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라트 코냑과 함께 예레반 투어
아름다운 조형물로 가득한 예레반 캐스케이드를 땀을 흘리며 계속 올라가면..
저 멀리 311m에 달하는 거대한 예레반 TV 타워가 보인다. 1970년대 평화로운 브레즈네프 시기, 캅카스에도 TV를 시청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기존 TV 타워보다 더 큰 용량의 타워가 필요해졌고, 1974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977년에 완공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 중 하나라고 한다.
감히 카메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아름다운 예레반의 전경.. 풍경이라는 게 무릇 그렇지만 이 또한 육안으로 보았을 때의 압도적 느낌이 대단한 곳이었다.
캐스케이드 꼭대기를 힘겹게 오른 다음에, 예레반 고지대 언덕에 우뚝 솟아있는 탑까지 봐야한다. 이건 1967년에 세워진 것인데, 연도에서 알 수 있듯이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50주년 기념탑"이다.
제대로 찍은 게 없어서 위키백과에서 사진 하나를 더..
여기서 옆쪽으로 가면, 작은 추모비가 하나 있는데 독립 후에 소비에트 시기 억압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조성된 곳이다. 10월 혁명 50주년 기념비 바로 옆에 있다는 게 참 상징적이다.
이쪽 근처는 사실 관리가 잘 안 되는 곳이 많아서 이런저런 그래피티 낙서가 가득한데, 그중에서 눈길을 바로 사로잡은 "FUCK AZERBAIJAN".. 양국 국민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웅혼한 낙서였다..
너바나 딥퍼플 핑크플로이드... 이거 쓴 아저씨 최소 나이 40대. 그럴 리는 없다만 20년 전에 쓴 게 아직까지 있는 것인가..? 예전에 블라디보스토크 갔을 때 너바나 그래피티를 봤던 게 또 생각이 난다. 물론 저는 시애틀 그런지는 냉전 종식과 함께 시작된 문명의 위기라고 보는 사람입니다..
혁명 50주년 기념비에서 더 올라가면, 아르메니아의 전승 공원이 나온다. 이건 소련 시기에 만들어진 것 같은데,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몰자 추모비라고 한다.
승리 공원에는 아르메니아의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인 '어머니 아르메니아 상'이 있다. 저 건물은 아르메니아의 전승 박물관이고, 그 앞에는 사진에도 희미하게 나와 있듯이 '꺼지지 않는 불'이 켜져 있다. 박물관 건물 위에 있던 상은 원래 스탈린 상이었는데, 흐루쇼프 시기 탈스탈린화의 일환으로 다른 상으로 교체되었다. 볼가강의 어머니 러시아 상처럼 예레반에서도 어머니 아르메니아 상을 만들자는 안이 채택이 되었고, 당시 17세 소녀를 모델로 삼아 1967년에 완성하여 세워졌다. 어머니 러시아 상처럼 복수를 부르짖는 역동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차분하게 칼을 들고 진중한 얼굴로 서 있는 어머니 아르메니아 상도 무척이나 장엄하다.
원래 있던 스탈린 상.
박물관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다음으로 하기로 하고, 슬슬 날이 저무는 것을 대비하여 술자리를 준비하러 갔다. 술을 찾을 때가 가장 즐거운 발걸음..
아까 보아두었던 황금 문이 있는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을 구경했다. 역시 이 지역도 나름 서아시아답게, 중앙아시아에서 보던 것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의 상품들이 많았다. 아르메니아에서도 '쉬린'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주로 중동 지역에서 달다구리를 일컫는 쉬린들을 파는 곳도 있었고.. 왼쪽에 수박이랑, 노란색 럭비공처럼 생긴 멜론(듸냐)도 딱 중앙아시아의 그것들. 2015년 우즈베키스탄 여행의 기억이 떠오르며 너무 반가웠다.
오늘 먹을 술은... 가운데 줄 왼쪽에 위치한 검은 색의 음료다. 무려 아르메니아의 미승인 위성국 아르차흐의 이름을 딴 '아르차흐' 브랜드의 술. 이름하야 아르차흐 투토비(Artsakh Tutovyi)인데... 오디로 만든 담금주, 그러니까 멀베리 보드카 되시겠다. 54도였나를 자랑하는 엄청난 도수와, 소련 전국에서 최고의 과일 명산지로 유명했던 캅카스의 과일을 합친 술.. 가격은 지금 환율로 계산해보니 한 2만 5천원쯤 되는 것 같다.
여기야말로 아르메니아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는데, 저런 길쭉한 꼬치 케밥(샤슬릭)들을 골라놓고 맡겨주면 뒤에 있는 숯불에서 그대로 구워준다. 일단 고기 꼬치들을 몇 개 주문하고 계산해 놓고, 다른 물건 사려고 슬슬 쇼핑하다 보면 다 완성이 되어 있다. 그러면 진짜 이렇게 맛이 없을 수 없는 양꼬치 소꼬치.. 무엇보다 여기는 무슬림 국가가 아니라 돼지고기도 있다! 정말 살으리 살으리렷다 아르메니아에 살으리렷다다.
당근 김치와 멀베리 보드카, 마트에서 산 향신료 볶음밥에, 양꼬치까지... 소련권에서 저런 숯불 꼬치를 주문하면 라바쉬라고 하는 얇디 얇은 빵에 싸주는데, 저 빵을 먹을 때 주욱주욱 찢어서 고기랑 야채 몇 개 넣고 싸먹으면 최고의 맛이다. 근데 수분을 잃으면 거의 빠직빠직 갈라져서, 장기보관이 조금 난감하다는 단점이 있다. 근데 뭐 고기 살 때 주는 라바시는 그냥 서비스 격이다. 하여간 이때도 캅카스의 산들바람을 맞으며 알콜로 정신을 잃었다..
그래도 다음날에는 다음의 술이 있는 법. 예레반 여행 필수 행선지인 코냑 공장을 견학 안 할 수 없지 않겠는가. 1887년 네르세스 타이리얀이라는 아르메니아인이 예레반에서 브랜디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그 유명한 '아라라트 코냑'의 기원이다. 예레반 브랜디 공장은 러시아 제국의 주류 기업인 '슈스토프와 아들들'에 의하여 인수되었는데, 이는 제국의 실권자 비테 백작의 보드카 생산 규제를 피하기 위하여 코냑 생산으로 대체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1900년에는 파리 박람회에 출품하여 품질을 인정받고, '코냑'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써도 된다고 허가를 받았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당연하게도 소련 정부에 의하여 국유화 되었고,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소련 시기에 "예레반 아라라트 브랜디 공장"과 "에레반 브랜디 회사"라는 두 업체로 갈리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상 파는 제품 자체는 같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에레반 아라라트 브랜디 공장"은 오스만과 페르시아의 요새가 있던 자리에서 만들어진 양조장이고, 여기서는 '노이'를 맛볼 수 있다. 성경의 노아인데,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 산에 도달했다는 전설 때문. "예레반 브랜디 공장"에서는 '아라라트'라는 상표가 붙은 것을 맛볼 수 있다.
두 회사는 소유주도 각각 다른데, '노이' 쪽이 아르메니아 올리가르히의 소유고, '아라라트' 쪽은 프랑스 회사가 현재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뭐 여행할 때 이런 걸 사전에 공부하고 가지는 않았고, 그냥 무대뽀로 아무 데나 들어갔다. 간판에 무려 '코냑 콤비나트'라는 어마무시한 소련 사회주의적 이름이 써있길래 여기로 가자 해서 들어가니, 덩치 큰 아르메니아 형님이 박물관 왔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 견학도 원한다고 하니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녹슨 대포가 있는 이유는 여기가 옛날 요새 자리였기 때문. 그러니까 우리는 노이를 먹으러 온 셈이다.
위풍당당한 저 상표. KREMLIN. 스탈린은 그루지야 사람이었고, 그루지야의 대표 명산은 와인이지만 스탈린은 와인보다는 보드카나 코냑 같은 독주 계열을 훨씬 좋아했다고 한다. 당연히 아르메니아 코냑은 스탈린이 열심히 찾은 상품이었고, 오늘날에도 러시아인의 귀한 파티주로 애용되고 있으니.. 크렘린에 납품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실 노이보다 더 유명한 건 '아라라트 코냑'인데, 뭐 일단 실질적으로 같은 제품이라는 걸 다시 강조하고... 아라라트 코냑이 유명해진 이유는 스탈린이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루스벨트를 소련으로 초청한 얄타 회담 때 회담주로 내왔던 게 바로 아라라트이기 때문이다. 처칠이 이 맛을 보고 감탄하여 400병을 그대로 주문하여 영국으로 가지고 왔고, 처칠 덕분에 서방에서도 나름 알려지게 된 셈이다.
옛날에는 여기서 와인도 생산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코냑 생산용이 아닌 상업용 와인은 생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1944년에 잔뜩 만들어둔 포트와인은 견학온 사람들에게 한잔 씩 맛 보라고 따라준다.
구글 리뷰를 보면 호흡기가 안 좋은 사람들은 올 때 조심하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공기 안 통하는 지하에서 술을 담그다보니 냄새라든가 공기 상태라든가 뭐 여러가지로 좋지는 않다.
특히 이쪽이 최악인데... 여기서 뭐 사람들을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시키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했나? 술이 아주 찌린내가 날 정도로 쉬어가지고 코를 틀어막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다. 이런 곳도 어떻게든 뚫고 탈출을 했다는 게 참..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면 과일과 초콜릿 안주를 겸하여 코냑을 먹을 수 있는 코너가 나온다.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에서 다시 여행 시작.
확실히 아르메니아가 이란이랑 가까운 사이라서, 이곳저곳에서 이란어로 된 무언가를 접할 수가 있었다. 맨 윗줄은 "이란의 새 소식"이라 써있는 것 같고, 그 밑에 줄은 예레반에서 테헤란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뜻인 것 같다. 페르시아어 배워도 배워도 늘지를 않네..
이건 어디에 있던 무엇이었는지를 까먹었는데... 러시아 국기를 찢고 사람이 나오는 걸 형상화한 느낌이다. 아마 독립 후에 만들어진 것 같다.
1950년에 완공된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최고 소비에트 건물... 말이 어렵지만 현재 독립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국회의사당이다. 아르메니아 특유의 건축 스타일로 무척이나 멋있게 지어져 있다.
그러나 결코 이곳에서도 BTS의 마수를 벗어날 수는 없었으니... 이때만 해도 나는 아직 K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던 시절이라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ㅎㅎ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전날 가지 못했던 아르메니아 전쟁 박물관에 입장. 시작부터 '아르차흐 해방 전쟁'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여행을 떠났던 시점은 2019년.. 아직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다시 발발하기 이전 시점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르메니아인들은 승리의 영광을 만끽할 수 있었다.
원래는 소련 시기 제2차세계대전 기념을 주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지만 독립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르차흐 해방 전쟁이 더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소련 시기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전시품들의 퀄리티만큼은 따라가지를 못했다. 어디에 가도 있는 베를린 의사당 함락 디오라마. 아르메니아인들도 당연히 대조국전쟁 수많은 전투에 참여하며 영웅적 싸움을 펼쳤다.
아르메니아에서 출발한 사단이 스탈린그라드를 거쳐 서쪽 독일로 향하는 진격로를 그려놓고 있다.
스탈린과 함께 한 무수히 많은 원수와 장군.. 아르메니아에서는 주로 아르메니아인 출신의 소련군 원수 이반 바그라먄을 기린다. 여기도 이반 바그라먄이 거의 주인공급으로 전시가 되어 있고, 아마 이 사진에도 어딘가 바그라먄이 있던 것으로 기억. 기억이 정확하다면 스탈린 바로 오른쪽이었던 것도 같고.. 바그라먄은 1차세계대전 당시 19세의 나이로 오스만군에 맞선 제국군 병사로 출발하여, 소련군 체제에서 장교로 진급했고, 소련군의 최고 영웅인 주코프 밑에서 작전을 지휘하며 군사적 활약을 했다. 끝내 원수까지 단 그는 천수를 누리고 1982년에 사망했다.
'소련 최고 소비에트'.
승리공원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여러 설비도 있는데.. 저 너무나 성의 없는 쿵푸 팬더를 도저히 안 찍을 수가 없어서 한 컷..
역시 소련에 왔으면 '리모나드' 한 잔은 먹어줘야.. 탄산수에 들척지근 밍밍한 원액을 섞어서 더운 날 입가심으로 마셔주는 최고의 싸구려 음료다. 사실 식당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리모나드 중에는 진짜 맛있는 것도 있는데, 이런 길거리 리모나드는 그야말로... 그래도 더운날 먹기에는 무척 맛있다.
7월의 캅카스는 섭씨 40도에 달하고 뙤약볕도 엄청나다. 올해 갔던 타슈켄트랑 무척이나 비슷한데.. 예레반의 개들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낮에는 지하도로 내려와서 푹 잠을 즐기고 계셨다. 아마 밤에 해가 지고 시원해지면 슬슬 활동하겠지.
예레반 여행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