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세계의 위기와 한국 - (1)

현대 세계의 위기와 한국 - (1)

지구적 위기와 한국

임명묵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이어서 써나가고자 했는데, 공부를 하면서 쓰다 보니 연재가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구독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며, 제가 이전에 혼자 썼던 미발표 원고를 대신 공유하고자 합니다.


현대 세계의 위기

영국의 역사학자 이언 모리스는 장기 역사(long-term history)를 다룬 그의 3부작에서 사회 발전의 패턴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가 제시한 사회 발전의 패턴은 세 가지 원칙으로 구성된다. 첫째,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의하여 사회는 에너지 획득과 정보 처리 면에서 계속해서 고도화되는 경향성을 띤다. 집단 간 경쟁과 진화론이 작용하여 더 사회적으로 발전한, 고도화된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를 제압한다. 다른 공동체들은 고도화된 사회와의 접촉, 교류, 투쟁 과정에서 생존을 위하여 더 고도화된 방법론을 채택한다. 둘째, 사회 발전은 그 자체로 해당 사회에 여러 부하(負荷)를 만들어내며, 사회가 이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에는 사회의 쇠퇴 내지는 붕괴가 찾아온다. 수렵채집 사회는 인구 압박에 대응하여 농경을 채택했고, 농경 사회는 인구 압박, 생태 자원 위기, 사회 불평등 심화에 대응하여 국가 체계의 심화, 장거리 무역, 생태 자원의 효율적 사용, 평등 지향 사상과 종교의 발명 등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하지만 몇몇 농경 사회는 이런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거나, 혹은 마련했음에도 부하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는데, 유라시아 문명 단위에서는 최소 두 번의 대대적인 쇠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농경 사회는 최종적으로 산업 사회로 이행하고 나서야 자신의 부하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산업 사회도 마찬가지로 사회 고도화에 따른 극심한 부하를 만들어냈다. 제국주의, 총력전, 핵위기, 지구 자원의 고갈과 생태계의 파괴는 20세기에 폭발한 산업 사회의 부하들이었다. 산업 사회는 이러한 부하에도 불구하고 붕괴를 겪지 않고 내구성을 입증하였으며, 몇몇 부하는 정보 사회로 전환해감에 따라 저감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산업 사회에서 정보 사회로 이행하는 현재 시점에서, 문명을 위협하는 근원적 부하들은 전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인구 폭발과 생태 위기, 기후 위기는 산업 사회에서 지구적 단위로 확장되었고, 정보 시대에서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어 문명의 기반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구와 나머지의 구도로 상대적으로 단순했던 산업 시대의 지정학적 판도는 서구의 쇠락과 나머지의 부상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대대적 권력 이동의 단계로 이행했는데, 20세기 산업 시대의 맥락에서 등장한 국제 연합과 그에 입각한 국제 질서로는 감당할 수 없는 복잡성과 위험이 증대하고 있다. 우리 문명을 상징하는 단어인 정보화는 인간 삶의 의미와 목적, 가치 체계까지 위협하는 근원적 변화로서 등장하였는데, 기존 정치 시스템이 정보화에 따라오는 혼란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여 현대 정치는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기능 부전 상태로 접어들었다.

기후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 정신의 위기는 서로가 상호작용하면서 사태를 계속해서 악화시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앞으로 발생할 복합적 위기의, 아주 온건한 형태의 예고편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위기가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빠르게 전개되어 대대적인 파국에 도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다수의 사람은 내일이 오늘과 같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오늘이 어제와 같지 않았는데 내일이 오늘과 같을 리는 없다.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찾아왔던 대재난과 문명 붕괴의 사례는 앞으로의 세계 전망을 더욱 으스스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언 모리스가 지적한 대로, 다음에 찾아올 파국은 이전 시대의 파국보다도 훨씬 더 깊고 거대한 규모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인류 문명이 행성 단위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한 번 붕괴가 이루어진다면 선진 사회의 시민들이 영상으로만 전해 보며 안타까워 할 국지적 붕괴 대신에 그들의 안방마저 침입할, 문명 전체를 타격할 총체적 붕괴가 이루어질 것이 명확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파국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을 하나의 큰 질문으로 전제하고 이후의 사고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다가올 위기를 바라보며 인간이 참고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은 결국에는 역사밖에 없다. 파국을 맞은 사회를 반면교사 삼고, 재난을 피해간 공동체를 전범으로 삼아 길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과거 시대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오늘날의 세계의 답을 어떻게 과거에서 찾는다는 말인가? 그에 대한 답은, 원래 과거에서 찾을 수 있는 답은 원칙적인 것 밖에는 없다는 것이 될 테다. 근동의 인구압을 해결하기 위해 농경이라는 실험을 시도하고, 거대해지고 복잡해져만 가는 제국의 붕괴를 피하기 위해 기축 사상이라는 돌파구를 마련한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도전을 헤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찾아내는 것만이 멸망의 낭떠러지에서 생존과 번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인지해야한다. 과거는 지금의 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보려는 우리의 나태와 안일함에 경종을 울려주는 점에서 훌륭한 도구다. 당연하게도 해법은 지금의 문제를 인지하면서 지금의 방법론으로 풀어가야만 한다.

지정학적 위기와 한반도

한국에서 현재의 지정학적 구도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G2의 갈등과 그것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골자로 한다. 사실 이런 인식에 입각한 논의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그 깊이와 수준은 별론으로 하고 상당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나는 ‘G2와 한반도’라는 인식 자체가 옛 세대가 자신의 역사적 경험과 인식을 미래에 투사하는 구도로서, 현재의 문제를 인식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구도라고 여긴다. 물론 세계의 1, 2위를 다투는 초강대국이자, 거대한 영토와 생산성 있는 인구, 과학 기술과 혁신의 기관차로서 미국과 중국은 현대의 가장 중요한 국가들이며, 미래를 결정할 국가들이다. 그 둘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따라 현대 세계의 향방이 결정될 것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G2와 한반도’라는 틀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로, G2의 결정력은 과거 미국과 소련의 결정력, 혹은 제국주의 시대 유럽 열강들이 가졌던 결정력에 비했을 때 상당히 미약하다. 상황은 기존 강대국 경쟁에서 간과하고 있는 ‘나머지 세계’가 대대적으로 부상하면서 급격하게 변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터키와 이란, 인도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제국(諸國)은 각자의 세계 인식과 목표,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지니며, 미국과 중국은 이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는 있어도 이들을 전적으로 좌지우지할 능력이 없다. 현재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세계의 질서를 전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는 인식이 주류적이지만, ‘나머지’ 국가들 또한 사태가 그런 식으로 전개되어 자신들의 발언권이 양대 초강대국 중 하나에 종속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일으킨 전쟁이 미국과 중국을 모두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며, 중국을 견제하겠다고 미국이 다가간 인도가 러시아에 오히려 더 밀착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나머지’ 국가들의 이합집산을 파악해야지만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더 명확히 눈에 들어올 수 있다. 미중 관계는 가장 중요한 관계이지 절대 국제 관계의 전부가 될 수는 없으며, 나머지 세계와의 끊임없이 변동하는 전략과 관계 속에서 미중 관계의 성격과 전망도 결정된다. 즉, G2의 관계에만 집중하면 지구의 권력 역학과 배열을 바라보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세계에는 오직 지구적이고 유기적이며, 단일한 하나의 네트워크만 있다. 사실 이것은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때도 그러했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 때도 그러한 역사의 패턴이다. 유럽 제국의 쟁패에서 일본, 중국,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 같은 주변부 국가들이 판도 전체를 뒤흔들기도 했으며, 냉전 때는 미국과 소련 이외에도 프랑스, 중국 같은 국가들, 나아가 에티오피아나 이란의 혁명가들이 미소 냉전과는 분명 연결되어 있으나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맥락 속에서 활동하여 세계의 모습을 만들어나갔다. 다시 강조하자면 미중 관계나 한반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것을 지구적 단위 속에서 올바른 위치와 비중으로 조정하며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옛 세대가 특히 미중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명확하다. 다른 문명과 사회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사실 이를 알지 못하면 미국과 중국도 잘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지구적 사고보다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고, 한국이 정체성을 동기화하고 있는 제국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오드 아르네 베스타 교수가 말한대로, ‘제국과 의로운 민족’의 오랜 관계에서 습득된 한국인들의 사고 관성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더하여 한국인들은 20세기의 식민화와 분단, 한국 전쟁과 같은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겪으면서,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노리고 장악하려 하는 데에 대한 학습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전 사회적으로 널리, 그러나 피상적으로 퍼져 있는 미중 관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을 선망과 두려움으로 보는 기존 사고방식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제국이든 자신이 바라보는 하나의 제국과 자신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한반도를 일종의 제국의 단층선이나 결전의 장소로 여기는 시각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실제 역사와 앞으로 나아갈 역사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완전한 그림을 그리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지정학적인 면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지구적 단위까지 가지 않아도,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아도,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아도 한국은 그들의 국가 대전략에 속한 일부에 불과하며, 총체적 그림을 구성하는 퍼즐 조각 하나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한국 식민화의 배경이 되었던 19세기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이나, 분단의 요인이었던 20세기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보아도 그러하다. 사실 당시 양쪽 진영에 있어서 한반도 자체가 다른 지정학적 요충지만큼 중요한 위치였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레이트 게임 당시 가장 중요한 무대는 발칸에서부터 신장에 이르는 튀르크 세계였고, 냉전의 주된 공간 역시 동유럽에서 소련의 남쪽 국경을 이루는 중앙아시아까지였다. 한반도의 위치는 이 지역들이 벌이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연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었고, 그마저도 대국의 판세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당시 역사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갈릴지 결정하는 것은 한반도나 한반도 주변의 세력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대륙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음을 생각할 때, ‘동북아’를 시야에 두는 것은 사건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일이다.

물론 그에 관해 이제 미국과 맞서는 초강대국이 러시아/소련이 아니라 중국이 되었으니, 중국의 위치를 생각하였을 때 인접 지역인 한반도가 핵심적인 무대로 진정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가졌던 종래의 러시아에 비하면, 중국에게 같은 동아시아의 일원으로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와 위험성은 훨씬 높아진 것이 맞다. 하지만 적어도 군사와 정치 지정학적인 면에서만 보았을 때 한국의 위상이 미국과 중국 세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단층선이 되리라 보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한국인들의 사고 관성과 트라우마를 배제하고 본다면 그렇다. 중국을 중심으로 지도를 보면 중국이 건설하고 있는 유라시아 경제 공동체가 어떤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지, 그에 따라서 미국이 중국의 어느 지역을 막았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을지를 알 수 있다. 중국의 진출 방향은 서쪽의 중앙아시아와 남쪽의 인도차이나이며, 이 지역의 주요 강대국들인 러시아와 인도와 계속해서 견제와 협력을 병행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은 중국의 주된 진출 방향을 자신들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서태평양으로 상정하고 있으나, 사실 서태평양은 중국의 핵심 이익이라고 할 수 있는 대만과 남해구단선, 즉 제1도련선만 장악한다면 그렇게까지 큰 역량을 당장에 투사할 필요는 없는 지역이다. 그리고 제1도련선만 중국이 확고히 할 수 있다면,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이익보다 유지 비용이 커지는 짐이나 다름없게 된다. 한국인들이 그런 결전의 시기가 왔을 때 미국을 위해서 막대한 경제적 보복과 전투에서의 인명 손실을 감당할 의지가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확언할 수 없다.

제1도련선은 미국 입장에서도 사활을 두고 방어해야 하는 곳이니만큼, 양국은 당장의 충돌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미소가 유럽에서 충돌을 피하고자 했던 것과 논리는 같다. 대신 그들이 힘을 투사해야만 하는 진정한 지정학적 단층선은 중앙아시아와 히말라야, 인도차이나를 가로지르는 유라시아의 중심부와 그 남쪽 인도양의 도서 지역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강조하자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이 자신의 위상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구와 유라시아를 하나의 단일하고 유기적인 권역으로 인식한 뒤, 그 구도 속에서 한국의 역할은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근시일 내에 다가올 수도 있는 대만 해협 위기 속에서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해 신속히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서구의 (상대적) 쇠락과 다극화

한편으로 일각에서 소망하는 미국과 중국의 대타협은 극히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대만 문제가 중국에 갖는 중요성을 생각하였을 때 종국적으로는 양국의 충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시간이 지날수록 대타협 자체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의 질서를 관장하는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역할과 자기 인식이 급격하게 흔들리면서, 상황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여기서는 한반도에 나타날 가장 큰 위기를 나타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다소 과장적인 서구의 쇠퇴 시나리오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서구가 쇠락하지 않는다면 위기를 생각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이 세계 경찰로서 세계섬의 모든 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는 종래의 인식에 미국인들이 신물을 내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물론 트럼프는 중국에 대하여 대결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지정학적 긴장도를 상당히 높이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는 미국인들의 고립주의는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정학적 긴장마저도 감당하기 귀찮아하는 싫증으로 번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한편으로, 초강대국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던 서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와 내부 무슬림 인구와의 관계 설정 문제로 인하여 대내외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유럽인들 또한 세계 정치와 문명적 사명을 위하여 자신들의 복리를 희생하는 것에 점점 의미를 못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러시아, 중앙아시아, 터키, 이란,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를 통합하는 유라시아 경제권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그 통합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하고 있던 서구의 우위는 유라시아의 자원과 시장에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더하여 중국의 부상으로 그 자본과 기술에 대한 독점마저 흔들리면서 위협 받고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문화 전쟁’으로 내부적 결속이 무너지고 있는 서구의 현재 정치적 상황은 외부에서 유의미한 활동과 세력 투사를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오히려 서구 안에서 벌어지는 소요 사태나 내전에 준하는 혼란을 감당해야만 하는 위기감이 커져만 가고 있다.

물론 위의 시나리오는 앞서 말한대로 다소 과장되어 있다. 서구 사회가 그간의 위기를 극복한 놀라운 회복력을 감안할 때, 서구의 상대적 쇠퇴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마무리될 수 있다. 서구의 쇠퇴가 극적이고 큰 폭으로 전개되느냐, 혹은 점진적으로 소략하게 전개되느냐의 차이는 한국과 같은 국가는 물론이고 전세계 수십억 인구의 삶을 가르는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향후 지정학적 구도를 예측하는 데 가장 필요한 일은 ‘서구의 쇠퇴’가 어느 수준까지 벌어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서구의 상대적 쇠퇴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양상이나 그 심급에 따라서 실제 지정학적 긴장이나 권력 이양이 벌어지는 형태는 천차만별일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 이양기는 시스템의 구조가 변동을 일으키는 민감한 시기이니만큼, 점진적 쇠퇴든 급격한 쇠퇴든 충돌의 가능성은 매우 높게 존재한다. 어쨌든 최근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여론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서구의 담론과 언어가 '나머지 세계'에 이전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될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러니 지난 200년 간 세계를 지배해왔던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중심적 지위를 내려놓아야만 하는 것을 수용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당연하게도, 서구의 쇠퇴가 서구의 모든 존재감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논하는 서구의 쇠락은 정말로 서구가 몰락한다는 의미의 절대적 쇠락이 아니다. 서구가 지구적 차원에서 압도적으로 독점적인 힘을 발휘하던 과거의 지위를 내려놓게 되는, 상대적 쇠락을 의미한다. 서구, 특히 미국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학문과 기술의 주요 중심지로서 기능할 것이고, 그간 축적한 거대한 군사력에서도 우위를 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더는 과거처럼 세계의 질서를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 핵심이다. 서구는 일극 세계의 지도자(only one)가 아니라 다극 세계의 여러 행위자 중 하나(one of them)로 그 위상의 조정을 언젠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행위자 중 하나’로서 유라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대양주 각지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 각축에 상대편과 동등한 협상 대상으로서 게임을 하는 법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진짜 지정학적 긴장은 오히려 서태평양과 제1도련선보다는 또 다른 '핵심 단층선'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 단층선은 앞서 말하였듯이 중앙아시아와 히말라야, 인도차이나, 인도양의 도서 지역이 될 것이다. 국력으로 미루어보아 미국, 중국, 인도가 유라시아 문제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자랑하는 G3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러시아, 서유럽, 일본, 이슬람 세계의 강대국들이 조연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러시아와 서유럽의 관계,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 따라 조연들의 구성은 달라질 수 있다).

이상의 상황을 종합해보았을 때, 한국은 지정학에서 갈림길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은 다극 시대에도 하나의 문명으로서 강력한 구심을 형성할 서구에 더욱 확실히 결속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리적 인접성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다극 세력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해야하는가? 한국 정치권의 외교 노선 논쟁은 이 구도보다 훨씬 수준이 낮고 단순화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두 갈림길을 둘러싼 논쟁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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