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 대종주 (7): 이제프스크에서 우파로

볼가 대종주 (7): 이제프스크에서 우파로

우드무르트 공화국 이제프스크에서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 우파로.

임명묵

다음 행선지는 바시코르토스탄 자치 공화국의 수도 우파. 소련 시절에는 '바시키리야'로 불렸다. 이번에도 버스를 타고 이동. 저번에 450km를 7시간 동안 갔다면 이번에는 350km를 6시간 동안 가야 하는 여정이다. 그래서 저번처럼 딱히 올릴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다.

터미널에 가면 으레 그렇듯 이번에 우리가 탈 버스는 어떤 버스일까 하면서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데...

뭔가 절망적인 미니 버스가 '우파'라는 이름을 딱 달고 도착하니 처음에는 몹시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자리를 배정 받을 때, 마치 항공기 비상구 좌석과 같이 널찍한 맨 앞자리를 배정 받아서 다리도 조금 더 편하게 피면서 갈 수 있었다. 조금이지만 열려 있는 창문으로 바람도 시원하게 들어와서, 에어컨이 없어도 그럭저럭 버티기 괜찮았다.

중간에 석유 도시 네프테캄스크를 지나서 들린 휴게소. 3시간 정도 달려서 절반 쯤 온 상태였다. '모자리'라는 마을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기가 이상하게 잘 안 들어와서 음료수 냉장고는 하나는 열리고 하나는 열리지도 않고, 아이스크림은 냉동고 안에서 죄다 녹아 있어서 충격을 선사했다. 그래도 립튼 아이스티 시원한 거 하나 마시고 3시간을 더 앉아 갈 준비를 했다.

사진엔 잘 담기지 않았는데 휴게소 건너편에 모자리 마을이 보인다. 이곳 농촌들은 어떤 상태로 운영되고 사람들은 어떻게 살지가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도시들만 들리다 보니.

Selo Mozhary, Ulitsa Novaya 2. '모자리 마을 신작로 2번지'라는 심플한 주소.

한국이 유난히 산이 많은 나라라 그런 거겠지만 지평선을 보다 보면 마음이 뚫리는 느낌이 들면서도 풍경이 단조롭다는 모순적인 생각이 든다. 톨스토이의 소설을 보면 러시아인 주인공이 캅카스에 처음 가서 거대한 산맥을 보고 충격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 본인 얘기일 것이다. 평생을 이런 평원만 보다 그제서야 압도적인 산악 지대를 보게 되는 것일테니 그 시각적 충격은 한국인들이 미국 등지에 나가서 제대로 된 지평선을 볼 때랑 비슷하거나 더 대단할지도.

우파를 가로지르는 벨라야강. 벨라야는 하얀색이란 뜻이니 나름 백강인 셈이다. 물론 여기는 벨라야강의 하류고, 우파는 남쪽으로 더 들어가는 상류에 위치해 있다. 벨라야강은 북쪽으로 계속 흘러 카마강으로 합류하여 지난 번에 잠시 들린 자동차 공업 도시 나베레즈니예 첼니로 이른다. 카마강은 카잔 쪽으로 흘러 볼가강 주류와 합류하여 남쪽의 카스피해로 향한다. 아직까지는 볼가강 주류를 제대로 보기 보다는 주로 상류의 지류 지점들을 둘러 보고 있는 셈이다.

사실 볼가강 대종주를 감히 칭하기에는 볼가강에서 꼭 들려야 할 다른 도시를 시간 상 제약으로 못 들리는 게 아쉽긴 하다. 볼가강 발원점에 가장 가까운 도시인 리빈스크부터 역사적 고도인 야로슬라블과 소비에트 디트로이트인 니즈니노브고로드도 있고, 추바시 공화국의 수도 체복사리가 카잔 이전 볼가강 상류에 위치한 주요 도시들이다. 한편 다른 지류인 카마강 상류에는 주요 도시 페름이 있다. 아예 다른 지류인 오카강에는 랴잔과 같은 또 다른 역사적 고도가 있다.

물론 볼가강의 거대한 크기를 생각했을 때 이 모든 지역을 한번에 다 둘러 본다는 것은 애당초 시간과 예산 제약으로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언젠가 다른 경로로 방문할 기회가 있겠지.

시간은 오후 8시를 향해 가고 있는데 해가 질 생각을 안 한다. 바시코르토스탄은 예카테린부르크 표준시를 따라서 GM5+5(한국보다 4시간 빠름)를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거보다는 1시간 더 느리게 해도 괜찮지 않나 싶다.

바시키르인들은 튀르크계 유목민들인데 이런 초원에서 가축을 풀어놓고 유목 생활을 하지 않았을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벨라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우파 시에 진입 중. 우파는 일찍부터 인구 100만을 넘긴 대도시이자 산업 중심지다.

우파 남부 터미널(yuzhnyi avtovokzal)에 도착하여 발견한 유리 레비탄 벽화. 러시아에서는 아파트나 건물 한 쪽 면 전체에 저런 그림을 그리는 문화가 꽤 활성화 되어 있다. 유리 레비탄은 소련의 전설적인 라디오 뉴스 진행자로, 특히 대조국 전쟁의 개전부터 종전까지 소련인들의 영웅적 항전을 독려하는 목소리로 유명했다. 지금까지도 러시아 뉴스나 안내 방송을 듣다 보면 레비탄의 목소리를 오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때로는 받는다.

1945년 베를린 함락을 알리는 레비탄의 목소리

바시키르나 우파하고는 별 관련이 없는 사람인 것도 같은데 전국적인 유명인을 별로 관련 없는 곳에서 기념하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니 대충 납득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를 향하는 와중에 발견한 거대한 신축 모스크. 여기서도 종교의 부활이 현재 진행형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모스크 정보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구글 지도의 '리뷰' 칸에 보니 혹평이 한 가득이다. 대체 왜 그런 걸까? 하고 보니 거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십몇년 째 건설 중인데 진척이 거의 없어서, 지역 정치인들과 유력자들이 건설 예산을 대체 얼마나 횡령한 거냐고 의심을 받는 대표적 프로젝트라고 한다. 확실히 러시아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논리는 지역 유력자들을 통해 조직된 부패의 고리가 아닐지...

저렴한 호스텔답게 동네 상태가 매우 훌륭하다.

훨씬 작은 규모에 건물은 볼품 없지만, 확실히 활성화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스크.

이 시점 밤 10시가 되어서야 낙조를 맞이하고 있는 우파.

자기 전에 맥주 한 잔 마시러 들어 갔는데 밴드 하나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다.

저번 이제프스크 행 버스보다는 시간도 그렇고 쾌적도도 그렇고 꽤 편하게 간 셈이지만 그래도 피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워낙 늦은 시간에 도착했기도 하고... 우파 기행은 이제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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