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군은 어떻게 싸우는가? (4): 정치와 전략의 조정
전투와 전장 너머의 개혁
3. 치밀한 정치전: 바그너 그룹과 정보-심리 작전
러시아는 2010년대 돈바스와 시리아 등에서 역외 군사활동이 증가하고, 그 결과 서구와의 군사적 대립 구도 형성, 제재로 인한 경기 침체와 민심 이반이 연쇄 효과로 발생하며 본격적인 정치전의 필요성도 절감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외교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군사 활동을 벌이고, 국외와 국내에서 러시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적대자들에 대한 흑색선전을 벌이고, 대내외적으로 강조할 새로운 러시아적 이념을 만드는 작업들이 포함되었다. 재작년에 출간한 내 책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하는가>는 기본적으로 이 정치전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군사적인 차원에서 2010년대 러시아의 정치전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전개되었는데, 바그너 그룹의 활용과 정보-심리 작전의 발전이 그것이다.

2014년에 결성된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가 국내 정치와 외교 면에서 부담을 지지 않고 신속하게 군사력을 투입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등장했다. 물론 이전부터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제3세계 게릴라를 지원하고 GRU(정찰총국), KGB와 같은 정보 기관들을 통해 해외 작전에 은밀히 개입하는 데 능숙한 국가였다. 푸틴 체제는 국내에서도 안나 폴리트콥스카부터 보리스 넴초프까지 다양한 정권 반대자를 처치하는 데 체첸 출신 암살범들을 활용해 사법적 논란을 최소화하며 폭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돈바스와 시리아에서 필요한 방법론은 다소 다른 것이었다. 러시아는 군 장병과 그들 가족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면서도 상당한 수준의 전투병을 해외에서 일어나는 전투에 파병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서구 국가들과의 준비 안 된 충돌도 최소화해야만 했다. 즉, 언제든지 정부가 자신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있으면서도 간편하게 투입할 수 있는, 정부의 책임 범위 바깥의 무력 집단이 필요해진 것이다. 2014년에 GRU 출신 네오나치인 드미트리 우트킨과 유력 식품 사업가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합작해서 생긴 PMC(민간군사기업) 바그너는 바로 그러한 무력 공급을 담당해줄 대표 기업이 되었다. 러시아 정부, 군과 은밀히 계약한 바그너 그룹은 폭력 성향 분출과 모험을 원하는 사회 하층의 남성들을 끌어모았고, 돈바스와 시리아에서 가장 위험한 작전 일선에 투입되면서 점차 모습을 알리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의 장비와 훈련 지원은 이들이 용병임에도 무시 못할 수준의 전투병으로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후 이들은 러시아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노력했던 아프리카에 투입되면서 더 공세적인 외교의 도구가 되었다. 리비아, 모잠비크, 말리 등지에서 이들은 러시아가 후원하는 정치 세력을 위해 무력을 행사하고, 알카에다나 IS 계열 반군 토벌 작전에 나서며 러시아의 아프리카 네트워크의 중핵으로 부상했다. 특히 바그너는 아프리카에서의 작전을 통해 자원 채굴권을 따내고, 수익을 공유받으면서 독자적인 재정 기반까지 갖추기 시작했다.


전투 참여자들의 심리와 국내외의 여론 또한 러시아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더 정교하게 조율되어야만 했다. 소련은 이미 수학자 블라디미르 레페브르가 개발한 재귀통제 모델을 통하여 인간 인지와 심리에 기초한 심리 작전 교리를 발전시켜 온 역사가 있었다. 러시아 연방은 이를 계승하여 2010년대 인터넷, SNS, 스마트폰 시대에 맞는 방법론을 개발해야만 했다. 러시아는 2000년대 색깔혁명이 서구가 후원한 정치전으로 인하여 발생했다고 인식하며 자국의 심리전을 대응적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라 정당화했다.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키르기스스탄의 사례를 통해 크렘린에서는 서구의 NGO와 언론이, 구소련 국가에서 반러시아 정치인을 후원하고 대중 봉기를 부추겨 러시아를 위협한다는 세계관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다. 이에 러시아의 심리전 전술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첫째로는 RT(Russia Today)로 대표되는 기존 언론을 더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스푸트니크 뉴스 등 여타 언론사를 신설하여 러시아의 입장을 세계에 선전하는 것이었다. 둘째로는 선전 네트워크에 실어나를 대안 프로파간다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서구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분열을 조장하고 공동체를 파괴하고,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동시에 코소보에서 돈바스와 시리아 등 민족 분쟁 지역에서 서구가 상대편을 악마화하고 오히려 극단주의자들을 후원한다는 대안 서사를 유포했다. 셋째로는 미디어 네트워크와 대안 프로파간다를 통해 정보 수용자들의 인지를 포화시키는 전술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돈바스 반군이 말레이시아 항공기를 격추했을 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의한 추락, 돈바스 반군에 의한 추락, 기상 상황 악화에 의한 추락 등 수많은 시나리오를 동시다발적으로 유포하며 사태 파악 자체를 오리무중으로 밀어넣었다. 훗날 블랙박스와 통신 자료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을 때는 세계 여론의 관심이 한참 지난 뒤가 되었다. 이러한 역정보 작전은 프리고진이 운영하는 여론 기관인 ‘인터넷 연구소’를 통해서 SNS에서 주로 수행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트롤 부대로도 알려진 심리전 담당자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계정에서 숱한 정보를 살포하고, 봇을 통해서 SNS 플랫폼의 피드를 장악해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혼란에 빠지도록 유도했다. 일종의 탈진실 전략이라 할 수 있는 정보-심리 작전은, 디지털 정보 환경에서 형성된 기존의 사실 판단 기준과 미디어 권위에 균열을 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러시아는 사실을 직접 은폐하기보다는, 복수의 해석과 과잉된 정보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저비용의 간접적 심리전 수단을 실험하며 그 효과를 점차 확대해 나갔다.

4. 전략 단위의 개혁: 극초음속 미사일과 군산복합체 통폐합
마지막으로 전략적 차원에서도 러시아군은 2010년대에 커다란 도약을 추구했다. 전략 차원에서 러시아군의 핵심은 단연코 냉전 시대부터 구축된 핵무기와 미사일 전력이었다. 이중에서 핵무기는 가장 정치적인 층위의 무기였고, 교리 자체도 냉전 시기에 골자가 완성되었기에 큰 변화를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사일은 꾸준한 기술 혁신을 통해서 전장의 환경을 급속히 바꾸고 있는 무기였다. 푸틴 시대에 러시아군은 자국의 노후한 미사일을 정리하고, 생존성과 정확성을 높이는 미사일 현대화 작업을 꾸준히 추구했다. 러시아의 미사일 혁신에 자극을 준 사건은 2002년 미국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대탄도미사일조약(ABM 조약) 탈퇴였다. 본래 냉전 시대에 미소 양국은 상호확증파괴(MAD)를 통한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고, 상대측의 선제 핵공격을 서로 묶어두기 위하여 대탄도미사일, 즉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의 전면적 적용을 시도하지 않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그러나 네오콘식 일방주의를 밀어붙인 부시는 ABM 조약을 탈퇴했고, 푸틴은 서구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던 시기였음에도 불편한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이후 러시아는 2000년대부터 미국의 MD가 러시아의 전략적 자율성을 침식하지 않게끔 대응 수단을 개발하는 데 골몰했고, 2010년대부터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결과물이 바로 극초음속 미사일이었다.

초음속 미사일은 일반적으로 마하 1에서 5의 속도로 움직이며, 위협적이기는 해도 상대적으로 단순한 궤도로 운항되기에 컴퓨터의 발전에 따라 요격 체계도 신속히 자리를 잡았다. 러시아는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두 가지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첫째 혁신 방향은 요격 체계가 대응조차 못하는 마하 5 이상의 ‘극초음속’의 달성이었다. 둘째는 미사일의 궤적 자체를 극도로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만든 뒤에, 말단 부분에서 정확한 유도를 통한 목표물을 타격하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러시아는 미국의 MD를 뚫고 러시아의 전략적 위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타격 체계의 개발을 시도했다. 푸틴은 그 중간발표로서 2018년에 ‘러시아 연방의 6가지 신무기’의 개요를 공개했는데, 대체로 전략 수준에서 사용될 무기들이었다. 1. ICBM에 탑재될 극초음속 미사일 아반가르드. 2.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 3M22 치르콘. 3. 공중 발사 극초음속 미사일 Kh-47M2 킨잘. 4. 신형 ICBM RS-28 사르마트. 5. 핵추진 어뢰 포세이돈. 6. 핵추진 순항 미사일 9M730 부레베스트닉. 처음 푸틴이 6종 무기를 공개했을 때 미국과 서방측 관찰자들은 이러한 무기들이 전략적 상황을 본질적으로 바꿀 수 없으며, 러시아군의 R&D 예산 제약과 인력 유출을 고려했을 때 목표한 성능을 낼 수 없다며 회의론을 표했다. 실제로도 실험 실패와 개발 과정에서의 사고 뉴스가 이후에도 계속해서 쏟아졌다. 그러나 아반가르드, 킨잘, 치르콘으로 대표되는 극초음속 미사일에서만큼은 중대한 진전이 있었고, 이 세 무기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실험적으로 배치되면서 조용히 러시아군에 데뷔했다.


러시아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통해 미군의 화력 투사 플랫폼의 취약성을 극대화하기를 원했다. 기본적으로 북미라는 본진이 아니라 유라시아라는 원정지에서 싸워야 하는 미군은 종심이 없다시피 한, 공간 제약이 극심한 플랫폼을 산개하여 적국을 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전세계의 주요 섬과 유라시아 대륙에 집중된 미군 기지, 그리고 대양을 순찰하는 움직이는 기지인 항공모함 전단은 하나하나가 일반적 국가 군사력 전체에 비견될 수 있는 엄청난 군사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각 기지는 정찰 자산, 전투기, 방공 자산, 미사일, 지휘사령부, 특수전 부대를 축적했고, 각 항모 전단은 함재기, 이지스 순양함, 잠수함, 미사일을 촘촘히 배치했다. 자연스럽게 미군은 지상의 기지와 해상의 전단을 개별 작전의 기초로 삼았다. 당연히 대규모 군사 작전은 이러한 여러 플랫폼의 합동 작전을 통해서 무지막지한 화력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MD 시스템은 미국 본토를 적국의 전략 미사일로부터 막아내는 역할도 있었지만, 패트리어트나 이지스가 보여주듯 유라시아에 전개된 군사 플랫폼을 보호하는 것도 주요한 임무였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러시아를 위협할 미국의 주요 군사 플랫폼이 달성한 화력과 생존성의 균형에 구조적 균열을 낼 게임 체인저로서 고안되었다. 미군 플랫폼의 얕은 종심은 견고하게 보호되었지만 결정적 타격을 허용할 경우에는 피해에서 회복할 여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유사시 미군의 대규모 화력 전개를 위협하고, 오히려 화력 플랫폼의 취약성을 극대화하여 미군 개입을 억제한다면 러시아는 군사적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군사 장비들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군산복합체 개혁이 있었다. 소련은 국방부 산하의 설계국(OKB)가 제각기 경쟁적으로 R&D를 담당하고, 관련된 다양한 산업 부처(중공업부, 방위산업부, 항공산업부 등등)에 양산을 맡기는 식으로 군산복합체를 운영했다. 이는 거대한 소련 전역에 산업 시설을 운영해야하고, 막대한 국방비 지출 덕에 군사 장비 수요가 엄청났던 소련 시기에는 괜찮게 작동하는 모델이었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는 당연히 유지될 수 없는 모델이기도 했다. 연방 전역에 분산되어 있는 공급망은 소련이 15개국으로 쪼개지면서 엉망이 되었다. 소련이 자랑하던 과학기술 전문가는 미국으로 끝도 없이 유출되고 있었다. 국방비 예산도 대폭 삭감되었고, 생산 시설은 폐쇄되고 노동력이 감원되어 숙련공 손실도 엄청났다. 시장 경제로의 이행 과정에서 설계국과 군수 기업들은 민영화되었으나, 소련의 유산은 올리가르히의 약탈 대상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설계국과 생산업체의 유기적 연결도 끊어져서, 정부 부처를 통한 약한 연결 고리를 제외하면 소련 군산복합체의 파편들은 각자도생에 나서야 했다.

푸틴은 이러한 처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군산복합체 통합에 착수했다. 2007년에는 군수 산업을 총괄하는 국영 방산 기업 ‘로스텍(ROSTEC)’이 설립되어, 러시아 연방 내에 남아있는 설계국과 생산시설을 국가 산하에 두었다. 이후 로스텍은 중복되는 설계국 및 생산시설을 통폐합 한 뒤에, 특정 장비 영역에 특화된 자회사를 거느리는 복합 기업 체제를 만들어나갔다. 예컨대 전차는 니즈니타길에 위치한 우랄바곤자보드가 설계와 생산을 모두 담당하고, 개인화기는 이제프스크에 있는 칼라시니코프 이즈마쉬가, 장갑차는 쿠르간 소재의 기업 쿠르간마쉬자보드가, 방공 시스템은 알마즈-안테이가 담당하는 식이었다. 고용과 기술 혁신의 전후방 효과를 창출하는 항공기 제작의 경우 통합항공기제작사(OAK)가 수호이, 야코블레프, 투폴레프, 일류신 등의 설계국들을 통합한 거대 기업으로 등장했으며 역시 로스텍 산하에 들어갔다. 로스텍 재편의 첫 단계가 끝난 2010년대에 정부는 국방 산업의 경제성을 신경쓰지 않았던 소련 시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로스텍 산하 기업들이 민수용 장비를 생산하게끔 독려했고, 해외 수출 판로의 개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정부는 또한 핵심 R&D 인력에는 커다란 보상을 지급해 인력 유출을 최소화하고자 했고, 군수 생산에 종사하는 엔지니어와 숙련공들에게 민간 산업을 상회하는 임금을 지급해 이들을 푸틴 체제의 수혜자이자 충성파로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끝으로 쇼이구-게라시모프 체제에서 로스텍이 수행해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과업은 공급망 재조직이었는데, 특히 우크라이나와의 문제가 핵심적 이슈였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시절 러시아 바로 다음 가는 설계국과 군수 생산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하리코프의 말리셰프 전차 공장과 드네프르페트롭스크의 유즈마시 미사일 공장, 키예프의 안토노프 설계국은 소련에서 양적, 질적으로 모두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소련 해체 이후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유지할 때까지는 이 우크라이나 기업들은 러시아 군수 기업들과 활발히 거래하면서 소련 군산복합체의 유산을 지켜나갔다. 러시아군의 최신 장비에도 알게 모르게 우크라이나 산업체에서 생산된 부품이 섞여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크림 합병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가 준 적대관계로 경색되면서, 크렘린은 로스텍에게 우크라이나에서 도입하는 방대한 부품을 모두 국산화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이 재조정은 러시아가 주권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군수품을 수급하여 향후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프로젝트가 되었다.

다음에는 2014-2015년 돈바스와 2015년-2017년 시리아에서 러시아가 새로운 현대전 사상을 어떻게 실험했는지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