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2019년 여행 마무리 (1)

모스크바, 2019년 여행 마무리 (1)

모스크바에서 반푸틴 시위 직관을 한 드라마틱한 마무리..

임명묵

드네프르에서 하리코프로 가는 기차는 제시간에 맞춰 구할 수 없었기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5시간 가량 이동한 것 같은데 그 이전까지 소형 버스에 몸을 꾸겨넣어서 가느라 고생했다면 이번에는 장거리 이동답게 널찍한 버스에서 편하게 갈 수 있어서 정말 살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드니프로에서 하르키우'로 가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러시아어로 '드네프로페트롭스크에서 하리코프'로 쓰인 저 버스 사진... 다시 보니 정말 생경하다.

하리코프 시에 도착. 키예프 바로 다음 가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이고,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공업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최전선 지역이 되었지만... 키예프는 이 때 애석하게도 못 가보았지만 오데사, 드네프르, 자포로제 합쳐서 하리코프가 가장 깨끗했다. 도로 상태도 아주 좋았고 도시 자체가 여타 도시에 비해 훨씬 잘 정비된 느낌이랄까.

유리 가가린 역을 거쳐 하리코프 역으로 간다. 하리코프 역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역 앞 광장의 웅장한 건물.

1709라고 쓰인 건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의 칼 12세를 향해 승리를 거둔 폴타바 전투를 기념하는 것 같았다. 이때 이반 마제파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의 독립 코사크들이 스웨덴군을 지원하여 표트르에 맞섰지만 패배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지배는 공고화되었다. 러시아가 침공한 이후에는 저 1709도 떼지 않았을까?

표를 받고 3주 이상 여행을 같이 한 일행과 기차 시간까지 맥주를 계속 퍼마셨다. 사실 표를 예약하지도 않고 무작정 쳐들어간 건데 운이 좋게도 얼마 안 남은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로 없었냐면 같은 기차를 타지 못하고 나눠타야 했던..

국경을 넘을 때 잠시 기차가 정차하고 출입국 관리 직원들이 들어와서 여권을 전부 검사하는데 이때 러시아측 입국 심사관들이 내 한국 여권을 보더니만 대체 한국인이 여기에 왜...?하는 표정을 지어보인 게 기억이 난다. 무슨 목적으로 러시아에 가느냐(여행이요), 여행이라면 어디 가느냐(뭐... 붉은 광장...?), 일행은 있냐(거기 가면 일행이 있다), 기어코 붉은 광장에서는 뭐 할 건데? 라는 질문까지 나오길래 어이가 없어서 그거까지 알아야 하냐고 내가 역으로 질문했다. 그러더니 직원이 한참을 뭘 찾아보다가 옆 차량 직원에게 "한국인들은 러시아 입국 무비자인가?"를 물어봤다. "응 맞을 걸?"이라는 답변을 듣고 입국 통과.

이때 여권에 찍힌 우크라이나 출입국 도장은 나중에 2022년 도모데도보 공항에 입국할 때 나에게 추가 질문을 선물해줬다. 입국 심사관이 유심히 여권을 보더니 "너 3년 전에 우크라이나는 왜 갔어?"라고 물어볼 때의 그 아찔함...

우크라이나에서는 여름 날씨라서 땀이 날 정도로 더웠는데 모스크바는 8월인데 비가 와서 추웠다. 가을 비바람이 불어오니까 얇은 패딩을 입은 사람까지도 봤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승객들은 저렇게 반팔을 입고 있기도 하지만..

파란색과 노란색의 우크라이나 열차가 모스크바에 정차하는 사진이 정말 옛날 사진처럼 느껴지네.

시내 최중심부인 크라스니예 바로타 역에 캡슐 호텔을 구해놓고 밥을 먹으러 나왔는데 사람들이 우루루 운집하길래 이게 뭔가 했다. 알고보니 무려 나중에 위키백과에도 문서로 작성된 2019년 모스크바 반푸틴 시위였다... 모스크바 시의회 선거에서의 부정과 후보 등록 제한 등에 반대하여 7월부터 8월까지 계속해서 이어진 시위였는데 꽤 많은 인파가 참석했었다.

무지성으로 인파들이 모이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발언도 하고 나중엔 콘서트도 하고 있었다. 경찰들이 쫙 깔려서 쳐다보는데 슬슬 무서워져서 도피. 물론 이날 집회는 평화롭게 마무리 되었지만 사람 모이는 곳 잘못 가다가 외국인이 재수 없게 걸리면 진짜 경을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 사람들 전쟁까지 난 지금 상황에서는 러시아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는 모스크바의 밤.. 크라스니예 바로타 근처에 있는 모스크바의 스탈린 7자매 건물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7자매 중에서는 은근 아담하면서도 위용이 있어서 꽤 좋아하는 건물이다. 정부 건물이자 아파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

이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교류하는 사비르 선생님을 처음 만나뵈었었다. 지하철을 타고 트레챠코프 미술관에 가려고 노보쿠즈네츠카야역으로 향했는데 자리가 딱 한 자리가 났다. 냉큼 앉으려고 가는데 사비르 선생님과 마주쳤고 우리 둘은 다음 역에 도달할 때까지 서로 자리를 양보했다. 자리가 두 개 나서 나란히 앉았는데, 자기는 아제르바이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나는 앞으로 아제르바이잔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하니 그러냐면서 행운을 빌어주었는데...

노보쿠즈네츠카야 역 출구에서 다시 마주쳤다.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이라며 어디 가느냐고 하길래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보러 간다고 말했다. 같이 가자고 하시길래 오케이하고 미술관에 갔는데 표를 사려고 하니 그럴 필요 없다고 매표소 직원하고 뭐라고 쏼라쏼라를 하신다. 그러더니 공짜로 볼 수 있다고 공짜로 들어갔다.... 무슨 조화를 부리신 걸까 궁금해하며 그림들을 보는데 자기가 곧 예배 시간이라고 가봐야 한단다. 이미 그림은 별로 안중에도 없어진 상황이라 나도 모스크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따라오라고.

트레챠코프 미술관에서 좀 걸어가면 조그맣고 아담하지만 역사가 오래된 모스크바 모스크가 나온다. 거기서 예배를 마치고 나온 사비르 선생과, 모스크의 아제르바이잔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사비르 선생의 생애에 대해서는 작년에 얘기를 나누면서 조금 더 길게 들을 수 있었다. 아제르바이잔 제2의 도시 간자가 고향으로, 할아버지는 부농(쿨라크)으로 몰려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가 거기서 죽었고, 할머니는 기근이 소련을 강타했을 때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 부모님은 소련 체제가 마련해준 교육 기회를 활용해 교사로, 나중엔 법원 직원으로 근무했다. 사비르 선생 본인은 브레즈네프 시대에 소련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의무 복무를 했고, 벨라루스 지역의 군부대에 있었다고 했다. 복무를 훌륭하게 해내는 걸 보고 부대 장교가 추천을 하여 모스크바의 한 공과대학에 입학해서 학업을 이어갔고, 자동차 엔진 제어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에 소련이 해체되며 아제르바이잔으로 돌아가 그곳 군부대에서 헬리콥터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현재는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으신 분이다.

넘쳐나는 지식인의 풍모와 늘 아낌없이 도움을 주시고 따뜻한 말을 해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현재는 모스크바에 갈 때마다 찾아뵙고 있다.

사실 하리코프에서 먹은 맥주가 잘못되었는지 모스크바에서는 장염이 걸려서 계속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느라 기진맥진이 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볼 건 봐야지 하는 심정으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위해 만든 유리 가가린 기념상을 보았다. 전체 티타늄으로 만든 42m짜리 거대한 기념상인데 정말 웅장하다.

우주에 처음으로 나간 사람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시민인 유리 가가린이다, 라고 써있다. 아마 보스토크 귀환선을 모델로 만든 것 같다. 제작년 사라토프에서 직접 착륙지를 실견했던 기억이 나네..

멀리서 전체 모습을 찍으면 이렇다.

걸어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알렉세이 코시긴 흉상. 코시긴은 브레즈네프 시대 총리를 맡았고, 흔히 당서기 브레즈네프, 정부 총리 코시긴, 외무상 그로미코로 브레즈네프 시대의 삼두로 불린다. 통상적인 역사관에서는 소련 경제의 자유화 개혁을 추진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이 시대는 아직 밝혀진 게 많이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유보하게 되는 평가..

스탈린 7자매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건물인 러시아 연방 외무성. 라브로프 장관님께서 거하시며 집무하시는 웅혼한 건물이다.. 건물부터 저러니 러시아의 외교는 뭔가 우악스럽다는 이미지가 형성되기 딱 좋을 듯.. 외무성 근처에는 모스크바의 홍대라고 할 수 있는 아르바트 거리가 있다. 지금은 없는 것 같은데 저때는 근처에 그나마 동아시아 수준으로 맛을 내는 라멘집이 있어서 라멘도 먹었었다. 겁나 비쌌음..

통칭 모스크바-시티라고 불리는 모스크바 국제 비즈니스 센터다. 소련 해체 이후에 구 소비에트 권에 진출한 각종 외국 기업들과 러시아 유수의 기업들이 모인 업무 중심 지구로 개발되었는데 마천루가 즐비한 모습이 꽤나 멋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 경제 제재 맞은 지금은 꽤 많은 서방 기업들이 나갔을 듯..

캡슐호텔에서 울려퍼지는 케이팝을 보며 국뽕을 충전했다.

역시 스탈린 시대에 건축된 러시아 국방성 건물. 이것도 사진으로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하다. 전쟁 터진 이후에는 가기 무서워서 굳이 가진 않았다..

20m가 넘는 옥탸브리스카야 역 근처의 레닌 동상.

귀국할 때는 벨라루스 역에서 아에로익스프레스(모스크바 공항철도)를 타고 셰레메티예보 공항으로 향했다. 목적지 이름으로 역을 정하는 러시아 관행상 벨라루스 역은 당연히 벨라루스, 서쪽 방면으로 향하는 기차의 출발지인데, 그러다보니 대조국전쟁 당시에도 수많은 병사들이 이 역에서 집결해서 죽음의 전선으로 향하고는 했다. 그 유명한 소련 군가 "성전(Svyashchennaya voina)"의 첫 가사가 써있다. 이 역에서 군악대가 저 음악을 연주하며 병사들을 보냈다고....

이때도 사비르 선생님이 배웅을 나와주셨는데 어떤 신신묘묘한 기술을 발휘하시어 매표소 직원에게 뭐라뭐라 하시니 공짜표가 튀어나왔다. 공항철도 가격이 500루블(당시 환율로 대충 만원)이나 하는데 공짜표를 타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의문은 대체 이분이 어떻게 공짜표를 창조하셨냐는 건데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지으시고, 혹시 누가 문제 제기하면 자기한테 전화 걸어서 바꾸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비밀은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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