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유산이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다고 한들 1945년 5월과 8월에 파시즘은 공식적인 이데올로기로서는 파산했다. 뉘른베르크와 도쿄에서 각각 열린 전범 재판은 파시즘을 인간성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했고, 이제 공식적으로 파시즘을 주장하는 이들은 지하 세계로 들어가 사실상의 컬트 집단으로만 이어지게 되었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동맹으로 파시즘을 몰아낸 것은 계몽주의의 두 자식이 계몽주의의 그림자였던 낭만주의의 도전을 분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자연히 이제 남은 것은, 누가 계몽주의의 진정한 상속자인가를 둘러싼 투쟁이 되었다. 영미 연합군과 소련이 오랜 불신을 딛고 결성한 대동맹은 그 안에 내재해 있던 오해와 불신의 누적으로 붕괴했고, 1948년 즈음에 두 진영은 언제 동맹을 맺기라도 했냐는 듯이 곳곳에서 대립하고 있었다. 최초의 전선은 소련군이 진주한 동유럽과 미군이 진주한 서유럽 사이에 그어졌는데, 그 선은 처칠의 유명한 표현인 ‘철의 장막’으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획득했다. 이제 완전한 지정학 전략가로 변신한 스탈린은 동유럽의 완충지대를 통해 서쪽에서 제기되는 위협을 사전에 막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동유럽에는 스탈린에 충실히 협조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정권이 들어섰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철의 장막 서쪽의 경제를 부흥시켜 공산주의자들의 침투를 막고자 했다.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의 전반적 그림은 바깥에서 보기에는 아주 명확하게 다가왔다. 소련은 러시아 제국을 계승하여 자신의 제국을 확대하고 동유럽 각국의 주권과 자유를 박탈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미국은 공산주의의 탈을 쓴 러시아 제국의 확대를 막고자 막대한 지원을 베푸는 나라로 여겨졌다. 이 구도는 스탈린의 지시로 시작된 1950년의 한국 전쟁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하지만 유럽 바깥에서 상황은 단순하지 않았다. 유럽 바깥의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그림보다는 더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20세기의 여명부터 시작되고 있던 비서구 민족들의 각성은 제2차세계대전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19세기에 세계를 분할했던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아시아인의 제국인 일본에 허망하게 무너진 모습은 나머지 비서구 세계의 정치적 열망을 고무시켰다. 한편 총력전으로서 제2차세계대전은 제국들이 그동안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던 식민지의 인적, 물적 자원까지 총동원하게 만들었고, 근대성의 경험은 서구식 교육을 받은 소수 엘리트를 넘어서 대중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그 대중들이 유럽 제국의 지배를 거부하는 순간이 바로 식민 제국이 도미노처럼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일본군 점령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네덜란드를 향한 독립 전쟁을 개시하면서 탈식민화의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비서구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경영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는 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자발적을 동참해줄 생각이 없었다. 미국과 소련이 세계를 반분하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사이에 이들의 국가적 자부심을 증명하는 것은 그들이 비서구 세계에 커다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두 제국은 자신들의 ‘문명화 사명’을 통해 식민지를 올바로 통치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언젠가 식민지의 자치, 나아가 독립까지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시간표를 정하는 것은 식민지인들의 의사가 아니라 제국의 의사여야 했다.

19세기식 제국을 약간만 수정하여 20세기에도 그대로 운영하고자 했던 영국과 프랑스의 청사진은 그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20세기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 모두가 유럽 제국의 존속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필리핀을 중심으로 대양의 도서들에 자신만의 제국을 경영하고 있었고, 소련은 새로 획득한 동유럽뿐 아니라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계승한 캅카스와 중앙아시아에서 제국적 통치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결코 자신을 제국이라 규정하지는 않았고, 실제로도 그들의 ‘제국성’은 일반적 제국주의보다 훨씬 더 모호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선을 철저히 그은 편이었다면,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이 그 경계선을 철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필리핀과 소련의 중앙아시아는 자신들의 개발 프로젝트가 아시아 사회에서도 보편적인 근대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증거로 제시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통치는 더 ‘도덕적’이었다. 두 제국은 1945년 이후의 세계에서 유럽 식민 제국을 해체하고, 각 민족이 국가를 이루어 지구적 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합의를 이루었다. 유엔(United Nations)은 그렇게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