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하며 (6): 공간의 전선

여행을 준비하며 (6): 공간의 전선

유라시아 대륙의 통합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지정학

임명묵

러시아가 2021년 연말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군대를 배치하면서, ‘지정학(geopolitics)’라는 말이 국내외 언론에서 홍수처럼 쏟아졌다. 요컨대 러시아의 서부 국경에는 자연 국경이라고 할만한, 방어에 도움이 되는 지형지물이 없기 때문에 러시아는 반드시 완충지대를 필요로 하며,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필수적인 이익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 주장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훨씬 많은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그 설명은 일단 추후로 미루어두자. 물론 미국과 유럽이나 일본, 중국 같은 다른 국가들의 처지와 전략을 지정학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하는 글들도 이전이나 이후에도 꽤 접할 수가 있었다. 사실 이 단어는 이전부터 국내에서 조지 프리드먼, 피터 자이한과 같은 저자들의 책이 인기를 끌면서 알음알음 확산되고 있던 용어였기 때문이다.

어째 본국보다 머나먼 한국에서 지정학의 대명사가 되신 피터 자이한...

하지만 지정학의 이런 ‘상투적’ 용례는 사실상 ‘국제정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도 같다. 국제정치에 다소간의 지리적, 공간적인 시선을 더 첨가한 정도랄까. 지정학이라는 말은 때로는 너무 시도 때도 없이 쓰여서 과연 그 표현 안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라는 게 담겨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지리학의 맥락에서 지정학의 탄생과 역사를 공부하면 지정학적 시각이라는 게 굉장히 흥미로우며, 나아가 현재 세계의 흐름을 점치는 데 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용어에서 드러나듯 지정학은 지리와 정치학의 합성어다. 그렇기에 공간을 다루는 지리적 시각과 권력을 다루는 정치적 시각을 모두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정학의 방점을 지리에 두냐, 아니면 정치에 두냐에 따라서 그 실제 내용은 천차만별일 수가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합성어가 뒤에 오는 단어가 본질적인 면을 담고 있는 것과 달리, 지정학은 정치학보다는 지리학에 조금 더 가까운 접근법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지정학의 상위 범주라고 할 수 있는 지리학은 무엇인가? 지리학이 지구 과학이나 역사학과 확연히 구분되는 실체가 있는지는 지리학을 둘러싼 오랜 논쟁 가운데 하나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지리학은 ‘지역성’의 본질을 밝히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른 학문과 구별된다. 특정한 공간적 범주를 어떻게 하나의 기준으로 통해 ‘지역’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리적인 스케일에 따라서 개별 지역이 상위 지역, 하위 지역, 인접 지역들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요컨대 수도권, 대구경북 도시권, 충청북도 음성군 등의 지리적 단위들을 설정하고 이런 지리적 단위의 속성과 관계를 밝히는 것이 지리학의 본령인 셈이다.

지리학의 본질은 작은 범주부터 큰 범주까지 가리지 않고 '지역성(regionality)'을 밝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따라서 지정학 또한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특정 공간적 범주와 단위의 지역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방점이 지리 공간 위에서 권력의 향배를 둘러싼 정치적인 데 찍혀 있다는 것이 지정학의 첫 번째 특징이다. 그런데 단순히 공간과 권력의 관계에서 지역성을 논하면 지정학이 일반적인 ‘정치지리학’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오히려 뒤에 오는 말이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지정학이라는 단어보다는 정치지리학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잠시 지정학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대적인 지리학은 유럽이 세계로 팽창하면서, 지구 전체의 육지와 해양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공간적인 패턴을 분석하면서 탄생했다. 이 작업을 이끈 지리학의 아버지는 독일의 자연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였다. 지정학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국가와 국가가 마주 보는 특정 지역 정도를 관찰하면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하나의 전략적 단위로 사고하면서 탄생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철도와 증기선의 보급이었다. 인간이 교통에 화석 연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사람, 물자, 정보의 이동의 비약적으로 신장되었다. 당시 시대를 상징하는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발표는, 단지 세계 여행을 하는 데 80일이 걸린다는 뜻을 넘어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이며,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미국의 경제적 도약은 아메리카 대륙이 철도와 증기선을 통해서 하나의 경제적 단위로 통합되면서 이루어졌다. 러시아도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간주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로서는.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지구를 하나의 전략적 단위로 인식하는 시각은 지구적 패권국에서 가장 먼저 등장할 개연성이 높았다. 지정학이 탄생할 무렵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지구적 패권국은 주지하다시피 영국이었다. 영국은 일찍이 자신들이 인도와 그 인접 지역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대륙적 규모의 세력 경쟁을 벌인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아가 각 지역의 전략적 상황이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지구적인 규모의 경쟁이며, 향후 인류 사회의 조직과 운영 방식마저도 결정하게 될 것임을 꿰뚫어본 이는 영국의 지리학자 핼퍼드 매킨더였다. 1904년, 왕립 지리학회에서 매킨더는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Geographical Pivot of History)’이라는 강연을 진행했다. 이 강연에서 매킨더는 현대적 지정학의 탄생을 알린 심장지대 이론을 최초로 제시했다.

매킨더가 보기에 세계의 중심은 당연하게도 구대륙, 혹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합친 ‘아프로-유라시아’였다. 그는 아프로-유라시아를 가운데에 놓고 양옆에 대서양과 태평양, 아메리카 대륙을 쪼개서 배치한 지도를 그린 뒤 아프로-유라시아를 ‘세계섬(world island)’이라고 정의했다. 지구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모든 인구와 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세계섬의 패권을 차지하는 일이다. 세계섬에서도 핵심은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하는 거대한 대륙인 유라시아였다. 그렇다면 유라시아를 차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장소는 어디인가? 매킨더는 당시 이미 수십년 째 진행되고 있던 러시아와의 전략적 경쟁을 염두에 두고 강연을 하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유라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지리적인 교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였다. 그는 중앙아시아를 나머지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곳으로 진출할 수 있는 중추지대(pivot areas)라고 정의했는데, 이 중추지대 개념은 이후 심장지대라는 용어로 발전했다.

매킨더의 세계.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심장지대를 장악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이 지역이 유라시아의 너무 깊숙한 심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유럽을 장악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지역에서는 중앙아시아로 진입하기가 아주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동유럽의 세력이 중앙아시아를 일단 장악한다면 나머지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뻗어 나가는 것은 순식간에 벌어질 일이었다. 당장 중앙아시아를 장악한 동유럽 세력인 러시아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매킨더의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동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지대를 다스리고, 심장지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섬을 다스리며, 세계섬을 지배하는 자는 전 세계를 다스린다.”

물론 이런 반박이 있을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는 서구 지리학자들에 의해서도 최후에 탐험된 격오지 중에 하나인데, 척박한 토지와 열악한 교통 인프라, 기후와 수자원 조건 등을 생각했을 때 이 지역을 기반으로 나머지 세계 전체의 장악을 기도하는 것은 너무 과장된 우려 안니가? 게다가 중앙아시아와 연결되어 있는 동유럽이나 시베리아, 몽골 또한 전통적인 부의 중심지와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매킨더는 그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19세기 후반 러시아가 수행한 인상적인 산업화 과정을 보았을 때, 철도와 증기선의 힘으로 이 지역이 긴밀히 통합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심장지대 내부를 구석구석 연결하는 철도망만 완성된다면, 러시아가 자원을 수송하고 병력을 이송하는 것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수월해진다는 것이었다. 매킨더의 우려는 후에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Democratic Ideals and Reality)’이라는 제목의 저서로 발전하였다. 이는 권위주의적인 전제국가인 러시아의 심장지대를 통한 패권추구를 자유주의적 패권국인 영국이 어떻게 막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우려를 담은 책이었다.

그러나 매킨더의 주장은 그의 강연이 무색하게도 얼마 안 가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위협적 대륙 세력인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해양 세력인 일본에 패하고, 이후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거치면서 힘을 급속히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매킨더의 이론은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미소 냉전이 시작되면서 다시 부활했지만, 영국과 미국의 주적이 심장지대와는 떨어져 있는 독일과 일본이 되었을 때는 중요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매킨더의 강연으로부터 한 세대 뒤에 두각을 나타낸 또 다른 지정학 이론이 등장했다. 이 시기는 이미 영국이 지구적 패권국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시점이었고, 미래의 새로운 패권국의 등장을 바라보고 있던 시점이었다. 영국의 뒤를 이은 지구적 패권국인 미국을 위한 지정학은 니콜라스 스파이크먼의 주변지대 이론이었다. 네덜란드계 미국인인 스파이크먼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지정학적 분석을 통해, 해양을 통한 교류가 문명과 사회의 발전에 핵심적이었다는 것을 논증했다. ‘아메리카 지중해’인 카리브해에 면한 라틴아메리카의 북쪽과, 남극을 향해 뿔처럼 뻗어 있는 남쪽이 지정학적 중요성에서 보이는 차이는, 해양을 통해 다양한 지역과 연결될 수 있는 접근성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논리를 유라시아로 확장하여, 북극해로 막혀 있고 고립되어 있는 심장지대보다는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에 면해있어 다른 여러 지역과 교류하고, 내륙으로도 진출할 수 있는 주변지대의 장악이 패권에 있어서 필수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 제2차세계대전의 목표는 주변지대를 장악하고 심장지대로 뻗어 나가 미국을 위협하려는 독일과 일본이라는 세력을 소련과 힘을 합쳐 무너뜨리는 일이 되어야 했다. 세계섬의 진정한 위협은 심장지대와 주변지대에 모두 걸쳐 있는 내주지대(inner rim land)를 장악한 국가가 제기할 것이었다.

스파이크먼의 세계.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이후 제2차세계대전이 미국과 소련의 승리로 끝나고, 동맹이었던 두 세력의 관계가 전략적 경쟁자로 전환되면서, 매킨더와 스파이크먼의 이론은 사실상 통합되어 냉전기 지정학을 구성했다. 스탈린은 매킨더의 우려대로 심장지대 전역에 걸친 조밀한 교통망을 건설했고, 소련군은 주변지대 어디로든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의 승전은 스탈린에게 심장지대 장악에 필수적인 동유럽에 대한 완벽한 지배력까지 주었다. 자원과 인구가 밀집한 유라시아와의 교역을 통해 패권과 부를 유지해야하는 입장에서 소련의 이런 위협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소련과 우호관계를 설립하자 이런 미국의 지정학적 우려는 극대화되었다. 미국은 이제 스파이크먼의 이론을 따라, 자신 패권에 필수적인 주변지대 간의 교역을 장려하고, 그 지역들에 군사기지를 배치하여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그리고, 조지 케넌으로 대표되는 전략가들은 매킨더의 이론을 받아들여 심장지대를 발판으로 바다로 뻗어 나가고자 한 소련을 봉쇄하는 데 골몰하면서 미국 특유의 냉전 전략이 완성되었다. 서유럽, 터키, 이란, 한국, 일본과 같은 국가들은 그런 봉쇄의 중요한 축이었다.

즉, 지정학은 기본적으로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지구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구를 하나의 전략적 단위로 보는 시각을 깔고 있다. 물론 다른 국가들도 영미권에서 발전한 지정학을 제각기 실정에 맞게 재해석하여 탐구하고 있지만, 지구를 하나의 전략적 단위로 보고, 그 핵심으로서 세계섬의 공간적 세력 구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만큼은 공유한다. 물론 지정학이 세계섬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나 대양주 또한 지정학적 분석의 대상이며, 유라시아의 다른 많은 하위 지역들, 예컨대 동유럽이나 남아시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하위 지역들이 서로 연결되어 지구라는 종합적 단위로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점들이 다른 상황에도 많이 적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범주인 정치지리학과 지정학의 차이점이다. 예컨대 한국의 지역적 투표 성향이나 서구 세계에서 나타나는 세계도시와 지방의 분리 현상은 정치지리학의 탐구 대상이나 지정학의 탐구 대상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거리가 있다.

매킨더와 스파이크먼을 통해 형태를 갖춘 미국의 지정학은 소련을 향한 봉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면서 그 강력함을 입증했다. 독일에서 터키를 거쳐 일본으로 이어지는 선은, 중간에 이란이 이탈하고 중국이 포함되는 등 변동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견고하게 유지되었고, 소련은 기나긴 국경 지대의 방어를 위하여 막대한 국방비를 소모해야 했다. 소련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끌어들여 국력을 소모시키자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방안은 지정학적 사고를 통해 전개된 발상이기도 했다. 마침내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고, 심장지대에 취약한 탈소비에트 국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세계섬의 해상 세력으로서 미국이 갖는 우위에 대한 위협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역사는 끝났고 지정학도 끝났다. 미국은 그저 세계 경찰로서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의 확산을 위한 치안 활동에만 주력하면 되었다. 그 공간이 코소보냐, 소말리아냐, 아프가니스탄이냐는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이름들은 이제는 구체적인 지리적 존재가 아니라 ‘머나먼 이국의 어딘가’라는 추상적인 무언가로 다가오게 되었다.

90년대 미국의 새로운 세계 인식을 보여주는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아마존과 유고슬라비아와 탄자니아는 세계 경찰로서 '글로벌 문제'를 다뤄야 하는 미국의 시선에서 이제 하나의 단위가 되었다.

물론 지정학은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었다. 세계섬을 장악하지는 못하더라도, 세계섬에서 지구적 패권국의 위치를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만 하더라도 지정학은 바로 호출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제는 상대편 또한 영미권의 지정학 전통을 흡수하고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이러한 위협은 역설적으로, 아니 어쩌면 매킨더 시대와 마찬가지로, 유라시아라는 단위가 긴밀히 통합되며 하나의 실체로 부상함과 동시에 발생했다. 미국과 서방 세계가 지니고 있는 세계섬에 대한 패권과 주도권을 몰아내고자 하는 힘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련의 해체와 중국과 인도의 경제 자유화는 세계섬 자체의 통합을 엄청나게 강화시켰고, 옛 시대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교역망의 복원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동아시아와 인도에서는 막대한 에너지, 자원, 식량 수요가 해를 거듭하면서 늘고 있는데, 이는 이 지역의 착실한 경제 성장, 거대한 인구가 도시 중산층으로 편입되면서 발생하는 소비 수요의 거대한 증가에서 기인한다. 동아시아 각국과 인도는 자국 사회의 안정을 위해 경제발전을 추진해야 하는데, 안정적인 식량과 에너지 공급은 그 기반이 되어준다. 동남쪽의 중국과 인도의 반대편에 있는 북서쪽의 러시아와 중동 국가들은 반대다. 이 국가들도 물론 경제적 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물자를 생산할 충분한 역량이 없다. 대신 이들은 물자를 훨씬 잘 생산하는 동남쪽의 먼 이웃들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와 자원이 풍부하다.

인도양과 중앙아시아의 부상은 마르코 폴로 세계로의 귀환일까?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유라시아의 동서와 남북을 가로지르는 이 기초적인 교역 관계가 재등장하고 지난 40년에 걸쳐 꾸준히 강화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지정학적 위협은 심장지대 초강대국인 소련의 위협인 냉전과는 어느 정도는 별개의 시간표에 따라 진행되고 있었다는 말이다. 시작은 1970년대였다. 1973년과 1979년의 석유파동은 에너지 권력을 서방의 에너지 메이저로부터 개별 산유국들로 이전시켰는데, 이는 에너지 보유국들이 자국의 에너지를 정치적 목적에 복무할 수 있는 전략 자산으로 사용할 수 있게 바꾸었다. 이란 이슬람 혁명이 촉발한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혁명적 에너지는 유라시아의 이슬람권 전반에 걸친 불안정성을 크게 높였다. 이는 에너지 수출국과 수입국들에게 자원 거래 관계를 넘어서는 안보 협력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시작된 중국과 인도의 경제 자유화는 앞서 말한대로 급격한 도시화, 제조업 발달, 소비 사회와 중산층의 팽창으로 세계 에너지 수요 상승분의 상당수를 견인하고 있다. 이 두 국가는 인접한 에너지 공급 지역으로부터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을 건설하기를 원한다. 1991년 소련의 해체는 세계섬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대륙주의 경향의 변곡점이 되었다. 미국이 차단하던 심장지대와 주변지대의 장벽이 사라지고, 심장지대 제국가들에 대한 모스크바의 독점권이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인도, 중국, 중동을 잇는 교차로에 위치한 탈소비에트 국가들은 공급처를 주변 모든 지역으로 다변화하기를 원했고, 유라시아 주변지대 국가들의 자본 투자를 끌어들였다. 푸틴은 이런 변화를 관찰하며 자신이 이끄는 새로운 에너지 제국이 서방에 의존하지 않고도 발전할 수 있음을 간파했고, 그의 계산은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즉, 새로운 시대의 지정학적 전선은 더는 심장지대의 주변지대에 대한 위협이라는 전통적 관점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주변지대와 심장지대가 통합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동쪽에서 주변지대와 심장지대에 모두 발을 걸친 거대한 내주지대 강대국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지정학의 전선은 유라시아의 통합이라는 거대한 경향성 위에서 세계섬의 패권을 서쪽의 주변지대 세력이 확보하느냐, 아니면 동쪽에서 성립한 심장지대와 내주지대(러시아와 중국)의 연합체가 확보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유라시아를 하나로 통합하는 대륙주의적 힘은 크게 두 가지 지역적 갈래를 따라서 증대되었다. 첫 번째 힘은 만주와 북중국의 평원,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유럽 러시아를 통합하는 힘이다. 전통적인 심장지대를 하나로 묶은 이 통합체는 푸틴에게 강력한 힘을 실어주어 우크라이나에서 주변지대 세력을 몰아내는 전쟁에 돌입하게 만들었다. 푸틴의 계산은 다음과 같은 가정들에 근거한다.

1. 대륙주의 경향에 따른 에너지 수요처와 공급처의 통합은 유럽으로서는 절대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을 제공한다. 아시아의 성장과 통합으로 인하여 유럽은 이제 유라시아와 분리된 섬처럼 굴 수 없을 것이다.

2.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꾸준한 성장은 유럽을 대체할 수 있는 막대한 에너지 수요처와 물자 공급처의 부상을 의미한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인도와 이란, 기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 공격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완충재가 되어줄 것이다.

러시아의 에너지를 중국으로 보내는 파이프라인 '시베리아의 힘'.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푸틴의 이런 계산은 동남쪽에서 형성되고 있는 거대한 경제, 무역 공동체의 형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대륙주의의 두 번째 힘과 동의어다. 주지하다시피 유라시아 동남부에는 남중국 해안과 운남성의 고원, 동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를 잇는 통합체가 등장하고 있다. 인도양과 태평양에 걸친 거대한 주변지대를 통합하고자 하는 이 시도는 해상 패권을 추구하는 미국을 훨씬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압박이다. 중국은 운남성, 귀주성, 광서성이라는 내륙의 구석진 공간을 인도차이나 반도로 나가는 육로 연결망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한편으로 광동성, 복건성, 해남성의 항구는 전통적인 화교 네트워크를 통해 동남아시아의 해상 도시들을 중국 주도의 연결망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최전선인 동남아시아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면 나오는 인도양 제국가들 또한 중국이 제공하는 거대한 소비 시장과 물자 공급원으로서의 매력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후자의 압박에 대응하여 서방 세계가 조직한 지정학적 대응물은 바로 ‘인도-태평양’이었다. 2010년,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분쟁에서 굴욕을 감수해야 했던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구상을 따라 중국에 대응할 수 있는 안보 및 경제 협력체를 건설할 기획을 만들었다. 요컨대 해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제법이 기반이 되는 자유주의 질서에 동의하는 국가들끼리의 연계를 강화하여, 내주지대 국가인 중국의 해상 진출을 차단하자는 제안이었다. 일본이 주목한 협력자는 중국의 진출이 자국에 대한 포위망이자 올가미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 인도였다. 일본과 인도는 냉전 시대 전통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정치적 입장을 내지 않는 국가였지만, 아베 2기 정권의 출범과 인도에서 모디 총리의 등장은 두 국가가 기존의 대외 정책 관성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미국이 이 구상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쿼드(QUAD)의 수립으로 이어지는 인도 태평양 전략은 마침내 그 전열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이제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경계에 있는 국가들이 하나하나가 지정학적 단층선이 된 것처럼, 쿼드와 중국 사이에 위치한 국가들은 하나하나가 지정학적 바둑판의 점들이 된 셈이다.

아베 신조의 죽음은 곧 인도 태평양의 설계자의 죽음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모디 총리는 아베와의 각별한 관계를 강조하며 추도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정리하였을 때, 러시아의 진출 방면인 동유럽과 중국의 진출 방면인 남양(南洋)은 전세계적으로 펼쳐져 있는 서구주의/개인주의자와 전통주의/집단주의자의 이념 전선과 함께 형성되어 있는 지정학적 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지정학적 위협을 제기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후자의 진영을 대표하고, 지정학적 패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서방 진영은 확고한 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행동한다. 하지만 그 내부의 구성은 냉전 시대보다 다소 복잡하다. 인도는 서구주의와 자유주의가 아니라 전통주의와 집단주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지정학적으로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여 서구와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의 이런 위치는 러시아가 이념적, 지정학적 양편에서 동시에 제기하는 위협에 대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게다가 만약 자유주의 진영의 중심인 미국에서 다시금 전통주의자들이 집권한다면, 혹은 러시아나 이란에서 체제가 흔들려 갑자기 자유주의 진영이 주도권을 잡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 이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이념적, 지정학적 다극 시대는 혼란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전선이 명확하지 않은 것 그 자체가 진정한 이 시대의 전선일 수도 있겠다.

사실 이 혼란상 자체가 바로 러시아(혹은 러시아의 일부 전략가들)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념 전선에서의 최종적 승리를 통해 세계를 문명권 간의 지정학적인 경쟁의 장으로 재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결정의 배경이 되어주는 ‘러시아 지정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푸틴은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완충지대’가 없다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일까? 러시아의 침공이 ‘지정학적 이유’로 실행된 것은 분명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정학이 이 글에서 설명한 지정학과는 전혀 다른 내용물이라면 어떨까?

오늘날 러시아 행동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다시 지리학사를 볼 필요가 있을지도...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먼저 러시아 지정학을 살펴보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러시아와는 지리적으로 정반대에 위치한 나라, 그리고 이념과 지정학이라는 전선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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