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2021년 연말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군대를 배치하면서, ‘지정학(geopolitics)’라는 말이 국내외 언론에서 홍수처럼 쏟아졌다. 요컨대 러시아의 서부 국경에는 자연 국경이라고 할만한, 방어에 도움이 되는 지형지물이 없기 때문에 러시아는 반드시 완충지대를 필요로 하며,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필수적인 이익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 주장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훨씬 많은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그 설명은 일단 추후로 미루어두자. 물론 미국과 유럽이나 일본, 중국 같은 다른 국가들의 처지와 전략을 지정학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하는 글들도 이전이나 이후에도 꽤 접할 수가 있었다. 사실 이 단어는 이전부터 국내에서 조지 프리드먼, 피터 자이한과 같은 저자들의 책이 인기를 끌면서 알음알음 확산되고 있던 용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정학의 이런 ‘상투적’ 용례는 사실상 ‘국제정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도 같다. 국제정치에 다소간의 지리적, 공간적인 시선을 더 첨가한 정도랄까. 지정학이라는 말은 때로는 너무 시도 때도 없이 쓰여서 과연 그 표현 안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라는 게 담겨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지리학의 맥락에서 지정학의 탄생과 역사를 공부하면 지정학적 시각이라는 게 굉장히 흥미로우며, 나아가 현재 세계의 흐름을 점치는 데 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용어에서 드러나듯 지정학은 지리와 정치학의 합성어다. 그렇기에 공간을 다루는 지리적 시각과 권력을 다루는 정치적 시각을 모두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정학의 방점을 지리에 두냐, 아니면 정치에 두냐에 따라서 그 실제 내용은 천차만별일 수가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합성어가 뒤에 오는 단어가 본질적인 면을 담고 있는 것과 달리, 지정학은 정치학보다는 지리학에 조금 더 가까운 접근법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