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 대종주 (13): 스탈린그라드 교외
스탈린그라드 독일군 합동 묘지와 볼가-돈 운하
일단 이 날은 스탈린그라드 시 교외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다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번째 방문지는 로소쉬카라는 마을 인근에 있다는 스탈린그라드 전몰자 합동 묘지.
물론 이곳까지 가는 직통 대중교통은 없기 때문에... 스탈린그라드 시내에서 스테프노이(stepnoi)라는 마을까지 버스를 탄 뒤 거기서 4.6km를 걸어 가야만 했다. 물론 돌아올 때도 스테프노이까지 당연히 걸어와야 한다.
한국 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남쪽으로 내려가며 계속 더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다..
그야말로 시골 버스
매드맥스를 방불케 하는 광활한 평원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덥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아주 못 걸을 수준은 아니었다. 물 1L를 사서 마시면서 갔는데 갈 때쯤 되니까 차가웠던 물이 완전 미지근하게 변했다.
War-memorial complex
스탈린그라드 전투 얘기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스탈린그라드는 볼가강 중하류에 위치한 도시로, 제1차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거대한 산업 도시이자 볼가강 물류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었다.
한편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독소전쟁이 장기화 될 것을 우려했던 히틀러는 캅카스 지역을 장악하여 아제르바이잔의 석유를 안전하게 확보하고자 했고, 그를 위해서는 캅카스와 모스크바를 잇는 요충지인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해야 했다. 게다가 이름마저도 스탈린그라드이니 그 상징성은 덤이었다.
그렇게 파울루스가 이끄는 독일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로 파죽지세로 진격했는데, 바실리 추이코프의 소련 제62군이 볼가강 강둑을 부여잡고 그야말로 악착 같이 싸워서 버티는 기적을 만들었다. 특히, 독일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스탈린그라드의 폐허에서 보병이 벌이는 처절한 시가전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었다. 독일군은 그럼에도 꾸역꾸역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그때도 소련군은 볼가강 너머로 계속해서 물자와 사람을 투입하며 스탈린그라드를 지켜냈다.
그러다 전쟁의 대반격을 이루어낸 게 천왕성 작전이었다.
아예 도시를 우회해서 독일군의 양 옆을 담당하고 있던 비독일군(이탈리아군 루마니아군 헝가리군 등등)을 박살낸 뒤에 독일 제6군 전체를 큼직하게 포위하자는 작전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독일군 병력은 포위된 채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며 굶어 죽어만 가다가 끝내 소련군에게 항복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전략적인 의미도 의미였지만, 소련과 연합군 전체에게 독일군을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그 심리적 상징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장소는 그 스탈린그라드에서 죽었던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을 묻은 합동 묘지이다. 1990년대에 냉전이 끝나고 독일측의 움직임으로 개관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6만 5천명의 유해가 확인되어 묻혀 있다고 한다. 거대한 묘지를 둘러싸고 있는 벽에 사람 이름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여긴 주로 루마니아군을 기리고 있다.
Christian Quanz. 한국 나이로 18세...
로소쉬카는 스탈린그라드 교외의 농장 지역이었는데 독일군이 초토화를 시켰고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대신 이 지역은 묘지가 되었다.
반대편에는 소련군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소련군 본묘역은 스탈린그라드의 상징인 마마예프 쿠르간에 있기 때문에 여기는 상대적으로 약소했다.
나지르 셰르호자예프. 중앙아시아 어딘가에서 달려 왔을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은 러시아와 분리되어 있던 중앙아시아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러시아인과 중앙아시아인은 공통의 참전 경험을 통해서 그들이 소련인이라는 공통의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타타르스탄에서 세운, 스탈린그라드에서 죽은 타타르스탄 사람들을 위한 추모비. 그 밖에도 다른 지역에서 보내온 추모비들이 많았다.
이제 다시 4.6km를 걸어서 돌아가는 길. 목동이 소떼를 방목하는 그야말로 목가적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바시코르토스탄에 거점을 두고 있는 바시키르 석유라는 석유 기업이 있는데 이렇게 러시아 각지에 주유소도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주유소 휴게소에서 뭐 먹을 거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마실 거는 물 밖에 안 팔고 줘도 안 먹을 과자 쪼가리에 초코바나 팔길래 물이나 마셨다...
시내로 돌아와서 러시아 빵집에서 파이 같은 것을 먹으며 황급히 식사. 너무 맛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스탈린그라드 시내 중심부에서 30km 정도 교외에 있는 볼가-돈 운하.
돈강의 만곡부와 볼가강의 만곡부가 무척 가깝기 때문에, 이 두 지점을 연결하여 하나의 수로로 통합하자는 제안은 이전부터 많이 있어왔다. 그러다가 1948년에 스탈린의 명령으로 볼가강과 돈강을 잇는 운하의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스탈린이 죽기 전 해인 1952년에 완공을 시킬 수 있었다. 이 공사를 통해서 볼가강과 카스피해의 물류가 돈강과 아조프해로 나갈 수 있었다. 최근 카스피해를 중심으로 하는 물류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적극적 활약으로 늘어날 전망인데, 운하를 확장하는 계획이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볼가 수계망과 스탈린의 대형 프로젝트이니 만큼 방문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하여.
도착하면 정말 흔한 러시아의 교외 지역이라는 느낌이 확 온다.
흐루시초프 시대나 브레즈네프 시대 쯤에 지어졌을 거 같은 정말 흔한 소련의 아파트와..
맞은 편에는 나도 저런 데서 살고 싶다는 느낌을 주게 하는 완전한 현대식 러시아 아파트.
볼가-돈 운하로 가는 길에는 거대한 레닌 동상이 서 있다. 가는 길에 상의 탈의 하고 몸에 커다랗게 Z 문신한 사람을 봤는데 사진으로 못 남긴 게 아쉽다. 물론 남겼으면 내 얼굴에 죽빵도 남지 않았을까..
레닌의 듬직한 등빨 뒤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스탈린그라드의 아이들.
물론 레닌은 애들을 싫어했다고 한다. 몰로토프는 오죽하면 레닌은 당신네들이 생각하는 호호 할아버지가 아니고 인간적으로는 스탈린보다 악독한 인간이라고 했을까...
1952년에 운하의 완공을 기념하여 원래 이 자리에 스탈린 동상을 설치했는데,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이후에 스탈린 동상은 사라지고 1961년에 레닌 동상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드넓은 볼가강에서 물놀이 하는 가족들.
레닌 동상 기준으로 왼쪽으로 쭉 가다 보면 운하를 볼 수 있다. 이 지점이 볼가-돈 운하와 볼가 강의 합류점이다.
돈강과 볼가-돈 운하의 합류점은 '칼라치 나 도누'라는 곳인데, 천왕성 작전 당시 남쪽과 북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소련군이 합류한 역사적 지점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꽤 멀어서 갈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갈 수 있을지도..
돈강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이런 큼지막한 기념문도 만들어 놓았다.
사회주의 건설의 영웅들에게 헌정 어쩌구저쩌구 써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이게 박물관이었던 것 같은데 영업시간이 터무니 없이 짧았고 우리가 갔던 때는 애초에 영업도 안 하는 날이었다.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지... 사실 박물관 볼 체력도 없긴 했지만
역시 Z...
러시아 최고의 보드카 안주인 오이 절임(agurtsy). 이 날 꽤 많이 움직였는데 그 기념으로 술을 조금 더 샀다가.... 관련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