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드러낸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모습'
36년 차의 하메네이 체제는 어디로 가는가?
이 글 역시 6월 19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9일이나 지나서 올리려니 조금 머쓱하군요. 하지만 전쟁을 통해 드러난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견고함'과 그럼에도 존재하는 '취약성'은 여전히 향후 이란과 중동 전반을 바라볼 때 있어서 계속해서 고려될 요인들 같습니다.
첫째는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성향 문제다. 하메네이 개인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를 깊게 하지는 않았으나, 나는 하메네이를 세간에 인식된 것 같은 완고한 강경파보다는 이슬람 공화국의 다양한 정치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인물로 인식한다. 이란 내부에 이슬람 혁명 이념을 추구하는 강경파 세력과, 서방과의 정상적 외교 관계 수립을 추구하는 온건파 세력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리고 호메이니의 제자로서 이슬람 혁명을 계승했지만, 이란-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가도 물려받은 하메네이는 언제나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노선을 조정하며 국가를 운영해야만 했다. 체제에 대한 내부 불만이 강해지고, 지정학적 긴장이 너무 높아질 때는 하타미, 로하니, 페제슈키안 등 개혁파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며 미국과의 협력, 핵협상 등 유화책을 펼쳤다. 반대로 혁명 이념이 너무 이완되었다고 판단되고, 외부 위협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판단되었을 때는, 아흐마디네자드, 라이시, 그리고 결정적으로 혁명수비대와 함께 보조를 맞추며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를 고려했을 때 하메네이의 현재 심중은 사실상 이슬람 혁명과 9천만 국민의 존폐를 어깨 위에 얹은 실존적 고민과 함께 그 본인조차도 알 수 없는 고뇌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
이란의 추후 대응을 점칠 때 가장 고려해야할 요소는 역시 미사일 재고일 것이다. 갈등이 현재 수준에서 지속될 경우, 이스라엘을 소모시킬 이란의 미사일 전력이 어느 정도로 비축되어 있는지에 따라 전쟁 전개가 상당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최근 이란이 진실의 약속-2나 진실의 약속-3의 1차 공격 때와 달리 발사 대수를 백단위에서 십단위로 크게 줄였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관찰자들이 이란의 미사일 재고가 바닥나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분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나는 이란이 미국과의 충돌까지 고려하며 미사일 재고를 관리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방공망이 예상보다 빠르게 소모되어 더 적은 발사량으로도 원하는 타격을 지속적으로 입힐 수 있다고 이란이 판단했다는 정황으로 생각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러시아 군산복합체의 역량을 과소평가했다가, 러시아가 끊이지 않는 미사일 발사로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를 타격하자 ‘고갈론’이 쏙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현재로서 이란 미사일 고갈론을 얘기하는 것은 아직은 성급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란은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생각만큼 군수 경제를 운영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대신 자체적인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제재 속에서 독자적인 민수 경제를 운영해왔다. JCPOA가 끝나고 트럼프의 최대압박 정책이 시작되며, 이란 경제는 석유보다 이러한 다종다양하며, 국제무역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인 자체적인 제조업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는 이란이 전시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에 효과적인 군수 경제로의 전환을 통해 미사일 및 군사 장비 생산량을 늘릴 여력이 상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바탕으로,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타협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요소다. 나는 이란에서 친정부는 물론이고 다양한 반정부 성향의 청년층과도 교류를 나누었는데, 이들마저도 모두 이스라엘과 미국에 분노하며, 이란을 지켜야 한다는 정부의 애국주의 수사에 동참하고 있는 상태다. 정권은 이에 호응하여 히잡 문제를 비롯한 청년층이 민감해하는 문화 통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서기 위해 전국민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념적인 문화 통제 정책으로 사회의 지지에 균열을 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련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독일이 침공해오자 소련은 스탈린주의의 이념적 통제를 상당 부분 완화하며, 당장 독일에 맞서는 데 도움이 되는 대러시아 및 소비에트 애국주의의 동원에 집중했다. 무신론 국가 소련이 외침에 맞서기 위해 정교회와 이슬람을 동원했듯, 신정 국가 이란도 외침에 맞서기 위해 세속적 민족주의를 동원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 녹색운동 이후 청년층 사이에서 이슬람 혁명에 대한 지지가 확연히 낮아지자, 정부가 이란-이라크 전쟁을 혁명 이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즉, 이란에 대한 피상적 논평가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세속주의’는 역설적으로 이스라엘과의 전시 상황에서 더욱 넓은 공간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이란의 잠재적인 취약성은 따라서 이슬람 공화국 체제와 세속적 청년층이라는 전통적 갈등축보다는 민족주의와 연관된 다른 축을 따라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했듯 분리주의 집단은 이번 일어나는 사자 작전 당시의 ‘내통자’ 집단으로서 이미 의심을 사고 있다. 물론 현재는 문명이자 제국으로서 이란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란주의’가 쿠르드인, 발루치인, 루르인, 아제르바이잔인, 길라크인, 심지어 아프간 난민에 이르기까지 확고한 정서로 자리 잡고 있으나, 인구의 대략 40%에서 50%를 차지하는 소수민족 집단의 불만은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약화와 함께 언제든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네타냐후가 목표로 하는 이란의 향후 모습은 ‘레짐 체인지’가 아니라, 레짐 체인지를 빌미로 국가가 약화됨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분리주의 세력이 이란 내부에서 발호하는 ‘리비아화’, 혹은 ‘시리아화’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이번 사태의 전개에서 주목해야 할 소수민족 지역은 우선 쿠르드와 코카서스다. 남서부 후제스탄의 아랍인과 남동부 발루치스탄의 발루치인은 이라크, GCC, 파키스탄의 영향을 받는 지역인데, 이 국가들은 대체로 이번 갈등에서 이란에 다양한 정도로 지지의 의사를 표명하고 있고, 이란의 불안정을 원치 않기에 큰 불안 요인은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서부의 쿠르드 지역은 시리아 로자바와 이라크 아르빌 정부 등 이스라엘과 더 가까운 세력과 연계가 되어있다. 북서부 아제르바이잔과 이어져 있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도 마찬가지인데, 이란은 끊임없이 이스라엘과 에너지 및 군사 협력을 이어오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이 이스라엘에 타격 기지를 제공한다고 의심하는 상황이다. 아제르바이잔의 후견국이 중동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터키인 것도 이란의 불안 요소를 자극하는 상황이다. 이는 이란이 남코카서스 분쟁에서 대체로 아르메니아를 지원해온 원인이기도 했다. 현재 전쟁에 관한 아르메니아의 여론은 러시아 및 이란에 우호적인 그룹과, 서방 및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의 지지를 받는 니콜 파시냔 정부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는데, 이란-이스라엘 갈등이 현재진행형인 남코카서스 분쟁과 어떤 식으로 연계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고려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2020년대 들어서 이란의 상시적인 위기 요인으로 평가받는 승계문제가 있다. 1939년생인 알리 하메네이는 한국 나이로 87세의 고령이라 언제 타계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참수작전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기존의 고령 리스크에 더해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공격에 의한 하메네이 피살 리스크까지 승계문제에 더해진 상황이다. 문제는 하메네이의 후임으로 대체 누가 될 것인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당초에는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유력 후계자로 점쳐졌으나, 그가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한 뒤에는 후계 구도는 다시 오리무중이 되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로의 부자 승계 가능성도 항상 논해졌으나,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공격에 의해 피살되지 않는 한 이슬람 공화국 체제에서 부자승계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전시든, 혹은 전후든 머지않은 시일에 찾아올 하메네이의 유고는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향방을 불투명하게 한다. 하메네이는 호메이니의 제자로서 이슬람 혁명의 최전선을 이끈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 뒤에 누가 이슬람 공화국 체제에서 하메네이에 버금가는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
승계 문제에 있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네 가지다. 첫째로는 하메네이에 준하는 강력한 최고지도자가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현재로서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기에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마르자에 타클리드 중에서 최고지도자가 선출은 되나, 하메네이와 같은 장악력은 갖지 못하는 상황이 조금 더 개연성이 높다. 이 경우에는 둘째 시나리오, 대통령을 비롯한 민선 정부 및 관료가 주축이 되는, 자유민주정과의 체제 수렴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전시 상황은 이념적으로 무장했으며 국가 경제의 상당수를 통제하는 혁명수비대에게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셋째 시나리오, 입지가 취약한 최고지도자에 혁명수비대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세하는, 군사 국가, 요새 국가화가 가속화되는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둘째 시나리오와 셋째 시나리오는 이란 체제가 미국, 이스라엘, 이란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양상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할 수 있다. 일례로 소련의 경우 대조국전쟁 당시 완화된 사회 통제가 전후 냉전에 진입하며 다시 강화되었고, 그 뒤에 흐루쇼프에 의한 급격한 탈스탈린화를 거치면서 요동쳤다. 마지막 네 번째 시나리오는 승계 리스크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아 권력 중심부에서 발생한 혼란이 수습이 되지 않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란 국가 체제의 견고함과, 소수민족까지도 포괄하는 이란주의의 통합력을 생각했을 때 마지막 시나리오도 첫 번째 시나리오만큼이나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국체가 유지되되, 하메네이라는 ‘중재자’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균형이 탄생하거나, 혹은 강경파나 온건파 어느 한쪽의 힘이 상대편을 압도하는 경우를 상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한편으로 이번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참수작전은 이란 정치경제와 사회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던 혁명수비대를 직격했기에, 이점도 짧게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군사적인 차원에서는 전술하였듯, 정교한 관료 조직이 대체 인물을 발탁하여 작전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혁명수비대의 조직적 역량은 본질적 손실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다소 이야기가 다르다. 솔레이마니 장군으로 대표되듯,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란 혁명의 각종 거리 무장조직들을 통합하며 탄생했고, 이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목숨을 던질 각오로 혁명적 신념을 입증하며 체제의 엘리트 군사집단으로 부상했다. 하메네이는 이들에게 사회적, 경제적 특권으로 보상을 제공하고, 온건파와 개혁파를 견제하는 이슬람 공화국의 기둥이라는 정치적 입지까지도 부여했다. 문제는 2020년 카셈 솔레이마니 폭살, 2024년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폭살, 2025년 모하마드 바게리, 호세인 살라미,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등 혁명수비대 최고 수뇌부 피살이 겹치며, 이란 혁명수비대의 탄생과 발전을 함께한 창립자 세대가 고갈되었다는 것이다. 즉, 차기 혁명수비대의 지도부는 혁명수비대 조직 전체를 장악하며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급작스러운 세대 단절을 경험한 셈이다. 현재로서 이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당장 알 수 없다. 혁명수비대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순교와 분투를 해낸 세대를 상실하며 이란 정치에서 영향력이 약화된다면 온건파에게 유리한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강경파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가 이란-이라크 전쟁과 유사한 또다른 ‘성스러운 조국 방어전’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순교자, 새로운 영웅이 등장할 것이며, 혁명수비대 창립 세대를 대체하는 또 다른 강경파 세대가 재생산될 수 있다. 게다가 창립 세대는 무자비한 총력전과 소모전이었던 이란-이라크 전쟁을 경험하고, 청년에서 중장년으로 성장하며 의외로 매우 신중해진 집단이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형성될 혁명수비대의 ‘진실의 약속 세대’가 그러한 변화를 겪기에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다소 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제3국 요인을 짚어보자.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행위자는 유라시아에서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다른 두 강대국인 러시아와 중국이다. 본래 러시아, 중국, 이란은 상호 간 불신, 미국과의 관계 개선 욕구를 고려하여 형식적이고 수사적인 수준에서의 협력만을 진행해왔다. 따라서 유라시아 삼국 간의 협력은 미국의 압박이라는 촉진 요인과 기존에 존재하는 제약 요인의 상호 작용으로 형성되어 왔다.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미국의 시리아 진출 가능성은 2015년 아사드 지원을 위한 러시아와 이란의 연합을, 2020년 솔레이마니 폭살은 2021년 베이징과 테헤란 사이의 25년 전략 협력 협정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란이 샤헤드 드론 기술을 러시아에 공여하는 협력을 촉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이 상호 불신과 대미 관계 고려라는 삼국의 독자적 계산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사드 정권에 대한 영향력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이란은 상호 간 전면적 협력을 주저했고, 이는 아사드 정권이 궁극적으로 안정화에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최대압박 정책 이후 중국의 이란 석유 수요는 이란 경제의 생명선이 되어주었으나, 양국은 대미 관계 악화를 우려하여 상호 간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으며, 서로가 협력에 진심이 아니라며 불신을 이어갔다. 따라서 베이징과 모스크바가 현재 이란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테헤란을 전면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예측은 아직은 성급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종국적으로는 트럼프와의 대화가 필요하고, 중국은 관세와 아태 지역의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마찬가지로 미국과 협상을 해야만 한다. 이란 또한 독자적 강대국으로서의 야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을 것이기에, 아직 궁지에 몰리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와 중국에 지나치게 고개를 숙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또한 러시아는 이스라엘에 러시아계 유대인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 중국은 군사 기술 협력으로서 이스라엘과 장기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어온 점도 이란과의 전면 협력을 제약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요격 미사일을 비롯한 필수 군수품에 있어서 미국의 지원을 필요로 하듯, 이란도 전쟁 수행에 있어서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2010년대 이래로 지속된 미국과 유라시아 삼국의 관계 악화, 그 반대급부로 진행된 유라시아 역내 물류 인프라의 통합은 이란이 러시아와 중국을 통해 물자를 보급받는 것을 매우 용이하게 만들어주었다. 러시아와 이란이 주축이 된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은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사이의 철도 연결이 지지부진하며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초유의 경제 제재를 부과받으며 러시아와 이란의 무역은 큰 폭으로 성장했다. 러시아의 아스트라한과 이란의 안잘리를 잇는 카스피해 해상 물류를 통해서 양국은 식량, 에너지, 무기 등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뉴스는 2025년 5월에 이란과 중국을 잇는 최초의 화물철도 노선이 개통했다는 것이다. 중국 또한 육로를 통해 이란에 필수적인 상품들을 공급해줄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 그와 별개로 전쟁 기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중국 수송기의 이란 착륙은 중국의 이란 지원이 어떤 형태로든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전면적인 지원은 주저하지만, 만약 사태가 전면전으로 확대되거나, 전황이 이란에 안 좋게 흘러가 체제 붕괴 내지는 역내 불안정 가능성이 관찰될 때, 러시아와 중국은 이란에 상당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가치 이외에도, 중국은 일대일로, 러시아는 남부 지역의 안보 때문에라도 현 이란 체제의 지속과 안정에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바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이들 국가가 중재 역할을 수행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자신이 우크라이나를 향해 선제공격을 하며 예방전쟁을 실시한 나라기에, 중재를 할 수 있는 명분과 처지는 아니다. 오히려 갈등이 현 수준에서 고착화된다면, 유가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과 우크라이나에서 나토 자산이 중동으로 재배치되는 데서 오는 군사적 이득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이스라엘 내의 러시아계 인구와 이란과의 우호 관계를 통해 양국에 모두 소통 채널이 구축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여전히 페르시아만의 에너지 자원에 의존하는 중국은 이 지역의 안정이 자국 에너지 안보에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중재자를 자처할 동기가 러시아보다 더 큰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해결하지 못하고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한 상황에서, 가장 큰 전략적 경쟁자가 2023년에 이어 다시 한번 중동의 중재자로 등장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어쩌면 중재의 필요성을 가장 크게 느끼고, 그럴 역량이 있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한 GCC 국가들일 수 있다.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이 국가들은 가장 큰 수입원인 페르시아만의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 및 수출에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기에, 사실상 존재론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는 2023년에 이란과 국교를 회복하고, 이스라엘과도 수교를 원하며 중동을 지정학적 갈등의 장이 아니라 지역 통합의 장으로 전환하고자 능동적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MBS가 부분적인 탈미국화를 추진한 것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자로서 신뢰를 높이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현재 전쟁의 향후 진로를 예측하고,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미국 이외의 행위자인 중국, 러시아,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3국 중재는 장기적으로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신뢰를 낮추고, 다원적 강대국 간의 개입과 협상을 촉진한다. 확전보다는 나은 결말이지만, 중재 또한 미국 패권 하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예측 가능성과 그 견고함을 침식하고, 역동적이고, 예측이 어려우며, 불안정한 다극 세계로의 전환을 자극할 것이다.
몇 가지 업데이트 사항
- 하메네이를 비롯한 권력 최고층에서 이슬람, 움마(무슬림 공동체)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최근 눈에 띄게 '민족', '이란', '국가', '국민' 등의 어휘가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이것이 '시아파 이슬람' 대신에 '이란주의'의 강화를 보일 것인가, 아니면 정권이 단기적 생존성을 위해 취한 일시적 타협책일까?
- 소수민족 문제는 많은 논평가들이 전쟁 이후 최근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문제다. 안 그래도 현재 이란-아제르바이잔 갈등이 미약하게나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으며, 쿠르드 '간첩'들에 대한 사형 선고와 아프간 난민들을 향한 엄격한 통제 정책 도입들도 화두에 오르고 있다.
- 푸틴은 전쟁 중에 러시아는 이란과 군사 협력을 원했었으나, 독자적 강대국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는 이란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에 오히려 미온적이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한편 이란은 경제, 군사적으로 더욱 중국에 밀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여전히 핵협상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는 것 같다.
-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쟁은 소모전을 감당할 수 없는 이스라엘과 체제의 취약성을 더는 지탱할 수 없는 이란 양측이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벙커버스터와 이란의 미군기지 공격은 내가 감히 예상할 수 없었던 그럴싸한 출구전략을 만들어낸 것 같다. 연출된 것이라면 기획자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
- 중재국이 사우디아라비아가 될 줄 알았는데,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난 중재국은 카타르가 된 것 같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는 외교적으로 기동이 쉽지는 않은 주요 국가이고, 카타르는 전통적으로 강소국의 위치를 활용하여 능동적인 외교 플레이를 해온 국가였기에 카타르가 중재국이 된 것은 매우 논리적이다. 다만 호르무즈와 페르시아만의 안정에 막대한 이해관계가 있는 GCC 국가 전체가 막후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여전히 흥미로운 질문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