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모스크바 - (2)

8월의 모스크바 - (2)

스탈린과 고르바초프의 묘 영접. 냉전과 탈식민의 상징 루뭄바 민족우호대학교 방문.

임명묵

일이 없는 날이 하루 생겨서 중간에 모스크바에서 몇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국보다는 시원하지만, 에어컨을 그리 쉽게 틀어주는 나라가 아니고, 여름 햇살이 따갑기도 해서 오래 돌아다니니 좀 지치긴 했다..

일단 일이 있던 날에 찍었던 사진부터 소개를 해보겠다. 그래도 러시아에 왔으니 무려 이름도 찬란한 라멘스코예에서 생산되는 도시락은 몇 개 먹어줘야지 싶어서 한 끼는 도시락 라면으로 떼웠다. 꼴바사나 소시지 같은 거 사서 라면이랑 같이 먹으면 든든하다. 러시아에는 소고기맛, 돼지고기맛, 닭고기맛, 해물맛 도시락이 있는데 이중에서 해물맛이 그나마 좀 한국 라면 먹는 느낌이 나는 편이다.

모스크바 지하철 프룬젠스카야 역 옆에 있는 MDM.. 모스크바 청년 궁전(Moskovskii Dvorets Molodyozhi)이다. 1980년대에 청년 문화 진흥을 위해서 건축되었는데, 세종문화회관을 떠올리게 하는 웅장한 건축이 인상적이다. 여기에는 스타벅스가 철수하고 러시아에서 인수한 대체 브랜드인 스타스 커피가 입점해있다.

러시아에서 식당은 일반적으로 레스토란(리스따란, Restoran)이라고 한다. 한편 스톨로바야(스딸로바야, Stolovaya)라는 것도 있는데, 이건 말 그대로 매대에서 원하는 음식을 가져다 먹는 카페테리아를 뜻한다. 아무래도 자영업이 불가능했던 소비에트 시기에는 리스따란보다는 스딸로바야가 더 일반적인 식당이었던 것 같다. 이 식당은 프룬젠스카야 역 맞은 편에 있는 무무(Mu-Mu)라는 스딸로바야 체인점인데... 러시아에 올 때마다, 러시아에 왔으니 무무는 한 번 가줘야지 하면서 들렸다가 또 늘 후회하는 그런 식당이다. 뭐 맛은 있는데, 가성비가 진짜 심각하게 문제가 있어서  도저히 정이 안 간다.. 음식들 골라서 계산대로 가니 엄청난 가격에 먼저 깜짝 놀라고, 전국이 다 카드 받아주는 러시아에서 카드도 안 받고 현금 밖에 안 된다는 데서 2차로 짜증났다. 진짜 다음에 여기 오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이거랑 맞은 편 일행이 시킨 거랑 합쳐서 1600 루블 나왔는데 한국 돈으로 2만 4천원이다. 작년 환율이었으면 4만원... 대체 이걸 왜 먹는 걸까? 손님들이 있고 장사가 잘 되다는 게 더 이해가 안 된다...

일을 처리하고 나온 스타스 커피. 러시아에서 맛보기 힘든 정통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셔줬다.

러시아의 지명이 으레 그렇듯이 프룬젠스카야 역은 소련군 원수 미하일 프룬제의 이름을 기리는 곳이다. 그래서 프룬제의 흉상도 놓여있다.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도 소련 시절에 이름이 프룬제였는데.. 중앙아시아로 진격하여 바스마치 반란군을 진압한 공으로 그렇게 이름을 바꿨던 것 같다.

프룬제는 전문화된 직업 군인 대신 전인민의 무장을 통한 게릴라전을 선호한 트로츠키와 장차 소련군의 군사 교리를 둘러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후방의 군수 산업과 전방의 전문화, 기계화된 군대가 긴밀히 연계된 총력전 군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스탈린은 프룬제의 편이었다. 프룬제는 일찍 죽었지만 그의 군사상은 마침내 나치를 물리쳤다.

오호트니 랴트 역에서 트베르스카야 역으로 걸어가다 찍은 것 같다.

트베르스카야 역 앞의 버거킹에서 요기를 하고자 시킨 양파링과 새우튀김. 매운맛 옵션이 있길래, 뭐 매운 소스라도 발라주나 했는데 가루랑 종이 봉지를 하나 주더라... 딱 롯데리아 양념감자 스타일이었다. 러시아에서 으레 그렇듯, 매운 맛이 나는 것은 단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고, 나의 역기대에 딱 부응하는 심심한 맛이었다. 도시락 라면 스프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 그런 맛...

이 날은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차이하나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차이하나에서 차이(chay)는 차(tea), 하나(khona)는 페르시아어로 집을 뜻한다. 말 그대로 찻집이란 뜻인데 사실상 중앙아시아인들이 운영하는 중앙아시아 밥집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식문화랄 것이 별 볼일 없는 러시아와 달리 캅카스나 중앙아시아는 문명의 교차로답게 풍부한 물산으로 다양한 요리가 발전하여서 사실 일반적으로 이 동네 음식들을 먹으면 실패할 일이 거의 없다. 캅카스 음식 중에서 그루지야 음식은 러시아에서 기분 낼 때 먹는 고급 음식 느낌이 강하다면, 우즈베키스탄 및 중앙아시아 음식은 무슬림 지역의 이민자들이 주로 먹는 일상적인 싼 밥집인 경향이 많다. 볶음밥인 쁠롭이 250 루블인가 했을텐데 지금 환율로 대충 4천원이 안 되는 돈이다.

자바리(dzhavari)라고 하는 타지키스탄의 고기 국밥, 볶음 라그만(중앙아시아 국수), 쁠롭(볶음밥), 카잔 케밥... 이거 다 시켜서 1200 루블이 안 나왔던 것 같은데 무무의 가성비가 얼마나 나쁜지를 제대로 실감했다..

하여튼 이제 모스크바 탐방의 날. 이번 네 번째 모스크바 방문에서는 앞에 세 번 방문할 동안 한 번도 들리지 못했던 레닌 묘를 들려보기로 했다. 사실 레닌 묘에는 큰 관심이 없고, 진짜 관심은 크렘린 벽묘지다. 소련 정권이 인정하는 특별한 지도자들과 영웅들이 주로 묻혀 있고, 현대 러시아에서도 가장 권위가 높은 특별 묘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묘지를 둘러보려면 반드시 레닌 묘를 한 번 통과해야만 한다.

레닌 묘는 화, 수, 목, 토에 오전 10시부터 1시까지만 방문할 수 있는데, 워낙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보니 줄을 엄청나게 길게 서야만 한다. 물론 소련 시절에 찍힌 줄 서는 사진 보면 붉은 광장 전체를 한 바퀴 돌 정도로 엄청난 행렬이 있었으니 지금은 양반이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중국인과 베트남인으로 추정되는 관광객들도 종종 보였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지품 검사도 한 번 받는데, 이것 때문에 입장 시간이 아무래도 좀 더 길어지는 감이 있다. 안 그래도 러시아 경찰, 군인들 표정이 무서운데, 여기서는 그 무게감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줄이 워낙 길고 경비원들이 삼엄하게 쳐다보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면 오래 지켜볼 수는 없고 무조건 발걸음을 앞으로 옮겨야만 한다. 일행과 영묘 나오기 직전에 이야 드디어 레닌을 보네요 하고 실수로 떠들었다가 경비원이 "조용히 하시오!"라고 호통쳤는데 엄청 무서웠다..

사실 레닌은 그냥 어 유명한 거 봤네 이 정도 감상이고, 이 곳에 온 진짜 목적은 이 분. Нариманов(나리마노프)의 묘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제르바이잔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였던 나리마노프는 내가 석사 논문 주제로 일단은 잡은 사람인데.....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 언젠가 따로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

나리마노프는 1925년에 50대 중반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죽었는데, 이 때 이미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서 정치적으로 엄청난 공격을 받아 실질적 숙청 상태여서 암살 의혹이 계속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진짜 숙청으로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고, '동방 인민의 해방을 위한 위대한 혁명가'라는 칭송을 받으며 장례가 치러졌고 크렘린 벽 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당에서 그가 생전에 바쿠로 가겠다는 것을 묵살하고 모스크바에 남으라고 종용한 것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일부러 크렘린에 묻은 거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었다. 스탈린 시대에는 언급이 금기시된 인물이 되었다가 훗날 복권된다.

가운데 있는 사람이 그 소련군 최고의 명장이라는 게오르기 주코프. 그 옆이 그에 맞먹는 명장인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아까 언급했던 미하일 프룬제 원수의 묘. 이렇게 흉상까지 세워진 사람들은 거의 국가 최고지도자급이다.

1964년부터 1982년까지 소련을 통치한 우크라이나 출신 서기장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악명높은 소련 비밀경찰의 창시자 폴란드인 펠릭스 제르진스키. 그가 창설한 체카는 내무인민위원회(NKVD)를 거쳐 KGB로 이어지고 오늘날의 FSB까지 계승된다. 푸틴의 최고참 선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KGB 국장으로서 소련 내부를 억압하고, 해외 혁명 공작을 선동했으며, 동시에 소련을 개혁하고자 했던 카리스마적 지도자 유리 안드로포프.

아아.. 더는 말이 필요없다. 전세계 노동계급의 영원한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 동지....

고리의 스탈린 생가와 크렘린 벽묘지의 스탈린 묘를 보았으니 중요한 성지 순례는 해치운 셈이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묘.

맨 위에 Artyom Sergeev F. A. 1883-1921이라고 써있는 사람이 또 중요한데..

표도르 세르게예프라고, 러시아 혁명기 주로 돈바스에서 활동한 혁명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이름인 아르춈으로 더 자주 불리웠다. 중요한 혁명가였기 때문에 크렘린 벽묘지에 이렇게 안장되었고, 그의 이름을 딴 도시들도 여럿 생겼다. 블라디보스토크 주변의 아르춈이 대표적인 도시. 그리고 갑작스럽게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도시도 있으니...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바흐무트'다. 바흐무트를 소련이 아르쵸모프스크로 바꿨다가,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아르쵸모프스크를 다시 바흐무트로 돌렸다. 그리고 이 도시는 현재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최악의 격전지가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과연 러시아가 이 지역의 점령을 공고히하면 아르쵸모프스크라는 이름이 다시 돌아오게 될까. 이름의 주인공 아르춈은 자신이 헌신한 소련과 그 후신 국가들이 겪게 될 파란만장한 역사는 상상하지 못했겠지.... 등의 생각을 잠시 하며 벽묘지를 떠났다.

모스크바의 상징.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성당. 붉은 광장은 붉지 않은데 왜 붉은 광장인가? 라는 것은 러시아를 관심 갖고 공부하면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질문인데, 옛 러시아 말에는 붉다(크라스나야)에 아름답다라는 의미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프리크라스나야라는 단어는 실제로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광장이 원래 의미.

약 500년 전 모스크바 공국의 무시무시한 차르 이반 뇌제가 지은 것으로 유명한, 그야말로 러시아의 상징이다.

소비에트와 러시아 권력의 심장부인 크렘린. 옆의 붉은 색 건물은 국립역사박물관이다. 단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다... 사실 모스크바 자주 오면 붉은 광장은 굳이 와야되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또 한 번쯤은 어찌저찌 들리게 되는 공간인 것 같다.

붉은 광장에서 나와서 좀 걸으면 6호선 키타이 고로드 역이 나오는데 거기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카데미체스카야 역이 나온다. 아카데미체스카야 역 바로 맞은 편에는 호치민 광장(ho chi minh ploshchad')이 있다. 냉전 시대 베트남 전쟁에 관여하고 베트남의 우방국이었기에 광장 이름을 호치민 광장이라 명명했다. 이 둥근 원반의 조형물은 소련과 베트남의 우호를 위하여... 1985년에 결정되어 무려 소련이 망하기 1년 전인 1990년에 완성되어 설치되었다. 밑에는 "독립과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라는 호치민의 어록이 써 있고, 피식민 상태에서 떨쳐 일어나는 베트남인의 동상도 있다.

과거 미소 냉전의 가장 격렬한 경쟁 공간이었던 베트남 전쟁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인데, 미소 냉전이 끝난 오늘날에는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이 경축할 일이 있을 때 모이는 곳이 되었다. 러시아-베트남 우호 관계의 상징적인 장소가 된 셈이다.

더 남쪽으로 가면 또 다른 냉전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RUDN이 있다. Rossiskyi Universitet Druzhby Narodov. 러시아 제민족 우애 대학교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1950년대, 탈식민화의 진전으로 냉전의 무대가 제3세계로 이동하면서 소련은 신생 독립국의 인재를 소련에서 교육시켜 육성하는 우호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1920-30년대까지 운영되었던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이 냉전과 탈식민이라는 새로운 국제적 환경을 맞이하여 재탄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61년에는 콩고(자이르)의 민족주의 지도자 파트리스 루뭄바가 CIA와 벨기에에 의하여 살해당한 것을 비난하며, 이름을 '파트리스 루뭄바 제민족 우애 대학교'로 바꾸었다. 소련의 많은 학생들과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제3세계의 촉망 받는 엘리트들이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파트리스 루뭄바의 이름은 소련이 사라지고 냉전이 끝나면서 대학교의 이름에서도 빠지게 되었으나.....

위키백과에 따르면 2022년 루데엔이 유럽대학협회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퇴출당했고, 2023년에는 파트리스 루뭄바의 이름을 회복했다고 써 있다.

오대륙을 상징하는 다섯 명의 사람이 지구를 들고 있는 이 조형물이 루데엔의 유명한 상징이다.

세계 여러 민족의 우애를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캠퍼스 바깥에 있다.

아프리카 남성과 중동 무슬림 여성으로 추정되는, 제3세계 느낌이 진한 조형물.

이 날의 마지막 행선지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이다.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이지만, 지금은 수도원 자체보다도 수도원의 묘지로서 훨씬 더 유명한 곳이다. 소련 정부는 이곳을 소련의 유명한 사회적 인사들을 안장하는 곳으로 지정했다. 노보데비치는 소련 내에서, 또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인물들의 묘를 정말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러시아에 처음 왔을 때 방문했던 곳이지만 이번에 굳이 다시 온 이유는 고르바초프의 묘를 보기 위해서. 소련의 해체로 시작된 하나의 시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개전으로 끝났다고 보아야 할텐데, 바로 그 시작과 끝을 장식한 사람..

2019년에 방문했을 때는 원래 없었던 500루블의 입장료가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가니 입장료를 받지 않아서 기분 좋게 입성했다.

원래 고르바초프의 유명한 영부인 라이사 고르바초바의 묘가 있었고, 그 옆에 고르바초프가 죽으면 묻힐 묫자리도 놓여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삼색 국기로 묘를 장식한 이곳은 고르바초프 다음의 지도자 보리스 옐친의 묘.

스탈린의 뒤를 이은 서기자 니키타 흐루쇼프의 묘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묻힌 최고지도자들을 생각하면 아까 크렘린 벽묘지랑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크렘린에는 레닌 영묘, 스탈린 묘, 브레즈네프 묘, 안드로포프 묘, 체르넨코 묘가 있다. 소련 체제의 부인할 수 없는 '정통파들'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흐루쇼프는 1971년 사망했을 때 정적인 브레즈네프에 의해서 축출된 지 오래였고, 그는 크렘린 벽묘지가 아니라 노보데비치에 묻혔다. 러시아인들이 싫어하는 고르바초프와 옐친도 크렘린 벽묘지 대신에 노보데비치에. 그렇다면 푸틴은 어디에 묻히게 될까?

이 사람은 러시아의 대표적 야당 지도자였던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다. 소련 해체 후 여러 정당이 난립하는 가운데, 가장 강력한 야당으로 부상한 정당은 겐나디 쥬가노프가 주도하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과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가 주도하는 러시아 자유민주당이었다. 이름은 자유민주당이지만, 푸틴 저리가라 할 정도의 국수주의와 러시아 민족주의, 반이민주의를 주창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공산당과 자유민주당은 모두 푸틴의 국가주의 노선 자체에는 협조하는 우당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1990년대부터 활동하던 정당들인데, 쥬가노프와 지리놉스키의 모습은 전혀 변함이 없어서 30년 간 바뀜이 없는 러시아 야당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2022년에 코로나로 사망하고 노보데비치에 묻혔다.

"쬐깐한 체코 새끼들아, 1968년만 기억하고 1945년은 잊었냐?"

브레즈네프 시기 소련 해군을 지구적으로 활약하는 원양 해군으로 확장시킨 고르시코프 제독. 그 밑에 파도가 표현되어 있다. 노보데비치의 묘비에는 이런 미학적 표현이 잘 나타나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2019년에도 방문했었던 러시아의 유명 성악가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의 묘. 노보데비치의 모든 묘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놓여 있던 꽃이 많았다. 그만큼 러시아인들의 사랑을 받던 이였다. 2019년 겨울에 갔을 때도 하얀 눈과 조화가 어우러져 있었는데, 그때는 저 동상은 없었다.

백발의 머리야말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전에 편에서 설명했던, 소련의 목소리이자 승리의 목소리인 유리 레비탄.

소련군 총참모장으로, 현대 미군과 러시아군을 막론하고 현대전 개념의 진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원수.

브레즈네프 시대 '트로이카'를 형성했던, 외무상 안드레이 그로미코. 1957년부터 1985년까지 외무 장관을 역임하여 수없이 많은 미국 대통령과 국무부 당국자를 상대했다. 스탈린 시대에는 주미 대사를 지냈고 얄타 회담과 같은 제2차세계대전의 결정적인 외교적 현장에 있었던 역사의 인물이다.

바쿠에서 태어난 유대계 물리학자로, 노벨상을 받은 레프 란다우도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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