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은 발전모델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알린 사건, 주변지대(rimland) 세력이 심장지대(heartland) 세력의 진출을 격퇴한 사건으로 흔히 이해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냉전에서 미국의 승리를 돌아볼 때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이야기가 바로 미국식 대중문화의 승리다. 이미 1985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세계적으로 냉전이 끝나간다는 인식, 사회주의가 적어도 자본주의에 대한 존재론적 도전을 중단할 것이라는 기대는 널리 퍼진 상태였다. 하지만 가장 급진적인 전망을 즐기는 사람들도 ‘1989년의 혁명’이라 불리는 동구권 공산주의 정권의 연쇄적 붕괴를 예측하는 데는 실패했다. 다수의 분석가는 공산당의 사회 통제력이 여전히 강력하고, 그렇기에 그들이 시장 원칙을 일정 부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점진적인 방식으로 이행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무엇보다, 강력한 소비에트 제국의 존재감이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는 서방과 동구권 지도자들에게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현실화가 되었다. 1989년 혁명은 여전히 역사적으로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사건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토록 급속한 체제 붕괴와 전환을 만들어낸 동력에 서구의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소련에서도 많은 사람이 단파 라디오를 통해서 미국과 영국의 방송을 청취할 수 있었고, 탈린과 레닌그라드처럼 ‘서방을 향한 창’인 발트해의 항구 도시들에서는 서독의 디스코와 미국의 헤비메탈 음반이 들어오고 있었다. 필자가 일전에 만났던 카자흐스탄 출신의 한 중년 남성은 1980년대를 ‘모던 토킹’과 ‘보니 엠’의 시대로 회고한다. 소련에서도 서방 세계와 가장 단절되어 있었다고 간주되던 중앙아시아 깊숙한 곳에서도 서구 대중문화는 거의 실시간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냉전의 후반부에 미국, 나아가 서방 대중문화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인구 구조의 변화에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인류 사회는 양차대전의 위기에서 살아남아 그럭저럭 안정적인 지구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제3세계의 많은 지역은 탈식민화와 냉전, 대대적인 사회 변혁을 위한 동원 체제를 겪었지만, 철의 장막 양편의 북미, 서유럽, 동유럽, 소련에서 그런 단어들은 점점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발전을 위한 대중 동원과 지정학적 투쟁과 생존을 위한 총력전 체제가 일단 걷히자, 경제는 일상적인 관리의 문제가 되었고, 발전된 소비재를 어떻게 공급할 수 있는지가 각국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우주 경쟁은 새로운 계몽주의의 비전을 상징했지만, 사실 그만큼이나 중요한 경쟁은 닉슨과 흐루시초프의 ‘부엌 논쟁’이기도 했다. 세탁기, TV, 청소기와 같이 가사 노동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도구는 물질적 풍요와 새로운 삶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닉슨과 흐루시초프의 '부엌 논쟁': 우주에서 벌어진 것만큼 격렬한 냉전이 부엌을 두고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