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수도 테헤란 (2): 호메이니 영묘

혁명의 수도 테헤란 (2): 호메이니 영묘

테헤란 남부 근교의 베헤쉬테 자흐라 묘지와 샤 압돌 아짐 모스크 방문

임명묵

테헤란 남부의 주요 사적지를 돌아보기로 한다. 테헤란 지하철 1호선의 맨 끝에 위치한 곳들이다.

테헤란은 북부가 부촌이고 남부가 빈촌인데, 남부 일부 지역은 마약 중독자들과 빈민들이 사는 매우 위험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도 저 구역은 그렇게까지 상태가 나쁜 곳들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테헤란 지하철 탐방.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2000년대에 본격적으로 완공시켜서 지금은 테헤란 시민들의 발로 거듭났다. 아마 중동에서 가장 거대한 지하철 네트워크일 것이다. 가격은 거의 공짜나 다름 없어서 4만 리얄이다. 4만 리얄이라고 하면 크게 보이지만 10만 리얄이 300원쯤 하니까 한 번 타는 데 200원도 안 하는 것이다... 에너지 문제로는 큰 걱정이 없는 나라다보니 이런 식으로 물가 안정을 유지하는 것 같다.

대부분 시민들은 카드 결제로 QR코드가 찍힌 영수증 같은 표를 찍어 타는데, 카드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은 현금으로 표를 사야한다. 그런데 이제 이란도 대부분 카드를 쓰다 보니 현금 발권 창구에 직원이 없는 당혹스러운 경우도 없잖아 있다...

그리고 시설은 좋고 가격도 싼데, 그러다 보니 이 수많은 테헤란 시민들이 죄다 지하철을 타느라 러쉬아워 때는 정말 죽을 것 같다. 게다가 행상인은 뭐가 그렇게 많은지, 안 그래도 혼잡한 테헤란 지하철에 혼란을 한 바가지 더 쏟아붓는 느낌이 든다.

이란은 한국처럼 옛 지명을 역 이름으로 쓰는 게 아니라, 마치 러시아처럼 기념의 차원에서 역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내 호텔 주변인 탈레가니 역은 팔레비 시대의 반정부 성직자의 이름을 딴 것이고, 이란의 위대한 시인 페르도우시의 이름을 딴 역도 있고 등등. 그러다보니 특정 역명과 관련된 예술 작품들을 이렇게 걸어놓곤 한다.

한참을 내달려서 하라메 모타하리 역에 도착. 25km 정도니까 대충 서울역에서 평촌역까지 거리다. 여기는 이란의 저명 인사들이 묻히는 베헤쉬테 자흐라 공동묘지가 있는 곳인데, 베헤쉬테 자흐라 맞은 편에는 거대한 이맘 호메이니 영묘도 자리한다. 사실 이란 현대사에 빠삭하다면 베헤쉬테 자흐라에 가서 유명인들 묘지도 돌았을텐데, 이때만 해도 페르시아어 문자 읽는 것도 벅차던 시점이라서 그건 포기했다.

거대한 이란 국기가 펄럭이면서 이곳이 심상치 않은 장소임을 말해준다.

사실 말이 호메이니 영묘이지 신학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 시설들이 모여 있는 일종의 단지다. 1989년 호메이니의 사망 직후 짓기 시작하여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 단지에 건물들을 추가시켰다.

피자, 샌드위치, 팔라펠.. 이란에서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저런 패스트푸드들이다. 피자랑 샌드위치 엄청 좋아하는데 먹는 것만 보면 서구화된 식생활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호메이니 영묘에서도 피자는 파는 것이다.

직선적 건물이 호메이니 영묘이다. 들어가려면 일단 성소이기 때문에 신발을 벗어야하고, 보안 검색대도 통과해야 한다. 예전에 여기서 테러가 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내부.. 시아파 영묘에는 이렇게 녹색 빛을 발하는 화려한 묘들이 꼭 놓여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본 것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저 안에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인 이맘 호메이니가 잠들어 있다.

건물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거대했다. 이념과 믿음의 언어로 체제를 구축하고 1억에 가까운 사람들의 삶을 규정한 혁명 지도자를 기리기 위한 공간은 대단했다. 또 위병이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레닌 영묘와 달리, 남녀노소가 마실 나오듯이 편안하게 묘 근처에 머무는 것도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영묘를 둘러보고 나오니 나와 인종이 비슷한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인종적으로만 비슷하지 입에서 나오는 언어와 하고 다니는 행색은 페르시아인의 그것이었다. 이런 사람은 십중팔구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다. 1979년 소련 아프간 전쟁과 탈레반 정부 수립, 미국의 침공 등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난민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 많은 수, 특히 시아파들이 이란으로 향해서 난민으로 정착했다. 이란 정부에서 이들의 귀화를 받아주고 있지는 않은데, 옆나라 아프가니스탄 인구가 너무 많고 이란도 인구압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서 그런 듯 하다. 그래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다리어를 쓰는 인구는 언어도 페르시아어와 거의 통하는지라 현지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고 살고 있다.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하층 일자리를 전전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여튼 이들 아프간 사람들 중에 시아파를 믿는 하자라족이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늘 무슨 하자라족 행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자라족은 옛 튀르크, 아니면 높은 확률로 몽골 정복기에 아프가니스탄에 정착한 민족으로 다른 민족에 혈통적으로 동화되지는 않고 문화적으로만 동화된 이들이다. 그래서 한중일 동양인과 매우 흡사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도 페르시아어 쓰면서 돌아다니면 종종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냐고 물어오는 페르시아인이 있었는데 하자라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호메이니 영묘를 뒤로 하고 전철을 타 테헤란 남부 교외 도시인 레이로 향했다. 레이로 가는 사이에 전철 안에서 싸움이 일어났고, 정말이지 퍽! 퍽!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살벌한 구타가 이어졌다. 얼굴이 피떡이 되는데 몇몇 말리는 사람들 빼면 다들 실실 웃는 것이.. 이것이 테헤란인가?

레이는 원래 테헤란은 아니었는데 테헤란 시가지가 팽창하면서 사실상 테헤란과 하나가 된 교외 도시다. 한국으로 치면 고양이나 남양주 같은 느낌이랄까? 사진에서부터 경기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중간에 목 말라서 마트에 갔다. 시원한 맥주라도 하나 마시고 싶지만 이곳은 금주 국가기 때문에... 그리고 오른쪽의 검정물은 당연하게도 코카콜라가 맞다. 역시 미국은 싫어도 콜라는 안 마실 수 없지. 왼쪽의 하얀 막걸리병 같은 것은 둑(dugh)이라는 것인데 터키 케밥집에서 파는 아이란과 같다. 소금이 들어간 짭짤한 요거트다. 요거트 중에서 꾸덕하게 떠먹는 것은 머스트(mast)라고 하고, 물처럼 쭉쭉 들이키는 것은 둑이라고 하는데 이란 생활 필수품이다. 느끼한 고기 요리 먹을 때 둑만한 게 없다.

탄산이 들어간 것도 있고 안 들어간 것도 있는데 탄산 버전도 매우 맛있다. 다만 시큼짭짤해서 한국인에게 호불호는 좀 탈 맛.

이곳은 레이 바자르(시장)이다. 모스크 주변 시장이라서 그런지 아무래도 히잡을 좀 철저히 쓰시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이슬람 건축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네~

레이 바자르를 지나가면 테헤란의 가장 중요한 성소 중 하나인 샤 압돌 아짐 모스크가 나온다. 시아파 성인의 영묘로 출발하며 계속해서 확충된 샤 압돌 아짐 모스크는 인근 도시 테헤란이 이란 근현대사의 중심지가 되면서 역사의 현장으로 부상했다. 19세기 이란의 가장 중요한 황제 나세르 앗딘 샤가 바로 이곳에서 암살당했다. 이후 이란 입헌 혁명 당시 개혁적 성직자들을 군주정이 억압하자, 성직자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군중을 이끌고 샤 압돌 아짐으로 행진하여 피난처(인피부)를 마련해 농성에 들어갔다. 이후에는 그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이란 역사의 명사들이 묻히는 곳이 되었다.

샤 압돌아짐 모스크 옆의 레자 샤 영묘.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그중에는 팔레비 왕조의 창립자 레자 샤도 있었다. 샤 압돌 아짐 모스크를 가리는 저 위용 넘치는 묘는 당연하게도 이슬람 혁명 이후에 혁명 정부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아름다운 페르시아-시아파 건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여성들이 들어가는 입구와 남성들이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다.

사원 내부. 중장년층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젊은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돌아다니다 보면 내부도 무척이나 큰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런 곳에서 성직자들이 설교를 하면서 군중을 선동하고 시위를 시작했으려니 싶었다. 바깥에 광장도 무척이나 커서 괜히 입헌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종교 서적이나 경전을 보며 공부하는 이들. 이란의 제1외국어는 영어가 아니라 아랍어인데, 종교심이 깊은 사람은 기꺼이 배우는 반면 종교심이 없는 이들은 정말로 배우기 싫어한다.

샤 압돌 아짐을 나와서 레이 시 이곳저곳을 걷는데 그중 발견한 네모네모 스펀지밥. 이란의 내 또래들과 얘기해보면 어렸을 때 디지몬 만화영화도 보고 볼 건 다 봤더라.

중간에 열심히 걸어서 방문한 레이의 아주 조그마한 모스크. 이건 묘비인데 이란의 위대한 지성 잘랄 알레 아흐마드의 묘이다. 알레 아흐마드는 서구중독증(Gharbzadegi)이라는 유명한 책을 써서, 이란이 현재 민족의 고유한 발전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매판 지식인들의 무비판적 서구화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알레 아흐마드 이후 이란의 지식인들은 서구중독증을 지양하되 어떤 이란의 발전 경로를 모색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알리 샤리아티의 혁명 이론도 탄생했다.

알레 아흐마드와 역시 유명한 소설가였던 아내 시민 다네쉬바르의 가옥은 테헤란 북부에 있다. 이곳도 방문하려고 했는데 여행 막바지에 기력이 없어서 못 갔다. 그래도 묘는 보았으니..

이란의 묘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다. 묘를 안 밟을 수가 없는 구조..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발견한 케밥집.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닭날개도 있고 무엇보다 간과 염통, 꼬리도 구워먹는 아름다운 문화민족이다.

휸더이와 키여 자동차! 애국심이 차오르지 않을 수 없는 현장이다. 하지만 2017년 미국 제재가 부과되면서 한국 차량의 수입은 중단된 상태이다. 많은 이란인들이 한국 차를 매우 칭찬하며 언젠가 다시 한국 차가 수입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샤 압돌 아짐 모스크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성소는 아니고, 한국으로 치면 '동네 교회' 같은 동네 모스크이다. 동네마다 이런 작은 모스크들을 꽤 자주 마주칠 수 있는 나라가 이란이다.

무슨무슨 순교자 공원이라고 하던데, 이 순교자 공원이라는 것도 돌아다니다 보면 지겹게 보이는 것 중 하나다. 물론 이때만 해도 다 처음이니까 신기해서 열심히 찍었다.

열심히 걷고 또 걸으며 레이 전철역으로 돌아와 호텔 근처의 탈레가니 역으로 향하는 전철을 탔다. 퇴근 시간에 도시 중심부로 향하다보니 전철이 매우 혼잡했는데, 갑자기 또 내 옆에서 나이 든 할아버지랑 젊은 남자랑 투닥거리더니 멱살 잡고 난리가 났다. 난리통에 나도 밀쳐지고 그랬는데 역시 이란 사람들은 언제나 있는 일인양 시큰둥..

테헤란 1호선의 악몽에서 탈출해 숙소 근처의 케밥집에서 닭고기와 양고기 케밥을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케밥집과 호텔 사이에 있는 카페인데 무려 '락 카페'다! AC/DC나 건스앤로지스, 오아시스 등등 락 뮤지션 사진들이 걸려 있고 천장에는 대놓고 거대한 전자기타가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다. 햄버거나 피자, 파스타류도 식사로 파는 그야말로 서구중독증 문화의 본산.

여기서 책 많이 읽었다..

역시 동네의 시아파 모스크이다. 시아파에서는 연두색을 많이 쓰던데.. '오, 마흐디! 시대의 주인이시여!'라고 쓰여 있다. 마흐디는 시아파 교리에서 최후 심판의 날에 도래하는 이를 뜻한다.

이란의 도로는 엄청나게 혼잡하고 도로 규칙이라는 게 과연 의미가 있나 싶긴 한 곳이지만 또 자생적인 규칙은 있다. 보행자 - 오토바이 - 차량 순으로 우선권이 주어진다. 오토바이는 진짜 엄청나게 많아서 무슨 동남아시아 온 줄 알았는데 저 특유의 판이 지금 봐도 꽤 인상적이다.

테헤란 투어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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