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와 이슬람의 도시, 타슈켄트 - (1)

소비에트와 이슬람의 도시, 타슈켄트 - (1)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를 둘러보다

임명묵

모스크바에서 4시간 가량의 비행을 거쳐서 타슈켄트로 도착. 이 다음날에 모스크바 공항 전체가 폐쇄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 오니 확실히 더 마음이 편해지긴 하다. 한달에 만원씩 내는 VPN도 필요 없이 SNS를 자유롭게 쓰고, 챙겨둔 달러 조금씩 환전해가며 루블로 쓸 필요도 없이 돈이 필요하면 ATM 가서 내 마스터카드로 출금하면 그만이다.

분주한 타슈켄트 공항에서 ATM을 찾아 우즈벡 숨을 뽑고, 저렴한 심카드까지 마련하면서 우즈벡 여행 준비.

타슈켄트 공항 내부도 그랬지만 외부도 정말 천지개벽한 느낌이었다. 2015년에 여행 왔을 때 사진이 없어져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이런 깔끔하고 잘 정비된 느낌은 전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2018년에 신축&리모델링을 끝냈다고 한다. 공항 앞 택시기사들이 들러붙으며 딱시! 딱시! 하면서 바가지 요금 씌우려는 건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뭐 바가지 좀 써주지 하면서 대충 알만한 가격에 아무거나 잡아서 타고 왔다.

소련 시절 아파트를 리모델링한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거리로 나와서 산책을 했다. 8월이라서 그런지 바깥 기온이 도착할 땐 38도인가 그랬는데, 해가 지려고 하니 점점 선선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도 무더운 건 마찬가지... 이곳은 타슈켄트 중심가이자 부촌인데, 예전에도 '깔끔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제는 점점 깔끔한 걸 넘어서 '화려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슈켄트는 원래 한국과 관계가 깊었고 교민회 역사도 있는 곳인데, K컬처의 부상과 우즈벡인들의 소득 증대로 한국 문화를 일상에서 더 접하고 소비하기가 쉬워진 것 같았다.

길거리를 걷다가 발견한 볶음밥(쁠롭) 집에서 우즈벡에서의 첫끼를 해결했다. 저 실한 고기... 쁠롭은 우즈벡에서는 오쉬(Osh)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편이다. 맥주를 안 파는 집이었던 게 무척 아쉬웠다..

8년 만에 온 타슈켄트에서 가장 놀란 것은 거리를 가득 채운 중국의 존재감.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한자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타슈켄트 중심가 어디를 걷든 중국어 간판이 불을 밝히는 곳 하나쯤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이름부터 판다 레스토랑...

이 동네가 중국인이 특히 많은 동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서투르키스탄(소비에트 중앙아시아)과 동투르키스탄(신장 위구르)을 긴밀하게 연결하려는 중국의 의지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볼 수 있었다. 중국은 연해 지역의 자본에게 인센티브를 줘서 신장의 국경 도시 카슈가르와 호르고스라는 내륙 무역 도시에 투자하도록 독려했다. 아직 수요도 제대로 창출이 안 된 이 지역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고 정부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명청대부터 감숙성 경제를 안정화하기 위하여 강남 지역 상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어서 계속 물류망을 가동시킨 전통도 있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저가 소비재 상품들이 위구르 및 중앙아시아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내륙이라 물류 접근성이 최악이었던 중앙아시아는 중국 덕택에 훨씬 더 저렴한 상품들을 공급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신장 경제의 다각화와 도시화도 촉진해 신장 지역의 전체적 안정 확보까지 노리고 설계되었다고 한다.

현재 대러 제재로 인하여 그동안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에 의존하던 물류망도 타격을 많이 받았는데, 중국은 이 기회를 노려서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잇는 철도 및 도로 노선을 건설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세기 중반이면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자 간판은 보이는 족족 다 찍으려고 했다. ㅎㅎ

타슈켄트 한복판에 있는 타라스 셰브첸코 동상과 기념 벽화. 이곳은 8년 전에 왔을 때 존재도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처음 방문한 곳이다. 타라스 셰브첸코는 우크라이나의 국민 작가이자, 우크라이나 민족 정체성을 탄생시킨 대작가 중 하나로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최고 위인 중 하나이다. 이 동상과 벽화는 2002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아마 신생 탈소비에트 독립국인 우크라이나와 우즈베키스탄의 우애 협력을 상징하는 차원에서 건립된 것 아닐까. 우크라이나 민속 요소와 소비에트식 그림이 섞인 게 꽤나 멋들어졌다. 구글 리뷰를 보니 2022년 이후로 타슈켄트의 러시아인들이 별점 테러를 하면서 빨리 다른 데로 치워버리라고 욕을 하고 있었다..

이쪽 동네는 타슈켄트 최고 중심가이자 부촌 중 하나라서, 학교도 꽤나 멋들어지게 잘 지어진 것 같다. 110-MAKTAB. 막탑은 아랍어에서 학교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소련에서는 각 도시의 학교(쉬꼴라)를 모두 번호로 불렀다. 그런 의미에서 110번 막탑이라는 것은 소비에트와 우즈벡 이슬람 전통의 혼성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오는 길에 하교하는 어린 여학생들을 마주쳤는데, 나를 보더니 자기들끼리 속삭이면서 "까례에쯔? 까례에쯔?" 하던데 내가 쳐다보니 꺄르르 웃는 모습이 흐뭇했다. 말이라도 걸어볼 걸 그랬나.. 그리고 이 사진 오른쪽의 나무 그늘에서는 여학생 하나가 우아하게 발레 연습을 하고 있었다. 타슈켄트도 제2차세계대전 때 유럽 지역의 발레단들이 피난 오면서 발레 교육의 중심지로 부상하였고 오늘에 이른다.

2019년에 알마티를 방문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전통적인 소비에트-중앙아시아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드넓게 드리운 나무 그늘인 것 같았다. 40도에 육박하는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동네가 워낙 건조해서 그늘 위주로 걸으면 그렇게까지 덥진 않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 땀이 식어서 시원하기까지 하다.

이제 타슈켄트의 자랑 지하철을 타러 왔다... 이곳은 코스모납틀라르(Kosmonavtlar, 우주비행사들) 역인데, 그래서 역 위에 이렇게 우주 진출을 기념하는 기념상들을 설치해놨다.

맨 앞에 있는 우주비행사 흉상은 블라디미르 자니베코프의 것인데, 우즈베키스탄 우주비행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혈통상으로 우즈벡인은 아니고, 원래 블라디미르 크리신이라는 러시아인이었다. 후에 타슈켄트로 이주하면서 우즈벡 여성 릴리야 자니베코바와 결혼했는데, 자니벡 칸의 후손이라고 한다. 결혼하며 이례적으로 아내의 성을 따른 그는 우즈벡 민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우주 비행사가 된 그는 여러 비행 임무를 수행하며, '자니베코프 효과'를 발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80대 초반의 나이로 살아있다.

뒤에는 소련 우주 사업에서 늘 기억되는 영웅들, 왼쪽부터 러시아 우주 개척의 선조 콘스탄틴 치올콥스키, 세계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 로켓 과학의 영웅 세르게이 코롤료프.

줴똔.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지하철을 8년 만에 다시 타면서 깜짝 놀랐다. 원래 소련 지하철은 으레 그렇듯이, 이런 조그만 토큰을 하나 사서 넣고 타는 식인데,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표가 QR코드를 그냥 찍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아마 교통카드도 분명 있는 것 같은데, 만드는 법을 몰라서 그냥 매표소에서 돈 좀 주고 QR표 받아서 찍으면서 탔다. 우즈베키스탄은 전진한다...

소련은 언제나 그렇듯 지하철을 자신들 체제를 선전하는 멋들어진 문화 공간으로 설계했었고 타슈켄트 지하철은 특히 그랬다. 중앙아시아 전통 문화와 소비에트 근대성의 합일을 추구하면서 독자적인 예술 양식을 표현하고자 했다. 우주비행사 역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지하철역인데, 천장의 전구들은 별을 표현하고 있고, 마치 우주 속을 걷는 것 같은 푸른 디자인이 참 예술적이다. 양 옆에는 소련 우주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의 그림을 붙였다.

여러 명이 있지만 제일 유명한 건 유리 가가린.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라고 써있다. 가가린 말고도 세계 최초의 여자 비행사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세계 최초의 우주 유영인 알렉세이 레오노프 및 세르게이 코롤료프, 콘스탄틴 치올콥스키 등등도 있다.

앞서 말한 인물은 소비에트 우주 선전의 단골 메뉴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는데, 타슈켄트는 조금 더 특별하게도 천문대를 짓고 정교한 천체 관측을 진행한 티무르 제국의 울룩벡 그림을 걸어놓았고,

'나시 지믈략 코스모납트 자니베코프'. 우리 동네에서 배출한 우주비행사 자니베코프도 기리고 있다. 물론 그는 원래는 크리신이라는 성을 쓴 러시아인이지만... 사실 8년 전에 왔을 때는 그 사실을 모르고 진짜 우즈벡인을 뽑아서 쓴 줄 알았다. ㅎㅎ

전철을 타고 처르수 바자르로 왔다.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철수'랑 발음이 비슷하다고 철수 시장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4를 뜻하는 페르시아어 Chahar(처허르)와 물을 뜻하는 튀르크어 Su를 합친 말이다. 네 개의 강이 교차하는 곳 정도의 뜻이 아닐까 싶다. 타슈켄트 지하철 처르수 역에서 금방 갈 수 있다.

뙤약볕을 견디며 본 학원 광고.. 러시아어, 영어, 수학 등 여러 과목을 가르친다고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나라의 큰 인물이 되어야...

이게 처르수 시장 건물이라고 생각하면서 꽤나 걸어갔는데, 단단히 착각했다. 여기는 서커스 무대로 만들어진 공연장이었다.. 뙤약볕에 지친 몸을 이끌고 걷느라 지쳤는데 전혀 다른 곳으로 와서 허탈했었다. 처르수 시장은 그냥 전철역 바로 옆에 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히잡을 안 쓴 젊은 여성하고, 너무나도 더워보이는 파란자를 쓴 중년 여성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8년 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히잡 쓴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이는 느낌이다. 카리모프 정부가 이슬람 극단주의를 우려한다면서 종교를 철저히 억압했는데, 미르지요예프 정부는 아무래도 훨씬 더 유연한 느낌이고 우즈벡인들 중 신심이 깊은 이들은 이를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겠다. 젊은 여성들 중에서도 히잡 쓴 사람 참 많이 보였다.

햇볕을 가려주는 차양을 지나서..

실크로드의 상징인 정통 페르시아 양탄자들 상점. 저 뒤에 보이는 둥근 돔형 건물이 처르수 시장 건물이다.

이제 현금 쓰지 말고 핀테크로 결제하라는 광고. 이 우즈벡 땅에서도 핀테크와 모바일페이의 물결은 도도하게 흐르기 시작했구나 하면서 감탄했다. 8년 전과는 정말 모든 게 다르다.

1980년대 즈음에 소련이 건설해준 건물로 알고 있다. 안에 들어가면 과일, 빵, 견과류, 향신료, 무엇보다 고기를 파는 큰 시장이 나온다.

8년 만에 다시 보니 역시 감회가 새롭다.

수박과 멜론(듸냐)을 가득 쌓아둔 모습이 풍성해보여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를 보면서 따봉 하나 치켜세워주신다. 기본적으로 우즈벡인들은 우중충하고 무뚝뚝해보이는 러시아인에 비하면 확실히 밝고 인싸기질이 확실하다.

처르수 시장까지 굳이 온 이유는 여기를 오기 위해서인데.. 8년 전에 시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었던 시장 밥집이 생각나서였다. 거기서 우리를 무척이나 환대해 준 식당 아저씨가 생각났다. 물론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안 했지만, 그냥 그 풍경을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무척 컸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리모델링을 싹 한 것인지, 훨씬 깔끔해진 느낌. 예전엔 무엇보다 계절이 겨울이라서 더 황량하고 구질구질해보였던 듯...

아무 식당에 앉으면 어차피 메뉴는 다 똑같다. 볶음밥, 빵, 샤슬릭, 차, 콜라..

어제의 그 집보다는 풍성함은 덜 하지만 분명히 가격이 훨씬 싸서 정말 저렴하게 한 끼 떼울 수 있다. 역시 조선인은 밥심이지.

우즈벡 최대의 장점은 양고기 샤슬릭이 무척 저렴해서 양고기를 물릴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싶다.

배도 채웠으니, 다시 타슈켄트 둘러보러 출발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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