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개황 (1) - 이란과 페르시아

이란 개황 (1) - 이란과 페르시아

이란은 무엇이고 페르시아는 무엇인가? 간단 요약.

임명묵

모든 국호에는 그 나라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대한민국의 영문명 Republic of Korea에는 한국이 왕정과 식민 통치를 끝내고 공화정을 채택하게 된 과정이 묻어난다. 미국의 United States of America나 러시아의 Russian Federation도 마찬가지로, 국호에서 아메리카와 러시아 지역의 ‘연방’이라는 정체(政體)의 성격이 드러난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도 마찬가지다. 이란이라는 민족의 이름과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정체의 이름을 해석해내면 이란의 역사와 오늘날 이란의 위치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슬람 공화국은 이란 근현대사의 모든 문제가 총체적으로 집결되는 테마이다보니 간단히 끝낼 수가 없다. 그러니 먼저 ‘이란’부터 살펴보자. 처음에 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역사를 공부해나갈 때 헷갈리는 것이 바로 이란과 페르시아의 문제다. 고대사를 읽다 보면 근동을 통일하고 그리스와 맞붙은 세계 최초의 제국인 페르시아를 접하게 된다. 오늘날까지도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화려하고 장엄한 고대 제국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그야말로 문명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이란은 무엇일까.

쿠르드에서 타지크까지, 오늘날 이란계 민족의 분포 지도. 다리어와 타지크어는 현대 페르시아어와도 거의 유사하여 상호 소통이 가능하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개념이 바로 ‘이란계 민족’이다. 그 역사는 4천년도 더 전에 우크라이나와 남러시아 초원 일대에서 인도유럽인이 발흥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차를 타고 키가 큰 풀이 무성한 초원 지대를 누볐던 인도유럽인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 동쪽의 인도부터 서쪽의 유럽까지 정복과 교류를 통해 확산되었다. 서쪽으로 간 인도유럽인들은 켈트인, 라틴인, 게르만인, 슬라브인, 그리스인 등으로 갈라지며 오늘날 유럽 민족 대부분을 형성했다. 하지만 동쪽과 남쪽으로 간 인도유럽인 집단도 있었고, 이 중에서 특히 시베리아를 거쳐 남쪽 중앙아시아로 대거 이동한 인도유럽인들이 매우 중요했다. 이들이 바로 ‘아리아인’이기 때문이다. 아리아인 중에서 북쪽 중앙아시아와 서쪽의 이란 고원에 정착한 민족들은 이란계 민족이 되었고, 동쪽과 남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간 민족은 인도계 민족이 된다. 이란계 민족과 인도계 민족은 서로 다른 원주민들과 교류하며 종교, 언어 면에서 차이를 보이게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기원을 공유하고 있다.

동쪽의 인도계 민족들은 베다 신앙과 불교를 발전시키면서 동아시아와도 깊은 연관을 맺게 된다. 하지만 이란계 민족도 그야말로 드넓은 영역으로 뻗어나가며 수없이 갈라졌다. 먼저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시베리아 일대를 주름 잡는 이란계 유목민인 스키타이인들이 있었고, 이들은 세계 최초의 유목 세력으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도 등장했다. 트란스옥사니아라고도 부르는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와 하천 농경 지대(주로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는 동부 이란계 민족의 중심이 되면서 훗날 실크로드의 거점이 된다. 아프가니스탄의 산악 지대로 들어간 민족들은 파슈툰인을 형성했다. 그보다 서쪽에는 발루치인부터 쿠르드인에 이르는 다양한 민족들이 갈라졌다. 터키 동부에서 중국의 신장 위구르까지, 시베리아에서 파키스탄의 인도양 해안에 이르기까지가 이란계 민족들의 역사적인 무대가 되었다. 이들 민족들은 유목민, 산악민, 농경민, 해양 상인 집단 등으로 갈라지며 교류하고 갈등해나갔다.

최초의 유목민 스키타이인의 세계.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역사를 거치며 그중에서 이란계 민족을 가장 대표하게 되는 집단이 등장했다. 오늘날 이란 남부 지역 ‘파르스’에서 발흥한 민족이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파르스에서 따온 이들의 이름이 바로 ‘페르시아’다. 이란어로는 파르시(퍼르시)라고 한다. 최초의 기축 사상으로 분류될 수 있는 조로아스터교 신앙을 바탕으로 제국을 건설한 그들은 걸출한 군주들의 통치, 영웅 서사시, 궁정 관료 전통, 섬세한 문학을 발전시켰다. 바로 이 제국-문화 전통을 계승하는 집단이 이란계 민족 중에서도 페르시아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페르시아는 주로 그리스인들의 명칭에서 시작되어 외부에서 이란을 부르는 이름으로 널리 쓰였다. 여전히 이란 내부에서는 자신들을 페르시아보다는 이란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렀다. 1935년에 팔레비 왕조가 이란의 국호는 페르시아가 아니라 이란이라고 세계적으로 천명하면서 어쨌든 ‘이란’이 유일무이한 공식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기에 이란과 페르시아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다.

페르시아의 발흥지 '파르스'. 이란인들이 사랑하는 도시 시라즈와 '페르세폴리스'로 알려진 타크테 잠시드가 위치해 있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이란: 터키에서 중앙아시아를 포괄하는 거대한 이란계 민족들의 세계를 칭하는 가장 넓은 의미, 혹은 근세/근대에 형성된 이란 국가와 연관된 정치적 맥락의 좁은 의미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에서 시작된 고대 문명과 연관된 역사적, 문화적 의미

특히 페르시아는 이란이라는 종족적인 차원보다도 제국의 문화를 떠올리게 할 때가 많다. 세계 최초의 제국인 페르시아는 그리스인, 아랍인, 몽골인, 튀르크인과 같은 외부 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가 많았지만, 이 외부 제국들은 압도적으로 뛰어난 페르시아 문화에 감화되었으며, 그로 인해 페르시아 문화 전통은 이란계 민족 영역 바깥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튀르크인의 오스만 제국 궁정에서 페르시아 시는 교양의 척도였고, 인도의 무굴 제국에서도 페르시아어는 가장 중요한 언어나 다름이 없었다.

거대한 이란계 민족의 세계와 최초의 제국인 페르시아 문명이라는 두 요소는 특히 아랍인의 종교인 이슬람을 이란인들도 받아들이게 되면서 주요한 정체성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란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이란계 민족이 공유하는 신년 명절 노루즈(nowruz). 새로운 날이라는 뜻으로 겨울이 끝나고 태양이 승리하여 봄이 오는 것을 기린다. 양력으로 3월 20일이나 이란 달력에서는 이날부터 1월 1일이다. 조로아스터교 및 이란 고대 신앙과 연결되어 있는 민속 명절이기도 하며, 이란계 민족이 아닐지라도 페르시아 문화를 받아들인 인근 민족들, 대표적으로 코카서스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신년 명절이다. 이란에서는 명절 전후로 거의 한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대규모 귀성 및 여행 행렬이 이어진다. 사진은 이란 중부 소도시 골파예간의 한 집에서 신년 명절을 기념하기 직전의 모습.

테헤란에서 이란의 여러 민족 전통 의상 탈을 입은 춤꾼들이 각 민속 전통 춤을 선보이는 모습. 이란의 민족 분포와 민족 문제에 대해서는 추후 소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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