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파병을 통해 추측한 러시아 상황
러시아는 왜 북한군 병력을 필요로 할까?
현재 일정 규모로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되었다는 뉴스만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어느 규모로, 어떤 형태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온갖 정보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 정부의 대응도 신뢰성 있는 정보가 어느 정도 취합된 상태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의도를 가늠하여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상황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추측해볼 수 있는 사안들은 있다.
1. 북한군이 대규모 전투병력으로 전장에 투입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된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기인한다.
첫째, 북한군이 현재 돈바스의 격전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상대방 모두 고도화된 정찰-타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병력이 숫자와 화력으로 압도하는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우크라이나 대반격의 처참한 실패를 생각해보라). 대신에 긴밀히 조율된 소규모 제대가 기갑, 드론, 포병화력의 지원을 받아 시가전을 벌인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점했음에도 진격 속도가 계속 지지부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주요 전장인 치소프 야르, 토레츠크, 셀리도보 등지에서 러시아군은 마치 옛 스탈린그라드 전투처럼 무너지지 않는 철근콘크리트 건물 하나를 둘러싸고 몇 주에 걸쳐서 힘겨운 싸움을 해야한다. 특히 드론의 존재로 인하여 공중 공간이 상시적으로 위협에 노출되기에, 전방과 후방 사이, 또 전투원 사이의 긴밀한 통신은 매우 필수적이다. 북한군이 설령 현대적인 드론 전술에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그마저도 매우 어렵지만), 정찰 자산과 지휘 계통을 러시아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별 전투원들의 언어 문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다. 북한군이 대규모로 들어가더라도 전장에서 제대로 활약하기 전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텐데, 아무리 북한이 인명을 경시한다 하더라도 뻔히 보이는 도살장에 걸어 들어가지는 않는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상당한 수의 북한군 병력을 파괴한다면, 전장에서 강력한 홍보 소재를 획득하는 셈인데 러시아군이 굳이 이를 감수할 필요도 없다.
둘째는 정치적 이유다.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일반 인민에게 외부 정보가 계속 유입되어 체제를 향한 강한 불만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북한은 언제나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엘리트 자원만을 대외 임무에 투입하는데, 최근 들어 잦아지는 엘리트들의 탈북은 그런 신뢰도 한 순간에 깨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만 명이 넘는 병력이 러시아라는 외부 세계를 경험한다면 이 자체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정보의 대량 유입 위험을 떠안는 것이다. 러시아는 몇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겨울이 더 추운 북한'이 아니고, 현대화된 소비 사회를 운영하는 국가다. 따라서 북한 군인들이 불확실성이 강해 통제가 어려운 전장에 투입된다면, 대량 탈출 사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북한군은 군 조직의 통제가 용이한 후방에 배치되어 국경 방어, 군사 시설 건설 등의 노역 활동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
2. 북한군이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경우는?
물론 북한군이 전투에 아예 투입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마 북한 측에서도 현대전 전훈을 쌓기 위해서, 러시아어 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 장교들을 전장에 투입할 수 있다. 이런 소규모 병력의 투입은 대세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장차 현대전의 전훈을 습득한 북한군을 상대할 한국군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 될 수는 있어도).
이런 소규모 투입을 제외한다면, 어쩌면 북한군 병력이 쿠르스크를 비롯한 러시아 본토에서의 전투에 참여할 수는 있다. 이 또한 북한군의 본격적 참전이라는 점에서 만만찮은 소식이 될 것이지만, 그래도 북한군이 직접 '국경을 건너' 우크라이나에 투입되는 것보다는 국제 정치에 가져올 파장이 훨씬 적다. 북러 협정에 따라서, '침공 당한 러시아 국경에서 침략군을 격퇴한다'는 명목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것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병합을 목적으로 하는 전투에 나가는 것은 천지차이다.
3. 러시아는 북한군을 왜 불러왔는가: 병력 동원의 한계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전쟁 수행이 어려워서 북한군의 손이라도 빌려야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물론 북한군을 끌고 온 것이 러시아 내부에서 전쟁 수행에 몇몇 곤경을 겪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는 하나, 전황 자체가 러시아에 불리하거나, 러시아가 전쟁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난관에 처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독일 소재의 킬 세계경제연구소에서 러시아의 군수 생산 능력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손실을 훨씬 상회하는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이미 서방에서 러시아군이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간주하는 포탄, 전차, 포신 등에서도 서방의 군수 기업들, 특히 독일의 라인메탈을 압도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꾸준히 들여다본 사람들은 최근 전장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텐데, 우크라이나의 무리한 쿠르스크 도박 이후 러시아군의 공세는 더욱 속도를 더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가장 거추장스러운 방해물들인 돈바스의 주요 요새를 함락시키고, 그 와중에 우크라이나군 병력을 계속해서 제거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회가 더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고 백기를 들 때까지 공격을 지속할 수 있다. 전쟁 초기 러시아군을 가장 고생하게 한 요새인 바흐무트, 아브데예프카, 우글레다르가 함락되었으며, 현재는 토레츠크, 치소프 야르, 세베르스크라는 또 다른 주요 요새를 놓고 계속해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포크롭스크-미르노그라드와 쿠락호보, 콘스탄티놉카가 점령된다면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의 핵심 요새 대부분을 상실하게 된다.
그렇다면 전황을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가 왜 북한군을 불러왔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현재 러시아군은 무기는 무리 없이 확보할 수 있지만, 병력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의 집계로 러시아군 사상자가 무슨 70만명이라서 병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다. 반푸틴 성향의 러시아 독립 언론 미디어조나는 언론 부고란이나 군인 가족의 SNS 게시글들을 토대로 전사자들을 집계하는데, 최근 여기서 발표한 전사자 수가 7만 명이었다. 반푸틴 매체에서 발표한 것이니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 것임을 감안하고, 또 반대로 러시아군에서 은폐하는 병력 손실도 있을 것이니 대략적으로 7만 명이 죽었다고 가정하자(실제 미디어조나에서는 은폐를 고려하면 10만 명 이상이 죽었을 것이라 주장). 7만 명이라 하더라도 물론 안온한 세월을 사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일 수준의 숫자긴 하지만, 국가라는 전쟁 기계의 관점에서 보면 흡수할 수 있는 충격이기도 하다.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러시아군은 길거리에서 남성들을 납치해 훈련소에 투입하지도 않고(이는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군이 하는 일이다), 갓 20살이 된 핏덩이들에게 총 한자루만 쥐어주고 돈바스의 지옥으로 뛰어들라고 하지도 않는다. 푸틴이 러시아를 안정화시키며 러시아에 새로 등장한 세대는 서구권의 여타 청년층과 마찬가지로 집단주의를 싫어하고, 소비주의를 즐기며, 애국을 위해 목숨을 받치라는 구호에 시큰둥한 경향이 강하다. 스탈린 이후 핵가족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자녀 하나하나가 소중해진 부모 세대도 마찬가지다. 푸틴이 부분동원령을 선포하여 30만 명을 동원했을 때 러시아에서 발생한 거대한 탈출 행렬은 징집을 통한 대규모 병력 동원이 소비사회로 전환된 푸틴 치하의 러시아에서 얼마나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일인지를 예시했다. 징집병을 외국의 전쟁에 투입할 수 없다는 러시아 정부의 법률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통념과는 반대로 러시아는 전쟁을 가장 자본주의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전쟁에 참여하게끔 독려하는 각종 인센티브를 통해서 자원 병력을 모집하고 있다는 의미다. 콘트락트니키라고 불리는 계약병들은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하는데, 이들에게 주어지는 급여는 러시아 평균 월급의 3배에 달하고, 계약 체결 시에 국방부와 지방 정부가 제공하는 일회성 장려금 또한 월급의 몇 배에 달한다. 부상 및 사망 시에 나오는 금액도 매우 크며, 참전자와 그 가족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사회보장 혜택도 속속들이 발표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2022년 가을에 부분동원령을 발표한 이래로 계속해서 이러한 물질적 인센티브를 통해 병력 자원을 충원해왔다(다른 충원 경로는 감형을 통해 최전선 격전지에 투입할 죄수부대 모집과 러시아 연방 시민권 취득을 가능하게 해주는 중앙아시아 등지로부터 외국인 모집이었다).
혹자는 이를 러시아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대표되는 제국의 중심부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수민족과 지방의 소도시, 시골 사람들만 피해를 감당하게 한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그 점에서는 미군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전쟁은 지역 격차가 매우 극심하고 계층 불평등이 세계 최고 수준인 러시아에서, 경제적인 개선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낙후지의 남성들이 빠르게 자본을 모을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캅카스 등지의 소수민족은 이들이 세계 격투기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에서 보이듯이, 여전히 폭력적인 마초 문화와 전사-명예 문화가 상당한 곳이기에,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서구화된 청년과는 구별되는 의미 체계 속에서 참전을 결정한다(엄청나게 차이 나는 급여 수준은 말할 것도 없고). 참전자에게 제공되는 각종 혜택과 참전자에게 사회 엘리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우선 배당하겠다는 선전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제공한 제대군인원호법(G. I. Bill)을 연상케한다. 문제는 베트남 전쟁이나 소련-아프간 전쟁처럼 전쟁의 당위가 참전자들에게 와닿지 않는 경우인데, 적어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위는 러시아인들에게서는 납득이 가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병력 부족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일단 병력 부족의 원인에 대해서 추정해야한다. 첫째 가능성은 정말로 병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둘째 가능성은 좀 더 상대적인 경우인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향한 공세를 확대하면서 전선을 추가적으로 열 경우에 그곳에 투입될 병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물론 어느 쪽이 되었든, 북한군 파병으로 인하여 러시아군이 현재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치에 맞는 병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확실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 '이미 갈 사람 다 갔다'일 것이다. 물론 전장에서 두둑한 보상을 받고 팔자를 고친 주변인들의 사례에 이끌려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신규 병력들은 계속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전장에서의 손실로 소모되고, 일부는 계약을 종료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알려진 것은 계약병(콘트락트니키)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되기에, 자발적으로 제대하는 것이 극히 어렵지만, 다른 방식으로 전투에 참여할 경우 급여와 혜택은 동등하되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목숨 걸고 1년 딱 싸워서 목돈과 함께 집에 돌아가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할 때, 전투 손실 이외에도 계약 갱신 중단도 병력 부족의 한 가지 원인으로 생각해볼 만 하다. 게다가 격전지에 주로 투입되는 죄수들은 손실률이 높을 수밖에 없기에, 교도소에서 동원 가능한 머릿수도 점점 부족해지고 있을 것이다.
더하여, 경제적 인센티브를 통한 병력 충원이 갖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바로 비용 편익을 따져 더 좋은 선택지가 나타날 경우다. 최근 러시아가 군사케인즈주의, 즉 정부가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통해 총수요를 끌어올리는 식으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음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가 쌓아둔 에너지 자원 수출액을 배당 받지 못한 사회 중하층부의 남성 수십만 명이 참전을 통해 부를 모으자, 국내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제재 '덕택에' 러시아인들이 해외에서 소비하는 것은 꽤나 어려워졌으니 소비가 국내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국내 소비의 증대가 서방 기업들이 놓고 간 생산 설비를 인수한 국내 자본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역시 제재 '덕택에' 자본이 런던의 올리가르히 계좌로 빠져나갈 수가 없고 국내에 재투자된다). 이는 러시아가 그동안 정부 재정을 건전히 관리해왔고, 부채를 확대하지 않았으며, 국부펀드에 자원 수출액을 착실히 모았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다. 문제는 군대가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병사도 모집해야하지만 동시에 전선에 보낼 무기와 물자를 생산하는 군수 기업들의 노동력도 유지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최우선으로 자원을 배당하는 군과 군수기업이 경쟁적으로 높은 보수를 쥐어주어 인적 자원을 끌어온다는 뜻인데, 자연스럽게 다른 영역의 임금 수준도 동시에 상승할 수밖에 없다. 즉, 시간이 지나면 전선에서 죽음의 위험을 뚫고 받아내는 돈과, 후방 조립 라인에서 포탄과 전차를 만들며 받아내는 돈의 차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족과 헤어지지 않고도 군사케인즈주의로 성장하는 경제에 몸을 맡겨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다면 왜 굳이 돈바스의 지옥으로 가겠는가?
종합해보자. 현재 러시아군은 전선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강제력을 통한 동원이 없이 물질적 인센티브를 통한 자원병 충원은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다. 2022년 가을처럼 사회에 스트레스를 안겨가며 추가적인 동원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있는 병력을 최대한 잘 쓸 것인가. 후자의 경우에는 점차적으로 전선에 투입될 수 있는 병력 수가 감소하거나 횡보할 것이기 때문에, 기세를 몰아 전과를 내고 싶어하는 크렘린의 의도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북한군의 도움은 제3의 선택지를 열어준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하지 않는 병력은 주로 세 종류다. 첫째는 쿠르스크에 침입한 우크라이나군을 상대하는 병력, 둘째는 군사 시설을 건설하는 노무 병력, 셋째는 징집병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함이 드러난 국경 방위 병력이다. 이 병력들 중에서 최소한 둘째와 셋째 종류만 북한군으로 대체한다고 했을 때, 러시아는 그만큼 더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여유 병력을 확보하게 된다. 노무 병력 같은 경우에는 북한군이 원래 전투보다 각종 건설 동원에 더 많이 활용됨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검증된 인부'라고 할 수 있고, 셋째 경우도 만약을 대비하여 국경 초소에 주둔시키며 머릿수를 채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우크라이나군을 실질적으로 상대할 대포, 미사일, 항공기는 러시아군이 담당), 드론이 날아다니는 시가전에 들이붓는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활용법이다.
4. 결론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한 국가가 내리는 정치적 결정은 결정권자가 고려하고 있는 배후의 맥락을 읽게 도와주는 단서가 된다. 하지만 모든 추측과 판단은 사람이 기존에 지닌 인지 도식 위에서 이루어진다. 러시아군이 여전히 '인해전술'로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선에 병력을 쏟아붓고 있고, 군수품 생산 역량 부족으로 제대로 된 무기도 갖추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인지 도식 위에서라면, 북한군 파병 요청은 진퇴양난에 빠진 러시아의 절박한 아우성이 된다.
하지만 러시아가 물적 조건에서 전쟁 수행에 무리를 겪고 있지 않으며, 다만 러시아 청년층이 여느 소비사회의 청년층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 추가적인 동원이 정치적으로 몹시 부담스럽고, 전시 경기의 과열이 금전적 인센티브로 병력을 모집하는 기존 방식에 균열을 낸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는 후방 병력을 북한군으로 일부 교체하여 돈바스 격전지, 혹은 자포로제 등지에서 신규 추가될 전선에 투입될 러시아군 자체 공세 병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로 읽힌다(현대전의 속성, 북한의 정치적 딜레마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북한군 투입이 자원병 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이라는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군에 대한 두 가지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첫째, '야만적 전체주의'라는 서방의 비난, 혹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조국을 방어하는 애국심'이라는 러시아의 선전은 동전의 양면이다. 실제 러시아 사회는 제국을 둘러싼 숱한 이미지와 다르게 여느 서방 세계의 현대 국가와 본질적인 차원에서 다를 것이 없게 운영된다. 많은 청년층은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문화를 향유하고, 사이버 세계를 통해서 자신들만의 영토를 개척하며, 국가를 위해 봉사하기보다 클럽에서 춤을 추거나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러시아는 최근 들어 애국 교육을 강화하고 참전자에게 사회적 명예와 물질적 혜택을 주며 분위기의 반전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둘째, 무리한 병력 동원을 기피하고 여전히 군수 생산 능력을 성공적으로 팽창시키고 있는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서방 세계에 더욱 강한 군사적 위협으로 등장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전반적 여론은 2022년 전쟁 초창기에 형성된 '러시아군 졸전'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전쟁이 계속되면서 러시아는 가장 격렬한 현대전의 경험을 학습하고 축적하고 있으며, 그에 기반한 무기 체계, 전술 등 전반적인 군조직 개선을 꾸준히 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유럽은 러시아에 대항할 수준의 군수 생산 설비를 확충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데, 이는 민간 자본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군사 장비에 대한 나토의 수요가 유지될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중동과 동아시아에서도 강화되는 지정학적 압박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순전히 러시아군을 상대하는 데 전력을 온전히 배치하기 어려워진다. 즉, 언제 어떤 식으로든 전쟁이 종결되었을 때, 유럽연합은 실전 경험을 갖추고 무기고가 넘치도록 포탄과 전차를 채워 넣는 러시아와 군사적 긴장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서 추가적인 전쟁을 벌일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우크라이나 다음은 발트나 몰도바다'라는 우려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체성에서 지닌 위치가 몹시 특별하고, 나토 회원국도 아니었다. 게다가 전쟁 후 러시아는 전쟁의 스트레스로부터 사회를 다시 정상화하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며 숨을 골라야 한다. 다만 그럼에도 승전을 계기로 이러한 동유럽 소국들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며 전체적인 긴장 국면을 계속 이어갈 것은 쉽게 예상해볼 수 있다.
역시 문제는 다시 서방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군수 생산 능력을 가진 나라인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번 전쟁에서 한국은 유럽 전체보다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우회 공여했고,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세를 그나마 지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한국이 미국의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포탄을 공여한 것으로 이해는 하고 있으며, 러시아 측도 전쟁 이후 한러 관계의 회복에 대한 가능성을 꾸준히 시사해왔다. 이는 러시아가 한국을 배려하는 마음 따뜻한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제 외교가 늘 그렇듯이 다양한 이해관계와 셈법이 개입되어 나온 수사임은 분명하다.
다만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군사적인 지원을 하지는 않더라도(개인적으로는 반대다. 이미 우크라이나는 일국 수준의 지원으로 러시아를 밀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러시아의 가중되는 안보 위협에 대응하고자 하는 유럽의 군수품 수요를 충당해줄 수 있는 공급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래의 긴장이 예고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러시아는 한국 및 일본과는 지속적으로 거래선을 유지하고 싶어할 것이기에, 당장 북한에 로켓, 위성, 방공시스템 등의 전략 자산을 지원하며 한국과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유럽과의 관계가 단기간에 회복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정학적 긴장이 심하지는 않은 동아시아의 선진 산업국들은 놓치기 아쉬운 경제적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규모 군수 공업을 보유한 한국의 특수한 지위로 인하여 유럽의 지정학적 위기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을 높이는 스필오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국이 그런 에스컬레이션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글로벌 자유 진영의 통합 안보라는 관점에서 마땅히 감내해야하는가? 그런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다양한 고민과 토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열흘 뒤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고민해도 늦지 않을 문제인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