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세계의 위기와 한국 - (2)

현대 세계의 위기와 한국 - (2)

지구적 위기 속 한국의 역할?

임명묵

정보 시대의 선도국가

새로운 다극 세계에서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은 이러한 질문에 익숙한 편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는 편하게 의지할 수 있는 일극의 제국에 편승할 때 큰 이득을 보았던 역사였고, 제국의 해체와 다극 세계의 도래는 언제나 한국인들에게 시련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전통 시대 한국은 중화 제국의 우산 아래에서 발전했고,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 제국, 현대에는 미 제국과 함께하며 이득을 보았었다. 그러나 중화 질서가 무너질 때 한국은 자주적 힘을 마련하지 못하고 일본에 의한 식민화를 겪어야 했고, 일본 제국이 해체될 때에는 분단과 전쟁을 겪어야 했다. 미 제국이 유라시아에서 퇴조할 때도 한국은 마찬가지 위기를 겪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기민한 판단력으로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독자적인 중심과 표준을 형성하기에는 너무 작고, 그렇다고 다극 세계의 지역적 제국에 일방적으로 편승하기에는 또 지나치게 커져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서구와 다극 세계 제국들 어디에도 편입되지 못한, 다른 국가들과의 연대를 도모하고 그런 국가군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전범과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일일 것이다. 그 시작을 아세안으로 삼고 나아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까지 확장할 수 있다. 만약 도시, 산업, 기술, 군사, 이주, 문화 등 한국이 새로운 전범을 만든다면 한국에 우호적인 이 같은 중견 국가군들은 한국의 외교적 우군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다가올 세계의 위기에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다극 세계 속에서 제국에 속하지 않은 국가 중 가장 선도적인 국가 정도일까? 한국의 역할을 그 수준에서 그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위한 지향점이 되어야만 한다. 장차 다가올 위기는 생태, 지정학, 디지털에서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생태와 지정학의 면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생태에 개입하기에는 한국의 국토 자체가 너무나 작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대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하지만 디지털만큼은 다르다. 문명적 전환인 정보화의 영역에서 한국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앞서 나가고 있으며, 바로 여기서 한국은 문명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면서, 다극 세계의 제국들도 해내지 못 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다. 빅테크로 대변되는 플랫폼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에 소재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약진하고 있는 대안적 플랫폼들은 모두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스마트 시티를 비롯하여 정보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사회 시스템과 인프라를 설계하는 데 가장 앞선 곳도 중국이다. 한국의 어떤 부분이 앞섰길래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표준까지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회인지 묻는다면, 정보화의 가시적인 영역에서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초고속 인터넷망을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설치했던 것은 빛 바랜 과거의 영광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보화의 선도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은 그러한 하드웨어나 인프라, 혹은 빅테크 기업 차원에서 오지 않는다. 한국은 정보 사회의 참여자들과 구성원들이 가장 깊숙하게 인터넷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가장 선도적인 정보 사회다. 지금 온라인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SNS나 인터넷 방송 같은 요소들은 그 이전에 한국에서 싸이월드와 아프리카 방송을 통해서 실험되었던 것들이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장과 유산을 남겼던 바가 있다. 인터넷이 자극하는 인간의 본원적 욕망, 예컨대 과시나 비교, 소통과 연결, 투쟁과 감각적 자극 등에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열렬히 호응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고밀도로 인터넷을 향유하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 앞선 위치 덕택에 한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선제적으로 발생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나아가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확산(이 역시 인터넷을 통한 일이다) 덕택에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직접적으로 세계 인터넷 문화의 표준을 만드는 단계까지 접어들었다. 대표적으로, 자신이 식사하는 것을 송출하는 개인 방송 문법인 ‘먹방(먹는 방송)’은 ‘mukbang’이라는 형태로 그대로 수출되어 전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서구 사회에서는 이제야 ‘mukbang’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회적 효과들에 주목하면서 이를 탐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정체성 전쟁, 대리만족 해소의 도구로서 무한 경쟁 끝에 초고속으로 진화하는 대중문화 콘텐츠, 사실 대신에 정파와 그에 복무하는 진실만이 남겨진 ‘탈진실 시대’의 미디어 소비 구조, 셀럽에 대한 숭배나 온라인으로 전파되는 새로운 유행 등 모든 온라인 문화 현상에서 한국은 가장 앞서 있다.

따라서 우리가 디지털 시대의 문명 표준을 건설한다고 할 때는, 단순히 도시 구조의 변화, 사물 인터넷 등 하드웨어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디지털 사회가 일으키는 정신과 영혼의 변화까지도 담는 비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영국의 신경과학자 수전 그린필드는 태어나서 바로 디지털 기기에 노출된 새로운 세대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변화를, 기후 위기에 필적하는 ‘마음 변화(mind change)’라고 이야기했다. 이 마음 변화의 양상은 지금까지의 인류가 쌓은 자신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와 문명사에 대한 이해를 모두 동원해서 계속해서 탐구될 필요가 있다. 역으로 디지털화로 발생하는 이 모든 변화는 인간의 본성과 문명의 패턴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단초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인간의 어떤 본성이 디지털 사회와 문화의 어떤 면과 상호작용하는가? 수렵채집 사회, 농경 사회, 산업 사회와 대비했을 때 정보 사회의 특성들은 무엇이 있는가? 이런 관점을 설명해낼 수 있어야 정보 사회의 본질을 진정으로 밝힐 수 있고, 이 변화가 주는 가능성과 위기를 모두 통찰하여 새로운 청사진을 쓸 수 있다.

이 글에서 당장 정보 사회의 성격과 그 함의를 논하기에는 너무 이를 것이다.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는 변화이며, 엄청나게 근원적 차원에서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힘이기 때문에 온전한 그림을 그리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로서 거의 확실해진, 정보 사회가 만들어낸 주요한 변화이자 위기를 하나 꼽을 수는 있을 것이다. 바로 ‘대다수 인간의 무의미화’이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대다수 인간이 시스템 속에서 의미 있는 산출물을 내기에는 너무 무력해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다수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삶 속에서 의미를 느끼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두 차원은 굉장히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먼저 정보화로 인하여 육체적 노동, 정신적 작업, 나아가 예술 영역에 이르기까지, 평균적 수준의 개별 인간의 필요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은 의심할 수 없는 추세다. 물론 여전히 문명을 작동시키는 주체는 생물학적 인간이나, 대체가 가능해지고 있으며 그 영역이 늘어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말 중요한 최상층의 몇 영역을 제외하고, 인간 고유 영역은 역설적으로 기계를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값싼 활동으로 국한될 것이며, 그런 자리들은 값싼 임금을 기꺼이 감수하는 저위도 지역에서 온 이주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정보화가 깊이 진전된 선진국 사회에서 다수 인간은 하위 영역에 국한된 인간 활동에 참여하느니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인간 활동이 점차 무의미해지면서 선진 사회의 다수 인간, 특히 정보화에 깊이 침윤된 인간들은 삶에서 극심한 공허를 느끼고 있다. 전통적인 삶에서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추구할 수 있었다. 노동, 자기표현, 전통이 지시하는 의례와 상징, 가족과 지역 사회는 모두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의미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정보화는 이 모든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노동은 대체되고 있다. 자신의 주변 세계에서 자기표현으로 의미를 얻던 사람들은, 정보화를 통해 전국 단위 경쟁에 노출되면서 자신의 재능이 턱없이 부족함을 깨닫고 무의미함을 느낀다. 전통과 종교는 감각적 콘텐츠 속에서 순식간에 녹아버리고 있다. 지역사회는 높아진 이동성으로 해체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넓어진 인식 지평 속에서 가족을 만들기를 점차 꺼리고 있다. 그리하여 지적 능력, 창의성, 육체적 매력 등의 특질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활동은 모두 무가치한 쳇바퀴에 불과하다는 실존적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첫 번째 요인, 그 사회 속 사람들의 활동이 얼마나 빠르게 대체되고 있는지와는 연결되어 있긴 하나 근본적으로는 별개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보 네트워크 속에 얼마나 깊이 빠져들었는지, 초연결망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광대함을 얼마나 인지했는지의 문제다. 한국이 정보 사회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두드러진 성취를 내고, 또 마찬가지로 가장 극심하게 심리적 문제와 사회적 갈등으로 앓고 있는 이유는 구성원 대부분이 참여하는 고도의 정보 사회에 가장 먼저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부탄에 확산되자마자 행복 지수가 급락했다는 사실은, 이 과정이 사실상 역진 불가능한 거시적 추세임을 입증한다. 한국의 가장 놀라운 상품이 ‘아이돌’이 된 것은 이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말 그대로 일상에서 공허를 느끼는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능하고 우수한 인적 자원들이 펼치는 경연을 숭배하고, 그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사하는 식으로 대리적으로 의미를 찾게 된 것이다. ‘한국산 우상’, K-POP 아이돌의 확산은 세계적으로 무의미와 공허가 깊이 퍼지고 있다는 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원산지’인 한국 사회가 그런 과정 속에서 우상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다수 인간의 무의미화’는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근대적 인식틀로 이 현상을 바라보면 이는 근대적 이상의 끔찍한 붕괴다. 하지만 인간의 위계와 평등, 그에 대한 인식과 사회 체제는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를 거쳐온 바 있다. 언제든지 조건에 따라서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관념이라는 것이다. 피터 터친이 이야기한, 위계와 평등을 계속해서 오가는 ‘인간 평등의 Z 곡선’은 근대에 평등으로 향했으나 이제는 다시 위계, 그것도 존재론적 수준의 위계로 다시금 이동하고 있다. 이것이 정보혁명이 생물학적 인간의 진화, 농경과 국가의 탄생, 기축 사상, 근대 이데올로기, 산업혁명 등의 변화에 필적하는 문명사적 대전환인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다. 사실 그 이외에도 정보화에 따른 인간 영혼과 정신의 변화가 어느 영역에서 어느 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최선도 국가인 한국을 집중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업사회를 알기 위해서 영국과 미국을 보아야 했다면, 정보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그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과 중국을 보아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정보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도래하는 현상과, 나타날 수밖에 없는 위기를 잘 가려내고, 새로운 문명과 사회, 문화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그 토대를 파악해야만 한다. 바로 그를 통해서 정보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표준을 도출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사이버 문화 표준은 다른 국가들, 심지어 우리보다 훨씬 강력한 제국들에도 호소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그들이 아직 진입하지 않은 영역에 우리는 이미 진입해 있기 때문이다.

나가며

20세기 말에 시작되어 21세기에 가속화되고 있는 작금의 변화는 지금까지 모든 인식의 표준이라고 생각해온 서구적 인식론, 서구적 세계관의 쇠퇴로 특징 지어질 것이다. 서구 근대의 세계관은 18세기에 출현하여 20세기 중반에 절정에 달했다. 이 세계관은 인간 문명에 잠재되어 있던 엄청난 잠재력을 깨웠고, 인류는 지식의 힘을 바탕으로 화석 연료의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사용하며 인간 사회와 지구의 생태 환경 모두에, 나아가 우주 공간까지도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로 거듭났다.

한국을 포함하여 디지털 사회에 열렬히 참여하고 있는 아시아는 새로운 문명을 선도적으로 이끌면서 서구 중심성을 해체하는 지역이면서도, 디지털 사회와 기존의 세계관이 일으키는 충돌과 혼란을 가장 격렬하게 경험하는 지역이다. 이는 달리 말해 아시아, 특히 한국이야말로 신시대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서구적 인식을 지니면서도 그것에 완전히 속하지 않은 여타 아시아 사회와 함께 새로운 디지털 사회의 표준을 세우는 것이, 전환기의 한국이 가장 존재감을 높임과 동시에 인류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한류의 확산에 축배를 들 것이 아니라, 이 힘이 원하든 원치 않든 계몽주의 근대성의 패권을 적극적으로 해체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며, 이 힘을 어떻게 파괴적 방향이 아니라 건설적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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