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독일과 일본의 시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하여 분쇄되었다. 냉전은 독일의 유럽 제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제국의 처리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점증하면서 발생한 초강대국 대립 상태였다. 폴란드 문제, 독일 문제, 일본 문제, 중국 문제, 그리고 조선 문제는 냉전의 기원에 대한 서사에서 중심축을 차지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되었다.

하지만 서유럽과 동아시아라는 전쟁 전의 지역 중심지 바깥에서는 또 다른 서사가 전개되고 있었고, 그들은 냉전에 다른 이야기를 더할 것이었다. 바로 19세기를 주도했던 영국과 프랑스 등의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과 그들의 식민지의 서사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 민족들은 연합국, 혹은 추축국의 편에서 제2차세계대전에 합류하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그 전쟁을 발전된 국가들끼리 벌이는 ‘남의 전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제1차세계대전을 처음부터 ‘유럽 대전’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대신 그들은 전쟁을 기회로 삼아 꿈에 그리던 자신들의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일본이 아시아주의를 내세우고 점령한 동남아시아에서는, 근대화를 이룬 아시아인이 유럽 제국을 순식간에 몰아내는 것을 보며 유럽의 지배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일본 점령군은 동남아시아에서 식량 징발을 무차별적으로 수행하며 기근을 유발하기도 하고, 반대자들을 잔인하게 탄압했으며, 전시 작전 와중에 민간인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아시아주의 이념 하에서 민족주의자들을 대동아공영권 프로젝트에 일부 참여시키기도 했고, 이들은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일본 이후의 세계, 그리고 유럽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고자 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의 사령관인 야마모토 모이치로와 악수하는 수카르노, 1944년.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는 동남아시아에서 유럽 이후의 세계가 도래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경영했던 제국이 온전한 형태로 유지되는 것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군이 물러나자마자 대대적인 민족 운동이 폭발했고, 각국은 그런 독립 투쟁을 막는 데 집중했다. 동남아시아의 반제국주의 투쟁은 소련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건국부터 반제국주의를 내세운 소련에서는 반제국주의 민족 운동가들에게 사회주의적 비전을 더 호소력 있게 전개할 수 있었고, 그들이 장차 소련과 우호적인 신생 사회주의 국가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다. 미국은 한편 양가적인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유럽 제국주의를 경멸했고, 각 민족이 독립 국가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윌슨주의를 1945년 이후의 세계에서 더욱 강하게 주창할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우려한 것은 속도와 방법이었다. 지나치게 빠르게 유럽 제국주의가 붕괴할 경우에 발생할 혼란,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 친소련 사회주의 세력이 발호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분업 체제에 금이 갈 수 있었다. 전후 동남아시아의 민족 운동은 반제국주의 세력을 지원하는 소련과, 유럽 제국의 질서 있는 후퇴를 관장하면서 전통주의자도 좌익도 아닌 우익 근대주의자들이라는 제3의 인물들을 찾아내고자 했던 미국, 그리고 악착같이 식민지를 들고 가고 싶어 했던 유럽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