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동남아시아, 정체성

블랙핑크, 동남아시아, 정체성

동남아시아는 왜 블랙핑크에 열광했을까

임명묵

이 글은 2021년 '얼룩소'에 작성하였던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YG 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라리사 마노반)가 발표한 솔로곡 LALISA가 전세계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모았다. 많은 대중문화 현상이 그렇듯, 작품 자체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이 작품을 둘러싼 수용자들의 반응이다. 한국의 많은 언론이 다루었듯이 태국 사회는 리사에게 엄청난 열광을 보여주었다. 쁘라윳 찬오차 총리는 리사가 태국 대중문화계가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K-POP 걸그룹의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국가적 문화 영웅처럼 추켜세웠다.

사실 리사는 그 이전부터도 태국인들, 특히 청년층들의 국민적 영웅과 다름없었다. 태국인들의 열광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고, 이번 솔로곡도 그 기세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었지 새로운 사건은 아니었다. 물론 LALISA에는 그 이전 활동 음악보다 더욱 특별한 요소도 있었다. 뮤직비디오 후반부에 리사의 고향인 부리람에 위치한 파놈룽 사원과 태국 전통 의상을 활용한 연출은 태국인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양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리사의 의상, 특히 그가 쓰고 나온 금관은 태국에서 기념품으로 불티나게 판매되었다.

태국 전통 의상을 입고 촬영한 뮤직비디오 LALISA

K-POP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리사가 태국에서 얻게 된 국민적 인기는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리사가 ‘하이쏘(high society)’라 불리는 중국계 상류층 네트워크의 소속이 아니라 태국의 서민층인 ‘로쏘(low society)’ 출신이기에 태국의 평범한 대중에게 더 큰 호소력을 가졌다는 설명은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설명은 태국, 나아가 동남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리사의 인기를 완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하이쏘와 로쏘로 환원되는 설명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비어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태국 사회 내부를 구성하는 다층적 정체성에서 리사라는 존재는 단순히 서민층인 ‘로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런 정체성을 동원해내서 대중에게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K-POP 산업 특유의 소비문화다.

먼저 태국 사회의 다층적인 정체성 문제를 살펴보자. 한국에서는 ‘로쏘’를 한국적 맥락의 ‘서민층’으로 이해하고는 하지만, 사실 로쏘는 서민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리사의 가정 환경부터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일반적 서민층과는 거리가 있다. 리사는 스위스인 양아버지를 두고 있고, 연 학비 2천만 원에 상당하는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YG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에 합격을 했다. 물론 오디션 합격부터, 기나긴 연습생 시절과 격렬한 경쟁을 거쳐서 글로벌 슈퍼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은 혹독한 훈련, 천부적 재능, K-POP 시스템이 모두 결합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리사의 유복한 가정환경 역시 꽤나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계층적 면에서 리사는 상류층에 훨씬 더 가깝다. 그럼에도 그를 낮은(low) 계층 출신이라고 하는 이유는 태국 사회에서 로쏘가 서민보다는, 압도적 부유층의 엘리트 카르텔인 하이쏘가 아닌 이들, 즉 여집합에 더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이쏘가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하이쏘는 태국 국가의 형성과 근대화 과정에서 출현하게 된, 중국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배 집단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 태국은 왕정 국가이며 여전히 왕실이 정치, 경제, 사회에 다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태국 왕실부터 역사적으로 중국계 혈통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남송 시대와 정화 원정을 거치며 동남아시아 각지에 형성된 화교 상인 네트워크는 전통 시대부터 태국의 주요한 상업 자본 네트워크를 장악한 집단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19세기 이후에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네트워크를 경유하여 훨씬 더 많은 중국인이 동남아시아 전역에 노동자로 이주해왔는데, 그들은 본토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화교 네트워크를 통하여 동남아시아 사회에 더욱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태국은 타이어를 쓰고 소승불교를 믿는 타이족의 정체성을 수용하기를 중국인 사회에 요구할 수 있었고, 태국의 중국인들은 다른 동남아시아 화교 집단과 달리 상당히 빠른 속도로, 꽤 성공적으로 이 요구를 수용하여 타이족 문화에 동화되었다. 그러나 이 덕에 중국에서 유래한 화예 집단은 아예 정치적 주류층에까지 완전히 편입되었고, 그들의 태국 사회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 주로 중국계인 정치, 경제의 최상위 엘리트들이 바로 ‘하이쏘’가 된 것이다. 따라서 리사가 ‘로쏘’라는 말은 이러한 최상위 엘리트층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방콕의 차이나타운, 이미지 출처: 본인 촬영

하이쏘와 로쏘의 큰 단층선 사이에는 그보다는 더 연속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하이쏘에 속하지는 못하더라도, 방콕에 주로 거주하는 태국의 중산층들 역시 상당수가 중국계이며, 비중국계 태국인들은 태국 사회의 중하층과 하층을 주로 구성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종족적 단층선으로 나타나며, 확연히 시각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구사하는 언어와 향유하는 문화가 같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동북아시아인의 하얀 피부를 가진 이들일수록 중산층이나 상류층일 개연성이 높고, 동남아시아인의 검은 피부를 가진 이들일수록 하층일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종족, 인종을 따라 구분된 계층적 차이는 태국 및 동남아시아 사회 전반의 미의식에도 다대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심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K-POP 산업에서 수용한 태국 출신의 아이돌들은 절대다수가 피부가 하얀 동북아시아인의 외모를 하고 있는데, 이들의 출신 계층과 종족적 기원을 누가 보아도 쉽게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중 일부는 명백한 최상층 엘리트인 하이쏘 출신이기도 하다. 이것이 리사를 향한 태국 사회의 열광적 인기를 이해하기 위한, 태국의 다층적 정체성 구성이다. 인종, 종족과 경제적 계층이 교차하여 형성하는 계급 사회가 태국인 것이다.

리사의 인기는 태국 사회 속에서 그가 갖는 특수한 정체성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리사의 고향은 부리람 주(州)인데, 부리람은 태국 동북부에 위치한 이싼(Isan) 지역에 속하는 곳이다. 이싼 지역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 첫째는 민족적으로 주류 태국과 구분된다는 것이다. 태국 민족주의에서는 이싼인들 또한 태국 주류 민족인 타이인들과 같다고 규정하며, 대다수의 이싼인들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싼어는 타이어보다는 동북쪽에 인접한 라오스의 라오어와 더 유사하다. 두 번째 특징은 이 지역이 경제적으로 낙후한 빈곤 지역이며, 그로 인하여 늘 정치적 불안정의 온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싼 지역은 내륙이기에 별다른 산업도 갖출 수 없었고, 상대적으로 건조한 기후로 인하여 농업 생산성도 다른 지역에 비해 떨어지며, 종족적 차이로 인하여 태국 주류 사회로의 진출은 오랫동안 차단된 상태였다. 20세기 후반에 이 지역은 인도차이나의 공산당 정권과 마주한 곳이었고, 태국 정부는 이싼 빈농들의 쟁의를 공산당 활동과 연계하여 국가적 이적 행위로 간주하곤 했다. 이런 빈곤상 때문에 많은 이싼인들은 방콕을 위시한 동남아시아의 부유한 대도시, 혹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들로 흘러 들어가 하층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방콕 등지의 주류 타이족과 중국계의 상류층들은 이런 이싼인들을 은연중에, 혹은 대놓고 무시하였다. 태국 민주화 이후 이런 이싼인들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조직하여 막강한 세력으로 부상한 정치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탁신 친나왓이었다. 하지만 탁신과 그의 후계자를 자처한 동생 잉락은 방콕을 중심으로 한 군부와 중산층의 연합에 밀려 패배하였고,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2014년 쿠데타를 통해 8년째 태국을 통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동부의 이싼 지역,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물론 리사 개인이 부리람 내지는 이싼 지역과 밀접한 연고를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그는 유년기에 어머니가 양아버지와 재혼하여 방콕으로 이주한 듯하고, 그 이후에는 이싼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하지만 태국의 많은 K-POP 팬들에게 그러한 차이는 사소한 것이었다. 태국을 대표하는 ‘월드스타’로서 리사가 태국의 모든 계층에 강력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다는 게 진정으로 중요했다. 민족주의가 강력한 태국 사회에서 화예나 타이족 가릴 것 없이 모든 태국인들은 리사가 자신들의 조국인 ‘태국’의 위상을 높였다는 이유로 그에게 환호했다. 하지만 정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타이족과 이싼족들이었다. 그간 K-POP 아이돌로 활동하던 일반적인 중국계 혈통의 태국 멤버들은 하얀 피부와 동북아인 특유의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리사의 피부색은 동남아시아인들의 그것에 더 가까웠고, 눈매와 입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중국계가 아닌 태국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외모를 통해 그 누구보다 성공한 스타가 되었기에 그들은 리사의 성공을 마치 자신들의 성공인 것처럼 여겼다. 리사는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는 고착화된 태국 사회에서 비중국계도 세계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준 증거였고, 동남아시아인들도 미(美)의 기준을 새로이 쓸 수 있음을 증명한 인물이었다.


리사의 위상은 개인을 넘어 그가 속한 그룹인 블랙핑크의 전 지구적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블랙핑크가 압도적 위상을 갖게 된 지금은 생경한 일이지만, 2014-2016년에 등장한 ‘3세대 걸그룹’의 초기 국면에서 블랙핑크가 이렇게 성공할 것이라 내다본 사람은 전혀 없었다. 당시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그룹은 JYP 엔터테인먼트의 그룹인 TWICE(트와이스)였다. 일본인 멤버 3명과 대만인 멤버 1명이 포함된 이 그룹은 K-POP의 전통적 시장인 동북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상태였다. 하지만 2018년 즈음을 기점으로,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막대한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6억의 인구를 자랑하는 아세안인들이 블랙핑크에 열광하면서 유튜브에서 돌풍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 태국과 유사한 사회적 환경과 정체성 구성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남아시아를 기반으로 오르기 시작한 블랙핑크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는 동북아시아 바깥의 거대한 글로벌 팬덤을 깨웠고,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다시 거대한 지지세가 이어졌다. 이후에 블랙핑크는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K-POP 그룹인 방탄소년단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양대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성공의 서사시에는 한편 동남아시아의 다층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더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는 캄보디아가 그 주인공이다. 리사의 고향인 부리람은 캄보디아와 접경하고 있는데, 실제 캄보디아의 주류 민족인 크메르인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북쪽 운남성에서 남하하여 국가를 이룬 타이족들이 남쪽 캄보디아에 위치한 크메르를 점차 압박하면서, 많은 접경 지역을 시암 영토에 편입시킨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부리람에는 크메르인뿐 아니라 크메르 제국의 유산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앙코르 양식으로 건설된 파놈 룽(Phanom Rung) 사원이었다. 이 사원은 앞서 언급한 LALISA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바로 그 사원이다.

LALISA 뮤직비디오의 모티브를 제공한 파놈룽 사원, 리사의 고향 부리람에 있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태국의 종족 구성 지도. 캄보디아 접경 지대에 크메르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따라서 일부 캄보디아인들은 리사의 고향인 부리람이 실질적으로 크메르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캄보디아의 연장선과 같은 곳이기에, 리사 또한 따지고 보면 크메르 혈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사원 또한 크메르인들이 크메르 양식으로 지은 사원이다. 그렇기에, LALISA 뮤직비디오는 태국의 자랑이 아니라 ‘캄보디아의 자랑’이 된다는 것이다. 유튜브나 트위터의 K-POP 팬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두고 태국과 캄보디아의 K-POP 팬덤이 서로 논쟁을 벌이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었다.

LALISA를 둘러싼 태국 및 동남아시아 사회의 이같은 반응에서 K-POP의 두 번째 특징이 잘 나타난다. K-POP은 이제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K-POP에 대한 일반적 설명인, 뮤직비디오를 통해 ‘보는 음악’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아티스트라고 포장되는 아이돌을 판매하는 산업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또한 K-POP의 특징을 온전히 담아냈다고 보기는 힘들다. K-POP을 이루는 모든 요소, 즉, 아티스트, 뮤직비디오, 음악 등은 거대한 소비자 군중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투사하고 세계를 향해 발신하는 일종의 플랫폼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LALISA 현상은 새롭게 들리지만,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이러한 이야기가 새롭게 들린다면 그것은 한국이 일반적으로 동남아시아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도 자체는 그 이전부터 한국에서 나타났던 구도와 완벽히 동일하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성공하자, 한국인들이 느꼈던 국가적 들썩임은 이제야 10년이 된 일이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조금은 덜 할지라도, 여전히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세계적 성공은 중요한 화젯거리다. K-POP이 소위 ‘국뽕’이라는 민족주의에 복무한다는 비판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민족주의 감정의 발로라고 보는 것은 K-POP 현상의 다면성을 외면하는 것이다. 사실 크메르든 이싼이든 동남아시아든, 혹은 한국이든 그런 요소는 개인, 혹은 집단이 내세우는 수많은 정체성의 일부일 뿐이다. 다만 민족주의는 그런 각양각색의 정체성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거니와, 대다수 국민들이 핵심적 정체성으로 삼는 것이니 유난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뿐이다. 유사한 사례로는 TWICE에서 대만인 멤버 쯔위를 둘러싸고 발생한 대륙과 대만 사이의 양안 갈등이 있었다. 쯔위가 방송에서 청천백일기를 흔들자, 중국의 K-POP 팬덤은 그가 ‘하나의 중국’을 부정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고, 이는 중국 네티즌들이 대만 인터넷을 향한 대대적 공격을 이끌어냈다. 이는 중국 공산당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민족주의는 K-POP 팬덤이 발산하는 유일한 정체성이 아니다. 북미에서는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걸그룹 ‘이달의 소녀’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대개의 경우는 조금 더 파편화된 정체성이 많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아이돌 개인에 대한 지지를 자기 자신의 핵심 정체성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확장되면 해당 아이돌이 속한 그룹 전체를, 나아가 그 그룹이 속한 기획사와 그 소속 아이돌 그룹에 대한 팬심(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포함시킨다. 사실 이런 것은 고전적인 팬덤에 관한 논의와 상당히 흡사하고, 스포츠 업계에서 더 많이 이야기된 것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이전 현상의 심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확실한 것은, K-POP 산업이라는 것이 그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소비자의 정체성과 관련된 가장 심원한 감정을 끌어내는 데 천부적인 역량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그 원인과 메커니즘이 구체적으로 탐구되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특정 그룹의 팬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고, 그것을 아티스트에 투사하도록 만들고, 자발적으로 열렬한 활동을 이끌어내게 만드는 것은 팬덤 구성 전략의 기본이다. 그러나 그 어떤 팬덤 산업도 케이팝 산업처럼 열광적인, 때로는 광기에 가까운 팬덤을, 그것도 지구적 범위로 양산해내지는 못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K-POP 팬덤은 이제 스포츠나 상품에 대한 팬덤과 같은 맥락에서 분석될 것이 아니라 종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들의 반열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실제 무슬림 세계에서는 케이팝을 전통적 생활 양식의 심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중국 공산당이 최근 시작한 대중문화 탄압에 케이팝 아이돌 산업이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런 우려를 입증이라도 하듯, 칠레에서 미국을 거쳐 태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청년 저항운동가들이 케이팝 팬덤을 이용하고 그 조직 방식을 모사하려 한다.

K-POP은 팬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게 하려는 방법론이다. 한 번 K-POP 팬이 되면 그는 정체성을 둘러싼 사이버 세상의 전쟁과 집단 행동에 참여하면서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 어떤 소비자 집단이 어떤 정체성을 아이돌에게 투사하게 만들 것인가는 K-POP 기획사가 새로운 아이돌 그룹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되었다. 지구적 현상으로서 K-POP의 부상은 인류가 정보 시대를 맞이하면서 겪게 된 사회적 대전환, 인간 생활 양식의 격변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동남아시아에서 리사와 블랙핑크가 이끌어낸 엄청난 성공을 단순히 산업적 차원으로 볼 것이 아니라 더욱 근원적 질문으로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 팬덤 등의 익숙한 역사에서 하필 왜 케이팝에 이르러서야 이런 수준의 열기가 가능했는가? 이것은 케이팝이 한국이라는 특수한 소비자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인가? 그렇다면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그 특수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의 특수함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지구화되었는가?"

K-POP은 대중음악이고, 절도 있고 화려한 군무를 특징으로 하는 영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K-POP을 여타 대중문화와 구별시켜주는 특질은 바로 정체성을 끄집어내서 몰두하게 만드는 특유의 팬덤 조직 방식이다. 대체 이 마법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이 마법이 진정 지구화되었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지구적 변화는 K-POP을 또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조형해낼까?

문화사학자 다니엘 카비치는 그 자신의 팬으로서 브루스 스프링스틴 팬덤을 연구하며 '팬덤은 의미이자 정체성이고 존재의 양식이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1998년에 저술한 이 책을 두고 지나친 과장이라는 비평이 많이 나왔으나 오늘날 카비치의 관찰했던 현상이 지구적으로 훨씬 심화되어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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