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위에 대한 소고

중국 시위에 대한 소고

1989년의 재현?

임명묵
중국 청년들은 왜 계속 공산당을 지지할까 [임명묵의 MZ학 개론]
10월22일 중국 공산당의 제20차 당대회는 덩샤오핑 이후 수립된 관례와 원칙에서 시진핑 체제가 얼마나 멀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서방세계와의 우호적 관계를 밑바탕으로 중국의 경제 발전에 매진하라는 ‘도광양회’는 중국이 중심이 되어 유라시아 전역을 연결하는 독자적인 네트워크인 ‘일대일로’로 대체되었다. 덩샤오핑이 후대인들이 해결하게끔 남겨두자고 했던 대만 문제에 대한 태도도 뒤집혔다. 시진핑은 이제 무력 통일을 불사해서라도 해결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했다. 권력의 집중에서 오는 폐해를 막고자 설계

얼마 전에 이런 칼럼을 썼었는데, 쓰자마자 공교롭게도 중국에서 거대한 시위가 일어나게 되어서 머쓱하다.

'민주화 이행론'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경제적 발전 수준이 고도화 되었을 때 사회가 민주주의를 향한 격렬한 요구를 시작하여 정치 체제가 바뀌게 된다는 패턴을 연구한 이론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민주화 이행론에 입각하여 한국과 대만과 마찬가지의 정치적 변화가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 칼럼에서는

  1. 여전히 경제발전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있으며 중산층들의 경우 공산당 통치 권력이 무너졌을 때의 혼란을 감당하고 싶어하지는 않기 때문에 변화보다는 현 체제의 유지를 선호함
  2. '민주화의 세 번째 물결'이 일어나던 20세기 후반과 달리 현재는 민주주의 회의론이 지구적으로 확산된 상태이며, 특히 중국은 미국의 권위와 압력이 작용하지 않는 곳이기에 외부적 조건이 다름
  3. 중국 청년층이 애국주의를 각성한 상태에서 공산당을 애국주의적 열망을 이끄는 정치 세력으로서 지지하는 경향이 큼

이 같은 이유를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물론 지면 상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담지 못한 이야기도 많다. 중국에서 날이 갈수록 효율성을 더하는 거대한 감시체제와 공안기구, 그리고 당 중앙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기 전에 여러 불만을 사전에 차단하는 중국 공산당의 인상적인 통치 기술을 짚지 못한 것은 아쉽다. 탕핑과 같은 한국과 유사한 사회 심리가 확산되는 것은 차후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쯤은 더 다루어보고 싶은 이야기다.

하여간 이런 것은 별개로, 최근의 중국 시위를 그렇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단 중국 공산당에 대한 일반적 지지를 구성하는 저 세 요인 중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요인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서방식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이라든가 중국의 굴기에 대한 자신감, 미국에 대한 반감은 단기간에 바뀌기는 어려운 장기적 경향이 누적된 결과다.

그렇다면 핵심은 역시 하나다. 공산당이 계속해서 '만족스러운 삶'을 보장해준다는 믿음과 신뢰가 깨진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시위가 대도시의 학생들과 시민들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데서 그런 느낌이 더욱 크게 든다. 이들은 애국주의보다도 발전한 소비 사회의 대중으로서 활발한 여가 활동을 즐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무척이나 크다. 하지만 탈출구가 언제일지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장기간 지속된 제로코로나와 봉쇄 정책은 도시 중산층의 인내심의 한계까지 진행되었던 듯 하다. 언제라도 계기만 주어지면 발화할 수 있던 상황에서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참극이 불씨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이번 시위는 중국 공산당의 통치를 어느 정도까지 위협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그간 중앙 정치에 대한 공개적 불만 표출을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으로 통제해 온 중국 공산당의 철벽을 뚫고 시위가 이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무척 놀랍다. 그만큼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는 뜻이겠다. 사실 한국 수준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계속 하니까 대체 언제 끝나나 하고 지쳐 갔던 것을 생각하면 중국 제로코로나의 피로감은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다 끝내고 월드컵 하고 있는데 중국만 문을 걸어잠그고 있자니 비교가 더욱 크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위가 공산당 체제를 더 크게 위협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더 충족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런 조건이 어느 정도로 충족될 수 있을지는 나로서는 다소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중국이 불확실한 국면에 진입한 것은 사실이니 앞으로 계속 주의 깊게 지켜보기는 해야 할 것이다.

  1. 사태의 원인에는 제로코로나로 인한 피로감과 시진핑 3연임을 앞두고 심해지는 억압 체제에 대한 반감이 섞여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쉽사리 분리할 수는 없겠지만, 또 분리하자면 분리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 공산당이 제로코로나에 대한 출구 전략을 마련하고 방역 조치들을 완화한 뒤 지방 행정의 당국자들과 책임자들을 처벌하면 중앙당을 향한 압력이 줄어드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중앙당이 시위대의 압력에 다소 양보한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이 때가 기회라며 압력을 더욱 거세게 가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방역 조치의 완화에 만족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 뒤에 남아 있는 시위대는 아마 철권으로 다스리고자 할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당 중앙 내부에서 발생할 시진핑의 권위 약화인데, 시진핑이 이걸 어떻게 감내할지는 외부인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2. 시위가 정권에 존재론적 위협을 제기하려면, 지방의 농민과 도시빈민, 그리고 대도시 중산층이 하나가 되어서 정권을 압박해야 한다. 특히 막강한 권위주의 정권을 상대할 때는 이 두 세력이 분리되면 언제나 각개격파 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위는 일단은 대도시 중심으로 전개되는 듯 하고(대도시가 코로나 상황에 더 취약함을 고려하면 제로코로나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극심한 지역이었을 것이다), 좀 더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지역인 후방 도시들이나 농촌에서의 움직임은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이 두 공간이 힘을 합친다면 그 때부터는 정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는, 1989년 이래로 최대의 난관에 봉착하는 셈인데(사실 이때도 대도시 학생 위주였음), 일단은 대도시 대학생들을 고립시키고 대도시 중산층들에게는 회유책을 주면서 상황을 무마하지 않을지. 어쨌든 중국이 홍콩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 사회 세력이 하나의 깃발 아래로 뭉치지 않게 견제하는 법은 새롭게 업데이트 했으리라 보는 게 타당하다. 다만 최근 정저우 공장에서 일어난 저항은 그래서 주목해 볼만 하다. 대도시 대학생/중산층 바깥을 벗어난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중국 정부가 제로코로나 정책을 어느 정도 내려 놓고 어떻게 유화책을 펼칠지, 그리고 대도시 대학생들을 최대한 고립 시키고 정부에 대한 불만이 지역 도시들과 농촌에서 터지지 않도록 어떻게 관리할지에 초점을 두고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은 공산당 체제 자체가 위기에 빠진다고 보기에는 21세기의 감시 국가는 너무나 강력한 리바이어던이다.

더하여, 얼마 전에 읽은 SNS에 관한 책 The Choas Machine이 생각난다. 사실 이번 중국 시위도 우루무치 참극이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면서 중국 전역에서 신속하게 확산된 모양새다.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시민 봉기가 어떻게 정권을 위협하는지는 아랍 봉기에서 이미 잘 드러난 바가 있다. 문제는 아랍 봉기 이후에 이런 식의 온라인에서 점화된 시위가 정권을 존재론적으로 위협한 적이 없다는 데 있다(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정도가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일어난 Black Lives Matter도 그랬고, 최근에 일어난 이란 시위도 사실 몇 년에 걸쳐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역시 무력 기관을 장악한 정권은 끄떡이 없는 상황이다. 해당 책에서는 SNS를 통해 대중적 분노의 정서가 순식간에 확산되어 대중 봉기로 전환되는 빈도는 무척이나 잦아졌지만, 역설적으로 중앙 조직이 없고 구체적 목표와 강령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공률은 오히려 낮아졌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인간의 삶이 점점 사이버 세계에 추적되기 시작하면서 정권은 시위를 배후에서 지도할 중앙 집권형 지하 조직의 존재를 추적하고 파괴하는 데는 훨씬 더 유능해졌다.

여러모로 자유주의자들에게는 겨울인 셈인데, 과연 중국에서 그들이 봄을 맞이할 수 있을지는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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