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 대종주 (15): 스탈린그라드 이모저모

볼가 대종주 (15): 스탈린그라드 이모저모

영웅도시 스탈린그라드를 돌아보다

임명묵

우선 볼고그라드 버스 터미널에서 내일 엘리스타로 향할 버스표를 먼저 사기로 했는데, 볼고그라드에서 '데르벤트'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데르벤트는 카스피해에 면한 캅카스 남쪽 끝의 도시로, 아제르바이잔 국경 지대에 위치해 있다. 볼고그라드에서는 900km, 아마 도로에 따라서는 1000km 가까이 가야 하는 버스인데 역시 러시아라서 이런 버스는 별로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다.

버스 표를 예약하고 스탈린그라드 동네 구경. 스탈린그라드 방위에 나선 콤소몰(공산주의청년단) 단원 동상인데 수리 중이었다.

스탈린그라드의 영원한 불꽃. 뒤에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성당이었나 그랬을 것이다. 네프스키 성당은 어딜가나 황금색 돔을 자랑하고 있었다.

헌화하는 스탈린그라드 시민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이 광장과 공원 자체가 '쓰러진 전사들의 광장'이었고, 이 인근이 스탈린그라드 전투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다고 한다. 우측에 보이는 큰 나무는 내가 찾아본 게 맞다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생존한 포플러 나무라고 한다.

미니 레닌 동상이 있다길래 그래도 지나칠 수 없었는데.. 횡단보도도 없고 접근이 너무 어려워서 먼 발치에서 찍었다.

영웅 골목.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소비에트 연방 영웅들을 기념하고 있다.

인민우호 분수.

스탈린그라드의 볼가강에 드디어 도착했다. 저 건너편에서 62군에 합류할 병사들이 꾸역꾸역 밀려오고, 독일군 전투기들의 사격으로 강물이 불타오르지 않았을지..

지금은 평화 그 자체나 다름 없다.

평화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념비. 포탄에 스러지는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포함해서 세계 어디서나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62군 사령관 바실리 추이코프의 동상.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천왕성 작전이 성공하기까지, 그야말로 최후의 최후까지 볼가강 강둑을 지켜낸 용장이다. 그의 무덤은 마마예프 크루간에 있다. "광대한 러시아에 내 심장을 바친 도시가 있으니, 그 도시는 스탈린그라드라고 역사에 기록되었다."

볼가강 변에 걸린 거대한 러시아 국기.

스탈린그라드 전투 파노라마 박물관. 마마예프 쿠르간 다음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해서 많은 걸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라는데... 술병으로 여행 출발이 늦어져서 이미 여기에 도착할 때가 되니 폐장 시간이었다. 내부를 볼 수는 없던 것은 안타까웠지만 살면서 볼고그라드에 한 번은 더 갈 것이라 생각하며 크게 마음에 담지 않기로...

"스탈린그라드는 독일-파시스트 군대의 황혼이 되었다." - 이오시프 스탈린, 1943년.

스탈린그라드의 주요 격전지 건물을 보존한 것인지 새로 세운 것인지 모르겠다.

스탈린그라드의 시가전은 워낙 악명이 높아서, 이런 건물이 층마다 주인이 달랐고 계속 바뀌었다고 한다. 1층은 소련군 2층은 독일군, 3층은 소련군이다가 다시 뒤섞이고... 건물 하나하나가 격전지고 계속 병력이 녹아나갔는데 이 끔찍한 전투에서 살아남는 것도 재주였겠지만 살아남아도 그 심리적 충격이 엄청났을 것 같다.

볼고그라드 역 광장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 유명한 아이들과 악어 동상이 있다.

파블로프의 집이라고 한다. 여기도 엄청난 격전지였다고.

1965년 대조국전쟁 승리 20주년을 기념하여, 용기와 영웅성을 보여준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위하여 '볼고그라드' 시에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한다는 결정문. 이 시기는 이미 스탈린 숭배를 없앤다는 이유로 도시의 이름을 볼고그라드로 바꾼 시기였다.

역시 여기서는 Z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Za Stalingrad!

이 날은 '러시아 해군의 날'이라는 이유로 러시아 수병 특유의 파란 줄무니 옷(텔냐시카)을 입은 수병들과, 러시아나 소련 해군 깃발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었다.

탱크 위에서 애들이 안 놀고 있으면 이제 그게 더 어색하다.

스탈린의 고향 그루지야 고리에 있는 스탈린 박물관에서 봤던 스탈린 열차의 모형 같은데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여정의 마지막은 스탈린그라드의 레닌 동상으로..

숭고한 영웅을 그린 것이겠지만 나는 왜인지 엄근진 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탈린 동지의 도시에 왔으니 스탈린 동지의 음식인 그루지야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나와서, 레닌 광장 근처에서 찾은 그루지야 식당. 가격이 아주 착했다. 그루지야 음식은 하차푸리라는 파이가 아주 유명하고 또 힝칼리라는 전통 만두도 유명하다. 하르초라는 매콤한 고깃국도 대표 요리인데, 조선인이라 하르초를 무척 먹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이 식당에서는 팔지 않았다. 그래도 파이와 만두가 무척 맛있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일단 이 날 일정은 여기서 종료.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 박물관을 못 봤지만 사실 그거보다 중요한 것은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을 보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어차피 엘리스타로 가는 버스가 2시에 출발하니, 아침에 조금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보고 오자고 합의를 보았다.

트랙터 공장으로 가는 버스. 이번 전쟁에서 영웅적으로 활약했다는 알렉산드르 레베데프 중위..

체카 수장 펠릭스 제르진스키의 이름을 딴 공장이라서 앞에 제르진스키 동상이 서 있다.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은 제1차 5개년 계획의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사실 제1차 5개년 계획은 경제적 합리성보다도, 소련 체제의 우월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하이모더니즘 스타일이 많이 고려된 계획이기도 했다. 이 말은 프로젝트들에 '미학적' 성격이 상당히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기간토노미아'라고 할 수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들이 입안되었고 이러한 프로젝트들의 성공은 그 자체로 소련이라는 인류 문명사적 프로젝트의 필연적 승리를 입증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물론 이런 메가 프로젝트들은 볼세비키의 염원과 기대를 반영하여 초기 소련 산업화에 엄청난 공헌을 했지만, 이념적이고 미학적 고려 없이 '더 효율적으로' 했다면 더 성과가 좋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로 가장 유명한 것은 카자흐스탄의 투르키스탄-시베리아 철도, 우랄의 마그니토고르스크 제철소,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르 댐이었고, 그밖에 발트해-백해 운하, 극동의 콤소몰스크-나-아무레 도시 건설도 있다.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도 그 일환이었는데, 이 공장을 진정 전설로 만든 것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였다. 도시의 북쪽 외곽에 위치한 이 도시는 독일군이 본격적으로 도시로 진입하기 전부터 격전지가 되었다. 독일군은 이 즈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소련군 전차 부대를 만나서 싸우게 되었는데, 전차들은 제대로 도색도 안 되고 무기도 잘 안 달려 있는 미완성품이나 다름 없었다. 이는 트랙터 공장의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T-34 전차를 조립해서 즉각 전선에 투입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최후에 그들은 자신들이 조립한 전차에 스스로 탑승하여 독일군에 항전하기도 했다.

스탈린은 기계를 통해 농업을 근대화 하고, 전시에 전차를 비롯한 기갑 장비를 생산할 수 있게끔 소련 전역에 많은 트랙터 공장을 세웠다. 농업의 근대화는 완수되지 못하고 처참한 기근을 맞이했지만, 전차 생산만큼은 톡톡히 수행하여 소련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건설의 상징인 이 공장은 1990년대 소련의 해체와 함께 버려졌고, 다른 기업들과 달리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청산되어 지금은 사실상 황량한 상태다.

여기서도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은 지워지고 '볼고그라드'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이 공장에서 생산되었을 전차와 전투의 영웅들을 기리는 비석.

돌아오는 김에 전날 들리지 못했던, 마마예프 쿠르간의 스탈린 박물관을 갔다. 스탈린 박물관은 마마예프 쿠르간의 꼭대기에 있는데, 우리는 맨 아래 쪽의 정문에서 내려서... 게다가 버스 시간까지 여유를 두면서 움직여야 해서 정말 신속하게 보고 와야 했다. 땡볕을 맞으며 올라가는데 땀이 비 오듯이 왔다. 물론 스탈린 박물관에서 별로 볼 것은 없었다. 이런 종류의 박물관이 늘 그렇듯...

그런데 뜻밖에 박물관 직원 할머니 한 분이 유창한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 박물관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노병들이, 자신들은 끝까지 스탈린과 함께 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와서 건립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이 훨씬 좋고 역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흐루시초프 때문에 도시 이름이 멋이 없어졌다고 투덜대셨다.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으나... 버스 시간 때문에 황급히 움직여야 했던 게 안타까웠다.

V 또한 전쟁의 상징이다.

엘리스타로 가는 길은 5~6시간 정도 걸린다. 밥을 든든히 먹어야 하니 샤우르마(케밥) 하나를 사서 먹었다. 칠리 맛인데 꽤 맛있었다.

드디어 칼미키야 자치 공화국으로 향하는 버스가 왔다.

이제 남은 도시는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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