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은 무엇이었나? 앞서 올린 여러 책의 서평에서 많이 이야기한 주제지만, 냉전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초강대국이 계몽주의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지구적으로 투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직접적 무력 충돌을 회피하는 전면적 경쟁 체제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1947년에서 1989년까지의 시기를 냉전이라는 렌즈를 쓰고 보면 실제 그 시대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많은 주장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반박이 20세기 후반은 냉전보다도 탈식민화가 훨씬 더 중요한 현상이었으며, 냉전은 그저 탈식민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부속된 국면에 불과했다는 주장이다. 유사하게, 다른 이들은 20세기 후반은 미국의 압도적 패권이 관철되는 시기였고, 소련은 그 과정에서 잠시 걸림돌이 되었던 존재였다는 주장도 있다. 이 두 주장은 결국에는 제국주의, 혹은 미국 패권이라는 거대한 힘이 20세기 후반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구조고, 소련과 소련이 표상한 이념인 사회주의는 역사적 중요성이 훨씬 약하다는 함의가 깔려 있다. 예컨대 20세기 후반이 탈식민화의 시대였다는 주장에서 소련은 장기적 탈식민화 과정의 연속에서 활동한 국가고, 탈식민화를 지원하고 촉진한 주체로 등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유럽 식민주의를 그대로 내면화한 존재로서 소련 진영 또한 유럽적 근대성을 강요하고 탈식민화를 가로막은 이들로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소련이 미국에 맞서는 동등한 수준의 강대국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런 시각은 냉전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생각하면 사실 잘 와닿지 않는다. 냉전을 표시한 지도를 보면, 유라시아의 거대한 육지를 장악한 소련이 빨간색으로 색칠되어 있고, 동유럽의 수많은 국가를 바르샤바 조약기구 형태로 거느리고 있었으며, 중국과 베트남까지도 공산주의 세력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부터 미국 턱 밑의 쿠바까지, 그야말로 소련과 공산주의의 존재감이 ‘지구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엄청나게 보이지 않는가? 물론, 북미 전체와 대서양 건너편의 서유럽 국가, 호주와 남한, 일본 같은 태평양 국가들에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파랗게 칠하고 있는 자유 진영도 마찬가지로 대등한 세력처럼 보인다. 이렇게 세계 육지의 구석구석을 서로 나눠서 통제하고 있었으니 우리는 이 시대를 ‘냉전’, 혹은 ‘양극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양극 경쟁은 서유럽과 동유럽에서는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형태로, 동아시아에서는 남북한 분단과 베트남 전쟁으로 드러났고, 심지어 스푸트니크와 가가린, 아폴로 계획이 차례로 나타나며 우주로까지 확대되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