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탐방 - 발리 (1)
인도네시아 발리를 둘러보는 여행 1일차.
일본 동경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지인들을 만날 일이 있어 발리를 가게 되었다. 다녀오는 김에 겸사겸사 신혼여행의 성지인 이곳을 조금이나마 탐방하고자 했는데, 이곳도 역시 알면 알수록 수많은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었다.
인도네시아는 2억 7천만 명의 인구를 자랑하고, 전체 인구의 대다수인 2억 3천만 명이 무슬림인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이다. 비록 이슬람 문명의 발상지이자 중심은 터키, 아랍,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이지만, 이슬람은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로도 퍼져나가 인구 대국은 대부분 이들 주변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및 인접한 말레이시아에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인도양 무역이 활성화되면서였다. 특히 몽골제국의 정복은 초기에는 몽골의 파괴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피난민들의 이주 흐름을, 이후에는 팍스 몽골리카 하에서 번성하는 인도양 무역을 만들면서 동남아시아의 이슬람화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현지 유력자들은 무슬림이 주도하는 무역 네트워크에 접속하고자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였고, 현지 전통과 신앙에 상대적으로 유화적이었던 수피 종단을 받아들이면서 독특한 동남아시아 이슬람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그들은 점차 힘을 키우며 인근의 힌두교, 불교 공동체를 압도해가고 인도네시아 전역을 이슬람화했다.
하지만 발리 섬은 이슬람이 전파되기 이전의 힌두 문화를 오랜 기간 보전할 수 있었다. 아마 네덜란드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로 섬이 물자가 풍부하지 않았던 게 생존의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이슬람의 확장을 피해 들어온 힌두 엘리트들은 발리에 고도로 의례화된 독특한 정치 문화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가 이를 바탕으로 '극장국가 느가라'라는 연구서를 남겼다(발리 가기 전에 읽고 가겠다 하고 펴보지도 못했다..).
해당 조형물은 무엇을 나타내는지는 모르겠으나 공항에서부터 이곳이 이슬람 세계가 아니라 힌두 세계에 속해 있음을 강하게 표출하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공항에서 나오면서 마주한 조코 위도도 총리는 이곳이 어쨌든 인도네시아에 속해 있음도 보여준다.
숙소는 덴파사르 시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꾸따로 잡았는데, 해안이 서핑하기에 좋아서 서양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장소라고 한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절망적인 교통 체증으로 빠른 시간 만에 도착할 수는 없었다. 확실히 호주를 비롯한 서양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택시 기사가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길래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질문은 주로 힌두교에 집중되었는데, 바르나와 카르마의 개념,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 같은 힌두 서사시들에 관한 아주 짧고 단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숙소 근처에는 2002년 발리 폭탄 테러를 추모하는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2002년이면 9.11 테러 직후로 여전히 알카에다가 제기하는 테러의 공포가 생생했던 때의 일이다. 당시 동남아시아 무슬림들의 극단주의 단체인 제마아 이슬라미야(Jemaah Islamiyah)는 미국을 규탄하며 폭탄 테러를 자행했고 펍과 클럽에서 200여 명의 사망자와 2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거의 절반에 달하는 88명의 사망자는 호주인이었는데 이 비극적 숫자에서 호주와 발리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오전에 나오니 발리는 무척이나 더웠다. "아니 아무리 동남아시아더라도 겨울에는 좀 선선하지 않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이곳은 남반구였다. 게다가 이곳은 몬순 영향권이라 딱히 여름이나 겨울로 계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건기와 우기로 계절을 얘기하는데, 마침 우기라서 비도 줄곧 내렸다. 한국의 추위가 갑작스럽게 덥고 습한 무더위로 대체되니 몸이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이곳도 태국처럼 이곳저곳 신을 모시는 신상이 곳곳에 있었는데, 태국보다는 돌로 된 특유의 양식이 꽤 운치가 있었다.
무서운 파도가 치는 꾸따 해변인데 이걸 같이 본 지인은 파도가 그다지 좋지 못하고, 진짜 서핑하기 좋은 파도는 훨씬 대단하다고 그랬다.
작업할 것이 있어서 인근의 스타벅스를 찾으러 떠났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타벅스를 좋아하지 않지만 결국 해외에 나오면 안정적으로 충전하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기에는 스타벅스만큼 믿을만한 곳이 없었다.. 스타벅스가 자리한 쇼핑몰에는 든든한 뚜레주르가 있었다. 빛나는 CJ의 로고.
그 옆에는 KOREA가 써 있길래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하고 보니 넘버 1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인 Goobne...가 버티고 있었다.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은 없었다. 장사가 어느 정도 되고 어떤 고객들이 오는지 궁금해졌다.
다음 본진인 짱구(Canggu)로 이동. 그러나 첫날에는 작업만 하느라 딱히 무엇을 보러 나갈 일이 없었다. 지인과 함께 다시금 밤 산책에 나섰다. 중간 중간에 공물과 향을 피우는 이런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정말 곳곳에 힌두교 사원이 있는 게 신기했다. 한국도 곳곳에 교회가 있으니 비슷하려나?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발리 힌두교의 상당수는 네덜란드 식민화와 독립 이후에 그 꼴을 갖춘 '만들어진 전통'인 면이 크다고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전통의 진위 여부에 그렇게 집착하는 편은 아니긴 하다.
밤 파도는 낮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썰물 때라서 물이 빠진 쪽을 걷는데 파도가 한 번 칠 때마다 발목까지 물에 잠겼다. 그러다가 큰 파도가 왔는데 갑자기 허벅지까지 물이 차오르고 슬리퍼도 잃어버릴 뻔해서 꽤 무서웠다. 화급히 물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올라와서 파도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서양과 동북아 관광객들을 위해 저렇게 화려한 클럽이 세워졌지만, 이곳도 예전에는 역사의 파랑을 맞이했던 격동의 공간이었으리라. 인도네시아의 독립과 수카르노 정권의 붕괴, 네덜란드와의 독립 전쟁, 일본 제국의 침략과 점령, 네덜란드의 식민화, 갈수록 세력을 확대하는 무슬림 세력을 마주하며 느끼는 불안...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내가 알고 있는 발리와 인도네시아의 과거를 더듬어 보았다. 알고 있는 게 많지는 않구나.
이번 기회를 계기로 남양(南洋)을 더 알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