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소비에트 최후의 세대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서평.
‘소련 사회주의는 거짓으로 쌓아 올린 계획경제의 자체적인 비효율성으로 인해서 붕괴가 필연적이었다’는 말은 우리에게 몹시 익숙한, 사회주의의 몰락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 스탈린의 잔혹한 전체주의가 사라지고, 이념에 대한 열정마저 사그라들자 당과 사회는 타성화되면서 ‘거짓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공적 공간에서는 누구나 거짓인 것을 알면서도 체제의 언어를 앵무새처럼 반복했고, 시민들은 사적 공간에서는 체제의 감시를 피해서 자신들의 ‘진짜 삶’을 살았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반체제 운동가 바츨라프 하벨은 이제 이런 이중생활을 끝내고, 거짓을 없애고 진실된 삶을 살자고 외치며 동유럽 공산주의의 끝을 알렸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서사는 공산주의가 붕괴해버린 1989년에, 철의 장막 건너편에서 실제 사람들이 느꼈던 바와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사람들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시작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소련이 그렇게 가파르게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 자신이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로서, 유학 중 소련의 해체를 경험한 인류학자 알렉세이 유르착은 바로 이 점에 의문을 품었다. 서방에서 상상하는 것과 같은, 영화와 같은 체제의 붕괴는 없었다. 모든 소련 사람들은 이 체제가 ‘영원할 것이라는’ 감각을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정말로 신기한 것은 그 간극이 메꿔지는 방식에 있었다. 대체 어떻게 영원할 것이라 믿은 체제가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허망하게 사라질 수 있었을까? 후기 소련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책의 제목은 그렇게 탄생했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 책은 저자인 유르착이 자신의 경험에 더하여, 자신과 같은 세대인 소련의 마지막 세대를 인터뷰하면서 그려낸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의 초상이다. 저자에 따르면, 소련의 마지막 세대는 거짓에 저항하고 자유를 염원했던 그런 세대가 아니었다. 물론 체제가 말하는 모든 공적 언어를 뼛속까지 내면화한 이들도 아니었다. 후기 소련은 진실/거짓, 국가/사회, 공적 자아/사적 자아, 억압/자유라는 평면적인 이분법으로 칼같이 구분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소련인들은 그 사이의 경계에서 창의적인 전술을 구사하며 미묘하게 살아갔다. 체제에 대해 냉소를 보내면서도 체제가 선전하는 가치를 진심으로 믿고, 공적 집단 속에서 사적 유대를 쌓고, 체제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변형을 추구하는 것이 후기 소련에서 나타난 삶의 방식이었다. 바로 이 모순적으로 보이는 삶의 양태를 그려내고, 어떻게 그런 모순적 삶이 가능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유르착이 이 책에서 시도하는 바다. 이 작업을 통해서 그는 후기 소련인들의 삶에 ‘인간성’을 부여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유르착이 사용하는 방법론은 일반 독자로서는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철학, 기호학, 담론 분석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데리다, 들뢰즈, 푸코, 버틀러 등의 이름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1장과 2장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나 또한 이런 분야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기에, 유르착의 서술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고, 오직 막연한 느낌을 통해서만 글을 읽을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역자의 말을 비롯하여 이 책의 다양한 서평과 후기에도 잘 나와 있듯이, 1장과 2장을 넘기면 3장부터는 흥미진진한 인류학적 사례들을 통해서 후기 소련의 사회적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해석할 때 불쑥 나오는 저자의 이론적인 이야기들은 다시금 책장을 넘기는 일을 무겁게 만들지만 말이다.
어쨌든 먼저 내가 막연하게나마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1장과 2장에서 묘사되는, 후기 사회주의 체제의 전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유르착에 따르면 후기 사회주의(Late socialism)는 이념 바깥에 존재하는 이념의 주인(master)이 사라지면서 시작되었다. 본래 소련은 계몽주의의 한 형태로서 사회주의라는 이념의 언어가 지배하는 체제였다. 삶의 모든 것은 그러한 이념의 언어를 통해서 조직되었고, 평가되었다. 그리고 그 이념의 바깥에서, 체제의 규칙으로서 이념을 평가하면서 방향을 설정해줄 사람은 레닌과 스탈린과 같은 이념의 주인들이었다. 하지만 말년의 스탈린이 이념의 주인 자리에서 내려오고 그후 탈스탈린화마저 시작되면서, 소련에서는 이념에 대한 메타적인 논의가 완전히 닫혀버리게 되었다. 요컨대 누구도 체제를 작동시키는 언어를 의문시하고, 그 내용에 대해 따질 의지를 갖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이념의 ‘진술적 차원’이 아니라, ‘수행적 차원’이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소련 체제의 내부자들은 이제 이념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반복하는, 의례와 수행에 더 천착하게 된 것이다. “10월 혁명 70주년을 영광되게 기념하자!”라든가 “당에 헌신하여 비철금속 생산에서 진전을 이루어내자!” 따위의 구호가 대표적인 예인데, 체제는 이제 사람들이 영광된 기념이나 진전을 일워내지 않아도 그다지 상관을 안 하게 되었다. 그저 옛날부터 반복되어 온 권위적 언어를 반복하고, 그에 적합한 의례를 수행하면, 그는 체제의 정상적인(normal) 사람으로서 간주되며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저자는 3장에서 콤소몰(공산주의 청년단) 단원들이 이러한 수행적 전환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을 만들어냈는지, 그리고 그렇게 절약한 시간을 바탕으로 어떻게 자신들만의 더욱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들을 공유하고, 서로 편의를 봐주는 내집단은 ‘스보이’라는 공중(public)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스보이는 공적 영역과 대별되는 사적 영역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체제 속에서 공과 사를 대별하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콤소몰과 같은 공적 영역에서도 스보이는 존재했다. 이를테면 “서로 사정이 통하는 사람들”의 관계망이 스보이를 구성했다.
수행적 전환에 따른 의례 반복이 체제에 대한 단순한 냉소나 불신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다수의 소련인들은 소비에트 체제가 내건 공식적 가치와 그 언어를 진심으로 수용했고, 그 바깥에서의 삶이 가능할 것이라 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상적인’ 소련 시민들은 체제에 대한 태도에서 양극단을 모두 꺼려했다. 한쪽 극단에는 정상적인 체제로서 사회주의를 진심으로 거부하는 반체제 분자들이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반체제 분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혹시 그들과 연루되면 자신도 비정상에 물들게 될까봐 우려했다. 반대편에는 ‘열성분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이미 수행적 전환을 거쳐서, 진술적 의미가 탈구된 권위적 언어를 정말 문면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열성분자들은 일반적으로 일을 피곤하게 만들고, 무의미한 공식 활동(콤소몰 집회 등)에 지나친 시간을 쏟는 사람들로 기피되었으며, 대개 출세주의자로 간주되곤 했다.
4장에서 저자는 ‘브녜’라고 불리는 독특한 사회적 환경을 이야기한다. 브녜는 러시아어로 바깥을 의미하지만, 더 미묘한 뉘앙스에서는 바깥과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체제를 거부하지도 않지만, 체제의 동학에 대체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면서 자신들의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삶의 형태가 ‘브녜에 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브녜’를 공유하는 ‘스보이’들은 ‘옵셰니예’라고 불리는 회합을 자신의 직장보다 훨씬 더 중시했다. 저자는 레닌그라드의 여러 ‘브녜’들을 보여주는데, 대표적 사례가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로서 보일러실 관리자다. 보일러실 관리자는 최저 임금을 받는 직업이었지만 대신에 근무 시간 중 막대한 자율성과 긴 휴게시간을 보장해주는 자리였다. 그들은 아마추어 고고학 탐구, 문학 동호회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서 기꺼이 저임금의 일자리를 선택했다. 그들은 소련 체제 속의 출세보다도 그 속에서의 자율적인 실천을 더 선호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보일러실 관리나 아마추어 고고학 모임, 문학 동호회 등은 소련 체제가 의도치 않게 권장해주었기에 번성하는 문화이기도 했다. 복지국가로서 사회주의의 이상은 보일러실 관리자의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무상 의료, 교육, 주택 등을 통해서 인간적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주었다. 계몽주의 이념으로서 소련 사회주의는 인민이 학술과 예술 활동에 참여하도록 권장했고, 이는 여러 아마추어 음악회, 문학회, 학술회 등에 신경 쓸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과 여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기에 브녜에 살고 있는 이들은 소련 체제 바깥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안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일러실은 일종의 공간으로 구현된 브녜였다. 보일러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체제의 공식적 언어로 포착되지 않지만, 체제가 없다면 보일러실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묘한 경계 속에서 보일러실은 창의적 공간이 되었다.
5장에서는 후기 사회주의 청년층을 매료시켰던 상상계, ‘서구’를 다룬다. 언제나 모든 것이 영원하며 반복되는 후기 사회주의는 분명 지루함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청년층은 막연하게 다가오는 '저 너머'의 세상으로서 서구를 상상했다. 하지만 유르착은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는 '실제 서구'를 보며 그곳으로 탈출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세대가 서구를 좇을 수 있었던 것은 소련 체제가 타락한 부르주아 문화를 비판한 것만큼이나 인민들이 국제주의를 함양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체제는 인민들이 외국 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을 권장했고, 여러 외국 문학, 음악, 영화를 앞장서서 보급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체제의 공적 이념에 충실하며 자신의 서구 문화에 대한 애호를 발전시키는 데 대개는 어떤 모순도 느끼지 못했다. 단파 라디오나 엑스레이 뼈사진에 복제한 레코드판, 헐벗은 모델이 인쇄된 비닐봉지를 통해서 '상상의 서구'라는 이미지, 상상계를 구축했다. 상상의 서구는 실제 서구를 원천으로 하고 있으나, 그보다 훨씬 막연하고 무엇보다 흥미진진했던 무언가였다. 진실과 허구로 뒤섞인 영원한 체제의 '저 너머' 또한 진실과 허구를 뒤섞은 무언가였다. 물론 체제는 퇴폐적 서구 문화에 탐닉하는 이들을 주기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그들을 주로 ‘공적 가치를 얼마든지 내팽겨 치는 불량아들’로 묘사했기 때문에, 공적 가치를 충실히 함양하고 그 수행적 전환에 참여하며 자신들을 ‘정상적 소비에트 시민’으로 간주했던 이들은 더욱 안심하고 서구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딥 퍼플만 들으면 문제지만, 라흐마니노프와 무소르그스키와 함께 듣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사람들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서구를 만나보았고, 그 실제의 서구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흥미진진한 공간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상상의 서구는 소련 사회주의 체제와의 상호작용이 아니면 형성될 수 없는 공간이었다.
6장에서는 서구에 관한 논의를 조금 더 세부적인 사례인 락음악으로 좁혀서 전개한다. 여기서는 락 콘서트를 개최한 콤소몰 간부의 이야기, 그리고 락음악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편지를 통해 전개하는 극동 야쿠츠크 출신의 대학생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기서도 핵심은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다. 체제는 몇 가지 음악을 불건전한 것으로 지정했고, 그 유통을 허가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금지한 것도 아니었다. 몇몇 음악을 사적으로 듣는 것은 전혀 문제되는 일이 아니었고, 금지를 명시하지 않은 음악은 콤소몰 주최 콘서트에서도 얼마든지 틀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락음악을 인식하는 방식은 자본주의의 타락과 동일시한 기성세대와 달랐다. 그렇다고 락음악을 소련 체제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해방의 음악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야쿠츠크 출신 알렉산드르는, 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소련 체제의 공식 팝(에스트라다 음악)보다도 서구의 락이 공산주의의 진짜 가치와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이해한 공산주의는 발전된 미래를 향한 역동적 움직임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우주 개발과 핵물리학이라는 소련 체제의 최고의 성취와 계속해서 형식을 깨면서 발전하는 미국의 락음악은 미래를 향한 공통의 움직임이라고 이해했다.
7장에서는 다시 이론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이해가 다소 어려워진다. 그는 후기 소련의 시민들이 아이러니의 유머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면서, 체제의 성격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해왔음을 보여준다. 체제의 언어에 대한 과장된 동일시를 통해서 전개하는 농담인 ‘스툐프’, 체제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아넥도트(공산주의 유머)가 마지막 장의 주인공이다. 이 농담들에서 “현실과 퍼포먼스, 진지함과 유머, 지지와 반대, 의미와 무의미, 헐벗은 삶과 정치적 삶, 삶과 죽음 등을 가로지르는 경계선을 비껴가면서, 권위적 담론의 수행적 전환뿐 아니라 그 결과 일상에서 나타나는 모든 역설과 불일치들을 모방했다.” (책 539쪽) 이 유머들은 소련 체제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들도 그 부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일부이며 그 부조리의 작성자임을 나누는 의례이기도 했다.
유르착에 따르면, 후기 사회주의의 삶은 체제의 권위적 언어와, 권위적 언어의 수행을 통해서 자율성의 공간을 확보하는 상호작용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권위적 언어의 전제가 고르바초프에 의해서 다시금 검토되었을 때, 소련 체제는 그 의도치 않은 효과로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늘 의례적으로 반복하는 형식적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의 진술적 의미를 다시 검토하라는 요구가 갑작스럽게 내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댐이 터지듯 언어의 홍수가 시작되었다. 사실 체제의 언어 속에서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체제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너머의 삶, 바깥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영원할 것 같은 체제가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과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또 사태를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페레스트로이카의 갑작스러운 과정이, 소련 체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음을 함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당은 권위적 언어를 독점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그런 미래를 알 수 없었다. 혹은 정말로 붕괴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30년에 가까운 후기 사회주의를 거치며, 유르착이 묘사한 창의적 전술을 통해서 체제는 그 내파의 씨앗을 키워갔을지도 모른다. 1985년에 다른 가능성이 있었는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논의될 수밖에 없는 주제일 것이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에서 저자가 제시한 수행적 전환, 의례의 중요성, 진술적 의미의 탈구, 체제 속에서 만들어나가는 창의적 삶의 기술들은 비단 소련의 경험으로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영원하게 만들고자 하는 꿈”은 권위적 언어를 독점하고 그에 따라 구성원의 삶을 조직하려 하는 모든 강력한 근대 국가 체제가 공유하는 것 아닐까? 천황에 충성하는 국민이 되도록 요구한 일본 제국에서, 알라의 율법에 따라 살 것을 요구한 이란의 이슬람 정권에서, 어쩌면 민족의 부흥을 위해 헌신하라는 박정희 체제에서도 우리는 후기 소련과 비슷한 삶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체제의 언어를 완전히 거부하지도 않고, 또 그것을 완전히 따르지도 않으면서, ‘브녜’에 존재하며 자신들의 ‘스보이’를 구축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말이다.
그리고 질문은 최종적으로 다음으로 향하게 된다. 이념에 대한 메타적 논의가 사실상 막히고, 내용적 차원의 목적보다 의례적 수행이 더 중요해졌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체제와 이념의 가치와 언어를 모든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믿고 있고 그 바깥의 삶이 가능하지 않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1991년 이후 세계는, 혹은 서구는 '후기 자유주의(Late liberalism)'로 진입했던 것 아닐까? 현재 자유주의 세계의 모든 것은 영원해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이것이 사라지는 것 또한 역설적으로 순순히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후기 자유주의 세계, 혹은 후기 서구 사회에 있어서 '상상의 서구'에 대응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지루해지고 의례의 수행만을 반복하는 자유주의가 찾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공간, 그러면서 동시에 자유주의가 내걸고 있는 가치의 언어와 부합하는 상상계는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