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하나의 주자학이다.
오구라 기조의 주자학론으로 생각해본 K-POP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흥분은 항상 여기에서 유래한다.”
- 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오구라 기조는 그의 저서 <새로 읽는 논어>에서 동아시아에는 세 가지 생명관이 있었다고 말한다. 첫째는 육체적 생명, 둘째는 범령론적인 우주적 질서, 셋째는 소규모 집단에서 맥락적으로 나타나는 조화의 순간이다. 오구라에 따르면 셋째는 애니미즘 관념, 둘째는 샤머니즘 관념과 깊이 연관을 맺고 있고, 원래 공자는 셋째 관념에 따른 가르침을 폈다. 여기서 말하는 애니미즘이 오구라 기조의 독자적 정의임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애니미즘은 만물이 신이다라는 신앙이 아니라, ‘공동체의 합의로 무언가를 신으로 여길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사고체계다. 자연스럽게 공동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구체적 맥락과 합의가 중요해지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귀납적 판단이 기초가 된다. 하지만 중국의 제국 체제는 우주적 질서를 요청했다. 제국을 운영하는 데 마을에서 어떤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정할지 판단하는 귀납적 사고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모든 신민을 규율하는 우주적 질서와 그 우주적 질서를 구체적 상황에 연역적으로 집행하는 황제와 조정의 권위가 더욱 중요했다. 전국시대를 거쳐 국가 체제가 정교해지고, 나아가 중국이 제국으로 나아가게 되며 맹자를 비롯한 후대의 유학자들은 범령론과 우주적 질서에 걸맞게 유학을 변용했다는 것이 그의 주된 주장이다.
그렇다면 현재 세계에서 가장 활발히 팽창하는 종교적 현상인 K-POP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K-POP 연구가 대중문화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연구와 문화 산업 연구를 중심으로 논해지기에 애초에 K-POP을 종교나 특정 사회의 심층 심리 차원에서 다루는 글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K-POP을 한국 샤머니즘 전통이 현대 영상 미디어와 함께 현대적으로 귀환한 것으로 해석하고는 한다. 확실히 K-POP 콘서트에 가거나 ‘생일카페’를 비롯한 각종 팬 활동에 참여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고도로 현대화된 샤머니즘 신앙 활동이라는 인상을 받지 않기란 어렵다. 재능과 자본을 동원해 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육체가 노래와 춤, 화려한 영상을 통해 재현될 때 아이돌과 관객들은 모두 몰아 상태가 되며, 신과 감응하는 샤머니즘적 순간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콘서트와 팬 활동은 K-POP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K-POP의 강력함이 오직 샤머니즘의 에너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마이클 잭슨과 같은 팝의 전설들만 하더라도 충분히 샤머니즘적 에너지를 끌어내는 존재들이다. 실제로 미국 대중음악 스타들은 흑인 노예들의 전통 신앙에서 비롯된 샤머니즘적 에너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기에 K-POP을 샤머니즘으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K-POP의 성공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국인 정신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 주자학을 들여다봐야 한다. K-POP은 고도로 주자학적인 한국 문화를 반영한 산업이 되었기에 지구적 현상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물론 주자학의 전통 윤리를 파괴하는 K-POP의 힘을 보자면 K-POP을 주자학과 연관시키는 시각은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오구라 기조의 주자학론에 입각해서 보자면, K-POP은 주자학적 세계관의 완벽한 구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구라에 따르면 주자학 세계관의 본질은 우주적 질서이자 윤리의 원천인 리(理)가 개별 존재의 기(氣)를 통해 드러나며, 리를 얼마나 체현했는지를 바탕으로 일원화된 사회적 서열을 부여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 리의 내용은 공동체의 합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절대화하는 보편 원리의 존재와 그 원리에 따른 서열화, 그리고 상승에 대한 열망과 하강에 대한 공포가 작동한다면 그 세계관은 충분히 ‘주자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상승과 하강으로 특징 지어지는 위계성은 구성원에게 전신전령으로 리를 더 잘 체현하라는 엄청난 집단 압박, 그리고 무의식적 압박으로 이어지고, 일종의 극단적인 심리 상태와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오구라가 한국을 사람의 영혼을 짓누르는 극단적 사회라고 보는 이유다.
K-POP 산업 논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왜 주자학(적어도 주자학에 대한 오구라식 이해)과 쉽사리 연결되는지 금세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K-POP 산업의 참여자들(그룹, 팬, 회사 등)은 산업 생태계 내에서 그룹이 얼마나 크게 성공했나를 리의 척도로 삼는다. K-POP을 광기로 밀어붙인 에너지는 산업 자체가 서열 비즈니스였다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멜론차트 순위, 앨범 초동 판매량 순위, 방송 3사 음악 방송 1위 획득 횟수에 이어 이제는 유튜브 조회수 순위와 스포티파이나 빌보드 같은 해외 차트 순위까지도 서열의 기준이 되며, 팬들은 이런 여러 순위 지표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그룹이 다른 그룹보다 높은 순위에 있음을, 즉 더 지고한 리를 체현한 존재임을 강변하며 논쟁에 나선다.
K-POP 그룹들의 생애주기도 마찬가지로 매우 주자학적이다. 오구라는 유학의 통치 제도로서 과거제가 어떻게 주자학적 세계관을 전 인민 차원으로 보편화시켰는지를 흥미롭게 주장한다. 정치 권력이 중앙으로 모이고, 정치 권력이 리와 직결되는 주자학 사회에서 과거 급제는 그가 높은 리를 체현한 존재라는 증표가 된다. 이 제도가 수 세기에 걸친 신분 상승의 통로이자 존재론적 우위의 증명 방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주자학적 세계관을 내면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빼놓으면 안 되는 존재가 바로 장원급제자이다. 장원급제자는 해당 시험에서 가장 높은 리를 체현한 존재인데, 다시 말해서 시대의 리를 상징하는 신성이다. 그러나 과거는 1회로 그치지 않는다. 오늘의 장원급제자는 권력 및 부와 결부되며 순결한 리를 잃게 된다. 그때 새로운 장원급제자가 나타나 지고한 리의 체현자가 새롭게 등장했음을 선포한다. 조선 역사는 이것의 반복이다.
K-POP 그룹들을 보면 우리는 과거제라는 틀이 대중음악을 보는 데도 놀랍도록 잘 맞아떨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대적 미(美)의 아이콘이 되는 멤버와 대중의 귀를 사로잡는 음악, 화려한 뮤직비디오가 결합하여 K-POP의 시대를 정의하는 그룹이 등장한다. 소녀시대, 트와이스, 블랙핑크, 아이즈원 등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이런 그룹들은 장원급제를 한 그룹이다(물론 장원을 결정하는 조정이 없기 때문에 팬들은 어떤 그룹이 진정한 ‘장원’ 그룹인지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언쟁을 한다). 하지만 모든 장원 그룹은 성공을 하면서 리를 드러내는 기가 탁해지고, 대중이 이에 지겨워할 즈음에 새로운 장원 그룹이 데뷔를 하여 다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간다. 이 주기는 정말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새로운 장원이 등장하자마자 옛 장원은 관심의 중심에서 급속도로 멀어진다. 이 역동성이야말로 K-POP의 고속 진화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는데, 그 근간이 이조 500년을 유지시켜준 과거제라는 ‘보수적’ 시스템에 있음은 무척이나 역설적이다.
리의 체현에 따른 서열 의식은 K-POP 산업의 참여자들에게 엄청난 수준의 압박을 준다. 아이돌과 팬덤은 다 같이 함께 서열을 드높이자는 공동 의식을 공유한다. 이 공동 의식은 아이돌과 팬덤 양자에게 내적 규율을 심어준다. 장원을 준비해야만 하는 데뷔 초에 아이돌들은 가장 아름다울 시기에 연애를 비롯한 사생활을 통제받고, 수도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리고 대중은 언제나 아이돌에게 ‘신’의 자리에 걸맞는 수준의 윤리 의식을 갖추라고 요구한다. 맹자가 리를 체현하지 못한 군주라면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고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신의 자리에 걸맞은 리를 보여주는 아이돌은 계속해서 숭배받지만, 한 번이라도 탁한 기를 통해 리를 어지럽히면 그 아이돌은 ‘그런 탁기를 갖고 있으면서 뻔뻔스럽게 신의 자리에 앉아 있느냐’며 무서운 수준의 비난을 듣는다. 그리고 여기서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윤리는 결코 서구 자유주의의 자유와 책임 윤리가 아니다. 그룹의 상승을 위해 복무하는 온갖 윤리가 있고, 이 윤리들은 한국인들의 주자학적 심성에서 도출된 것들이 다수다. 선배에게 깍듯해야 한다, 스태프에게 잘 해야한다, 팬에게 끔찍이 감사해야 한다, 멤버들 간에 가족적 유대를 가져야 한다, 언제나 가창과 안무를 최상의 실력으로 단련해야 한다, 신에 걸맞는 아름다운 외형을 가꾸어야 한다, 학교폭력을 비롯하여 불순한 과거가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여기에는 어느 것 하나 주자학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윤리의 요구는 윤리 자체에 대한 요구가 아니다. K-POP에서 윤리는 그룹 간 서열에서 상승과 하강을 결정짓는 문법이자 규칙이고, 윤리를 어겨서는 안 되는 이유는 윤리를 어겼을 때 가차없는 하강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룹의 리가 낮은 것으로 판명 나면 그 그룹을 지지하는 팬덤의 리도 같이 덩달아서 낮아진다. 오구라 기조가 말했듯이, 한국은 ‘도덕적 사회’가 아니라 도덕을 무기로 삼으며 지위를 위해 끝없이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도덕지향적 사회’인 것이다.
조금만 상상력을 확장시키면 우리는 조선 시대의 몇몇 풍경에서도 K-POP과 몹시 흡사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김지하는 남도의 판소리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관객 중에서 권위를 갖는 '귀명창'이라는 존재를 소개한다. 늙은 귀명창이 판소리를 듣다가 '저 소리는 틀려 먹었어'라고 하면 그 소리꾼은 남도에서 판소리로는 발을 못 붙인다는, 어느 정도는 과장된 이야기가 그것이다. 주자학에서 이러한 사(士)들의 평론 권력이란 목숨을 부여하고 빼앗을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주자학을 국가 이념으로 체화한 조선만 보아도 그러했다. 송시열은 17세기 주자학의 귀명창이었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교조적인 이념 체계를 끝까지 파고들어 사대부의 '덕'을 쌓고, 왕마저 비판할 수 있는 절대적 권위를 획득했다. 그래서 유튜브에 올라온 K-POP 퍼포먼스 영상의 댓글을 보면 마치 송시열의 노성(怒聲)이나 전라도 귀명창이 소리꾼을 못마땅해 하며 툭 던지는 말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K-POP 산업 생태계에서 팬들은 모두가 자신이 '귀명창'이자 '사대부'를 자임하며, 수 년에 걸친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친 아이돌의 퍼포먼스를 거침없이 평가한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일은 그들이 모두 주자학적인 인식론과 존재론을 무의식 수준에서 체화하고 있는, 진정한 조선의 후예들이기에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윤리적 압박을 받는 대상은 아이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팬덤도 압박을 받는다. 물론 아이돌 수준의 윤리적 압박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K-POP 팬덤 사이에서 공유되는 내적 규율은 분명히 강력하다. 첫째, 팬덤의 서열은 그 팬덤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얼마나 리를 잘 체현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규정된다. 주목하지 않던 시절부터 팬 활동을 하고 그 그룹이 장원급제를 이루어내는 데 일조한 팬덤은 지고의 리를 가진 팬덤이다. 장원에 올랐다가 각종 악재를 만들어내며 주자학적 윤리를 어긴 그룹의 팬은 그룹과 마찬가지로 비난받는다. 따라서 팬들은 아이돌과 리를 향한 거대한 상승 운동을 만들어내는 공동의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는 데 감정적으로 완벽히 동기화되어 있는 존재임을 요구받고, 또 대다수의 팬들이 진심으로 그러하기도 하다. 음원차트의 순위를 올리기 위해 하루종일 집단적으로 음악을 스트리밍하는 제의인 ‘스밍 총공’, 앨범 초동 판매 순위를 올리기 위해 듣지도 않을 CD를 수십장씩 사는 파괴적 행동이 바람직한 팬 활동으로 추켜세워지는 분위기, 그룹에 대한 중상모략이 들어왔을 때 적극적으로 이 그룹의 리는 굳건하고 순결함을 주장하는 끝없는 여론전, 음악 방송에 참여하여 우렁차게 외쳐야 하는 응원 함성, 번잡한 지하철역 곳곳을 수놓는 팬클럽의 아이돌 생일 축하 광고 모금까지. 이런 광적인 수준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는 주자학의 상승과 하강에 대한 집단 심리가 감각을 숭배하는 대중음악 산업과 화학적으로 결합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모든 심리 상태를 빨아들이는 K-POP 산업에는 샤머니즘과 그것의 문명적 발전 형태인 주자학이 아닌 다른 윤리도 나타난다. 바로 오구라 기조가 말한 공자의 본래 메시지인 애니미즘적 윤리다. 오구라는 공자의 논어는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아는 정적인 향촌 사회에서, 주체의 귀납적 탐구를 바탕으로 고맥락적 상황에서 조화롭게 대처하는 지혜를 담은 책이라고 주장했다. 우주적인 질서와 그를 드러내는 모든 언행이 완벽한 윤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일상의 순간 속에서의 사소한 배려가 인간과 사회를 지탱하는 진짜 인(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따뜻하고 세심한 윤리는 거창하지는 않을지라도 인간의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아마 한국인들의 심리 상태가 언제나 불안과 괴로움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도 샤머니즘/범령론/주자학의 폭주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특히나 도시화와 정보화로 인해서 모든 사회적 관계가 해체되어 가는 요새의 세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 K-POP의 숨 막힐 정도로 무거운 주자학의 윤리는 아이돌과 팬 모두에게 막대한 스트레스를 준다. 완벽히 조율된 무대를 담은 영상을 보면 그 초월성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K-POP에는 이런 숨 막히고 압도되는 순간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K-POP이 인간의 모든 심리 상태를 장악하는 거대한 종교 현상으로 발돋움하기에는 무언가 모자랐을 것이다. 실제 K-POP은 일상의 따뜻함도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판매하는 산업임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이는 K-POP이 보이그룹과 걸그룹이라는 ‘그룹’으로 조직되는 점에서 기인한다. 수 년 간 같이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고, 숙소까지 같이 공유하는 그룹 구성원 사이는 엄청나게 고맥락적이다. 숨기려고 해도 인정(人情)을 갈구하는 팬들은 아이돌들이 일상적으로 송출하는 영상들 속에서 멤버들의 관계를 집착적으로 파악하려 하기에 숨길 수가 없다. 그리고 팬들은 멤버들이 일상적인 모습으로 드러내는 배려의 모습과 친밀한 공동체의 관계를 보면서 자신들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혹은 잃어버린지 자각도 못하는 일상의 관계에서 오는 충만함을 대리만족한다. 수년에 가까운 그룹 활동을 모두 지켜보며 그 멤버들의 복잡한 관계망을 추적하고 머리 속으로 그려내는 것은 팬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미덕으로 평가받는다. 몹시 당연하게도, 이런 고맥락적인 친밀한 공동체의 귀납적 관계 윤리는 아이돌 멤버 사이뿐 아니라 아이돌과 팬 사이로도 확장된다.
그러나 K-POP의 주자학적 압박이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주자학적 압박을 풀어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애니미즘적 윤리 또한 주자학적 리의 구성 요소로 흡수한다는 데 있다. 멤버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 아이돌과 팬의 유사 가족적 윤리는 그 자체로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고 소비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K-POP 아이돌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하는 윤리”로서, 서열 평가의 기준으로서도 인식된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순간 동안 아이돌들은 다른 멤버와 어떤 관계가 있던 간에 가족애를 방불케 하는 친밀함과 따스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요구가 엄청난 수준의 정서적 중압감을 줄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만약 애니미즘 윤리도 체현하라는 주자학적인 내적 규율을 충분히 지키지 못해서, 자신의 사적 감정을 멤버에게 순간이라도 여과 없이 표출하는 순간, 그 그룹은 ‘K-POP의 가족애’라는 리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끔찍한 하강 압력, 즉 공격을 곳곳에서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K-POP 그룹 멤버들이 보여주는 관계의 윤리와 따스함, 가족애적 모습들은 고도로 의식적인 수행의 결과물이며, 그런 점에서 몹시 주자학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드러내는 모습에 어느 정도의 진실과 거짓이 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룹 활동이 끝나고, 멤버들이 각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할 때쯤에야 우리는 진실에 제한적이나마 접근할 수 있다. 그 순간 전까지 팬들은 ‘사라지기 전까지는 영원하다고 느끼는’ 환상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그런 관계를 연출하는 멤버들 또한 애니미즘적 윤리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현실’의 관계와 감정, ‘실제’ 자신의 정서를 내려놓고 ‘진실된 수행’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K-POP의 애니미즘 윤리, 정확히는 주자학적 평가 대상이 된 애니미즘 윤리는 진실되면서도 유사품이고, 연출되었지만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K-POP이 잔인하면서도 아름답고, 매혹적이면서도 비정한 이유다. 상승과 하강의 무서운 에너지는 아이돌들을 젊음을 불태우면서 신의 존재, 매력과 기량, 심지어 윤리마저도 최고의 존재로 거듭나라고 부추기며, 팬들을 일상을 파괴하면서까지 신앙 활동에 매진하라고 내몬다. 사람을 몰아붙이는 이 중압감은 K-POP을 가장 단기간에 지구적 문화의 자리를 획득한 신앙 현상으로 만들었으며, 그 미학적 수준을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더해서, K-POP은 사람들이 상실했기에 갈망하는 친밀한 공동체의 미덕마저도 윤리적 서열화의 대상으로 흡수하고, 그룹의 성공을 위한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으며 연출과 진심의 경계를 흐려놓기까지 했다. 오구라 기조는 공자 이후의 동아시아 사상사는 맹자와 주자라는 샤머니즘과 범령론이 공자의 애니미즘을 밀어내고 대체해온 역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애니미즘의 윤리는 제국과 시장이 침투하지 못한 지역의 여러 공동체 차원에서는 유지되어 생명력을 발하고 있었다. 일본은 주자학(범령론)이 가장 늦게 침투했고, 또 가장 얕은 수준에서만 뿌리내린 사회라는 데 그 특수성이 있었다.
사람들이 의지하는 일상의 공동체가 정보의 흐름 속으로 해체되고, 자신의 주변이 망각되고 고독이 사회의 공기에 깔린 지금이 어쩌면 애니미즘적 세계관과 윤리의 회복을 외치기 가장 좋은 시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자학은 자신이 경멸했던 감각의 문화, 대중음악을 통해서 다시 만개하여 그 애니미즘마저도 자신의 서열 체계에 흡수하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었다. 전 인민이 총력으로 주자학을 내면화한 조선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애니미즘의 윤리마저 흡수한 주자학은, 주변의 공동체를 상실한 사람들의 애니미즘 윤리에 대한 갈망을 자양분 삼아 전지구적인 주자학화를 이끌고 있다. 그런 면에서 K-POP은 진정한 예악(禮樂)이다. 하지만 이는 공동체의 조화를 위해 예악을 설파했던 공자의 예악이 아니다. K-POP에서 樂은 禮를 드러내는 도구이며, 禮는 樂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다. 합일한 예악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미(美)를 만들라고 모든 구성원을 숨 쉴 틈 없이 몰아치고 있다. 그 아름다움은 감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정신적 아름다움까지 요구한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무거운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우리를 짓누르는 이 신예악(新禮樂)은 우리의 호흡을 버겁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를 지고의 환희로 데려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자학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