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터키 역사의 이정표가 될 해이다. 5월에는 20년 째 집권하고 있는 레젭 타입 에르도안의 재선 여부를 확인할 대통령 선거가 있다. 현재 에르도안의 장기 집권과 부패, 경제난과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반발 등으로 선거전은 매우 박빙으로 치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관권 선거와 부정 선거 등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승리하고자 할 것이다. 2023년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 제국의 터키인들이, 그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서서 연합군의 침공을 몰아내고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2023년에 터키의 지도자로 집권한다면. 그는 공화국 역사의 100년을 결산하고 새로운 100년을 제시할 사람으로서 역사에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에르도안으로서는 패배해서도 안 되는 선거고, 여론조사에서 밀린다고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 수도 없는 선거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물론 2023년의 터키는 100년 전의 1923년의 터키와는 완전히 달라진 터키다. 1923년의 터키를 건국한 국부는 ‘터키인의 아버지’라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였다. 그는 오스만 제국의 몰락을 지켜보며, 서구 열강의 침공과 발칸과 카프카스의 민족 분쟁과 대혼란을 보면서 터키 민족을 수호해야 한다는 의지를 굳혔다. 그가 바라보기에 오스만 제국이 쇠퇴한 이유는, 서구에서 벌어지는 눈부신 발전에 눈을 감았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은 이유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몽매함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타튀르크는 서구로부터 생존하기 위해서 터키를 서구처럼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타튀르크는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종교를 정치와 분리하는 철저한 세속주의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슬람의 공적 역할을 더욱 바랐던 다수 유권자와 아타튀르크 및 그의 후계자들의 생각은 계속 충돌했다. 군부, 관료, 사법부 엘리트들의 세속주의 헤게모니와, 그에 맞서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저항이 20세기 터키 역사를 규정했다. 하지만 2002년 선거로 집권한 레젭 타입 에르도안은 노련한 정치적 기술로 세속주의 엘리트를 무력화하고, 터키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는 군부를 숙청하면서, 이슬람주의를 통해서 권력을 공고화했다. 그렇게 이슬람을 통한 에르도안 독재 권력의 수립은 세속주의 터키를 후퇴시키게 되었다.

이 같은 서사는 오늘날 터키라는 나라를 이해하고자 할 때 가장 처음 접하는, 가장 기본적인 설명이다. 이 서사는 실제로 터키 현대사의 윤곽을 그릴 때 매우 유용한 설명이다. 하지만, 세속주의적 케말과 이슬람주의 에르도안의 대립 구도에만 집중하면, 실제로 케말주의가 ‘에르도안주의’로 대체되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케말주의와 이슬람주의를 단순한 선악구도로만 바라보면, 케말주의가 지녔던 한계와 이슬람주의자들의 노련함, 그리고 둘 사이의 깊은 연속성을 놓치게 된다. 따라서 전체 윤곽 밑에 숨겨진 터키 현대사의 내면의 모습들을 알지 못한다면, 이슬람주의와 신오스만주의 등 지금의 에르도안 체제가 어떤 기반 위에 서있고, 그 기반이 어째서 이토록 단단한지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