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무엇인가 (2):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

K-POP은 무엇인가 (2):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

"그런 음악 같지도 않은 음악을!"

임명묵

“미디어는 메시지다(Media is the message).” - 마셜 맥루언


K-POP에 대한 비판들은 대중음악에 관해 널리 퍼져 있는 ‘전통적’ 관념이 무엇인지를 투명하게 드러내준다. 비판 자체를 그 전통적 관념을 기준으로 전개하기 때문이다. 일단 K-POP이 일종의 주변적 현상, 혹은 하위문화에 불과하며 대중음악의 주류적 위치로 올라설 수 없다는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주장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첫째는 K-POP이 ‘순수한’ 음악적 경험이 아니고, 음악을 부가로 판매하는 변종 상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K-POP에서 음악만큼이나, 어쩌면 음악보다도 뮤직비디오로 상징되는 영상이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연관된다. 요컨대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소비할 때는 음악 자체의 질적 수준을 고려하는데, K-POP은 음악 자체의 수준과는 관련 없는 시각적 자극을 동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음악을 듣도록 묶어둔다. 사람들은 K-POP을 들을 때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들의 매력적인 육체와 화려한 시각적 자극과 절도 있는 퍼포먼스에 이끌린다면 이것이 제대로 된 대중음악 상품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 K-POP이 순수한 음악 콘텐츠가 아니라는 비판은 더 나아가서 아이돌들의 성상품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고, ‘자본 논리’가 미숙한 소비자들을 꾀어내어 음악 시장의 건전성을 교란한다는 주장으로 심화되기도 한다.

둘째는 K-POP이 ‘대중적’ 차원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소수의 마니아층에게서만 인기를 구가한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정말 좋은 음악이라면 더 넓은 청중에게서 계속해서 소비되고 사랑 받아야 하는데, 유행 주기도 극도로 빠르고 K-POP에만 몰입하는 ‘광적인’ 청중에게만 매력적인 장르가 어떻게 ‘좋은 음악’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K-POP의 주요 소비층에 대한 멸시에 가까운 비판 의식도 함께 깔려있다. K-POP은 결국에는 현실에서 무언가 문제를 겪고 가상의 엔터테인먼트 세계로 도피하여 광적인 몰두를 하는 소비자 집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장르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아이돌 음악을 비판할 때도 익히 나왔던 이야기고, K-POP이 서구 사회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에도 회의론의 핵심적인 근거가 되었던 비판이다. K-POP이 서구에서 어느 정도의 입지를 구축한 게 설령 사실일 수는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억눌린 소수들이나 듣는 ‘이상한’ 문화 취급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K-POP 아티스트들, 즉 아이돌들이 음악 문화에 진지하게 천착하는 이들이라기보다는 문화 자본과 기업에 의해서 만들어진 ‘상품’, 특히 ‘공장에서 찍어낸 제조업 상품’에 가깝다는 비판이다. 이는 음악이 아티스트 개인의 진실된 경험과 세계관을 통해 나타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구라는 낭만주의 사조에 근거하는 주장이다. 낭만주의적 접근에서 아티스트는 자신이 속한 세계, 문화권과 상호작용하며 그가 개인으로서 형성한 본래적 메시지를 발산하는 주체여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얼마든지 내보일 수 있어야 하는 자율적 주체여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인 예술적 산출물은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돌은 본래성, 자율성,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다. 기업에서 써준, 자신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곡을 부르니 진정성이 있을 리가 없고 어떤 곡을 부를지 선택할 수도 없으니 자율적이지도 못하다.

세 가지 비판은 독립되어 있는 시각이지만 동시에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아티스트의 본래성, 자율성, 진정성에 바탕을 두고 나온 ‘좋은 음악’은, 육체적 매력이나 뮤직비디오 등 부차적 요소에 교란되지 않은 채 ‘음악’이라는 척도만으로 평가받고, 그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음악들은 국민적으로, 또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주류 문화를 형성할 자격이 생긴다는 것이다. 반면에 K-POP을 비롯한 아이돌 음악은 먼저 음악적으로 좋을 수 없고, 시각적 요소, 특히 육체적 매력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미숙하고 주변적인 소비자층에서 부자연스러운 인기를 끌어낸다. 전통적 시각에서라면 K-POP이 주류로 스며들거나 주류를 대체하기까지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티아라의 보핍보핍: K-POP이 문화적 퇴락의 상징이라는 비판이 가장 격렬했을 때, 그 상징이었던 곡.

사실 K-POP이 부정이 불가능한 정도로 지구적 성공을 이루고, 주류로 침투하고 새로운 주류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이런 시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아직도 K-POP이 어쩌다보니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를 형성하면서 주류에 들어온 것은 맞지만, 그것은 결국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는 가치 평가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K-POP에 관한 이런 비판들은 왜 K-POP의 부상을 예측하는 데 실패했을까? 아니면 설령 예측이 틀렸다 하더라도 문제의식만큼은 여전히 옳다고 평가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K-POP에 대한 비판적 논거를 제공해주는 음악에 관한 전통적 관념들은 하나씩 따져보면 근거가 빈약한 경우가 많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 시대의 일시적 현상을 음악의 본질적 성격으로 간주하고 일반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음악이 오롯이 청각적 경험이어야 하며, 다른 요소가 개입하는 것은 교란에 가깝다고 하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이 주장은 인류가 다른 감각을 차단한 채 청각적 자극만을 통해 음악을 소비한 역사가 19세기 후반과 20세기의 일부에만 국한된다는 것을 망각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당시 인류가 청각을 통해서만 음악을 소비한 이유는 청각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관념이나 철학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포노그래프(축음기), 턴테이블, 라디오 등 음악 재생 기기의 기술적 속성 때문이었다. 이들 음향 기기들의 발명과 확산은 그 이전에 인류가 직접 연주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그렇기에 매우 ‘비쌌던’ 음악이라는 콘텐츠의 비용을 혁신적으로 낮춰주면서 본격적인 ‘대중음악’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기술적 돌파구가 열리기 전에 인류가 훨씬 오랫동안 음악을 즐겨온 방식은 수행자(가수, 연주자 등)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을 하면서 노동요를 흥얼거리든,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성가를 듣든, 음악회에 방문하든 어떤 방식으로도 청각적 경험에만 국한시켜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었다. 누가, 어떤 복장을 입고, 어떤 장소와 상황에서 음악을 공연하는지는 음악 자체와 불가분의 관계였던 것이다. 축음기와 라디오 이후의 근대 사회에서도 시각적 요소는 계속해서 음악에 개입했는데, 할리우드 영화는 ‘영화 음악’이라는 형태로 시각과 청각을 결합시켰다. 텔레비전과 비디오는 처음에는 공연 영상을 안방으로 송출했으며, 훗날에는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음악만을 위해 고안된 영상을 전달했다. 따라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은 기술적 돌파구만 나온다면 언제든지 급속히 실현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인류가 보편적으로 음악을 즐겨온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후반 미국 대중음악의 전성기만 보아도 그렇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과 그의 리젠트 머리를 분리하거나,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을 들을 때 특유의 춤과 문워크를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각의 독립: 축음기의 발명
영화와 음악의 결합: 1967년 소련 영화 '카프카스의 납치'는 OST인 '곰에 관한 노래'를 전국적 인기 가요로 만들었으며, 여주인공 나탈리야 바를레이가 춘 트위스트는 소련 후기 문화적 해방의 상징이 되었다.

더 넓은 청중에게 호소하는 대중적인 음악이 더 좋은 음악이라는 관념도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노래가 전국적으로 소비되어 ‘국민가요’의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근대적 대중사회(mass society)가 등장하면서부터 가능해진 변화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민요나 종교적 음악 등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질 수 있었지만, 전파 속도는 엄청나게 느렸고, 상업적으로 활용될 수도 없었다. 18세기가 되었을 때, 여럿이 운집할 수 있는 공연 문화가 도시에서 발전하고, 연주를 위한 악보를 전국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출판시장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대중음악이 나타났다. 대중음악의 기반은 19세기와 20세기에 미국이 급속한 산업화를 겪고, 각지의 이주민이 도시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국민 교육과 징병제는 새로운 대중사회의 대중을 공통의 국민으로 훈련하는 기제였고, 포디즘 체제의 제조업 대공장은 그들의 계급과 생활 양식을 표준화시키는 통로였다. 라디오, 영화, TV 같은 대중매체(mass media)는 국민 교육, 징병제, 제조업 대공장을 통해 하나의 덩어리로서 형성된 대중의 문화생활을 규정하는 도구였다. 그리고 ‘대중성 있는’, ‘모두가 아는’ 노래가 성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대중매체들의 용량이 극히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라디오 채널과 TV 채널에서 공급자들은 어떤 음악을 대중에 제공할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음악적 유행을 DJ나 음악 회사 같은 공급자들이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의 선호와 결정은 청중들의 음악 생활에 엄청난 규정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과 위상이 절정에 달했을 때, 미국의 국민 가요는 말 그대로 ‘지구적 가요’가 될 수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전국적으로 도달하는 제한적 유통망이라는 아주 특수한 미디어 환경이 아니라면, 국민 문화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그런 환경이 아닐 때 문화적 취향, 특히 음악에 대한 선호는 계속해서 분화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음악은 항상 사람들의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과거 부족들은 자신들만의 음악을 불렀고, 종교는 그들만의 성가를 통해서 신앙을 표현했다. 음악에는 다양한 언어와 방언이 반영되어 독특한 느낌을 형성했고, 멜로디와 리듬이 형성하는 패턴은 문화권마다 제각각이었다. 사람들은 익숙한 멜로디와 리듬 패턴을 접할 때 친숙함을 느끼고 더욱 음악에 몰입하였고,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즐길 수 있을 때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대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음악은 늘 정체성의 표지였다. 국민 문화가 가능했던 것은 20세기 중후반 사람들의 핵심적 정체성이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문화권에는 중심적 음악과 주변적 음악이 계속해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교류했다. 애초에 20세기 중후반 대중사회에서도 엄밀한 의미의 단일한 대중문화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애팔래치아 사람들을 뜻하는 힐빌리들이 형성한 음악이나 남부 미시시피 지역의 흑인들이 형성한 음악은 컨츄리와 재즈, 블루스 같은 장르를 만들었다. 이들 장르는 처음에는 해당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국지적이고 주변적인 음악이었으나, 미국의 주류 음악 시장에 융합되면서 빠르게 국민 가요의 지위를 획득했다. 훗날 마이클 잭슨은 모타운 흑인 음악을 두고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즉, 주변적인 청중에 불과한 K-POP 팬덤이 계속해서 성장하여 ‘주류(그런 것이 있다면)’에 도전하고 편입되는 과정은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늘 있어 온 일이었다. 오히려 중심과 주변의 대화와 교류가 없는 문화는 생명력을 잃고 죽은 문화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세 번째 관념, 낭만주의에서 유래한 아티스트의 본질적 성격에 관한 이야기는 말 그대로 정말 관념적인 것이다. 사실 대중음악에서 이런 사조들이 유행하게 된 것은 앞의 두 관념들보다 더 최근의 일이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대중음악을 자본이 자신들의 지배를 은폐하고, 억압받는 대중들에게 일종의 ‘진정제’를 제공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상업화된 대중음악에 대한 편견이 공고해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둘째로는 68혁명의 바람을 타고 밥 딜런으로 상징되는 ‘싱어송라이터’ 붐이 불면서 대중음악인에 대해 기대하는 ‘아티스트적 이미지’가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높은 평가를 받는 대부분의 20세기 중후반 대중음악인들은 낭만주의적 관념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롤링스톤즈는 앤드루 올덤이 프로듀서 겸 매니저를 맡게 되면서 이미지, 음악 등 모든 컨셉을 대대적으로 바꾸었고 그 결과 대대적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롤링스톤즈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회사에 의해 기획된 산물이라고 해서 K-POP에 가하는 비판과 동일한 정도의 비판을 가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반대로 K-POP에서도 스스로 작곡, 작사를 하고 창작에 참여하는 아이돌도 많다.

마이클 잭슨은 5세 때부터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그는 아이돌인가, 예술가인가?

이 말인즉슨, 우리가 음악이 아티스트의 예술혼을 담아낸 무언가여야만 한다는 관념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면 애초에 가수가 작곡을 하건 말건, 자본에 의해 잘 설계된 상품이건 아니면 없던 곳에서 갑자기 등장한 천재건 그 자체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애초에 인류는 역사 속 대부분의 기간 동안 특정 곡조나 가사를 누가 썼는지를 그다지 신경 쓰며 살아오지 않았다. 언제나 음악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청중들에게 더 호소력 있게 다가갈 것인지였다. 그리고 근대 대중사회에서 호소력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척도는 시장에서의 성공이었다. 막대한 자본과 세부 영역에서 전문성을 지닌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를 동원할 수 있는 음악 기업들이 아티스트를 코칭하고, 당대의 유행과 동향을 예민하게 파악하여 아티스트와 가장 잘 부합하는 최적의 곡을 연결해주는 방식은 반드시 전부는 아닐지라도 높은 확률로 시장에서 성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의 음악이 ‘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라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과거의 수많은 음악들도 같은 기준에 따라 평가절하되어야만 한다.

아도르노를 포함하여 대중음악을 자본의 진정제로 간주하며 비판적 시선을 견지했던 지식인들이 간과했던 것은, 음악이 대중이 받아들이는 일방적인 수용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문화 콘텐츠의 공급 채널을 소수의 엘리트가 통제하고 있던 대중사회에서 콘텐츠가 기본적으로 하향식(top-down)으로 유통되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의도는 딱히 자본주의의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진정제를 공급하기 위한 것과 관련이 없었다. 음악 유통의 동기는 명성을 얻고 싶은 아티스트와 수익을 내고 싶은 음악 자본의 욕구에 있었다. 그리고 음악의 의미는 한 번 청중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공급자의 통제를 떠나게 된다. 청자, 소비자, 수용자는 음악뿐 아니라 모든 콘텐츠를 자신의 개인적, 사회적 맥락에 맞추어 재구성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대중가요는 전혀 의도치 않게 저항의 언어가 되기도 하고, 시스템을 뒤흔드는 북소리가 될 수도 있다. 경제난과 민족문제만큼이나 청년층의 마음 속을 뒤흔든 락과 디스코의 소리가 소련 붕괴에 역할을 했다. 데이빗 보위나 보니 엠, 블랙 사바스가 동구권 붕괴를 의도한 적은 없었다. 그 의미는 철의 장막 건너편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종합하였을 때, K-POP 회의론의 예측이 빗나갈 수밖에 없던 것은 기본적으로 회의론의 전제가 되는 음악에 관한 관념이 실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청각적 경험으로 한정시키고, 대중성을 음악의 척도로 삼고, 음악을 아티스트 개인의 예술성의 창구로서 이해하는 것은 20세기 중후반의 특정 시기에, 서구 대중사회를 바라보면서 형성한 음악 관념이다. 하지만 당시 음악이 ‘그런 모습’을 띠었던 것은 바람직한 문화를 추구하는 대단한 뜻과 의지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포디즘 시대 대중사회로서의 성격과 핵심적인 기술적 제약들, 혹은 그저 관념에 따른 편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시야를 조금만 더 넓히면, 그런 조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인류가 음악을 즐겨오던 양식은 몹시 달랐음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리고 대중사회 이전의 음악을 ‘가짜 음악’이라고 폄하할 것이 아니라면, K-POP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전통적 음악 관념에서 이상향으로 삼는 20세기 중후반에도 전통적 관념대로 음악이 생산, 유통, 소비되는 일은 없었다.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던 MTV는 1981년에 개국했고, 국민 문화와 대중문화 뒤에는 수많은 하위문화들이 활발히 상호작용하고 있었으며, 음악 자본은 소비자의 마음을 더욱 잘 홀리기 위한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음악 관념의 힘은 강력했고,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K-POP은 기존의 음악 관념을 ‘뚫고 들어온’ 전위(avant-garde)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한국이라는 주변적 국가에서 이런 선도적 혁신이 가능했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를 알 필요가 있다. 첫째, 모든 중심은 원래 주변에서 출발했다. 둘째, 전통적 음악 관념은 20세기 중후반에 완성된 근대 대중사회라는 시대적 조건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 말인즉슨 전통적인 음악 관념을 형성한 시대적 조건과 맥락이 달라진다면, 얼마든지 구도는 뒤집힐 수도 있었다.

그리고 K-POP이 걸어온 30년 간 세계는 공교롭게도 바로 그 시대적 조건과 맥락이 달라지는, 아니 총체적으로 뒤집히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K-POP은 인류 문명의 대전환과 함께 부상했으며, 이제는 그 대전환을 스스로 이끌고 있는 동력원이 되었다.

참고문헌

  1. 미국 대중음악: 민스트럴시부터 힙합까지, 200년의 연대기 - 래리 스타, 크리스토퍼 워터먼
  2. 팬덤 이해하기 - 마크 더핏
  3. 케이팝: 대한민국 대중음악과 문화 기억상실증과 경제 혁신 - 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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