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스라엘 전쟁의 정치적 배경에 대하여

이란-이스라엘 전쟁의 정치적 배경에 대하여

패배가 기회가 되었던 이란과 승리가 족쇄가 되었던 이스라엘

임명묵

2024년 4월부터 본격화된 이스라엘과 이란계 세력들의 전쟁에서 개인적으로 눈쌀이 찌푸려졌던 건 한국의 좌익이나 우익이나 할 것 없이 ‘이스라엘군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스라엘군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강군이고, 오랜 실전 경험과 대비 태세를 통해 축적된 기술적, 전술적, 작전적 역량은 가히 세계 제일 수준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군 신화’의 문제는 서구의 대중적 전쟁 논의가 으레 그렇듯이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걸프전 신화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 시기부터 미국에서는 첨단 무기를 바탕으로 기술적으로 열등한 상대를 일순간에 제압하고 ‘스펙타클’을 연출하여 대중을 환호하게 만들어 전쟁 여론을 형성하는 게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미디어에 의존하여 사안을 파악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의 시민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름 전쟁에 대해서 한 마디 얹고 싶어하는 사람들조차도 정치적 목적이 달성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않고 미시적인 군사적 활동 하나하나의 스펙타클에만 주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사고 태도라고 지적하고 싶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네타냐후가 원하는 것과 동의어다. 적어도 트럼프 1기에 맺어진 아브라함 협정부터 네타냐후의 궁극적인 목적은 매우 일관되었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우선 UAE, 바레인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그 뒤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수교하여 이스라엘을 중동 지역 질서에 안착한 국가로 만드는 것. 여기서 반드시 필요했던 악역은 소위 ‘시아파 초승달’이라는 세력권을 구축하여 이스라엘과 걸프 왕정 국가들을 모두 위협하고 있던 이란이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무릅쓰고도 걸프 왕정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협력할 것을 고려할 정도로 이란의 안보 위협은 굉장했었다.

그리고 네타냐후는 이 관계 정상화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우익 시온주의 정권 연합이 목표로 하는 대이스라엘의 지배권을 확립하고자 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좌익 시온주의자들도 별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다) 서안 지구를 정착촌으로 야금야금 장악하고, 가자는 봉쇄 상태로 놓고 200만 인구를 덫에 갇힌 쥐처럼 다루려고 했다. 이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서 하층 노동력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던 걸 생각하면 좌익에서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비판하는 것이 사실 전혀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여타 아랍 국가들의 동정심과 공감대가 떨어지고 있던 시점에서 이란을 빌미로 아파르트헤이트 상태를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중동에서도 승인받으려고 했던 것인데, 그야말로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실패한 일을 자유주의 질서의 해체 과정에 올라타서 해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네타냐후의 대전략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알 아크사 홍수 작전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초기에는 이스라엘 민간인을 향한 하마스의 무참한 작전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동정 여론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봉쇄 상태의 가자 지구에서 어떻게 화평을 이뤄야할지에 대한 출구 전략을 마련하는 데 실패하였고, 하마스는 마오주의식 인민전쟁 노선으로 항전을 이어가 가자 전쟁에서는 엄청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게 됐다. 그 결과 1967년 이래로 형성된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상태가 제2차 인티파다 이래로 20년만에 다시 한번 조명받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질감이 약화되고 있던 아랍 국가들, 특히 걸프 국가들 사이에서 알자지라와 틱톡 등 각종 미디어 매체를 통해 가자 지구의 비참한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걸프 국가들과의 추가적인 관계 정상화가 사실상 봉쇄되었다는 데 있었다. 이스라엘과 수교를 고려하던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자 전쟁 이후 줄곧 두 국가 해법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수교는 절대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한편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병력이 묶여있는 동안 예멘의 후티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이란이 후원하는 여타 저항의 축 세력과도 충돌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적어도 저항의 축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는 데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스마엘 하니예와 야히야 신와르까지 하마스 지도부, 하산 나스랄라를 비롯한 헤즈볼라 지도부도 제거했다. 물론 이들 조직은 기본적으로 냉전 시대에 발전한 마오주의식 인민전쟁 노선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수뇌부가 제거되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지도자는 계속해서 공급된다는 점에서 완전한 성공은 아니다. 하마스는 여전히 항전을 이어가고 있고, 헤즈볼라는 군사력이 약화되긴 했지만 레바논 남부 시아파 지대에서는 아직도 주민들 사이에서 강한 지지를 얻고 있다. 레바논 정부군이 헤즈볼라 군사력을 대체하여 레바논을 정상국가화하는 방향은 장기적으로는 탄력을 받을 것이지만 적어도 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이 지속되는 한 큰 진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에서도, 가자 지구에서도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주민들 사이에서 구축한 조직적 기반을 해체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오랜 시일 동안 이들 조직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걸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심대한 타격을 입힌 것은 꽤나 대단한 성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저항의 축 사이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거둔 최고의 성과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붕괴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단독 작전보다는 터키 에르도안이 지원하는 HTS와 알 줄라니의 승리이기는 했으나, 이스라엘은 어쨌든 빠르게 기회를 포착하고 드루즈족이 거주하는 시리아 남부 지대로 진출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리아 정부는 기존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던 이란과 적대적일 수밖에 없고, 나토 국가인 터키의 후원을 받으며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했다. 당장 줄라니 정부가 무슬림형제단 이념에 입각하여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호전적인 ‘립서비스’를 한다고 치더라도, HTS 시리아가 로자바 쿠르드와 라타키아 알라위파, 남부 드루즈 지역을 통일하지 못한 취약한 국가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노리는 이란의 칼이었던 아사드의 시리아가 이제 이스라엘이 마음놓고 이란을 향해 작전할 수 있는 통로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저항의 축 약화는 이스라엘의 전략적 상황을 개선해주었음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이란의 외교적 상황도 개선되는 예상키 힘든 부수 효과도 발생했다. 이란은 아랍 각국의 대리 세력을 구축했던 전설적 군사 영웅인 솔레이마니 장군의 피살, 2022년 ‘여성, 삶, 자유’ 시위로 폭발한 경제난과 사회적 불안이 겹치며 공세적 전략을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그 상징적 사건이 바로 2023년 이라크와 중국을 통해 타결된 이란-사우디 국교 회복이었다. 아직도 국내에서는 시아파 대장 이란과 순니파 대장 사우디의 라이벌 구도라는 관점이 여전히 상식처럼 통용되는데, 이란-사우디의 ‘중동 냉전’은 단순이 시아와 순니로 환원될 수 있던 것도 아닐뿐더러 2023년에 전격적 화해로 끝났다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공들였던 트럼프 행정부가 재선에 실패하고, 자신에 적대적인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미국 정권 교체에 따른 외교 정책의 단절이라는 리스크에 대응할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여기며 외교 노선에 있어서 일정 부분 탈미국화를 시도했다. 여전히 미국은 사우디의 핵심 우방이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는 최대 석유 수요국인 중국, 산유국으로서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하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가져가면서, 체력이 고갈된 이란과 화해를 도모했다. 안 그래도 사우디, UAE, 카타르 등 이란과 인접한 걸프 국가들은 이란이 틈만 나면 호르무즈를 닫겠다, 걸프 유전을 다 터트리고 자폭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에 질린 상태였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막대한 자본으로 추후 제재가 해제된 이란에 투자를 단행하여 이란의 군사적 호전성을 누그러뜨리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저항의 축’, 혹은 ‘시아파 초승달’이 연쇄적으로 약화되었으니, 이란의 소위 ‘정상국가화’에 있어서는 호재라고 할 수 있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 몰락 이후 이란이 후원하는 시아파 국가가 된 이라크는 2019년 이래로 이란의 과한 영향력에 대한 반발이 터져나와 아랍인 정체성도 동시에 강조하며 사우디에 다가갔고, 이란과 사우디 사이의 중재를 이끄는 국가가 되었다. 레바논 전체를 쥐고 흔들었던 헤즈볼라는 너무 엄청난 타격을 입으면서, 헤즈볼라는 이제 레바논 정치에 더 우호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0년대 레바논 재건을 이끌었던 주체가 사우디 자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역시 이란과 사우디의 공존 사례로 볼 수 있다. 아랍의 봄 당시 순니파 왕정과 시아파 민중의 갈등이 드러났던 바레인은 일찌감치 안정화됐다. 이란의 혈맹이던 아사드 시리아는 아예 무너져서 걸프 국가들은 시리아를 터키와 연계하여 유럽과 중동을 잇는 통로로 재건하기를 희망하는 중이다. 마지막 남은 친이란 군사 세력은 예멘의 후티다. 사우디는 후티의 존재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2015년부터 UAE와 연합군을 꾸려 예멘 내전에 참전까지 했다. 하지만 후티를 굴복시키지 못한 사우디는 이란과 화해를 하며 후티와도 공존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사우디와 후티는 실질적으로 휴전을 맺은 상태다.

전성기 저항의 축 지도
출처: 위키백과

즉 이스라엘이 원래 구상했던 사우디 및 걸프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이란을 고립시키는 전략은 이미 2023년부터 균열이 가고 있었고, 역설적으로 2024년에 이스라엘의 공세로 아랍 세계에서 이란 세력이 약화되면서 아예 존립 근거를 잃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에서 라이시 대통령이 죽고 핵협상 및 정상국가화를 추진하는 개혁파 페제슈키안이 집권했다. 세력 균형의 열쇠를 쥔 걸프 왕정들이 이란에 다가가는 것을 보며,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한 네타냐후는 역으로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고립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반대로 이란은 어쩔 수 없이 강요받은 전략적 후퇴가 역설적으로 외교적인 기동성을 만들어주었다. 오바마와 맺었던 JCPOA 이후에도 역내 대리 세력(프록시)과 미사일 문제가 계속해서 이란의 발목을 잡았음을 생각해보자. 미사일은 어차피 주권 국가의 자위권 문제기 때문에 이를 제약하는 건 말도 안 되는 문제고, 이란이 그 호전성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이 계속해서 역내 무장 세력을 후원하여 지역 불안정을 확산, 심화시키는 데 있었다. 민족주의와 혁명 이념으로 무장한 국내 강경파들로 인하여 이 대리 세력들을 놓을 수 없었지만, 이란의 국가 자원은 계속해서 시리아, 헤즈볼라, 예멘에 들어가고 있었고 외교적 고립과 국내 민심 이반이 심화된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터키가 알아서 대리 세력들을 없애준 것이다. 이는 뼈아픈 손실이었지만 동시에 이란의 대전략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던 것이다.

반면 네타냐후는 어떠했는가? 만약 네타냐후가 이란의 하메네이처럼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최고지도자였다면 이스라엘은 오히려 강경 노선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수를 둘 수 있었을 것이다. 네타냐후는 그렇게까지 이념적인 인물은 아니다. 다만 “미스터 안보”라는 별명에 맞게 안보를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삼고 있고,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 특유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경 노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이스라엘 정치는 좌익 마파이와 우익 리쿠드라는 두 중도파 정당의 경쟁 구도였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우후죽순 난립하기 시작한 군소 정당들의 존재감이 엄청나게 커졌다. 크네세트에서 2-3석 밖에 없는 정당이라고 하더라도 연정 탈퇴를 선언하는 순간 내각이 붕괴할 수 있다. 특히 네타냐후가 이끄는 우익 리쿠드는 종교 시온주의(카한주의자)와 하레디(초정통파) 등이 이끄는 극우 성향 정당의 지지를 계속해서 끌어내기 위해서는 타협이 없다는 극단적 태도를 계속해서 유지해야만 한다. 나는 이것이 굳이 네타냐후의 권력욕이 작용한 결과라고만 해석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이스라엘 크네세트 구조는 이란의 신정 체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정치, 외교적 기동성을 제약하는 것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자 전쟁이 장기화되며 이스라엘군은 병력 부족을 이유로 병역거부 특혜를 받아온 하레디 인구에게서 징집을 시작했는데, 이에 하레디 정당들이 반발하며 연정 탈퇴 카드를 만지작 거리던 게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전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2026년 10월에는 정규적인 크네세트 선거가 다시 치러진다. 물론 나는 이스라엘 국민의 이념적 성향을 생각했을 때 리쿠드의 재집권도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네타냐후는 다음 선거까지는 뭔가 성과를 제시해야만 했던, 시간에 몹시 쫓기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성과를 내기는커녕 이란이 핵협상에 느긋하게 임하며 트럼프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는 일이다.

즉, 정리하자면 2024년에 이스라엘이 이란 세력과의 군사적 충돌에서 전술적, 작전적 성과를 내내 냈음에도, 그것이 전략적, 정치적인 돌파구로는 전혀 이어지지 못했고, 반대로 이란은 자신이 입은 타격을 바탕으로 전략적, 정치적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개선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 2025년 6월 초까지의 사태 전개였다.

다음 편에서는 2024년 4월과 10월,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양국의 공습전에 대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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