수정주의의 선구자 쉴라 피츠패트릭이 관찰한 것은 ‘발탁’과 ‘문화 혁명’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사회적 상향 이동이었다. 노동자와 농민 출신들의 당원들이 기술자로, 관료로 성장하며 나타난 거대한 신분과 사회 계층의 격변이 볼셰비키 혁명, 특히 스탈린 혁명을 특징지었던 핵심적인 힘이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소련이 해체되고 소련의 각종 문서에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폭넓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실제 역사는 수정주의자들의 관찰에 더 부합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소련이 과거의 실패한 프로젝트로 남게 된 상황에서, 소련사 공부를 통해서 학계가 무엇을 더 밝혀낼 수 있는지가 되었다. 전체주의와 수정주의의 대립구도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냉전이라는 정치적 맥락 속에서 등장했음을 생각하면, 탈냉전의 상황에서는 분명히 이전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연구의 지평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연구자의 책이 바로 Magnetic Mountain: Stalinism as a Civilization이었다.

스티븐 코트킨.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이 책의 저자 스티븐 코트킨(Stephen Kotkin)이 소련사를 새롭게 해석하기 위해 동원한 지적 원천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였다. 코트킨은 기존 냉전 시대의 전체주의론이 실제 역사적 근거에 뒷받침 되지 않았음을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수정주의자들의 해석을 전부 긍정하지도 않았다. 수정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혁명의 혼란을 통해서 혁명적 열기가 분출했다가 스탈린 시대를 거치며 전통적 사회 질서가 복구되고, 안정성이 재건되며, 소비에트 스타일의 관료 지배 체제라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가며 혁명이 끝나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하지만 코트킨이 보기에 스탈린 시대가 되었을 때도 볼셰비키가 주도하는 하향식 혁명은 분명히 계속 되고 있었다. 국가의 관료 제도, 생명정치를 주관하는 권력 기구, 사회와 개인의 의식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 기구를 통해서 볼셰비키의 의도가 사회를 향해 전파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분명히 내면화하는 과정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것의 규모와 급진성이 가히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려는 시도에 비견될만 했고, 실제 공산주의가 하나의 신념과 의미 체계로서 사람들을 엮어내는 장(field)이었기 때문에, 스탈린주의는 사실상 하나의 문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스탈린주의의 틀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코트킨이 관찰한 스탈린주의는 어떤 문명이었는가?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스탈린이 추진한 제1차 5개년 계획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 우랄 산맥의 제철 공업도시 마그니토고르스크로 독자를 데려간다. 엄동설한의 황량한 초원 위에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제철소와 도시가 계획되고, 사람들이 들어차고, 실제 도시가 건설되고 운영되는 과정을 보면서 스탈린주의의 성격을 드러내겠다는 것이었다.

코트킨은 마그니토고르스크의 기원을 여러 곳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러시아 전통의 특수성보다도 근대의 보편적 맥락에 더 가깝게 위치시킨다. 먼저 스탈린주의는 러시아가 후진적이며 서구를 추격해야 하고, 그 실현은 강력한 국가의 힘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러시아 엘리트의 전통적 관념의 연장이다. 그리고 스탈린의 소련이 실현하려고 했던 문명은 유럽의 근대 국가와 산업 자본주의 문명이었다. 규모의 거대함과 미시적 차원까지 내려오는 정밀함 차원에서 러시아는 항상 유럽 근대성, 후에는 그 확장판인 미국 근대성을 모방하고 종국적으로는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추격과 초월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공산주의 이념이었다. 계획경제를 통한 자원의 동원과 합리적 배치는 추격을 가능하게 할 것이었고, 실업이 없어지고 보편적으로 교육과 보건에 접근할 수 있으며, 과학적 관리법을 통해 도시의 이상적 생활 공간을 조형하고자 했던 복지국가의 꿈은 자본주의의 초월을 보여줄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스탈린주의를 정말 특별하게 만든 것은 이 원대한 목표들을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에 달성하고자 했던 급진성이었고,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 있게 해준 무자비함이었다. 제1차세계대전, 혁명, 마지막으로 잔인한 러시아 내전을 거치면서 단련된 새로운 볼셰비키 엘리트들은 신세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피를 어느 정도(사실 상당히 많이) 흘리는 것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각종 ‘비상조치’들을 정상적인 관례로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경향이 합쳐져서 1930년대 지구 육지 6분의 1을 차지하는 국가 전체가,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하나의 거대한 건설판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마그니토고르스크.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그리고 사람들은, 국가의 이 강력한 권력에 포섭되면서 국가와 당의 믿음을 자신들의 믿음으로 내면화했고, 그 믿음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해 나갔다. 이런 전반적인 관점을 수용한다면, 전체주의와 수정주의 사이에 놓인 경계는 흐려진다. 소련이 실제 전체주의론의 가정에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작동하지는 않았고, 수정주의자들이 말한 것처럼 관료제의 대혼란 속에서 운영되었지만, 볼셰비키는 어쨌든 전체주의론에서 가정한 어떠한 이념적 지향으로 사회의 언어를 일원화하고자 했던 강한 목표 의식을 지녔다. 그리고 볼셰비키 언어가 사회 전반으로 스며드는 힘에 의구심을 품었던 수정주의자들의 생각과 달리, 코트킨은 상당한 수의 소련 시민들이 볼셰비키의 언어에 공감했으며, 오히려 그 언어를 통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했고 그런 활동을 정당화했음에 주목한다. 코트킨에게 있어 스탈린의 5개년 계획들은 국가와 사회의 흐릿한 경계 속에서, 근대 국가의 권력 기구를 통해 전파되는 당의 언어가 실제 힘을 발휘하는 과정이고, 그리고 당과 상호작용하며 그 과정을 이용하는 사회 구성원의 주체성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들은 물론 동시대 서구에서 드러났던 것과 구별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전개된 것이기 때문에, 코트킨은 스탈린주의를 단순히 러시아라는 특이한 사회에서 실패한 꿈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산업문명 건설의 한 실험으로서 유럽사 내지는 근대사의 보편 경험으로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의 ‘사회주의 건설하기: 국가의 대전략’에서는 소련 국가의 강력한 기획 아래에서 마그니토고르스크 건설이 어떻게 입안되어 진행되었나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내전의 경험으로 인한 볼셰비키 지도자들의 안보적 불안감, 산업 문명을 빠르게 건설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겹쳐 ‘강철’이 단순히 산업 자본재를 넘어서는 문명적 상징성을 획득한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볼셰비키가 꿈꾸었던 국가는 미국이었는데, 특히 그들은 인디애나주에 있는 거대한 제철도시 개리(Gary)를 이상향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볼셰비키는 자신들의 발전을 위해 그들의 존재론적인 적이라 할 수 있는 자본가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국 기업들 또한 대공황을 맞이하여 추가적인 사업 기회가 절실해진 상황에서 소련이 내민 손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그니토고르스크 프로젝트는 다량의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다는 이유로, 인근에 도시다운 도시도 없는 우랄의 초원에 갑자기 거대한 제철소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라는 데서 시작부터 문제였다. 무엇이라도 건설하려면 사람이 필요했는데, 사람이 올 일이 없었다. 처음에 소련이 활용한 것은 소련 전역의 농촌에서 끌려온 쿨라크(Kulak, 부농)들이었다. 영하의 날씨에 텐트와 함께 내몰린 이들은 전염병, 영양 문제 등으로 빠르게 소모되어 갔다. 하지만 볼셰비키의 광적인 속도전으로 인하여 무덤이 늘어나는 속도만큼 도시도 건설되어 갔다. 그들이 강제 노동력만 이용한 것도 아니었다. 당국은 소련 전역 각지에서 계절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노동자를 마그니토고르스크로 소환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생활 기반이 없고 인근 도시와의 거리도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장기적으로 정착할 사람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안정적인 노동력 통제와 수급, 안보에 대한 우려 등을 종합하여 소련 정권은 국내 여권제를 부활시킨다. 3장에서는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통해서 제철소를 건설해나가고, 도시를 건설해나가는 과정에서, 볼셰비키의 이념적 과욕이 빚어낸 각종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일화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마그니토고르스크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고 착실하게 강철을 향한 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2부인 ‘사회주의에서 살아가기: 행동의 사소한 전술들’에서는 국가의 거대한 프로젝트 속에서 실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더욱 자세히 조명한다. 주로 지역의 신문 자료를 통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마그니토고르스크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의 일면들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여름의 벌레와 겨울의 추위와 분투해야만 했던 기숙사 형태의 공동 ‘주택’, 자본주의의 퇴락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상하이’라고 불리웠던 마그니토고르스크의 슬럼가, 개인 공간이 제공되고 열효율이 좋아서 애용되었지만 당국은 낙후성의 상징으로 싫어했던 ‘제믈랸카(움집)’는 사회주의 복지국가로서 국가가 ‘생활 공간’을 책임지고 했던 볼셰비키의 구상 속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다.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5장, ‘볼셰비키로서 말하기(Speaking Bolshevik)’는 당원뿐 아니라 마그니토고르스크의 시민들도 볼셰비키의 언어와 레토릭을 내면화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대의나 역사적 의의, 파시스트나 자본주의 세력의 위협 속에서 러시아를 방어해야 한다는 애국주의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개하고 관철시켜 나갔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내면화는 분명히 소련의 전방위적인 외부 정보 통제를 통해서 가능했지만 말이다. 이 관점에서 스탈린 시기의 모습은 국가에 종속된 사회나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사회의 이분법적 대립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애초에 국가와 사회라는 명확한 구별 의식 없이, 볼셰비키 국가가 전파하는 볼셰비키 담론을 긍정하면서, 그 틀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천태만상이 소련 그 자체였다. 6장은 배급과 공개 재판이 마치 마그니토고르스크 사람들에게 일종의 빵과 서커스였음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어떻게 보상과 처벌이라는 권력 기구의 통치 기제와 상호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의 마그니토고르스크.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마지막 장인 7장에서는 스탈린 시대의 한 국면이 끝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숙청을 다룬다. 코트킨의 대숙청 이야기는 아치 게티 등이 이야기했던 수정주의적 시각의 대숙청 연구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소련 건국부터 늘 만연했던 행정 상의 대혼란, 급속한 경제 발전 과정에서 생기는 무수히 많은 산업 재해와 사고는 내부에 사보타주가 만연하다는 불안감을 키웠다. 한편 1930년대부터 본격화된 파시스트 추축국의 부상과 소련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 의식은 내부의 사보타주와 외부의 전쟁 위협을 연결시켜 사고하게 만들었다. 이런 편집증은 여전히 수많은 볼셰비키에게 생생했던 혁명과 내전의 경험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당의 유력자를 향한 하부 당원들의 불만과 투서를 통한 불만 제기는 숙청이 마치 들불처럼 번져가 당의 통제를 벗어날 지경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코트킨이 보여주는 마그니토고르스크 숙청의 에피소드는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전형이자 상례다. 그래도 그의 서술이 이전의 다른 관점보다 조금 더 특별한 것은 소련을 일종의 신권 국가로, 당을 일종의 교회 조직으로 보는 알레고리일 것이다. 계몽주의의 비전 속에서 고도의 근대성을 추구하고자 했던 볼셰비키들이 결국에는 이단 심문관과 교리 해석, 종교 재판으로 운영되는 신권 국가를 만들게 된 것은 러시아 혁명의 굉장한 역설이다.

Magnetic Mountain은 소련사 연구에 있어서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논쟁 구도를 열어젖혔다. 우선 그 이후 코트킨의 영향 속에서 푸코의 관점을 통해서 소련을 통치성과 근대성을 생산하는 체제로 해석하는 연구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일종의 ‘근대성 학파(Modernity School)’를 이루면서, 볼셰비키의 기획이나 근대적 주체의 생산을 바라보았고 그것을 유럽 근대성의 일반적 맥락에서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수정주의의 대가인 피츠패트릭은 이들 신진 학파를 비판하는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출범시켰는데, 바로 스탈린 시대에 러시아 전통 사회 질서가 근대 국가의 통치 기구를 덮어쓰고 복원되었다는 ‘신전통주의’ 테제였다.

어떤 입장에 동의하든 간에, Magnetic Mountain은 스탈린 시대의 중요한 일면을 보여주는 책으로서 서양사의 현대 고전으로 간주해도 충분한 책인 듯하다. 그리고 2022년에 이 책을 읽은 한국인 독자로서,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출발해 발전시켜보고 싶은 아이디어는 두 가지다.

1. 강력한 국가가 주도하여 산업 문명을 건설하고, 그 속의 시민들을 근대적 주체로 조형하고자 했던 소련의 노력은 이후에 다른 국가에서도 형태를 달리했을지언정 수없이 반복된 주제였다. 그리고 그 과업을 가장 모범적으로 수행한 국가가 바로 남한이었다. 한국의 마그니토고르스크인 포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정부는 어떻게 근대적 주체성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사람들은 거기서 어떻게 대응했을까? Magnetic Mountain의 관점으로 개발시대를 읽어낸 한국 현대사가 있을지 궁금하다.

2. 저자의 결론은 90년대에 이미 퇴락한 마그니토고르스크를 바라보며 소련의 위기가 단순히 공산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산업 문명 전반이 처한 위기임을 경고한다. 실제로 그러했다. 마그니토고르스크의 모태가 된 인디애나 주 개리는 러스트벨트의 대표 도시로서, 완전히 몰락한 구 산업 도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산업 문명 및 국가 미디어와 함께 탄생한 근대적 주체는 이제 정보 문명과 개인 미디어를 통해서 탈근대적 주체로 전환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2022년의 ‘자석산’이자 ‘새로운 문명’은 어디서 탄생하고 있는가? 푸코를 넘어서 그 과정을 담아낼 수 있는 이론과 지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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