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사 빨치산 땅굴 기행
나치에 맞선 지하 기지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려 시외 외곽으로 나오면 제2차세계대전 당시 빨치산들이 활동했던 지하 기지가 나온다. 황량한 들판 밖에 없어서 여기가 박물관이 맞나 싶기도 했지만 찾아보니 이런 표지가 나온다. 관리인 아주머니였나 할머니였나가 관람객이 충분히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기다렸다. 대체 왜 이러나 했지만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블라디미르 몰로드초프와 그가 이끄는 70명 가량의 빨치산들이 1941년부터 1942년까지 이 '오데사 카타콤'에서 나치에 맞선 사보타주 활동과 후방 교란 행위를 했다. 갖은 수를 써서 이 땅굴을 함락시키고자 했지만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은 계속 실패했고 끝내는 부대원 한 명의 정보 누설로 소탕된다. 몰로드초프는 소련 영웅이 된다.
사람을 모아서 가야 하는 이유.. 이곳은 석회암 지대라서, 용식 과정으로 생긴 카르스트 동굴이다.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들이 미로를 이루고 있는 곳이고, 여기에 19세기부터 이루어진 석회암 채석 과정이 더해졌다. 정말로 무시무시한 미로라서 관광객이 멋대로 움직이다가 길을 잃고 실종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라도 관광객을 자유롭게 들여보냈다가 길이라도 잘못 들으면 그대로 동굴에서 굶어 죽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기에, 일정 머릿수를 채워서 길을 아는 가이드 인솔 하에만 갈 수 있는 것. 사실 이 부분도 견학 용으로 극히 일부만 공개된 것이고 실제로는 당연히 훨씬 더 거대하다고 한다.
당시 땅굴의 생활 공간을 전시해둔 곳이다.
"피에는 피, 죽음에는 죽음."
"독일 점령군에게 죽음을!"이라는 스탈린의 유명한 말이 써있다. 러시아의 침략 이후에는 떼버렸을지도?
소련 국기가 걸려 있는 어떤 공간..
사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제2차세계대전의 기억은 무척이나 껄끄럽게 되었다. 2014년 돈바스 전쟁과 2022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러시아와 함께 한 역사를 긍정하기란 어려워졌다. 그러나 어쨌든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인은 물론이고 저 멀리 중앙아시아인이나 시베리아인들과 함께 '인류의 공적'으로 합의가 된 나치에 맞서 싸운 것도 사실이다. 이걸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뭐하니 침묵하는 걸 선택하고 있는 듯 했다.
땅굴 안에서 빨치산 대원의 모습을 표현한 어떤 작품..
어두컴컴한 땅굴을 계속 돌아다니다가 밝은 태양 빛을 보니까 살 것 같았다. 바깥에는 당시 오데사 카타콤의 빨치산 활동을 소개하는 박물관 전시가 있고 여러 조형물도 있었다.
러시아어가 약해서 해석이 좀 난감한데... 카타콤의 어둠과 오데사의 검은 밤을 그대들은 심장으로 터트리고, 승리의 태양을 향해 피로서 연결되었다? 뭐 이런 느낌의 뜻인 것 같다....
오데사 빨치산을 표현한 석조 조형물... 이 동굴에서 나온 석회암일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 트램을 타야해서 지도를 보는데 여기가 트램 정류장이란다. 정말 여기가 트램 정류장이란 말인가? 표지도 없고 뭐 아무 것도 없는데.... 오데사에서 하루 이틀 있는 동안 헛웃음 나오는 경험이 꽤 있었기에 이번에도 좀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짐을 잔뜩 진 바부시카(할머니)가 뒤뚱뒤뚱 귀엽게 걸어가시며 저기서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 트램 정류장인 것을 믿었다.
돌아와서는 뭐 늘 그렇듯이...
안주도 사러 왔다. '피자 볼셰비키'. 세상에나 이런 피자가?
전쟁 전이라서 그런지, 관공서를 비롯한 공식적인 곳에는 전부 우크라이나어였지만 이런 민간 상점에서는 여전히 러시아어가 많이 보였다.
기차를 타기 위해 오데사 역에 도착. 역에서 끼니를 떼우고 시간을 죽이면서 드니프로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포템킨 계단 근처는 오데사의 가장 번화한 인싸 거리이기도 한데 이곳 근처에는 오데사의 오페라 발레 극장도 있다. 이 동네도 그래서 극장 광장이다. 건물은 1887년에 완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위키백과에 따르면 현재 전쟁 중이라서 여기에도 방어 무기가 배치되어 있다고 하니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인싸 거리에다가 여름의 해변가가 코앞이라서, 양양을 방불케 하는 인싸들의 활기찬 발걸음이 인상적이었다...
오데사 출신의 소련 영웅들의 명단을 새긴 '영웅들의 벽'. 2022년 9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논란이 일었고 이 벽도 오데사의 최고 중심가인 이곳 극장 광장에서 옮겨질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나치에 맞선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인들을 긍정도 못하고 부정도 못하니 일단 결정을 유예하고 있는 듯. 이런 걸 보자면 한국의 수많은 일제 유산 지우기, 친일파 유산 지우기 등이 생각 안 날 수 없긴 하다. 완전히 같은 건 아니다만 공간을 어떤 식으로 점유하고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인 문제라는 점에서...
오데사 시청 건물. 역시 19세기에 세워진 건물인데 꽤나 멋있다. 농업의 여신 세레스와 무역의 여신 머큐리가 양쪽에 있는데, 그리스 도시를 계승했다는 정체성 + 곡물 무역항으로서의 정체성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는 오데사에 잠시 머물렀다는 푸시킨을 기념하여 푸시킨 기념상도 세워져 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이후에 우크라이나 각지의 푸시킨 기념상이 철거되고 푸시킨 도로 같은 것도 전부 개명되었다는데 이 기념상은 어찌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데사에서 이제 드네프르를 향하여..
밤기차를 타러 가는 길의 풍경이 마치 우크라이나 국기의 색과도 같아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