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대러시아 외교에 대해서

이재명 정부의 대러시아 외교에 대해서

'실용외교'와 '대러 관계 정상화'?

임명묵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을 끈 소식은 위성락 의원이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된 일이었다. 위 의원은 외교 관료 출신으로, 대러 외교와 북핵 협상, 북미 관계를 두루 경험했으며 주러시아 대사직을 지낸 인물이다. 2022년 대선 당시에는 이재명 캠프의 ‘외교통’으로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접하며 과거 그가 했던 흥미로운 발언이 떠올랐다. “미국이 우리를 3시 방향으로, 중국이 9시 방향으로 당긴다면, 우리는 동맹인 미국에 가까운 1시나 1시 반쯤의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찾아보니 2021년에 한 말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미국과 중국의 ‘당김’은 한층 거세졌다. 대만에서는 민진당의 뇌청덕이 당선되었고, 트럼프 2.0 시대가 열렸으며, 관세 전쟁과 기술 표준 경쟁까지 더해져 미중 패권 다툼이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시기 윤석열 정부는 ‘가치외교론’을 내세워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고, 서방 진영의 확실한 일원으로서 안보를 다지겠다는 노선을 취했다. 위성락 실장의 비유를 빌리면 일종의 ‘2시 반 노선’을 택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의 선택이 옳았는지를 논외로 하더라도, 이 방향이 정책적으로 채택되기까지의 난이도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오랫동안 동아시아 냉전 체제의 전초기지로 기능해왔고, 국내 정치에서도 친미·반중 정서가 굳건했다. 외교 전문가들 역시 한미 관계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정책 기획이나 전문가 자문 과정이 비교적 수월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동맹과 함께 중국·러시아에 대응하기’를 대전략으로 삼고 있었기에, 미국의 당김 또한 강하게 작용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의 균형자론이나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론처럼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만의 독자적 외교 공간을 확보하려는 노선은,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자체로 훨씬 더 고난도의 과제였다. 미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 국민 여론, 풀리지 않는 북핵 문제, 강대국 간 경쟁 구도 등을 모두 고려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이런 복잡한 환경 속에서 정통 외교 관료를 중용해 균형외교 실험에 나서는 이재명 정부의 시도 역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할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눈길을 끄는 것은 위성락 실장의 2021년 발언이다. 당시 그는 "대미 외교뿐 아니라 중국에 대한 입지 확보를 위해서도 G7 확대, 인도·태평양 전략, 쿼드(QUAD) 등에 적극 참여하고, 일본과의 관계도 안정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마 2022년 민주당에 합류하면서 이후에는 쿼드나 인도·태평양 전략 등 미국의 대중 압박 노선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히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는 바이든과 트럼프를 거치며 쿼드와 인도·태평양 구상 자체가 이미 상당 부분 형해화되었다고도 본다.

결국 이 발언의 핵심은, 미국의 기본 노선에는 발을 맞추되, 중국 외의 제3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외교적 자율 공간을 넓히려는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방향과도 일정 부분 맥이 닿는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아세안 및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심화를 목표로 신남방·신북방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오히려 지금처럼 미중 관계가 한층 악화되고, 트럼프 정권에서 확인된 미국의 동맹 장악력이 약화된 상황에서는 이러한 제3국 연대 구상이 오히려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더 현실적인 전략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이재명 정부의 대러시아 외교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어쨌든 위성락 실장은 주러시아 대사를 지낸 ‘러시아통’이 아니던가. 게다가 러시아의 동아시아 내 존재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겉으로 보기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유럽, 나토에 주력하고 있는 듯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러시아는 비서구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인도와의 외교·무역 협력에 더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광물, 식량이 중국 내륙으로 유입되고, 서방 기업이 철수한 틈을 중국 기업이 메우면서 양국 간 경제적 공조는 더욱 강화됐다. 양국 국경지대인 극동과 시베리아는 이미 무역 및 투자 지대로 재편되고 있는 모습이다. 결정적으로 러시아가 쿠르스크 전투에서 북한군의 지원을 받으며 북러 관계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균형외교와 독자외교를 지향하는 이재명 정부 입장에서는 이러한 러시아와의 우호적 관계를 토대로 미중 사이에서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고, 나아가 러시아가 북한 문제에서 일정한 중재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할 가능성이 크다. 덧붙여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북극을 언급했던 점 역시 러시아 협력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여전히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이에 따라 이 글에서는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앞서, ‘러시아를 통한 균형외교’가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지, 또 어떤 과제들이 놓여 있는지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 트럼프를 통한 협력?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민주당 지지층 일부에서는 미국 민주당보다 트럼프의 공화당에 더 호감을 보이는 경향이 꾸준히 나타났다. 구분하자면, 민주당 지지층 중 진보적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이들은 미국 민주당을 강하게 지지하는 반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트럼프에게 일정한 기대를 거는 경향이 뚜렷했다. 트럼프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나 다자주의보다는 ‘양자 거래’를 선호하는데, 이는 "이념보다 실용을 우선해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자"는 민주당 햇볕정책의 기본 서사와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러시아 문제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는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누가 되든 정책은 바뀌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했지만, 민주당보다 ‘전쟁을 끝내고 협상하자’는 메시지를 내세운 트럼프 쪽에 더 우호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트럼프 취임 이후 미러 대화 재개 가능성이 논의되었고, 전쟁 종식 이후 양국이 에너지·광물·북극 개발 등에서 협력을 확대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아마 현재 한국 민주당 정부 역시 이러한 미러 간 온화한 분위기를 활용해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큰 마찰 없이 추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트럼프 집권하에서도 미러 관계 복원이 순조롭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개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가 내건 요구는 명확하다. 영토 병합 승인,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에 대한 간섭 허용, 나토 가입 포기 등으로 요약된다. 이는 사실상 러시아의 승리를 인정하라는 것이고, 러시아는 이를 받아들일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이 과정에서 "미국의 체면을 지킬 수 있도록 일정 부분 양보해달라"고 제안했지만, 러시아는 입장을 굳건히 고수하고 있어 평화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거미줄 작전과 러시아의 보복 공언까지 더해지며 단기간 내 관계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 전황이 급변하더라도 어느 쪽도 굴욕적인 평화안을 쉽게 수용하긴 어려울 것이다. 월남전이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교착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데만 10년 가까이 걸린 선례를 봐도 이 점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러시아에 접근하는 움직임이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조차 긍정적으로 평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대러 외교 정상화를 진지하게 추진하려면 미국과 일정 부분 충돌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2. 유럽의 반발

유럽의 반발은 한국에 실질적인 직접 영향을 주기는 어렵겠지만, 상징적인 차원에서는 훨씬 강한 저항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임자가 남긴 수렁’으로 간주하며 빠져나가기를 원한다면, 유럽 주요국 지도부에겐 이 전쟁이 그들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다. 단적으로 러시아가 전장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유럽은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있다

비록 유럽은 미국에 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군사적 기여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다양한 재정 지원과 외교적 후원으로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를 국제적 고립 상태로 몰아넣는 공공외교에도 집중하며, 내부에 이견이 있더라도 대러 정책에서는 비교적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서방 진영의 주요 경제대국이자 군수 강국으로서 러시아와 협력을 추진한다면, 유럽 입장에서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 전장의 현실로 인하여 대러 포위망에 이탈하는 국가들이 더 생기고 있다는 증표 아니겠는가? 현재 유럽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얼마나 강경한지를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공개적인 비판에 나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

3. 중국과 북한 문제

민주당 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는 배경에는 아마 윤석열 정부의 외교노선과 차별화를 시도하며,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동북아 평화외교'를 재가동하려는 의도도 클 것이다. 극동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중국·북한·러시아 간 군사·경제 협력이 활발해지는 현재의 정세를 고려하면, 러시아를 매개로 평화외교를 시작하고 이후 북한 문제로 확장해 가는 방안이, 처음부터 북한과 직접 협력하는 것보다 국민적 반발을 덜 살 수 있는 현실적인 접근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한국이 극동 지역에서 독자적 존재감을 키우려는 시도를 중국과 북한이 신뢰할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극동이 아니더라도 이미 동부 해안과 내륙 등에서 한국과의 다양한 경제협력을 진행하고 있는데, 굳이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는 영역까지 확대할 유인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러시아 역시 원칙적으로는 한국의 참여를 환영하겠지만, 북한과 중국이 얽힌 복잡한 극동 이익 구조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조정하는 문제는 상당히 신중한 계산이 필요한 사안이 될 것이다.

4.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 발생할 논쟁

사실 개인적으로는 앞선 세 가지 변수보다 이 문제가 가장 흥미롭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더 이상 ‘이념을 떠나 실용적으로 협력하자’는 말로 간단히 정리될 수 없는 사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명백히 도전하며, 스스로 ‘세계 다수를 위한 공정한 질서’와 ‘다극 세계’라는 대안적 질서를 적극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러시아와 협력을 본격화한다면 나토와 EU 등 서방 진영은 당연히 강한 우려를 표시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이야 자유주의 가치에 크게 구애받지 않겠지만, 오히려 “왜 내가 아직 화해하지 않은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느냐”며 불편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러한 국제적 압박은 국내 정치와도 직결된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등 보수 야당은 이재명 정부가 ‘서방 세계’에서 이탈해 친러·친중 노선을 걷는다며 거센 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이미 트럼프와의 ‘통화지연’ 사태나 나토 회의 참석 문제만 봐도 그러한 흐름은 충분히 예고되고 있다. 야당의 비판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상수라 하더라도, 보다 중요한 것은 여당 지지층의 반응이다.

한국 민주당 지지층은 2010년대 이후 사실상 '선진국 노선'을 핵심 정체성으로 굳혀왔다. 민주주의, 인권, 기후환경 등 북미·서유럽 중심 선진국들이 내세우는 ‘진보적 표준’에 한국이 아직 부족하므로 더 노력해야 하고, 그러한 노력을 통해 선진국의 인정을 받으며 민주당이야말로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서사가 지지층 내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 선진국들이 러시아와의 협력을 비판한다면, '한반도 평화와 우리 경제를 위해 푸틴과도 협력해야 한다'는 햇볕정책 계열의 주장에 주류 민주당 지지층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 아직도 감이 잘 안 잡히긴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대선 과정에서 “코미디언 젤렌스키를 뽑고 나토 가입을 추진하다 전쟁이 났다”고 발언했을 때, 국내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비판을 받았던 반면, 해외 친러 성향 매체에서는 호평을 받았던 장면은 이러한 괴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재명 정부의 대러 외교가 실제로 본격화될 경우 가장 주목할 파급효과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민주당 정부는 러시아 문제가 단순히 국익·실용·한반도 평화 같은 기존의 익숙한 담론을 넘어서는 사안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미국, 러시아,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탈냉전 세계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다극 질서가 부상하는 흐름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내부에서는 이러한 세계질서 전환 속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는 ‘서방 선진국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막연한 합의만 공유된 채,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와 민주당의 ‘실용외교’ 사이에서 표면적인 노선 차이만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그 서방 선진국들이 스스로 위기를 겪고 있으며, 미국조차 기존 자유주의 질서를 거부하거나 수정하려는 조짐을 보이는 오늘날, 한국이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 지역질서와 세계질서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부재한 상태다.

이러한 근본적 정체성 논의 없이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면, 서방 세계 주요국들은 물론, 한국 내에서 스스로를 서방 선진국 일원으로 여기는 여야 지지층 모두에게서 적잖은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앞으로 이재명 정부의 대러 외교 노선의 설계가 여러 의미에서 흥미진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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