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수도 테헤란 (4): 성스러운 방위 전쟁

혁명의 수도 테헤란 (4): 성스러운 방위 전쟁

8년 간 처절했던 이란-이라크 전쟁의 기억

임명묵

전철을 타고 테헤란 북부의 모 역에 내려서 걸어가면 매우 큰 박물관이 나온다. 이 모스크는 박물관 산하 모스크.

그 박물관이 무엇이고 하니.. Muze-ye Melli-e enghelab-e eslami ve defa'-e moghadas. 이슬람 혁명과 성스러운 조국 방위 전쟁 박물관이다.

예전에 테헤란을 방문하였던 친구가 이 박물관만큼은 가지 않을 수 없다고 강력히 추천하길래 당연히 왔다.

박물관 맞은 편에는 공원이 있는데 각종 군사 장비를 전시한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이란 군사력의 상징인 미사일까지 전시했다.

여성: 성스러운 방위의 8년 간 희생의 진정한 모습을 담은 거울. 이라는 뜻인 것 같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휴지통...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0년에 이라크 바트당 정권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여 무려 8년 간 이어진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직까지도 인류 최후의 재래식 총력전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그 규모는 엄청났다.

이 지도는 이란의 국토와 이란이 마주한 두 개의 바다, 페르시아만과 카스피해를 보여주고 있다.

이 박물관이 생긴 건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2010년에 건립되었으니 전쟁이 끝나고 20여 년 뒤에 만들어진 셈이다. 나르게스 바조글리의 Iran Reframed라는 책에 따르면, 이슬람 공화국 정권이 청년층을 체제의 논리에 새롭게 동원하기 위하여 현대적인 미디어 기술을 총동원해서 이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슬람 공화국' 대신에 '위대한 페르시아'를 수호하는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매우 적극적으로 삽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를 싫어하는 청년들과 대화할 때에도 이 박물관만큼은 다들 애정을 담아서 자신들도 매우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었다. 이란 정부의 노력이 나름 빛을 본 증거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박물관 입장시 보이는 이 커다란 디스플레이도 이란 전통 영웅 서사시 회화의 느낌이 강하게 살아있다.

이슬람 혁명 시위대의 압박에 마지못해 퇴위하는 모하마드 레자 샤로 시작. 중간에 호메이니의 귀환과 이슬람 혁명의 시작 등 다른 전시들도 있었다.

아바단 정유소를 향한 공격. 사담 후세인은 호메이니가 전세계 시아파의 총궐기를 주장한 것에 상당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다. 이라크 인구의 60%가 시아파인데, 그들이 각성하면 수니파 위주의 엘리트 집단에 강력한 세속주의-아랍 사회주의를 내걸고 있던 바트당 정권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후세인은 이란의 혁명 위협을 사전 차단하고, 반대로 이란 영토의 아랍인 지역을 아랍 민족주의를 통해 통합하고자 전쟁을 선포했다. 특히 후제스탄(아라베스탄)이라 불리는 이 지역은 상당수의 이란 석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는 자원 매장지이기도 해서 막대한 경제적 이득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아파와 페르시아를 섞은 조국 수호의 방위대가 조직되고 이라크군의 거센 침공을 격퇴하기 시작한다.

저 휘날리는 붉은 깃발에는 '여 호세인(오, 후세인)'이라 적혀 있다. 카르발라에서 '거짓 칼리프'에 의해 죽은 3대 이맘 후세인을 기억하며 자신들도 순교자가 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이라크군의 지뢰밭을 향해 돌격했다.

호메이니 사진을 걸어두고 성직자와 군인이 함께 지휘를 하는 지휘소의 모습을 재현한 것 같았다.

여기서 더 가면 북부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혹한과 남부 후제스탄 지역의 찜통 더위 속에서 작전을 하고 기도를 하는 이란 병사들을 묘사해놓았는데, 실제 날씨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여성 의용병의 모습도 이렇게 묘사되어 있고..

주된 전장이 있는 곳인 후제스탄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만나는 메소포타미아 권역이다. 큰 강이 두 개나 바다로 합류하는 곳이다보니, 습지가 매우 발달해있고 커다란 갈대밭 사이를 오가는 물길이 아주 복잡하게 형성된 곳이다. 이런 특수한 지형 지물 속의 어려운 전투 환경을 재현해 놓아 꽤 흥미로웠다. 한국 전쟁 기념관도 이런 전시를 해보면 어떨지..

후세인 초상화를 걸어둔 바트당 지휘소인데, 술을 마시고 포커 게임이나 치는 부패하고 영적으로 타락한 군대로 묘사를 하고 있다. 후세인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한 뒤 이란군은 몇 년에 걸친 지난한 소모전을 계속했는데, 이라크를 혁명화 하겠다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호메이니의 판단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이라크군의 소련제 전차를 일제 사격으로 격파하는 이란의 휴대용 로켓 런처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군이 처한 최악의 악몽은 이라크군이 사용하기 시작한 독가스를 비롯한 화학 무기들과 후방 도시에 끊임없이 떨어지는 이라크군 미사일들이었다. 특히 화학전 피해는 정말로 끔찍한 것이어서 오늘날에도 이란 이라크 전쟁의 화학전 후유증 환자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살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방독면 또한 이란 이라크 전쟁의 주요한 상징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참혹한 전쟁은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휴전으로 끝났지만 이라크군은 쿠웨이트를 침공하게 되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미국에 의하여 숙적 후세인도 이렇게 수치스럽게 체포되어 처형되게 된다.

이 지역 또한 남부 후제스탄 지역의 사막과 야자수가 즐비한 전장 환경을 묘사해 놓았다. 이란 이라크 전쟁으로 양측 도합 백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새삼 전쟁 2년 만에 병력 40만-50만을 일방적으로 상실한 우크라이나 측 피해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실감이 나네...

Khalije Fars, 페르시아만이라고 쓰여 있다. 이거 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무조건 페르시아만이라 해야 한다... 아라비아만은 물론이고 걸프라고 했다가 무슨 지리 강의가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일.

바깥으로 나오면 노구의 이맘 호메이니와 그의 아들을 볼 수 있다.

호메이니의 후손들은 2000년대 이후로 늘 개혁파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 자식 농사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나오면 현대 이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로 이렇게 핵물리학과 원자력의 발전을 자랑스럽게 전시해 놓았다.

바깥에 나와서 정문 쪽을 바라보고 찍은 성스러운 조국 방위와 이슬람 혁명 박물관.

여기서 나와서 다리를 건너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이리저리 잘 찾아가면 또 다른 흥미로운 전시관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순교자 카셈 솔레이마니 전시관....

다시 설명하자면 솔레이마니는 이슬람 혁명 수비대 산하 해외 작전군인 쿠드스군(고드스군)의 사령관으로서, 이란 바깥의 우호국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군사 작전을 수행해온 최고의 베테랑이다.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었지만 2020년 트럼프 행정부의 명령에 의해 바그다드에서 폭살되었다. 하지만 그가 개발한 드론과 미사일을 통한 방공망 교란 전술은 오늘날 현대전 전장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앞선 박물관보다는 방문객도 훨씬 적어 보였고, 불도 안 켜놓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그제서야 관리인이 조명을 켜주고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젊은 세대도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방위 전쟁이다. 하지만 솔레이마니는 정부 비판적인 청년층에게 있어서는 해외에서 불필요하게 군사 행동을 벌이고 이란을 위기로 몰아넣는 사람이라는 비판이 아주 많다.

일단 이 길은 솔레이마니 박물관 입장 하자마자 나오는 곳인데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였던 호람샤흐르 시의 당대 풍경을 재현한 곳이다.

다에쉬(IS), 일루젼 스테이트, 라고 커다랗게 전시되어 있는 관. IS 격퇴야말로 이란 정부가 홍보하는 솔레이마니 장군의 최대 치적이다.

십자군과 영국 제국주의를 거쳐 미국의 인디언 학살까지 이어지는 서구의 사악한 만행들을 전시해주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슈퍼맨, SNS 좋아요 따위로 인민의 선량한 마음을 현혹하는 미 제국주의를 규탄..

솔레이마니 사망 시에 그를 추모하려고 아자디 타워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 저걸 생각하면 여전히 이란에서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수는 매우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자유로운 여론 조사가 안 되어서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들어보면 친정부:반정부가 현재는 3:7에서 5:5로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IS 격멸 작전에 힘쓰시는 솔레이마니 장군님...

쿠드스(고드스)는 예루살렘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모스크도 이렇게 묘사되어 있고..

이건 이란군의 공격에 피습 당한 IS 전투 차량.

시리아 IS 토벌전에서 이란군과 러시아군의 활약에 대해서는 따로 한 번 공부를 하긴 해야할텐데..

그밖에 이란이 현재 지원하고 있는 해외 무장 분쟁 현황들도 쭈욱 전시를 해준다. 여기는 예멘의 후티에 대해서 묘사되어 있는데 정말 홍해 틀어막기 딱 좋은 위치임이 실감 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랍 봉기 당시 바레인에서는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순니파 왕가를 향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는 걸프 왕정들이 이란과 시아파의 위협에 진지하게 대응하게 만든 또 다른 계기 중 하나였다.

다들 환호하고 있지만 사실 많은 정부 비판자들은 이란이 해외 작전과 분쟁에 지나치게 국가 자원을 낭비하고 주변국들과의 우호 관계를 해쳐서 이란을 위험에 빠트린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최근 사우디와 관계가 급 진전되면서 이스라엘을 빼고서는 안보적인 위협이 상당히 경감된 상황이라 이란이 어떻게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출구로 나왔는데.. 저 돔처럼 생긴 공간이 솔레이마니 기념관. 그런데 출구는 무슨 동네 상가 건물에서 담배 피러 나오는 곳 같냐..

게시글 첫 사진에 있는 모스크를 방문하고 전철로 다시 돌아갔다. 이 모스크는 호람샤흐르 모스크인데 아까도 말했지만 호람샤흐르는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최고의 격전지로, 러시아식으로 말하자면 '영웅 도시'이다. 한 명의 시민이 기도를 하고 소일하고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에 관한 연구서가 있던데 가까운 시일내로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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