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강의 시작, 리빈스크

볼가강의 시작, 리빈스크

러시아의 젖줄이 시작되는 곳

임명묵

다음 일정은 야로슬라블에서 늦은 오후에 버스를 타고 리빈스크에 가는 것이 되었다. 리빈스크는 볼가강의 발원지로서, 내륙 러시아의 광대한 수계망이 시작되는 곳이다. 리빈스크에서 동남쪽 야로슬라블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볼가강 본류이고, 살짝 서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지류인데, 여기서 서쪽으로 계속 가서 트베리를 향하면 르제프에서 보았던 볼가강이 나오는 것이고, 계속 남쪽으로 가면 모스크바강이 되었다가 오카강으로 합류한다. 오카강은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볼가강과 합강한다. 카잔의 동쪽으로 나 있는 다른 줄기는 카마강인데 작년 여행에서 보았던 우드무르트 공화국의 이제프스크와 바슈코르토스탄 공화국의 우파가 카마강 권역이다. 카마강에서 더 상류로 올라가면 우랄의 페름이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이곳도 언젠가는 갈 기회가..

리빈스크와 야로슬라블은 대략 90km 정도의 거리로, 차타고 1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한국 기준에서도 그야말로 인근 도시이다. 리빈스크 또한 야로슬라블 주에 속해 있기도 하다. 인구는 소련 시절 전성기 25만이었다가 지금은 급속하게 줄어서 대략 18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노브고로드와 키예프 사이의 넓은 수계망에서 동슬라브(루시)가 발흥하였음을 생각했을 때, 이곳 또한 역사적으로 오래된 도시임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몽골의 파괴를 거쳐 도시가 오늘날의 기틀을 다진 시기는 18세기 이후였다. 다른 여러 러시아 도시와 마찬가지로 소련 시절에 다양한 산업 기반이 건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시간 반 동안 사람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운 광막한 평야와 삼림만 있었으나.. 그래도 버스 정류장은 있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타고 내리는 것이 신기. 뭐 한국도 시골은 마찬가지긴 하다.

버스가 철도 건널목을 건너는 사이에 잠시 찍었다. 어디로 향하고 어디까지 가는 노선일까..

러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지어진 리빈스크 시. 여기서 할 일을 해두었어야 하는데 그 일을 처리하지 못하여 나중에 깊이 후회하게 된다...

숙소 바로 옆에 있었던 정교회 성당. 1873년에 지어진 것이라는데 1920년대에 소련 당국에 의하여 성당으로의 기능이 정지되고 군 시설로 쓰였다고 한다. 성당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야채 저장고로도 쓰였다는데... 어쨌든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에 복원이 결정되어 1995년에 다시 예배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다 쓰러져 가는 것 같은 흐루쇼프 시대스러운 아파트입니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실내 인테리어가 너무 잘 되어 있었고 에어컨도 아주 빵빵하게 나왔다. 1층에 있는 마트 체인 마그니트에서 냉동 식품을 구매한 뒤에 허겁지겁 열심히 먹고 잤다.

리빈스크에서의 둘째 날을 시작하는 블린. 사진이 너무 안 좋게 나왔습니다만.. 밀가루에 우유 등을 넣고 아주 묽게 반죽을 만든 다음에 부침개처럼 부치고, 그 안에 고기, 치즈, 아이스크림, 혹은 연어알 같은 소를 넣어서 싸먹는 러시아의 가장 유명한 전통 요리이다. 간단히 요기할 때 딱인 음식.

리빈스크에서 중요하게 기리는 인물인 파벨 데루노프가 1961년부터 2001년까지 반 세기를 거주하였던 집이다. 데루노프는 이후에도 나올 것이니 설명은 거기서..

숙소 인근에 있는 공원이 잘 꾸며져 있었다.

파벨 데루노프 동상. 데루노프는 8살 때 시베리아의 알타이에서 가족을 따라 리빈스크로 이사하였고, 이후 공학을 공부한 뒤에 야로슬라블-리빈스크 지역의 산업 발전을 위하여 평생을 일했다. 특히 엔진 제작과 기술 개발, 생산 관리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전시는 물론이고 전후에도 계속해서 리빈스크의 엔진 산업 분야에 종사하였으며, 항공산업부 차관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의 주도 하에 리빈스크에는 항공기 엔진 및 다양한 기계 제작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그는 공을 인정 받아 사회주의 노력 영웅 칭호를 받게 되었다.

리빈스크의 소비에트 연방 영웅을 기리는 공원과 그 뒤의 항공기 제작 기념상이 보인다.

소련군 장군인 바토프라는 사람의 동상이라는데.. 아마 이 도시 사람인 것 같다.

리빈스크를 수호하는(?) 군사 병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리빈스크의 항공기 제작 산업을 기리는 기념상. 사마라에서 본 항공기 제작 기념상과 매우 흡사한 디자인이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드높은 오벨리스크 위에 노동자가 항공기 엔진을 치켜 들고 있는 모양새다.

이 작은 도시에서도 그렇게 받기 어렵다는 소비에트 연방 영웅이 이렇게나 많이 나왔다니... 큰 도시보다도 이런 작은 도시에 왔을 때 정말 제2차세계대전이 얼마나 참혹한지 실감하게 한다.

드디어 리빈스크의 볼가강 강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원래 계획은 여기에서 택시 같은 걸 타고 이동하여 볼가강 시작점을 딱 눈에 담고 오는 것이었다만.....

역시 군사 병기가 전시된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볼 때만큼 러시아 여행에서 흐뭇해지는 순간이 없다.

이것은 르제프에서도 보았던, 국제주의 임무 수행자 기념비. 냉전 시대 해외 작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기리는 것인데..

맨 윗줄의 Severnaya Koreya 1950-1953 ㅋㅋㅋ 여기서도 한국전쟁에 나간 사람이 있었나? 소련군은 공군 지원병으로만 출격했으니 항공기 제작 공장이 있는 리빈스크에서 나오는 것도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겠다.

상류로 향하는 화물선. 상류에는 실을 것이 대관절 무엇이 있길래 가는 것이오?

체르노빌 참사에 파견되었던 방사능 피폭자들을 기리는 기념비. 연방 전체의 인력들이 파견되어 대재난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다.

리빈스크 출신의 시인 레프 오샤닌의 동상. 스타일이 상당히 나이스하시다. 소련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수많은 노래의 작사가로 유명한데, 많은 중년들이 이 동상을 보면서 추억에 잠기는 듯 했다.

그가 쓴 유명한 노래. '아 길이여'.

역시 볼가강의 시발점답게 부를라크를 다룬 작품이 하나는 있었다. 증기선이 보편화되기 전에, 강줄기를 거슬러 배를 근력으로 끌고 가는 고된 노동을 맡는 이들을 부를라크라고 했다. 일리야 레핀이 그린 '볼가강의 부를라크'라는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개념이 되었다. 작년 사마라에서 이 그림을 재현한 기념상을 보기도 했다.

'볼가강의 배 끄는 사람들(부를라크 나 볼계)'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18세기나 19세기의 느낌이 물씬 나는 바닥돌이 인상적인 리빈스크의 최중심가.

그리고 어느 소련 도시 최중심가와 마찬가지로 레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리빈스크의 가장 유명한 성당인 스파소-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 유서 깊은 성당인데 지금 건물은 1850년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여기도 소련 시절에 안 좋은 운명을 맞이할뻔 하다가, 운 좋게 살아남고 신기하게 1960년대부터 복원되었다고 한다. 물론 소련 정책 상 성당으로 복원된 건 아니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다가 90년대 중반에 다시 정식 교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날 무슨 행사가 있었나본지 사람들이 바자회 같은 것을 열고 있었다. 교회의 악기 연주단 같은 사람들이 뒷뜰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나들이였다.

저 멀리서 보이는 탑은 리빈스크의 옛 소방탑이라고 한다.

리빈스크의 마지막 볼거리를 찾는 여정 와중에 나타난, 작은 개천과 조그만 콘크리트 다리. 조치원의 조천에도 딱 이런 풍경이 있다. 조금 더 인간의 손에 정비가 된 느낌이지만... 이렇게 보면 무척이나 평온하고 아름답다. 강에 비친 하늘도 한 폭의 그림 같다. 하지만 조천처럼 무서운 형 누나들이 담배를 피며 시시덕 거리고 있으면 별로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겠지.. 다행히 그런 장소는 아닌 것 같았다.

리빈스크는 19세기 후반에 볼가강 석유 산업의 중요 장소로도 떠올라서, 러시아의 석유 산업을 개척한 노벨 가문이 깊이 개입한 공간이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노벨 박물관도 세워져 있고, 도시 한 쪽에 이렇게 루트비히 노벨 동상도 설치해두었다. 구태여 노벨까지 본 이유는, 석사 논문을 바쿠를 가지고 써야해서 러시아와 노벨의 관계에 대해 그래도 조금 친숙했기 때문. 바쿠에서 채굴된 석유는 송유관을 타고 그루지야의 바투미나 러시아의 노보로시스크 같은 흑해 연안의 항구로 주로 흘렀지만, 일부는 카스피해에서 배를 타고 볼가강 하구 아스트라한(작년 여행의 마지막 도시)으로 운송되어 러시아에 공급되기도 했다. 그 볼가강의 시작인 리빈스크와 볼가강의 끝인 아스트라한이 석유로 긴밀히 연결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동상.

그리고 여기서부터 계획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원래는 리빈스크 시내에서 12km 떨어져 있는 볼가강 발원지의 '어머니 볼가 기념상'과 리빈스크 수력발전소를 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표를 사야했다. 하지만 전날 야로슬라블에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본 바에 따르면, 사이트에서 구매가 안 되니 버스터미널로 직접 가서 사라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가보다 하고 여유롭게 도시를 거닐었는데..

노벨까지 보고 리빈스크역 안에 있는 버스터미널 매표소에 가서 모스크바로 가는 버스 시간이 언제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표 없다"라는 답변. 아니 이건 무슨? 생각해보니 인터넷에서 표 구매 창이 안 뜬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때 표가 다 매진되어 있던 상태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문제는 표가 없으면 모스크바의 집에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지금 볼가강 발원지를 보느니 마느니가 문제가 아닌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점심 먹은 지도 얼마 안 되는 대낮에 시간표를 이것 저것 찾아보니, 당장 야로슬라블로 먼저 간 다음에 야로슬라블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정신 나간 방법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시간에 맞춰 모스크바에 귀환할 수가 없었다. 이쯤에서 "아니 그러면 우리 어머니 볼가 기념상은 어떻게 되는 거죠?"라는 질문이 나왔고, 우리는 결국 수많은 대안 시나리오를 모두 검토한 다음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볼가강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니, 언젠가 반드시 다시 와서 어머니 볼가께 인사를 드리자...."

그렇게 2023년 8월의 모스크바-르제프-야로슬라블-리빈스크 여행은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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