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도시 콤

성스러운 도시 콤

콤의 성지 파티마 마수메 성원을 방문하다.

임명묵

호메이니 가옥을 보고 숙소 근처를 돌아보는데 슬슬 날이 더워짐을 느낀다. 햇살이 강해서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는 3월 초. 거대한 건물이 건축 중이었는데 쇼핑몰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더운 나라다보니 아무래도 현대에 들어서는 쇼핑몰에서 여가를 보내는 젊은 인구가 매우 많은 느낌.

골목길을 걷다가 발견한.. 자세한 내용을 해석하려면 사전 들고 하나하나 봐야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샤히드 하신 버타니라는 건 읽힌다. 샤히드(Shahid, شهید)는 아랍어에서 들어온 말인데 순교자라는 뜻이다. 시아파에서 순교를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어딜 가나 샤히드 투성이고, 유명한 이란제 드론 이름도 샤히드다. 시아파 문화를 공유하는 아제르바이잔에서도 많이 보았다.

월간조선 칼럼에도 실었던 사진.. 콤의 여성들은 히잡 수준을 넘어서 검은색 차도르를 푹 뒤집어쓴다. 히잡 안 쓴 여성들도 이제는 자주 볼 수 있는 테헤란과는 정말 다른 풍경이다. 콤은 순교를 중시하는 정치적 혁명의 도시에, 현재 이슬람 공화국 보수 정치의 심장이니까 한국으로 치면 광주와 대구를 합친 정도의 위상을 지닌 도시다. 그리고 당당히 앞을 걸어가는 몰라도 느낌이 있다. 물론 세속적인 친구들에게 이 사진 보여주면 표정 구겨지면서 당장 치우라고 기겁한다.

이 동상들도 전부 샤히드(순교자)를 기념하는 동상들이다.

실크로드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비단과 양탄자 아니겠는가? 그러나 여기서도 휴대전화는 일상의 모든 측면을 바꾸어 놓았다.

저 빛나는 황금 돔이 콤을 성스러운 도시로 만든 파티마 마수메 성원의 상징이다. 저 성원에서 모시는 파티마 마수메는 시아파 7대 이맘 무사 알 카딤의 딸이다. 시아파에서 선지자 무함마드와 4대 칼리프 알리의 후손을 '이맘'으로 존숭한다는 사실은 이전 글들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다. 하지만 시아파의 이맘 존숭은 이맘 본인들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맘의 친인척, 특히 자손들로도 확장된다. '이맘자데'라고 하는데, zade는 페르시아어로 보통 아들을 뜻한다.

시아파 초기에는 이맘들의 친인척들도 순니파 조정의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순교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맘의 자녀들이 죽은 곳을 그냥 이맘자데라고 부르며 영묘와 사원을 조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파티마 마수메도 콤에서 독살당하여 이곳에 묻히게 되었고, 파티메 마수메 성원은 그가 817년에 죽은 이래로 1200년 동안 시아파 순례객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다.

성원에 들어가기 전에 목이 말라서 물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다. 역시 보수의 심장 콤답게 가게에 이맘 호메이니, 하메네이, 솔레이마니 장군 사진이 가게의 유리문에 붙어 있었다. 카운터에도 저 삼인방의 그림이 딱 걸려 있길래 사진 찍어도 되냐 허락을 구했다. 흔쾌히 수락한 가게 주인장은 "솔레이마니는 참으로 큰 인물이다!"라고 하며 껄껄 웃었다.

파티마 마수메 성원 맞은 편에는(완전 맞은 편이라기에는 거리가 좀 있지만), 현대에 건설된 큼직한 모스크가 하나가 더 있다. 이맘 하산 알 아스카리 모스크인데 원래는 이 장소에 1100년 이상 있던 유서 깊은 모스크였다. 하지만 역사의 풍파 속에 소실되었고, 19세기에 일부 재건되었지만 그리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나보다. 혁명 이후 이슬람 공화국 정부에서 토지를 매입하여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로 삐까뻔쩍하게 지어서 2015년에 완공했다. 앞에 거대한 광장도 그래서 이름이 이맘 호메이니 광장이다.

파티마 마수메를 가기 전에 시장 탐방. 여기도 사파비 제국과 카자르 제국 시대부터 있던 유서 깊은 시장이다. 원래 시장에서는 먹거리 탐방을 해야하는데 라마단이라 주린 배를 움켜쥐고 걸었다...

이란인들이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이 호쉬네비스라고 부르는 서예다. 특히 나스탈릭체라고 부르는 페르시아 서체는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읽기도 역시 힘들어서 개인적으로 나스탈릭체는 간신히 떠뜸떠뜸 읽을 수만 있을 따름이다...

화려한 지붕으로 덮은 바자르(시장)가 중동권 시장 건축의 상징인 것 같다. 이런 구역을 팀체(Timcheh)라고 하는 것 같은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1800년대에 지어졌다고 하니 어림잡아 200년은 된 구조물인데, 콤을 자랑하는 상징으로 꼽힌다.

현대적인 풍의 세밀화 감성으로 짠 카페트 같다. 몽골 제국의 이란 정복 이후 이란 회화에는 중국의 동양화풍 기법이 대거 유입되었는데 그래서 중국 산수화나 인물화 같은 느낌의 그림이 매우 많다.

옛 시장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의 쇼핑몰을 연상케 하는 현대 시장.

날은 더운데 식당이 연 곳은 도저히 찾을 수 없으니 슬슬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이슬람 계율로 꽉 막힌 도시 콤이라지만 길거리 음식 사먹는 거 정도는 봐주는 모양인지, 시장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소프트콘 하나를 사먹었다. 라마단 때 무언가를 먹는 것은 불신자의 의무 아니겠는가? 아이스크림 뽑아주는 아이는 초등학생 정도 되는 나이였었는데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해 주어 고마웠다. 라마단을 어겨도 너그럽구나..

파티마 마수메 근처의 셰이칸 묘지라는 곳이다. 원래부터 콤에서 가장 유서 깊은 명사들의 공동묘지였다는데 지금은 이슬람 공화국과 관련된 성직자, 순교자, 전몰자들이 주로 묻혀있다고.

부담스러운 얼굴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공원에서 잠깐 쉬면서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나한테 말을 걸어온 친구다.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데 대체 외국인 관광객이 이런 재미없는 종교 도시에 왜 왔냐고 물어보았다. 현대사를 공부해서 그 중요한 현장을 보고 싶었어요라고 답하니 일단은 알겠다고 한다. 나도 당신은 그럼 콤 사람이냐고 하니까 그건 아니고, 이란 남부의 가장 아름다운 역사 도시인 쉬라즈 출신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쉬라즈를 못 갈 수도 있을 거라 하니 그건 정말 잘못된 선택이라고, 반드시 쉬라즈에 와야만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쉬라즈에서 대체 콤까지 무슨 일로 왔는지 이유를 들어보니, 이슬람 공화국의 종교 도시 답게 사법 관련 기관이 여기 많이 위치해 있고, 그래서 법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법 공부를 지금은 마쳤고 올해는 변호사 시험을 칠 것이라고. 그래서 그럼 이란에서 재판할 때는 성직자들이 모든 걸 다 결정하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 친구의 답변: 성직자들이 사법 행위 전체를 담당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배정 받기는 한다. 내가 노리는 민간 변호사들은 성직자들과 일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그들이 '오픈 마인드'가 아니라 '내로우 마인드'라서 그렇다고 한다.

좋은 여행 되라며 덕담을 듣고 나는 파티마 마수메 성원으로 향했다.

테헤란 남부 레이 시에서 들렸던 압돌 아짐 성원이나 파티마 마수메 성원처럼 진짜 크고 중요한 성원은 줄을 서서 검문 검색을 받아야 한다. 가방도 다 까서 보여주어야 하고. IS 같은 친구들이 이단을 공격한다고 테러를 저지르는 일도 많고, 이런 종교 시설에는 군중 밀집도가 높아서 한 번 테러가 나면 피해도 매우 커서 그럴 것 같다.

이슬람 시설 답게 남녀유별이 꽤 있는데 이 구역은 여성 신자(무슬리마)들을 위한 곳.

모스크의 이런 장식을 '미흐랍'이라고 하는데, 메카를 나타내는 방향인 '키블라'를 보여주는 장식이다. 여기도 나름 황금 사원이라서 황금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반짝반짝 장식된 화려함의 극치

길게 망토인지 두루마기인지 하여간 전통 복식을 늘어뜨리며 성원 내부를 오가는 몰라들이 정말 매우 많다.

모스크에 여러 기도실이 있는데 내부에서 한 몰라가 단상에 앉아서 신자들에게 무언가 설교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성지답게 어딜 가나 이슬람 경전 공부에 열중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흰수염의 저 노인은 지금의 이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다시 정면에서 바라본 파티마 마수메의 황금돔.

콤은 사실 호메이니 가옥과 파티마 마수메를 빼면 내가 딱히 가고 싶은 곳이 많은 도시는 아니었다. 현대의 정치적 중심이지만 대부분은 시아파 성지와 종교 교육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내 이란 친구들이 대체 콤을 왜 가냐고 묻는 이유는 확실히 있었다. 그래서 밤이 될 때까지 숙소에서 누워서 퍼져 있다가 그래도 하나는 더 봐야지 하면서 콤 근교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콤 중심에서 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잠카란 모스크이다. 잠카라니라는 사람이 시아파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마흐디, 12번째 이맘을 만난 기적이 있었던 곳이라고 알려져 모스크가 세워지고 성지가 되었다. 건축은 사파비 양식인데 이슬람 혁명 이후에 중축된 것 같긴 하다.

밤에 녹색 불을 찬란하게 밝히고 있으니 너무 오리엔탈리스트 같은 소리긴 하지만 신비로운 실크로드의 도시 한 가운데를 지나는 느낌이 들긴 했다.

가자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연대의 상징이 이란 어디를 가나 걸려 있는데 여기에도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파라지의 문을 여는 신비한 열쇠이다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데... 파라지가 뭔지는 찾아도 잘 모르겠다.

역시나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잠카란 모스크의 내부.

잠카란 모스크까지 둘러보고 다시 택시를 타고 숙소 근처로 왔다. 이제 해가 지니까 사람들이 밥을 먹기 시작한다. 라마단 이후에 먹는 밥을 이프타르라고 보통 하는데 이전에도 설명했듯이 부자와 빈자가 함께 고통과 행복을 나누는 평등주의 정서가 깔려 있는 행사다.

자선단체에서 밤에 이렇게 무료 이프타르를 나눠주면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서 밥을 받아간다.

한국에서도 라마단 기간에는 이태원 중앙 모스크를 비롯한 모스크들에서 이프타르 행사를 하는데 불신자들도 가서 얻어 먹을 수 있긴 하다.

과거는 하나의 환상이다. 20세기 공산주의 사상에 관한 에세이. 프랑수아 퓌레.

프랑스 혁명을 비판적으로 보는 수정주의의 대가이자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했던 퓌레의 저작이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도 기본적으로 반공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서구 보수주의 사상가의 책도 번역해주신 듯. 하지만 이슬람 혁명은 프랑스에서 발원한 급진주의 전통과 소련-제3세계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았는걸.. ㅜㅜ

성스러운 도시에서 위대한 삼성 제국을 마주하며 애국심을 키웠다.

콤을 가로지르는 개천 사이를 연결하는 아한치 다리다. 원래는 물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 이란이 수자원 문제가 심각해서 말라붙은 강이 너무 많다고. 지금은 진짜 도림천을 연상케 하는 아담한 물만 흐른다.

이란식 야채 카레 고르메 삽지 덮밥. 숙소 근처를 서성이다가 불을 밝히고 있는 카페가 있길래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원하게 마셔주려고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한국인의 등장에 카페 내부의 전원이 당황하였는데, 영어를 잘 하는 젊은 주인장이 어느 나라 사람이고 여긴 왜 왔냐는 질문을 친절히 던져주셨다. 심지어 다른 손님들은 너 무슬림이냐, 여긴 왜 왔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마시고, 야식도 땡겨서 약식 덮밥까지 시켜서 배를 채우고 있자니 어떤 노신사가 들어오신다. 하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노신사께서는 여기 단골인지 주인장과 손님들과 이란식으로 포옹하고 인사를 나눴는데 나를 보더니 어? 얜 누구야?라고 하신다. 이란 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라고 하니 갑자기 핸드폰을 들어 무언가 타자를 열심히 친다. 나에게 자기 화면을 보여주는데 구글 번역기가 떠있고, 이분이 한국어로 번역을 맡긴 문장은..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혁명이 어째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나?"

순간 당황해서 이걸 대체 뭐라고 답변해야 이 사람이 좋아할까, 정치 얘기로 답변 잘못 했다가는 큰 일 나는데 등등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결국 내가 답변으로 선택한 문장은

"제국주의가 종교를 억압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안경을 벗고 주의깊게 화면을 보며 구글 번역기에 페르시아어로 번역된 문장을 읽으신 노신사는 환하게 미소를 짓고 박수를 치더니 주인장을 보며 뭐라뭐라 말을 건냈다. 그러더니 주인장이 나에게 영어로 이렇게 답을 했다.

"네 커피 이 어르신이 사신대."

역시 어디를 가나 빠른 판단으로 적절한 말을 던지는 것이 생존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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