귬리를 거쳐 그루지야로
귬리에서의 하룻밤, 그리고 국경을 넘으러..
지진의 흔적을 찾으며 걷고 그 다음에는 역시 귬리 외곽에 위치한 검은 요새와 어머니 아르메니아를 둘러보기로 한다.
'귬리의 어머니 아르메니아'라고 보통 불리는 거대한 기념상이다. 제2차세계대전(대조국전쟁) 승전 30주년을 맞이하여 1975년에 건립되었고, 기단부 높이 20m, 동상 높이 20m의 인상적인 기념물이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가운데 금빛 별이 하나씩 새겨져 있는 일련의 비석들은 소련의 '영웅 도시'들의 목록이다. 모스크바, 민스크, 키예프, 브레스트 요새, 스탈린그라드 등이 새겨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만들었다고 한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기념상을 조목조목 관찰하며 산보를 했다.
어머니 아르메니아의 드넓은 평원을 아르메니아인들이 앞으로도 수호할 수 있을까..
한때 페이스북 커버 사진으로도 썼던 귬리의 정경. 지대가 높다보니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도시 규모가 작기도 하고..
어머니 아르메니아상에서 바로 옆에 위치한 '검은 요새'. 아르메니아어로는 '세브 브레드'라고 한다. 귬리는 1813년 러시아 제국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코카서스 지역의 영토를 할양받은 굴리스탄 조약 이후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그 뒤 이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숙적 오스만 제국과 국경을 맞닿은 국경 도시이자 지정학적 요충지가 되었고, 제국군은 그 중요성을 고려하여 1834년에 현무암을 활용한 이런 요새를 건축하게 되었다. 1878년에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이 도시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러시아군의 진격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78년 전쟁 덕택에 오늘날 터키의 카르스와 아르다한 지역을 할양 받은 뒤로 이 요새는 후방 요새가 되었으나, 러시아 제국이 해체되며 카르스와 아르다한을 반환하면서 다시 전선에 위치하게 되었다.
물론 이후 현대전의 시대에 1830년대 요새가 중요성을 지닐 수는 없었고, 지금은 아르메니아 민간 자본에 넘어가서 관광자원으로서 개발이 진행 중이다.
뭔가 내부에서 공연이나 행사 같은 걸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듯 했다.
기나긴 여정을 끝냈으니 이제 다시 술을 마실 타임... 인근 마트에서 예레반에서 마셨던 것처럼 각종 안주들을 이것저것 사와서 부어라 마셔라 준비를 하기로 한다.
그래도 아르메니아에 왔으니 아르메니아 와인을 좀 마셔봐야지 않겠나 싶어서 사봤는데, 문제는 따개가 잘 먹히지 않았다. 이러다가 코르크 부숴지면 진짜 큰일인데 어쩌지...! 하면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는데, 주인장인 다비드 선생님께서 지나가다 보시더니만 자기한테 한 번 줘보라고. 이래저래 낑낑 힘을 쓰시더니 경쾌한 뻥~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
감사의 마음으로 다비드 선생께도 한 잔 드시라고 술을 권했다. 사진은 사모님께서 찍어주신 것.. 다비드 선생께 몇 잔 더 드시고 가시라고 했는데 할 일이 있으시다고 하며 맛있게 먹으라고 덕담을 주셨다. 그러다 귬리의 바람을 안주로 삼으며 우리가 음악을 좀 틀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자라 므고얀(Zara Mgoyan)의 노래였다.
자라 므고얀은 아르메니아 쿠르드계 러시아인으로, 1983년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에 서바이벌 콘테스트 프로그램에서 크게 이름을 날렸고, 이후에도 러시아의 유명한 발라드, 팝, 로만스 가수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약한 분야 중 하나는 러시아의 각종 군사 및 애국 기념 행사에서 꼭 참석하여 아련하면서도 날이 서있는 목소리로 옛 가요들을 부르는 일이었다. 이 덕택에 크렘린을 비롯한 정계의 유명인사가 된 자라는 러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이라고 불리는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상원의장의 아들 세르게이 마트비옌코와도 결혼할 수 있었다(훗날 이혼함).
어쨌든 또 아르메니아 땅에 와줬으니 아르메니아인이 부르는 제국적 노래를 들으며 술을 먹어야하지 않겠냐는, 딱 주취자가 할 법한 생각으로 노래를 틀었는데... 숙소 주인 아주머니께서 "어? 자라 노래 듣네? 자라 쟤 이 동네 사람이잖아!"라고 하시는 것 아닌가.
혈통만 아르메니아계(및 쿠르드)로 알고 있던 나는 인터넷을 다시 찾아보았는데, 자라의 부모님이 귬리(당시 레니나칸) 출신으로 레닌그라드로 이주를 해서 자라를 낳았다고 한다. 어찌저찌 본적은 귬리가 맞는 셈. 시골 출신자로서의 뜻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아주머니와 자라 얘기를 나누며 노래를 계속 들었다.
술이 모자라서 술을 더 사러 나오는 사이에 본.. 동네에서 뛰어 노는 아르메니아 아이들의 모습. 조선에서도 이런 모습을 본 날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숙소 마당에서 술을 계속 먹고 있는데 귀여운 개 한마리가 들어와서 마당을 헤집고 갔다.
이제 1박 2일의 귬리 여정을 마치고 그루지야로 넘어가야 할 시간. 아침엔 역시 해장술이다. 시내 중심가로 나가면 그럴싸한 식당들이 많이 있는데 일단 귬리의 대표 귬리 생맥주를 시켜서 한 잔 딱 먹었다.
이건 무려 아르메니아의 우설 요리인데.. 한국에서 우설을 먹을 때의 그 가격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저렴하고 맛있는 우설 요리에 생맥주 한 잔이라니 그저 극락이 따로 없었다..
1884년에 세워진, 에치미아진 대성당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귬리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역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이다. 소련 시절에도 폐쇄되지 않고 계속 활동을 했다고 한다.
안에는 구소련 여느 지역 성당을 가면 늘상 볼 수 있는 교회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예레반에서 만난 아르메니아인들한테 우리 여행 계획을 종종 말할 일이 있었다. 다음은 어디를 가냐, 하니 '귬리요!'라고 말하곤 했는데, 만나는 예레반 사람마다 왜 볼 것이 없는 귬리를 가냐고 답하기 일쑤였다. 자기들 생각에는 세반 호수가 있는 동쪽이 훨씬 역사적 유적지도 많고, 자연 풍광도 좋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의 지정학적 상황이 너무 어려워져서 외교부에서 출입금지 지역이 된 곳들인데..
그래도 우리는 귬리도 무척 좋았다. 특히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의 경제 팽창기에 지어진 이 귬리 구시가지에는 예레반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아르메니아 건축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도시가 인구가 반토막 난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귬리에서도 발견할 수밖에 없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삼성 대제국.
이곳은 귬리 시청 건물. 시청 앞 광장을 여기서는 바르다난츠 광장이라고 한다. 소련 시절에는 아르메니아 공산주의자들의 봉기를 기리며 5월 광장이라고 했다는데... 바르다난츠는 5세기에 조로아스터교를 강요하려 했던 사산조 페르시아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우다 전사한 바르단 마미코냔을 기리는 말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강대한 제국으로부터 자신들의 민족성과 신앙을 지켜냈다고 이 전투를 기념하고 있다.
이 구역 또한 예레반과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 건축과 도시의 설계자 알렉산드르 타마냔의 작품이라고 한다.
1872년에 완공된 거룩한 구세주 성당. 러시아 지배 하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아닌 러시아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 교회들이 세워지자 아르메니아인들이 그에 반발하여 더 큰 성당을 짓기로 했다고 한다. 소련 시절에는 성당이 아니라 박물관이나 연주회장으로 쓰였다. 하지만 1988년 귬리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성당이 거의 완파되었고, 소련 해체 이후 혼란기에도 빠르게 복원하고 있지 못하다가 2010년대에야 복원을 완성하고 다시 사도교회 교인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진으로 완파되었던 흔적.
1988년 대지진을 추모하는 기념비다.
위키백과에서 사진을 찾다가 내가 잘못된 구도로 찍었음을 4년 만에 깨달았다..
아까 위에서 설명한 사산조에 맞선 영웅 브라다란 마미코냔의 기념상. 뒤에 삼성 제국이 또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Dzitoghtsyan 건축 박물관이라는 곳인데.. 사실 시간이 남아서 들른 곳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귬리(알렉산드로폴)의 생활상과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다는 곳인데... 잘 몰라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넘겼던...
이제 귬리 역으로 향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 도색은 그루지야 기차의 도색이다. 드디어 살면서 처음으로 국제 열차 한 번 타보는구나
실선이 아르메니아 국경이고 점선이 철도 노선이다. Gyumri에서 Tbilisi까지.. 차타고 가면 3시간이면 된다는데 기차로 가면 7시간 넘게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간에 국경 검문이 은근 귀찮은데, 대체 왜 그게 로망이라는 걸까....
귬리 역에서 우리를 맞이해주는 기차. 이걸 타면 된다..
내부 시설은 알만하다. 물론 제일 싼 걸 탔으니 감수해야 하지만... 근데 열차 안이 너무 더워서 자는 것도 힘들었다. 중간에 속이 또 안 좋아져서 그거로도 고생을..
그래도 기차를 타고 달려가는 아르메니아의 산과 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렇게 황량~해보이는 건조한 땅이 나오다가도
나름 또 녹음이 우거진 곳도 나오는 곳이 경치 보는 맛이 쏠쏠한 여행이다.
해는 점점 뉘엇뉘엇 넘어가고....
아무리 봐도 수십 년 간 방치된 것처럼 보이는 공장 같은 구조물이 나타났다. 이건 뭘까? 어쩌면 겉만 낡아보이지 지금도 쓰고 있을지도? 소련 시절에 만들었겠지? 등등 온갖 상념을 들게 했다...
저 산 너머 그루지야에서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사실 이미 다 조사해놨지만.
예레반에서 트빌리시를 거쳐 바투미까지 가는 남코카서스 국제 철도 노선. 예전에는 저게 이란과 터키, 아제르바이잔으로 사통팔달 했을 것을 생각하면 다소 안타깝다. 아르메니아에서 바쿠를 가고 또 아제르바이잔을 갈 수 있는 날은 올 것인가. 아제르바이잔은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러시아-이란 사이의 물류 교두보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아르메니아가 참여하여 공동 번영하는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