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권과 냉전의 해석

미국 패권과 냉전의 해석

Thomas Mccormick의 America's Half Century 서평. 냉전기 미국의 패권은 어떻게 행사되었나?

임명묵

토마스 맥코믹의 저서 ‘미국의 반세기: 냉전과 그 이후의 미국 대외 정책(America's Half-Century: United States Foreign Policy in the Cold War and After)’은 냉전 시대 미국의 대외 정책들을 일관되게 조명하고자 하는 역작이다.

이 책은 미국의 전반적인 대외 정책을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World system theory)의 렌즈로 설명한다. 세계체제론은 자본주의 체제가 공간적으로 분업 체계로 조직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자본과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핵심부가 있고, 핵심부에 원료와 시장을 제공해주는 주변부가 있다. 그리고 이 둘을 매개해주는, 중수준의 자본과 기술을 보유하고 노동력을 통해 저부가가치 제조업을 수행하는 반주변부가 있다.

그리고 이 공간적 분업 체계를 조직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국가는 패권국이다. 패권국은 핵심부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적 역량을 갖고 있는 경제적 패권을 바탕으로 떠오르며, 그 경제적 힘은 군사력으로 전환되어 자원과 시장을 통제하는 군사적 패권도 획득하게 된다. 즉, 1945년을 계기로 미국이라는 국가는 세계 자본주의의 최중심에 위치한 경제적 패권국이자 군사적 패권국으로 떠올랐고, ‘미국의 반세기’라는 20세기 후반은 그 패권을 행사하며 세계체제론에 입각한 세계 경영을 수행한 시기였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주장이다.

맥코믹에 따르면 미국이 패권을 위해 움직인 동기는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이유에서 왔다. 미국은 서유럽과 일본이라는 산업 핵심부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그 핵심부를 위한 반주변부와 주변부에 대해서 통제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소련은 생산과 기술 역량에 매우 큰 제약이 있는 반주변부로서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에서 자율성을 인정받으면서도 합류하고 싶었으나, 미국은 소련의 자율성을 인정하고자 하지 않았기에 냉전이 발생했다. 소련의 위협은 서유럽과 일본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고, 미국식 국제주의/세계주의에 반대하는 미국 국내의 세력들의 발언권을 억제하는 데도 매우 큰 구실이 되어줄 수 있었다. 한편 제3세계에서는 기존 식민지 유산과 핵심부에 대한 종속을 끊어내고, 자원 수출에 대한 통제력과 자체적인 공업화를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이는 국제분업 체계를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비밀공작과 군사력을 활용해서라도 억눌러야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맥코믹의 시각에서 1945년부터 1991년까지의 냉전이란 사실 미소대립이 아니었다. 미소대립은 세계체제를 통제하는 패권국으로서 미국이 자국의 패권을 지구적으로 행사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여러 요소 중 하나였을 따름이다. 저자는 소련이나 중국을 향한 데탕트도 경제적인 맥락으로 설명하는데, 베트남전의 패전으로 과해진 군사력 지출을 줄여 예산 압박을 해소함과 동시에, 소련과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과 원료 공급처를 제1세계 자본의 진출 무대로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소련은 원래부터 이러한 거래 관계의 수립을 염원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판단 동기가 달라지면서 소련의 제안에 응한 결과가 데탕트라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세계정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저자에 따르면 그 주인공들은 비즈니스/산업계와 워싱턴 D.C를 오가는 일군의 엘리트들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더하여 그 이해관계를 지구적 번영을 위한 대의로서 정당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세계는 미국이라는 세계 경찰 하에서 공동 시장으로 통합되고, 각국은 비교우위 하에서 자신들에게 특화된 생산물의 생산에 전념하고 자유로이 그것을 교환할 때 가장 큰 경제적 이득을 얻으며 번영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의 세계관을 이루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세계는 1930년대로 돌아가 지역적 블록으로 나누어진 비효율적이고 군사적 대립이 일상화된 위기로 치달을 것이라 믿었다(로버트 케이건의 ‘밀림의 귀환’이 정확히 이러한 세계관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러한 신념은 미국을 그 이전의 패권국과 구별되게 만들었다. 미국은 단기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구적 번영을 지킨다는 사명감 하에 상당히 장기적인 안목으로 큰 자원을 국제적 안정 유지를 위하여 지출하는 ‘특이한 제국’이 될 수 있었고, 이는 미국 패권의 견고함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 역시 패권국의 일반적인 함정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경제적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 미국은 사회와 국가의 군사화라는 선택지를 골랐고, 그 수행이 바로 냉전이었다. 이는 미국의 자원이 민간 경제로 적절히 흘러가지 못하고, 군수 경제에 대한 과도한 투자를 유도했다. 그런 와중에 서독과 일본이라는 과거의 패전국들은 미국이 제공한 안보 우산을 통해 반주변부의 시장과 원료에 공짜로 접근할 수 있었고, 미국의 경제적 패권을 위협하는 위치로 성장했다. 반면 미국은 전세계에 패권을 행사하는 제국이 되면서, 생산 시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자본 투자를 통한 수익을 얻는 방향으로 경제 구조가 변형되었고, 이는 중산층의 쇠락을 비롯한 사회적 위기로 이어졌다. 경제적 패권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 패권의 유지는 이제 반대로 경제적 패권을 위협하고 있었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경제의 건전성을 되살리는 개혁 조치를 추구하기보다는 제국과 군사력에 계속 의지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과 매우 흡사한 논의다).

1995년에 나온 2판에서 그래서 저자는 세계가 일종의 다극 세계로 전환될 것을 예측한다. 물론 저자가 예측한 다극 세계는 오늘날의 예측과는 매우 다르다. 당시는 독일과 일본의 경제가 욱일승천하던 시기였고,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팽창은 훨씬 뒷이야기가 될 것이었다.

맥코믹의 이야기를 오늘날의 세계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까? 사실 그는 미국 패권에 매우 비판적인 학자이고, 책의 논조 또한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맥코믹이 그리는 미국은 세계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바탕으로 촘촘하게 전지구적 관리를 수행하고, 도덕적 사명감을 위해서 장기적 안목으로 커다란 자원 지출도 주저하지 않는 진정으로 견고한 패권국이다. 물론 맥코믹은 그에 대하여 미국 중산층의 쇠락, 군사화로 인한 미국 국민에 대한 억압, 제3세계 독재자 지원과 냉전의 군사적 충돌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의 발생을 비판했다. 하지만 로버트 케이건을 비롯한 사람들은 미국 패권에 대한 해석이 명확히 다르다. 그러한 비용 지출과 부작용도 1930년대 블록화의 재현으로 인해 생길 파국보다는 훨씬 더 낫기 때문에, 미국 패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최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일대일로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 에너지 위기도 세계체제론을 통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반주변부로서 러시아의 불완전한 통합과 다시 시작된 단절은 서유럽의 자본주의 핵심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중국이 자체적인 공급망을 건설하려는 일대일로는 중국 나름의 세계체제적인 기획의 산물인가? 중국은 반주변부의 최강국으로서 다른 주변부를 모두 모아 핵심부의 도전에 자신을 방어하려는 주체인가?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세계체제적인 기획은 현재 잘 작동하고 있는가? 그리하여 21세기의 미국의 반세기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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