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도시 야로슬라블

역사의 도시 야로슬라블

1천년 고도 야로슬라블 탐방

임명묵

주말을 맞이한 러시아 여행 2탄. 이번 목적지는 러시아 근교의 도시 야로슬라블이다.

러시아는 한 도시에 여러 기차역이 있을 경우 그 이름을 행선지 지명을 따서 정하는데, 이 역은 '모스크바 야로슬라블 역'. 그야말로 야로슬라블로 가는 기차역이라 할 수 있겠다.

본래 야로슬라블을 거쳐 북극해의 아르항겔스크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을 위해 건설된 유서 깊은 역이다. 현재의 외관은 1904년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세계 최장의 철도 노선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 본선이 이 역에서 발차한다.

야로슬라블은 모스크바에서 약 270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대충 서울-광주 정도 거리에 위치한 '근교'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이정도면 가까운 편이라고 봐야겠다.. 볼가강 상류 초입의 도시로서, 볼가강 수운 무역의 중심지로 고대부터 발전해왔던 도시다. 키예프 공국의 야로슬라프 현공(Yaroslav Mudryi)이 로스토프의 공후를 하고 있을 때 야로슬라블을 세운 것에서 유래했으니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라고 하겠다.

5시간인가 열심히 달려 야로슬라블 역에 도착. 그래도 인구 57만의 대도시라서 기차역도 나름 멋있다. 택시를 잡고 호텔로 이동한 다음에 술을 한 잔 먹고 잤다.

사실 야로슬라블을 여행지로 선택할 때 고민이 많았다. 어쨌든 주요 관심사가 현대사인지라, 20세기 역사의 현장을 주로 가고 싶은데 야로슬라블은 그런 곳은 딱히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천년 역사의 고도라서 '옛 러시아'를 연상시키는 관광 자원이 훨씬 많은 곳이다. 그래도 주말 간에 갈만한 여행지가 그리 많지 않기도 했고, 그래도 명승지 한 번 찍는 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서 강행을 선택했다.

야로슬라블 최고 중심가에 위치한 야로슬라블 역사, 문화, 예술 단지였나 그런 곳이었는데, 옛 수도원 자리라고 들었다. 들어갈까..? 하고 있는데 직원이 매우 기분 나쁘게 "매표소! 매표소!" 하면서 삿대질 하길래 별 관심도 없는 곳 굳이 가진 않았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중세 근세 러시아 예술을 나에게 해설해줄 사람이 같이 있었다면 모를까

러시아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는 모습은 좋았다. 그리고 오른쪽에 서 있는 동상이..

키예프 공국 초기의 강성한 시대를 이끌었던 대공인 야로슬라블 현공의 동상이다. 러시아 땅에 정교회를 받아들인 강력한 군주 블라디미르 대공의 아들로, 공자 시절에 야로슬라블 인근 로스토프에 파견되었던 시절 야로슬라블을 세웠다. 오늘날 우크라이나는 그를 '키이우 루스'의 군주로 기리고, 러시아는 '키예프 루스'의 군주이자 야로슬라블의 창립자로서 기리고 있다.

야로슬라블의 '카잔 수도원'이다. 1610년에 건립되었는데, 해당 건물 자체는 러시아 혁명과 내전 시기 파괴되었다가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 다시 부활했다.

러시아에서 카잔 수도원이나 카잔 대성당이라는 것은 '카잔의 성모'라고 하는 이콘을 주로 모시는 장소를 뜻한다. 이곳 야로슬라블에서도 카잔의 성모 이콘이 갖는 영험함에 관한 전설이 있다고 하는데.. 이 시기 역사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카잔의 성모 이콘.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어딘가를 가리키는 레닌, 그리고 레닌은 아랑곳 않는 야로슬라블의 젊은 시민들

길을 걷다가 '애국 교육 센터'라는 웅장한 장소를 보았다. 소련 시절 피오네르를 따온 것인지, 하여간 러시아 곳곳에 있는 센터인 것 같은데... 푸틴 치하 러시아의 애국주의 현장을 본 것 같아서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참여하고 승리합니다.

저거 그런데 태권도인가...?

1650년에 건립된 유서깊은 교회 선지자 일리야 성당. 운 좋게도 소련 치하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아서 370년의 역사를 버티고 서있게 되었다.

워낙 도시를 상징하는 중요한 성당이어서, 18세기에 시가지 계획을 대거 수립할 때도 엘리야 성당을 중심으로 광장을 꾸렸다고 한다. 왼쪽의 건물은 야로슬라블 주청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엘리야 성당은 멋들어진 정교회 성화들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정교회를 잘 몰라서 늘 그 성당이 그 성당 아닌가 하면서 심드렁해 하곤 하는 나도 여기서만큼은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에 볼가 강 변 근처를 따라서 야로슬라블을 계속 걸었다. 이건 적백내전 당시 백군에 의하여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 볼셰비키가 만든 기념물이다.

인근에 있는 스파소-아파나시예프스키 수도원. 이곳도 역사가 350년에 가까운 유서 깊은 수도원인데, 비교적 최근인 2000년대까지도 사실상 방치되었었다고 한다.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복원을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과거의 수난이 있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다.

차르 니콜라이 2세. 여러모로 보아도 러시아 역사를 단단히 잘못 가게 만든 무능한 군주였지만, 어쨌든 정교회에서는 볼셰비키에 의하여 순교한 황제로, 성인으로 기념하고 있다.

수도원의 수사로 보이는 분이 마침 지나가고 있었다.

미닌과 포자르스키 동상. 평민을 대표하는 쿠즈마 미닌과 귀족을 대표하는 드미트리 포자르스키의 동상으로,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성당 앞에 표현된 동상이 가장 유명하다. 이들은 이반 뇌제 사후 모스크바 공국에 찾아온 대공위의 혼란기에, 폴란드가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러시아 전체를 위협하자 떨쳐 일어나 의병을 조직했던 사람들이다.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애국자의 상징으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야로슬라블은 당시 모스크바까지 쳐들어온 폴란드에 맞서는 미닌과 포자르스키 군대의 핵심 거점이기도 했다.

이쪽부터 이번 여행의 종착지인 야로슬라블 1000주년 기념비까지 쭉 이어진다.

러시아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대조국전쟁 전몰자를 기념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것 같은 꼬맹이와 젊은 아이 아버지가 헌화를 하고 지나갔다. 뒷편의 큰 성당은 야로슬라블의 성모 승천 대성당이다.

'영웅의 아내 사진전 프로젝트'라는 것 같다. 이것 말고도 길 양 옆으로 이런 설치물이 쭈욱 깔려 있었는데(실수로 그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해서 아쉽다), 모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아내들이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본 전쟁의 흔적.

이 성당도 원래 역사가 350년에 달하는 성모승천 대성당이 되었어야 하나.. 1937년 소련 시기 폭파되었다가 2010년에 재건된 성당이다. 재건 시에 원래의 성당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서, 야로슬라블의 역사적 외관을 오히려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멋있고 좋았다.

밑으로 내려가니 볼가강이 나온다.

결국 2022년과 마찬가지로 2023년에도 볼가강 여행이구나~ 우측 하단의 곰 모양은 야로슬라블의 시 문장인 것 같았다.

어린이들이 많이 나와 노는 공원인데, 러시아의 역사 도시에서 흔히 보이는 조랑말들이 아이들을 태우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강을 따라 쭈욱 걸어가면 야로슬라블 1000년 기념비가 나온다. 1010년에 야로슬라프 현공이 야로슬라블을 건립했기 때문에, 2010년 9월에 성대한 야로슬라블 건립 1000주년 행사와 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 또한 소련 시절인 1960년에 950주년 기념을 한 것을 이은 것이다.

기념비의 부조와 동상은 야로슬라블의 역사와 위인을 표현하고 있다.

내륙 수운 네트워크로서 활발히 활용되는 볼가강을 또 다시 보게 된다.

볼가강의 강태공...

흐르는 볼가강을 바라보며, 이제 다른 도시로 이동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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