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세계를 두고 냉전이 돌아왔다고, ‘신냉전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많다. 어쩌면 이런 시대 분위기 때문인지, 과거의 미소 냉전도 이전과 비해 더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냉전이 이미 끝난 역사적 사건이 되기도 했고, 냉전기 자체도 수십 년이나 지났기에 현대사의 연구 대상에 편입될 만큼 시간적 거리가 쌓이기도 했고, 오늘날의 ‘신냉전’에 주는 함의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냉전기에도, 탈냉전기에도, 그리고 냉전을 역사적으로 보기 시작한 지금에도 빠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냉전을 누가 시작했는가?”라는 주제다.
원래 냉전의 기원을 설명하는 서사는 건조한 설명보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책임론이 되는 경우가 잦았다. 냉전 직전까지만 해도 미국, 영국과 소련은 독일, 일본의 추축국에 맞서는 ‘대동맹’을 형성하면서 협력했었다. 스탈린, 루스벨트, 처칠은 포츠담과 얄타에서 모여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신세계 질서를 논했다. 그중에서도 스탈린과 루스벨트는 제국주의 식민지와 블록으로 나뉘어진 세계가 아니라, 모든 민족이 독립 국가를 이루고 국제연합의 틀 속에서 협력하는 이상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만들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그 희망은 2년, 3년 만에 순식간에 무너지고 세계가 두 개로 쪼개졌다. 양대 초강대국의 경쟁과 대리전은 진영 안쪽에서 수많은 사람의 삶을 억압했고, 파괴했다. 무엇보다 냉전이 이전 강대국 경쟁과 구분되는 점은 인류가 자신을 멸망시킬 수 있는 핵미사일의 공포와 함께 살아가야 했다는 데 있었다. 대동맹의 희망을 냉전의 칼바람으로 바꾼 이가 과연 누구인지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었고, 양쪽 초강대국은 서로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냉전의 승자이기도 했던 미국의 전통적 설명은 간명했다. 소련이 동유럽에서 벌인 행동들은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향권을 회복하고, 더욱 바깥으로 팽창하기 위한 야욕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여기에 이제는 스탈린주의라는 전체주의적 억압 기제까지 더해졌다. 특히 폴란드에서 스탈린이 벌인 일들은, 나치의 폴란드 침공이 제2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간주되었다. 거기에 동유럽을 장악한 스탈린이 터키와 이란까지 위협하면서, 유라시아 전역의 공산주의 혁명을 선동하고 있었다. 미국의 전통적 시각에서 스탈린은 소비에트 제국을 최대로 팽창시키기 위해서 미국과 마지못해 협력한 ‘가면을 쓴’ 지도자였고, 루스벨트는 스탈린에게 제대로 속아 넘어간 인물이었다.
소련의 설명, 혹은 소련에 조금 더 온정적이었던 서방 진영의 수정주의적 설명은 완전히 반대의 접근을 시도했다. 그들은 우선 제2차세계대전의 주무대가 소련과 동유럽이었음을 이해하지 않으면 소련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독일과의 절멸 전쟁으로 국토가 완전히 파괴된 소련은 필연적으로 서쪽에서 다가오는 안보 위협에 대한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동유럽은 향후 다가올 위협에 대한 완충 지대로서 반드시 장악하고 넘어가야 하는 지역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독일 문제에서도, 스탈린의 목적은 독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내어 소련의 전후 복구에 활용하고 독일의 비무장화를 통해서 전쟁의 화근을 없애는 것이었지 독일의 공산화가 아니었다. 수정주의적 설명은 소련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동유럽을 제외하고 스탈린은 전후 질서 설계에서 서방 진영에 대체로 협력적으로 나왔는데, 세계를 단일 시장으로 통합하고 거느려야 했던 미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와 미국인들 나름의 이데올로기와 신념이 스탈린이 다시 문을 걸어 잠그게 사실상 내몰았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