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의 심장 타브리즈로

아제르바이잔의 심장 타브리즈로

1500만 이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타브리즈 기행

임명묵

골파예간에서 테헤란까지 5시간. 그 다음 목적지는 이란 아제르바이잔 주의 주도 타브리즈다. 골파예간은 남쪽에 있고 타브리즈는 북서쪽에 있기 때문에 남부 터미널에서 서부 터미널로 가야만 한다. 서부 터미널로 가는 길에 바라본 테헤란의 상징 아자디 타워. 테헤란에 오래 머물렀지만 아자디 타워에 제대로 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이렇게 차 타고 가다가 한 컷이라도 건졌다. 생각보다 아담해서 의외였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원래는 샤히야드 타워로, 1971년 페르시아 제국 건국 2500주년을 기념하는 팔레비 왕조의 프로젝트로 건립되었다. 당연히 샤를 몰아낸 혁명에서 이런 이름을 인정할 수 없는 법이라, 자유(아자드) 타워로 개칭된 것이다. 이란 혁명부터 솔레이마니 추도식, 최근 이스마엘 하니예 추도식까지 온갖 대형 집회들이 열리는 거대한 광장이기도 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서부 터미널로 가기 전에 밥이라도 먹어야겠다 싶어서 인근의 쇼핑몰을 찾았다. 테헤란의 쇼핑몰 푸드코트는 모스크바와 분위기가 무척이나 비슷했다. 마침 해도 져서 사람들이 마음 편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왼쪽 버스에 '타브리즈'라고 불이 들어와 있다. 버스는 한국 고속버스 우등이랑 비슷한데 조금 더 커서 승차감은 더 편했다.

타브리즈까지 버스로 대략 8시간 정도 걸리는 대여정이다. 낮에 차로 간다면 아름다운 풍경들이 나왔겠지만 야간 버스라서 볼 수는 없었다. 잠도 잘 안 와서 쉽지는 않은 여정이었다..

북서부 잔잔에서 타브리즈로 향하는 길에는 산 안에 자리한 광물들이 전부 드러나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타브리즈 가는 길에 꼭 보라는 말도 들었는데 야간이라서 못 봄.. 이미지 출처: 테헤란타임즈

타브리즈 터미널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아침 6시쯤에 도착했던 것 같다. 터미널 건물은 무척이나 현대적이어서 인상적이었다. 하긴 인구 150만 명으로 이란에서 6번째로 큰 대도시다. 일단 예약해둔 호텔에 방문해서 짐을 풀고 몇 시간이라도 잠을 자고 타브리즈 도시 탐방을 시작했다.

라마단 기간이라 그런지 낮에 도시가 한산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북쪽이라서 그런지, 아직 겨울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느낌.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는데 이거 참 쉽지 않았다.

라마단 기간임에도 열 식당은 다 연다. 식당 창을 전부 신문지로 덮어놓고 영업을 안 하는 것처럼 꾸며놓긴 했지만, 문을 열어보니 점심 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한창이다. 이런 식당 찾는 것도 조금은 운빨이라서, 의기양양하게 음식 하나 주문해서 배를 채웠다. 이건 아제르바이잔에서 피티, 이란에서 디지라고 부르는 음식.

저 도기에는 고기, 감자, 콩이 있는 국물이 들어 있는데, 옆에 집게로 도기를 들어서 빈 그릇에 국물과 감자, 고기를 붓는다. 그 다음에 앞에 놓인 빵을 아주 잘게 찢어서 마치 국밥을 말듯이 말아 먹는 음식이다. 전국적인 음식이긴 한데 아제르바이잔 쪽에서 자주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국물을 빵이 금세 머금어서 국밥 같은 비주얼은 잘 안 나오긴 하는데 그래도 아래에 국물이 여전히 많아서 국밥 먹는 느낌 난다.

도기의 밑바닥에는 감자 조금이랑 콩을 남겨두는데, 도구가 따로 있어서 끝부분에 남은 국물, 콩, 감자를 짓이긴다. 이거도 그릇에 담으면 디지 한뚝배기 완성. 우리네 비빔밥처럼 손님이 직접 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브리즈는 유목 제국의 거점으로 이란은 물론이고 중동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상을 점한 도시다. 몽골 제국이 중동을 휩쓸었을 때, 이곳에 자리 잡은 일칸국(훌레구 울루스)이 수도로 삼은 곳이 바로 타브리증였다. 몽골 제국이 망해도 칸국의 수도였던 그 위상은 여전하여 후계 국가들이 오랫동안 수도로 삼았다. 이 시기에 몽골인들이 튀르크화되고 튀르크 유목민들이 하도 많이 자리를 잡으면서, 오늘날 북부 아제르바이잔(아제르바이잔 공화국)과 이란의 남부 아제르바이잔의 인구 전체가 튀르크화 되었다. 그래서 타브리즈에 오니 길거리 사람들은 전부 터키어로 말하는 풍경이 신기했다.

바쿠를 수도로 하는 북부 아제르바이잔 인구는 1000만 명이고, 타브리즈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 아제르바이잔의 인구가 1500만 명이니 실제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적 수도이자 인구의 중심지로 타브리즈가 바쿠와 쌍벽을 이루기에는 모자람이 없다고 하겠다.

물론 현대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여기에 온 이유는 몽골-튀르크의 유산 때문은 아니고, 타브리즈가 1906년 입헌 혁명의 최고 중심지라서 그렇다. 표지판에 서있는 Mashrooteh는 '헌법'을 뜻하는 페르시아어다. 헌법 거리, 헌법의 집, 헌법 시장이 있는 혁명의 도시..

이곳이 바로 헌법의 집. 앞에 두 동상은 아마도 입헌 혁명의 두 지도자 사타르 칸과 바기르 칸일 것이다.

당시 타브리즈는 북쪽 아제르바이잔에서 펼쳐지고 있는 근대화 개혁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많은 이란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바쿠의 석유 산업에서 노동자로 근무했고,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바쿠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들을 조직하여 혁명 운동의 전위로 만들어내고자 노력했다.

당연히 바쿠의 이란 노동자들은 남쪽 고향으로 돌아와서,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했고, 언론과 각종 단체를 조직해서 헌정 운동을 가장 격렬하게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집이 당시 타브리즈 입헌주의자들이 모여서 작당모의를 하던 공간이다.

입헌 혁명을 이란 최초의 근대 혁명으로 여기는 역사 서술 덕택에 이슬람 공화국 정부에서도 이를 기리고 있다. 게다가 입헌 혁명이 러시아와 영국이라는 제국주의 세력의 개입으로 좌절되었으니 더더욱..

헌법의 집 박물관에 한국인이 가니 역시 너는 어디서 왔냐, 여기 왜 왔냐 등등 호구조사가 시작된다. 이분도 호구조사를 하신 분이었는데 여기에 머물면서 각종 그림을 그리는 지역 예술가라고 한다. 타브리즈 입헌주의자의 영웅 사타르 칸을 중심으로 타브리즈의 역사와 입헌 혁명에 관한 각종 작품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다고.

총을 들고 투쟁에 나서는 타브리즈 입헌주의자들. 당시 카자르 왕조의 샤가 테헤란에서 마즐리스(의회)를 폐쇄하고 전제정을 부활하려는 시도를 했는데, 북서부 타브리즈와 길란에서 입헌정의 지속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 기간 정부군이 도시를 포위했으나, 사타르 칸과 바기르 칸이 이끄는 혁명군은 굶주림 속에서도 도시를 방어해냈고, 이후 전제정 복권 시도는 좌절되었다.

기념품점도 나름 충실하다.

입구 자체는 꽤나 소박하다. 그리고 저 벽돌로 쌓인 건물이 타브리즈를 비롯한 아제르바이잔 지역에서 꽤 널리 퍼진 양식인지, 다른 이란 도시들하고는 풍경이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제르바이잔은 소련에서 독립한 바쿠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이지만, 실제 아제르바이잔은 그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알려주는 간판.

이제 타브리즈의 역사적 중심지를 걸어보기로. 날은 여전히 춥다. 이 구역은 1천년 전 즈음인 셀주크 시대에 조성된 도시 시장과 모스크 구역이다.

타브리즈의 명물 중 하나인 금요 모스크.

내부는 더욱 웅장하다.

금요 모스크의 대문. 쌍으로 서 있는 미나렛이 역시 매우 아름답다.

모스크 건축에 대해 잘 알면 쓸 수 있는 말도 많을텐데 이건 뭐 이쪽으로는 까막눈이라...

앞서 내부는 더 웅장하다고 했던 곳의 안쪽이 바로 여기다.

여기서 수염이 덥수룩 하게 난 체코인 배낭 여행객을 만났는데 같은 처지의 외국인 여행객을 만나니까 무척이나 반가웠던 기억.

1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타브리즈 바자르. 위키백과에 따르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나오는 중세의 상업 중심지라고 한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 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 받았다. 한때 쇠퇴했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상인들이 점포를 열고 있었고, 노루즈 기간 동안 쇼핑을 나온 시민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문이 굉장히 오래되어 보인다. 아마 저 내부가 카펫을 주로 파는 팀체 모자파리예였던 것 같다.

타브리즈 바자르의 옛 모습이 이랬을까? 시간 여행을 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저 그림이 걸려 있는 그림 가게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매우 정중하게 그럼요라고 답해주셔서 감사하게 사진을 찍었다.

타브리즈 바자르의 북문. 도시 탐방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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