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탐방 - 발리 (3)
가루다 비슈누 켄차나 문화 공원을 가다.
바즈라 산디 기념관을 나와서 편의점에서 마실 걸 사면서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대박 스파크'.. 그런데 (주) 인사동 대박 소주라는 상호는 찾아보니 없었다.. 대체 어디의 누가 만든 것인가..
다음 행선지는 '가루다 위시누 켄차나' 문화 공원이다. 1989년에 개관하여 발리 문화를 관광객들에게 알리는 대표적인 문화 단지로 조성되어 있다고 했다. 공원은 덴파사르 공항에서도 더 내려가서, 발리의 맨 남쪽에 위치해 있다. 사실 거리 상으로는 대략 25km인데, 도로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항상 이동에 1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래도 해상에 건설한 만다라 도로는 아주 빠르게 지나갈 수 있었다. 발리 APEC 정상회담을 준비하며 완공한 이 도로는 응우라 라이 공항에서 덴파사르 시내를 연결하는 도로가 너무 협소하여 새로 건설한 것이라고 했다.
입구를 맞아주는 태극기에 역시 한 번 놀라주고...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 선명한 '안녕하세요'라니... 회오리감자와 포장마차 핫도그는 여러 의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이 되었구나 싶었다.
2022년에 발리는 G20 회의 개최지가 되면서 분주해졌다.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관광업 의존이 특히 컸던 발리는 코로나로 인해서 경제적 대재난을 맞이했는데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국가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면서 부흥을 꾀했다고 했다. G20 정상들도 이 공원을 무조건 방문했을 것 같다.
발리 G20 회의는 한편으로 변화한 국제 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회의이기도 했다. 조코 위도도 총리는 자신이 서방 진영과 중국, 러시아 사이를 중재하는, 냉전 시대 비동맹 강대국들의 위상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이 G20에서 러시아를 방출하자고까지 이야기했음에도 조코 위도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푸틴을 초청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만을 보냈다. 더불어 바이든과 시진핑의 정상 회담이 성사되면서,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에 따라 고조된 미중관계가 상대적으로 누그러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들이 옛 제3세계의 위상을 계승하여 만들고자 하는 국제질서는 어떤 종류의 것일까 잠시 생각하면서 공원을 걸었다.
사실 이 공원에 온 이유는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가루다 기념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작년 러시아 스탈린그라드에서 어머니 조국상을 보았을 때처럼, 거대한 석상이 주는 위압감은 정말 멀리서부터 압도적이었다.
힌두교의 신조(神鳥)이자 한자 문화권에서는 금시조라고 알려진 가루다를 표현한 이 기념상의 건설은 1993년에 짓기 시작하여 무려 25년의 시간이 지난 2018년에 끝난 대역사였다. 높이는 75m에 너비도 66m에 달한다. 내가 머물고 있던 짱구 해변에서도 저 멀리 보일 정도니 그 크기는 실로 대단했는데, 실제로 짱구 해변에서 볼 때도 "저게 그게 맞나"라고 의심부터 할 정도였다.
가루다를 보러 가는 길은 사실 쉽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무슨 버스를 타고 입구까지 가야했고 입구에서 표도 하나 사야했다. 표를 사면 그거로 이런 전통 공연도 볼 수 있게끔 되어 있는데 우리가 갈 때 그 날의 마지막 공연이 딱 끝났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잠깐이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역시 덩치가 상당한 비슈누 신상이 있다. 힌두교의 3대 신은 창조의 브라흐마, 파괴의 시바, 유지의 비슈누가 있다. 비슈누가 타고 다니는 새가 바로 가루다다.
비슈누 옆에는 가루다도 한 마리 더 놓여 있다.
공원으로 조성된 건데, 나름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원시 우림의 느낌으로 잘 조성해 놓은 것 같았다.
물론 밖에서 얼핏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고, 안을 들어가면 매우 깔끔하고 인공미가 느껴지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도 가루다를 볼 수 있게끔 해놓았는데,
이렇게 보인다. 밑에 기단부는 기념관이 놓여 있고 기념관까지 합치면 100m가 넘는다고 했다.
드디어 도착한 가루다. 사실 조금 걸어야 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시원하게 산책하기 좋았다. 돈을 조금 더 내면 미니카 같은 것을 타고 금세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걷는 게 운치가 꽤 좋아서 날씨만 괜찮으면 걷는 것을 추천드린다.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아이콘'. 사실 인도네시아 대표 항공사 이름도 가루다 항공이니 이 신조가 국가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새삼 느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인도네시아가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라는 사실인데, 이슬람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우상을 세우는 것을 1억 달러의 돈을 들여서 정부 주도로 했다는 게 재밌었다. 중동과는 다른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특징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를 과장하여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과 타종교를 둘러싼 종교 간의 긴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즈라 산디 기념관을 갈 때 택시기사와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는데, 조심스럽게 무슬림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었다.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물론 인도네시아 이슬람이 다른 이슬람보다 더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것은 맞다. 그러나 자바의 다소 편협한 무슬림들의 존재는 때로 우려스럽기도 하다." 정도로만 답을 들었다.
조코 위도도가 참석한 개관식.
내부에는 이런 힌두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재미난 조형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가루다를 타고 악한 무리를 무찌르는 비슈누의 모습이다.
인도 신화나 힌두 상징을 더 잘 알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었는데 몰라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지나가게 되어서 아쉬웠다.
가루다를 나와서 다시 문화 공원 정문으로 돌아왔다. 정문에는 카페가 있는데 표값에는 카페에서 음료수 한 잔 공짜 서비스도 들어 있어서 잠시 들려서 마셨다. 저 북쪽으로 숙소가 자리하고 있는 덴파사르 시내가 펼쳐져 있다. 남양의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발리에서의 또 다른 하루도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