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 대종주 (7): AK의 도시 이제프스크

볼가 대종주 (7): AK의 도시 이제프스크

200년 역사의 이제프스크 조병창과 칼라시니코프 자동 소총을 보다.

임명묵

이제프스크는 이즈(Izh)강 근방에 18세기에 건설된 도시로, 1800년대 초반에 건설된 유서 깊은 조병창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성장한 도시다. 인구는 대략 65만 명. 도시의 핵심 산업 기반인 군수 기업 '이즈마쉬'는 그 유명한 칼라시니코프 소총(AK)을 시작으로 각종 소형 개인 화기들과 오토바이를 생산한다.

어제 해가 뉘억뉘억 저물어갈 무렵에는 무언가 을씨년스럽고 쇠락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낮에 나와 보니 전혀 아니었다. 카잔만큼은 아니어도 새로운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었고, 사람들 분위기도 매우 활기찼다.

이제프스크 시 중심에 있는 중앙 모스크. 우드무르트인들은 대체로 러시아 정교회를 믿지만 이 지역에는 타타르인을 비롯한 무슬림들이 꽤 유의미한 수준으로 거주하고 있다.

먼저 도시의 중심을 지키는 레닌 동상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소련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트램들이 지나가고 있다.

우드무르트 공화국 답게 밑에는 우드무르트어로도 레닌에 관한 설명이 써 있었다.

황금 돔을 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성당. 네프스키는 스웨덴군이 쳐들어 왔을 때 얼어 붙은 라도가 호수에서 그들을 물리치고 고대 러시아를 구했다는 군주다. 러시아에는 대조국전쟁 기간에 스탈린에 의하여 확립된 조국 수호의 영웅들의 계보가 있는데 나름 거기서 태두를 맡고 있다고 할까. 네프스키 성당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성당은 소련 시절에는 돔이 제거되고 영화관으로 사용되었었다가 소련 해체 후에 현재 모습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작년이 네프스키 탄생 800주년이었나보다.

여기서 이제프스크의 주요 지점인 이제프스키 호수 쪽으로 나간다. 둑으로 이즈강을 막아서 생긴 호수라서 들은 것 같다. 호수의 동쪽과 북쪽에는 시가지가 들어서 있고, 남쪽에는 거대한 이즈마시가 자리하고 있다. 저 사진 속 공장에서 오늘도 칼라시니코프 소총이 열심히 생산되고 있을 것이다.

이즈마시 조병창의 설립자들인 것 같았는데, 중노년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소박한 이즈마시 박물관 입구.

레닌 훈장,적기 훈장 등등 이즈마시가 받은 소련의 주요 훈장들을 전시했다. 소련은 사람 뿐 아니라 산업체나 기관 등에도 훈장을 주었고 그러면 해당 기관은 '레닌 훈장을 받은 이즈마쉬' '적기 훈장을 받은 흑해 함대' 등으로 자신을 칭하고는 했다.

이즈마시에 전시되어 있던 각종 총기, 훈장, 그리고 이즈마시에서 생산한 오토바이들. 밀리터리 지식이 없으니 봐도 뭐가 뭔지는 모르겠다.

식사는 우드무르트 민속 음식을 먹기로 했는데 전형적인 민속촌 관광지 식당 느낌이었지만 매우 맛있었다.

드넓은 이제프스크 호수에는 시민들이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뛰어 놀고 있었고, 날이 특별했나 본지 결혼식을 치르는 커플들이 꽃을 들고 축하를 받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성당 안에서도 결혼식을 진행하는 커플들이 여럿 보였다.

초등학생의 기분으로 돌아가서 날도 덥고 하니 슬러쉬 한 잔 주문했다. 러시아에서도 슬러쉬는 슬러쉬구나.

이제프스크 호수 동안의 가운데쯤으로 오면 서 있는 거대한 기념비.

우드무르트 공화국의 인민 우호 기념비다. 소련은 Druzhby Narodov '제민족 우호' 혹은 '인민 우호'를 국시로 삼고 국가에도 집어 넣을 정도로 중시했다. 이상과 현실은 물론 계속 충돌하며 소련의 해체까지 이끌었지만 어쨌든 이상은 실제로 중요하게 작동했다. 소련의 각종 소수민족 공화국에 이렇게 제민족 우호를 칭송하는 기념비가 건설된 것도 그 일환이었다.

한 쪽에는 러시아어, 한 쪽에는 우드무르트어로 써 있다. 우드무르트어는 못 읽고 러시아어는 읽을 수 있었는데 "위대한 권력에 영광이, 러시아 인민과 우드무르트 인민의 우애가"라고 써 있었다.

이제프스크의 대표적 랜드마크인 성 미하일로비치 성당. 이 성당은 네프스키 성당처럼 부분적으로나마 살아 남는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소비에트 정권에 의하여 철거되었었다. 소련 해체 이후 2000년대에 다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실 소비에트권을 돌아다닐 때 이런 멋있는 성당이 재건된 성당이라고 하면 아쉬움이 좀 크게 남는다. 그래도 이 또한 시간이 누적되며 역사가 될 것이다.

성당 바로 옆에는 칼라시니코프 소화기 박물관이 있다. 이제프스크는 핵심 지점들이 다 오밀조밀 모여 있어서 편했다.

박물관 앞을 지키고 있는 칼라시니코프 동상.

전시관 처음에는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태어나 근성으로 소련군에 들어가고 대조국 전쟁 최전선에서 싸운 칼라시니코프의 일대기가 나온다. 그 뒤는 '전설의 시작'으로 AK 시리즈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물론 지식이 없어서 슥슥 보면서 넘겼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끼리 온 관람객들이 무척 많았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동구권에 제식 소총으로 널리 채택된 것을 자랑하는 관인데 북한 인공기를 보니 묘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나한테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당신의 무기가 내 삶을 구했어요"라고 말할 때다. 어째서 내가 백만장자가 되어야 하는가? 난 이미 잘 살고 있다."

칼라시니코프는 전 세계를 뒤흔든 총을 발명했지만 백만장자는커녕 소련 해체 때, 그리고 죽을 때까지도 검소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소련에 대해 흔히 평할 때 "보너스 없이 훈장으로 때우던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때로는 훈장과 그것이 상징하는 명예를 위해 죽기도 한다. 보너스 없는 훈장은 결국에는 무너졌지만, 훈장 없는 보너스는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오른쪽의 현대 러시아군 제식 복장을 보니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생각나 한 켠이 서늘해졌다.

우드무르트 공화국 정부 청사.

맞은 편의 우드무르트 공화국 극장이었던 것 같은데 넓은 광장과 분수에서 아이들이 너무나 행복하게 뛰어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옆에는 러시아의 전쟁 프로파간다의 상징인 거대한 Z가 써 있었다. 모스크바에도 Z를 버스 광고판으로 보기도 했지만 뭔가 입국 전에 기대(?)했던 것을 본 건 처음이다. 동행분께 "얘네 전쟁 일으켜 놓고 너무 평화롭게 잘 사네요"라고 하니 "그게 강대국의 특권이겠죠..."라는 쓴 답이 돌아왔다.

우드무르트 공화국의 각종 산업체나 사회적으로 활약한 인물들을 이렇게 정부 청사 앞에 전시해 놓은 것 같았다.

이제프스크에서도 방문하는 영원한 불꽃과 승리 공원.

박력 있는 동상과 그 옆의 흉상 두 개는 소련 국방 장관 드미트리 우스티노프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우드무르트 공화국에서도 이렇게 많은 소비에트 연방 영웅이 나왔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전선으로 나가 죽었다는 뜻이겠다.

박력 있는 소련식 기념물은 언제 봐도 멋있다.

대지 위의 삶을 위한 공훈에 어머니 조국은 그대에 영원히 감사한다.

숙소로 돌아가던 중에 발견한 다른 동상. 책에는 '우드무르트의 자치'라고 써 있었다. 우드무르트인 민족 지식인이었던 것 같았다.

내일 우파로 떠나야 해서 먼저 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사는데 놀랍게도 터미널에 이런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3년 만에 온 러시아는 카드가 일상 생활의 구석구석으로 침투 했고, 무현금 사회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핀테크 수요와 공급도 놀랍도록 커진 상태다. 간혹 알리페이가 들어온 것을 볼 수도 있었다. 과연 내 마스터카드를 여기서 편히 쓸 수 있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이제 다음은 바시코르토스탄 자치 공화국의 수도 우파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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