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의 보석 오데사 여행

흑해의 보석 오데사 여행

지금은 갈 수 없게 된 우크라이나 여행기 시작

임명묵

초르노모르스크에 도착한 때는 밤 12시 즈음. 선내 로비 같은 곳으로 제복을 입은 우크라이나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이 들어온다. 먼저 차량이 아니라 도보로 탑승한 사람들 나오라고 하더니 이 사람들부터 입국 절차를 진행시켰다. 승객 수에 비하면 거의 미미하다 싶을 정도의 소수 인원이었다. 배에 탔을 때 승객들과 대화하면서 들어보니, 많은 수가 그루지야에서 중고차 같은 걸 사서 배 타고 넘어오는 승객들이라는 듯.

일단 입국 검사를 하고, 배에 나올 때 여권 검사 한 번, 항구로 들어갈 때 여권 검사를 한 번 더 했다. 이제 나가면 되는 건가? 하면서 나가는데 출입국 직원이 잠깐 멈추라고 하더니만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버스에 타라고 가리켰다. 저기서 함께 타고 입국장으로 간다고... 토니와 함께 탔는데 우리 뒤에는 큰 개를 끌고 온 체코 커플도 있었다. 우리가 버스 옆에 있는 지게차 같은 곳에 가방을 내려놓으라는 지시에 따라 가방을 내리고 있는데, 출입국 직원께서 가라사대, 개도 거기에 올리라고...

그래서 한 20분을 기다렸나, 아마 도보로 탑승한 인원이 드디어 배에서 다 내린 것 같았다. 마침내 출발한 버스는 거짓말 없이 100m 정도를 가더니 출입국장에 도착..... 대체 이럴 거면 20분을 왜 기다리라고 한 거냐. 물론 국경 관리 하는 입장에서 인원 통제를 확실히 해야 할테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허망한 100m 기행을 끝내고 토니와 일행과 내가 셋이서 어리둥절해 하는데 저 멀리서 지게차가 빛을 내면서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우리의 가방과, 까만 멍멍이를 올려서 털털털 오는데 그 광경을 보고 셋이서 허허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추가 문제가 또 생긴다. 원래 오후 5시쯤에 도착했어야 할 배인데 항구를 빠져나오니 12시. 게다가 오데사 시내도 아니고 외항이라서 이동 수단이 너무 막막했다. 밖으로 나가니 진짜 여기저기 움푹 패인 도로들에 차들이 덜커덩덜커덩 하면서 쌩쌩 달리고 있었다. 길을 건너려 하니 중간에 차 하나가 속도를 줄이더니 우리에게 중지를 한 번 척! 치켜들어주고 뜬금없는 욕을 날리며 다시 쏜살같이 달려갔다.

와중에 러시아어에 매우 유창하신 어떤 분께서 택시를 잡았다며, 그 택시에 기생하여 오데사 시내로 입성할 수 있었다... 사실 제일 싼 호스텔 잡겠다고 이것도 시 외곽이라 처음에는 숙소 못 찾은 줄 알았다. 도미토리형 방에서 터키에서 온 아저씨의 코골이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간신히 정신 차리고 오데사 시내 투어 시작. 일단 조선 근본의 배틀그라운드를 보며 국뽕 한 사발 들이키고..

시 외곽에서 버스랑 트램을 이리저리 타고 시내로 나가야 했다. 여기는 이미 시내. 중간에 트램(노면전차)을 타다가 어이 없는 일도 있었는데, 트램이 계속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거북이처럼 기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가면 서고, 다시 조금만 가면 서고... 그와중에 쇠가 부딪히는 깡! 깡! 소리가 울려 퍼져서 너무 이상했다. 나는 뒷자리에 탔는데 같이 간 동행께 트램에서 내려서 대체 무슨 일이었냐고 물어봤다. 동행 왈..

"선로를 변경할 때 기사 아저씨가 내려서 쇠막대기로 선로 변환기 같은 걸 열심히 치더군요."

움푹 패인 도로도 그렇고 수제 트램 운전도 그렇고 아, 이것이 우크라이나인가?를 실감했다. 2019년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으로 러시아에서 어이 없는 광경을 좀 봤다고 생각했는데 우크라이나는 그런 면에서 more Russia였음...

여행 끝난 뒤에 사석에서 이런 썰을 들려주면 "동남부는 잘 사는 곳이잖아요?"라는 질문도 종종 들었는데 저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경험하기 전까지는.. 중심부의 사진은 이렇게 때깔이 좋게 나오지만, 아무리 보아도 뭔가 제대로 작동하는 느낌은 안 들었다. 그럼 대체 서부는 어떻다는 것일까? 훗날에 우크라이나 전역을 둘러보고 여행기 <검은 땅의 경계인>을 저술하신 동행분께 나중에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서부에서는 기차역 광장에서 구걸하는 아동을 볼 수 있습니다...."

서글퍼진다.

웅장한 방사능 바를 지나서..

소련식 그래피티가 가득한 소련식 콘크리트 다리를 지나 목적지로 걷는다. 목적지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그 유명한 "전함 포템킨" 영화의 배경인 '오데사 계단'!

소비에트 아방가르드를 상징하는 에이젠슈타인은 여기서 인류 영화사 최초의 몽타주 기법을 선보인다...

그런데 이게 오데사 계단이다.

아니 나름 오데사 하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소인데.. 누구에게나 오데사 간다는 얘기를 하면 둘 중 하나의 대답이 왔다. 건담의 오데사 전투와 에이젠슈타인의 오데사 계단. 그런데 그래피티를 저렇게 내비두어도 되나? 옆에 주차장도 너무 황량하고..

그래도 인스타그램에 올라올 정면은 정비가 잘 되어 있으니 위안이 된다.

영화 전함 포템킨의 역사적 배경은 1905년 러시아 혁명이다. 러일전쟁 패전이 차르 전제정에 대한 불만에 불을 당겼고 러시아에서는 총파업과 대중 소요가 들끓었다. 이때의 불온한 분위기 속에서 흑해 함대의 전함 포템킨 호에서 열악한 처우에 불만을 느낀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실제 역사랑 영화 상 내용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영화에서는 반란을 일으킨 혁명의 전함 포템킨 호가 오데사로 향하자 오데사의 시민들이 환호하며 수병들을 지원하러 이 계단으로 몰려들고, 그걸 악랄한 차르의 코사크 부대가 유혈진압한다. 유모차가 굴러 떨어지는 장면이 연출된 곳이 이 곳. 소련 시절 여기는 사실 오데사 계단보다는 포템킨 계단이라고 불리웠다.

항구가 바로 앞이라서, 포템킨 전함을 맞이하러 올만도 했다.

계단을 바로 올라오면 나오는 리슐리외 동상. 프랑스인으로 1803-1814년 기간 동안 오데사 시장을 했다. 오데사가 1794년에 세워졌음을 감안하면 도시 초기 발전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능히 추측할 수 있다.

이 뒤에는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나름 돈 좀 도는 인싸 거리의 느낌이 확 났다.

그러니 밥도 먹어줘야지. 농업 대국인데 국민소득이 높지는 않으니,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 먹는 물가는 굉장히 쌌다. 맥주 한 잔 하며..

그 다음으로 나오는 곳은 예카테리나 2세의 동상. 이 동상에 관해서는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기도 했다.

[2030 플라자] ‘예카테리나 2세’ 동상은 계속 자리를 옮겨야 했다
2030 플라자 예카테리나 2세 동상은 계속 자리를 옮겨야 했다

러시아의 '계몽 전제 군주'로 유명한 예카테리나 2세는 오데사의 창건자다. 이 한 문장에 오데사의 복잡다단한 역사가 전부 담겨 있다. 표트르 대제의 개혁 이후 국력을 키운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을 그야말로 두들겨 패기 시작하는데, 코카서스와 크림 지역의 오스만 제국 영향권이 당연히 주요 타겟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스만에게서 대승을 거둔 예카테리나는 크림 칸국을 멸망시키고 오늘날 우크라이나 남부와 크림 반도를 러시아령으로 만든다. 오늘날 오데사부터 크림을 거쳐 돈바스로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을 '노보로시야', 그러니까 새로운 러시아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크림 타타르인들의 땅을 정복해서 러시아령으로 만들고, 러시아에서 대규모 이주민을 정착시켰으니 새로운 러시아라고 부르게 된 것...

오데사라는 이름도 이때 정해졌는데 옛 그리스 도시 '오데소스'를 재건한다는 차원에서 오데사라고 이름을 붙였다. 러시아 제국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비잔티움 제국의 후예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졌다. 그러니 이슬람 제국을 박살내고, 비잔티움의 영광을 흑해에서 다시 자신들이 재현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런 이유로 흑해 연안의 우크라이나 도시에는 그리스식 이름이 흔하다. 심페로폴, 세바스토폴, 마리우폴 등 '-폴'로 끝나는 도시들이 다 그런 식의 작명법으로 붙여진 이름.

그리고 오늘날 우크라이나 민족 서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지역은 폴란드와 오스트리아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서부 지역과 우크라이나 민족 국가의 원형이 되었다는 중부 지역의 자포로제인데, 사실 오데사를 비롯한 동남부 지역은 소련이 시작될 때까지는 우크라이나와 직접적인 역사적 연고가 없는 것은 맞다(누차 강조하지만 푸틴이 전쟁하는 게 그래서 옳다는 이야기는 아님). 소련 시기 행정 구역을 정할 때 이 지역들이 우크라이나에 귀속되게 되었고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인접 우크라이나 농촌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이주했으니 이제는 일방적으로 '러시아 지역'이라고 할 수 없게 되기도 했다.

어쨌든 러시아 제국이 19세기에 농업과 산업 발전을 이루면서 흑해의 오데사는 러시아 곡물을 수출하고 서구의 각종 수입품을 들여오는 핵심 물류 기지로 거듭났다. 그래서 오데사 시의 유력자들이 도시 창건자인 예카테리나 2세의 기념상을 세우며 차르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하고자 세웠는데.. 당연히 차르의 동상을 혁명을 일으킨 볼셰비키가 남겨둘 리가 없었고, 여긴 포템킨 선원의 혁명 정신이 있는 곳이니 포템킨 수병 동상을 대신 건립했다. 소련 해체 이후에 오데사 시에서 다시 역사를 복원한다는 차원에서 예카테리나 동상을 설치하기로 했는데, 러시아와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러시아 차르의 동상은 필요 없다며 다시 끌어내려졌다.

복잡한 땅의 복잡한 이야기이다.

뭔가 유서 깊은 것 같은 성삼위일체 성당.

역시나 관리 상태가 훌륭한 오데사의 공원... 엄청나게 큰 개를 목줄도 없이 산책시키는 젊은 우크라이나 여자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우크라이나 민족의 상징인 코사크 기념상. 이 사람도 무슨 코사크 영웅일텐데 내가 모르는 인물이었다. 타라스 불바랑 보그단 흐멜니츠키 밖에 몰라서..

우크라이나 민족 시인으로 유명한 이반 프란코의 기념상. 우크라이나 서부에 이 사람 이름을 딴 '이바노프란키우스크 주'가 있을 정도다.

이런저런 가게들이 많아서 음료수라도 하나 사 먹으면서 걸었다.

오데사 역 근처에 있는 아랍 문화 센터. 흑해 지역은 전통적으로 오스만 제국과 크림 칸국의 활동 지역이고, 타타르인도 이전에는 많았다. 러시아 제국 시절 오스만으로 도피하고 소련 시절 강제 이주를 거치며 지금은 인구가 급감한 상태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이슬람의 영향도 계속 느낄 수 있다. 여기는 시리아 사업가가 지은 곳이라고 한다.

1905, 1917, 1944라는 숫자가 대문짝만하게 써있는 오데사 중앙역. 진짜 소련에서 숱한 역을 보고 다녔지만 순위권에 꼽을 정도로 웅장하고 멋있는 역이다. 1905와 1917은 혁명의 해이고, 1944는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해이다. 요새는 숫자를 아마 파버리지 않았을까?

역에 아마 기차표를 사러 갔던 것 같은데, 가는 길에 꼬마애랑 젊은 아버지랑 둘이 서있는 곳을 지나갔다. 꼬마애가 우리를 보고 니하오 니하오~ 하니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헤드락을 걸고 웃으면서 그러지 마!라고 하는데 너무 귀엽고 보기 좋았다. 이 부자도 무탈하기를....

역전 거리의 멋들어진 성당과 풍경.. 흑해의 보석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다음 행선지로 출발. 트램들이 느릿느릿 함께 가는 모습이 볼만하다.

여기는 어떤 이유로 들렀는지 이제는 기억에도 가물가물한데... 어쨌든 시장과 쇼핑몰 등이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소련식 공간.

건물은 웅장한 소련식인데 이제는 자본주의 시대라 상점들이 가득하다.

슬라브 전통의 보리 발효 음료인 크바스 한 잔. 아마 이때가 8월이었는데 우크라이나는 날씨가 꽤 더웠다. 오래 걸으니 땀이 나고 목이 마른 건 어쩔 수가 없는 일. 시원하게 크바스 한 잔 들이키고 계속 이동..

이제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빨치산들의 땅굴을 보러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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