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타통(関東打通) (2) - 요코스카, 요코하마

관동타통(関東打通) (2) - 요코스카, 요코하마

제국의 해안을 보다

임명묵

가마쿠라 다음 행선지는 요코스카다. 요코하마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나오는, 도쿄만의 초입에 위치한 도시. 일본 제국 해군의 주요 기지였으며, 현재에도 해상 자위대 기지이자 미 해군 기지가 위치한 군사 도시이다. 에노덴을 타고 하세역에서 가마쿠라 역까지 간 뒤, 거기서 요코스카선을 타고 또 열심히 달려가면 요코스카역이 나온다.

요코스카의 중심가는 사실 JR 요코스카역에 있지는 않고, 2km쯤 떨어져 있는 요코스카중앙역에 있다. 우리의 목적지도 그쪽이었는데, 그래도 요코스카역 앞에 있는 베르니 공원에서 전함 무츠의 주포를 전시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츠는 워싱턴 군축 조약 당시 첨예한 논쟁 대상 중 하나였는데, 미국과 영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의 전함 갯수를 제한할 때 무츠의 거취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영미의 우호국이었던 일본이 반대로 원한을 사게 되는 주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시간이 다소 촉박했기에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 택시를 잡아 타고 요코스카중앙역 방향으로 향했다. 물론 목적지가 역이었던 것은 아니다.

진짜 목적지는 요코스카 항에 정박하여 기념관으로 사용 중인 전함 미카사였다. 미카사는 일본 해군이 영국에 주문하여 1902년에 양도 받은,  드레드노트급 이전에 나온 전함 중에는 최신식 전함이었다. 직후에 벌어진 러일전쟁에서 미카사는 러시아군의 발틱 함대에 맞서는 연합 함대의 기함으로 활약했고, 미카사에서 일본 해군을 지휘한 제독이 바로 도고 헤이하치로였다. 이후 미카사는 사고로 인해서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고, 또 제1차세계대전 등을 거치며 해군 기술력이 무섭게 발전하면서 구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 군사사의 가장 신화적 성공을 상징하는 전함에 걸맞게 1920년대 이후에는 기념용으로 용도가 전환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 조각보 같은 깃발은 'Z 깃발'인데 원래는 항해 때 선박에서 사용하는 국제 신호기이다. 원래 뜻은 예인선을 요구한다, 혹은 그물을 내렸다인데, 도고 헤이하치로는 쓰시마 해전의 시작을 Z 깃발을 올리며 알렸다. 당시 도고의 신호는 '황국의 흥폐 이 일전에 달렸다, 각원 분려 노력하라'였는데, Z 깃발과 도고의 신호는 오늘날에도 러일전쟁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 본 미카사 전함의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크기로 보면 항공모함이나 뭐 다른 전함이 훨씬 더 크겠으나, 러일전쟁이라는 역사적 상징이 덧붙여져 아우라가 상당했다. 원래는 전함 내부가 기념관으로 꾸려져 있어서 견학이 가능한데, 오후 5시까지만 운영하는지라 이번에는 볼 수 없었다.

측면에서 바라본 미카사.

도고 헤이하치로의 동상이 앞에 서 있다. 1905년 쓰시마 해전의 승리 소식은 모든 아시아인을 전율시켰는데, 러일전쟁이 비서양 국가가 서양 국가를 군사적으로 굴복시킨 최초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 장본인인 도고는 아시아를 각성시킨 영웅으로서 저 멀리 오스만 제국에서도 기념될 정도였다.

도고 동상 옆에는 '황국의 흥폐 이 일전에 달렸다'는 말이 적혀 있다.

미카사를 보고 난 뒤에는 '요코스카 해군 카레' 집에 가서 카레를 먹기로 했다. 영국 해군에서 많은 시스템을 차용한 일본은 함상에서 먹는 식사로 카레를 채택했다. 요코스카가 여전히 해상 자위대의 중심 도시다보니 해군 기념물이나 관련한 관광 상품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제복을 입은 훈련병들도 종종 보였는데 이 가게도 그런 가게다. 여기는 메이드복을 입은 직원이 서빙하고, 해군 함정 소재 오타쿠 게임은 함대 콜렉션 캐릭터들이 서 있는 전형적인 관광 컨셉 가게였는데 여행의 재미라는 게 또 그런 곳을 방문해주는 데 있지 않겠는가.. 하면서 왔다.

기념 맥주로 Z 깃발 맥주가 인상적이어서 주문했다.

'함장의 검은 카레'와 고로케를 시켰다. 커피를 넣어서 '더 어른스러운 맛'이 난다던가..

Z 깃발과 일본 해군을 상징하는 욱일기가 걸려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도쿄만의 가장 남쪽이라고 할 수 있는 우라가의 구리하마다. 지도에 표시된 목적지에서 잘 보이겠지만, 바로 이곳에서 일본의 근대가 시작되었다. 게이큐구리하마 역, 혹은 구리하마 역에서 내려서 1.7km 정도 걸어가면 페리 공원이 나오는데, 매튜 페리 제독이 흑선(구로후네)을 이끌고 일본에 개항을 요구한 장소가 바로 저 곳이다.

이미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져서 고요한 가운데 살짝 음산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페리 공원 도착.

우라가 봉행이었나? 하여간 흑선 내항 당시 페리와 마주했던 일본 측 대표랬는데 이름은 까먹었다.

그리고 일본의 근대를 연 장본인 매튜 페리 제독.

페리 공원에 가면 1901년에 건립된 페리 상륙 기념비를 볼 수 있다. 크기가 꽤 크다. "북미합중국수사제독백리상륙기념비"라는 글씨는 이토 히로부미가 직접 쓴 것으로 또 유명하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미국과 전쟁을 개시하며 기념비를 철거했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다시 세웠다고 한다.

아까 올린 흉상들은 이 페리 기념관 앞에 설치되어 있다. 기념관 전시가 있다는데 역시 폐장 시간 이후에 방문하여 볼 수는 없었다.

공원에서 길을 한 번 건너면 바다가 나오는데 바로 이 바다를 통해서 170년 전에 구로후네가 입항했을 것이다.

이쯤이면 거의 녹초가 된 상태였다. 다치카와 -> 하치오지 -> 가마쿠라 -> 요코스카 -> 구리하마 -> 다시 숙소가 있는 요코하마로....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시된 노선이 아니라 회색 노선을 탔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담으로 저때 역에서 전철 타려고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역 앞에 사람이 가득 모여 있고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하고 알아보니 전철 인명 사고로 통제 중이었다..

이제 귀국날인 3일째. 요코하마에서 가장 중요한 볼 거리는 시 동남쪽에 있는 산케이엔(삼경원)이었다. 요코하마 중심가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면 나오는 곳이다.

비단 상인인 하라 산케이가 메이지 후기인 1906년에 조성한 이 정원은 하라의 미학적 취향을 가꾸는 공간이기도 했고, 여러 젊은 예술가를 후원하는 거점이기도 했다. 신기한 건 교토가 위치한 기내 지역의 여러 역사적 건축물이 여기로 옮겨져 있다는 것인데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궁금하다.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데, 일본식 미학에 익숙하다면 더욱 즐겁게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건물이었다..고 기억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이자 훗날 출가하여 다도의 명인이 된 오다 우라쿠의 다실인데, 원래 오다 우라쿠의 다실은 왼쪽의 정말 작은 건물만 있었다고 한다. 훗날 하라가 우측에 더 큰 건물을 덧붙였다.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다.

산케이엔 남문으로 빠지면 일중 우호 정원이 있는데 중국식 정원 건물이 꽤 그럴 듯 하게 서있다. 아마 요코하마가 차이나타운이 있기도 하여 일중 관계의 상징적인 곳이라 이런 걸 만들지 않았을까.

산케이엔에 온 이유는 사실 이곳에서 인도의 위대한 문인 타고르가 머물렀기 때문이다. 타고르는 러일전쟁에 감탄했고 일본을 통해 아시아의 각성을 기대했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는 오카쿠라 텐신과 매우 친했는데, 두 인물의 교분 덕분에 인도와 일본의 미술을 통한 교류가 몹시 활발해졌다. 하지만 타고르가 남아 있던 건물은 지금은 아마 지진으로 파괴되어 없어졌고, 대신에 전망대로만 남아 있다.

교토 등명사에 있는 삼층탑이라고 들었는데 이게 꽤 크기가 있어서 임팩트가 있다. 옮겨서 다시 세우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하라의 저택인데 고대 일본풍 지붕이었던 것 같다.

실제 불이 타오르고 있어서 연기 냄새가 아주 매캐하다. 일본 전통 가옥 양식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전시관에는 여러 예술 작품이 놓여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장자의 호접지몽을 표현한 작품인데 스르륵 감긴 눈이 꿈의 세계(혹은 진짜의 세계)에서 떠지면서 오른쪽의 흐릿한 나비와 마주하는 게 정말 대단했다.

이제 요코하마의 마지막 일정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갈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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