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사회주의는 거짓으로 쌓아 올린 계획경제의 자체적인 비효율성으로 인해서 붕괴가 필연적이었다’는 말은 우리에게 몹시 익숙한, 사회주의의 몰락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 스탈린의 잔혹한 전체주의가 사라지고, 이념에 대한 열정마저 사그라들자 당과 사회는 타성화되면서 ‘거짓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공적 공간에서는 누구나 거짓인 것을 알면서도 체제의 언어를 앵무새처럼 반복했고, 시민들은 사적 공간에서는 체제의 감시를 피해서 자신들의 ‘진짜 삶’을 살았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반체제 운동가 바츨라프 하벨은 이제 이런 이중생활을 끝내고, 거짓을 없애고 진실된 삶을 살자고 외치며 동유럽 공산주의의 끝을 알렸다.

체코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 바츨라프 하벨은 <무력한 자들의 권력>이라는 글에서 공산주의 체제 하의 거짓된 삶을 폭로했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서사는 공산주의가 붕괴해버린 1989년에, 철의 장막 건너편에서 실제 사람들이 느꼈던 바와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사람들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시작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소련이 그렇게 가파르게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 자신이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로서, 유학 중 소련의 해체를 경험한 인류학자 알렉세이 유르착은 바로 이 점에 의문을 품었다. 서방에서 상상하는 것과 같은, 영화와 같은 체제의 붕괴는 없었다. 모든 소련 사람들은 이 체제가 ‘영원할 것이라는’ 감각을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정말로 신기한 것은 그 간극이 메꿔지는 방식에 있었다. 대체 어떻게 영원할 것이라 믿은 체제가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허망하게 사라질 수 있었을까? 후기 소련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책의 제목은 그렇게 탄생했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 책은 저자인 유르착이 자신의 경험에 더하여, 자신과 같은 세대인 소련의 마지막 세대를 인터뷰하면서 그려낸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의 초상이다. 저자에 따르면, 소련의 마지막 세대는 거짓에 저항하고 자유를 염원했던 그런 세대가 아니었다. 물론 체제가 말하는 모든 공적 언어를 뼛속까지 내면화한 이들도 아니었다. 후기 소련은 진실/거짓, 국가/사회, 공적 자아/사적 자아, 억압/자유라는 평면적인 이분법으로 칼같이 구분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소련인들은 그 사이의 경계에서 창의적인 전술을 구사하며 미묘하게 살아갔다. 체제에 대해 냉소를 보내면서도 체제가 선전하는 가치를 진심으로 믿고, 공적 집단 속에서 사적 유대를 쌓고, 체제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변형을 추구하는 것이 후기 소련에서 나타난 삶의 방식이었다. 바로 이 모순적으로 보이는 삶의 양태를 그려내고, 어떻게 그런 모순적 삶이 가능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유르착이 이 책에서 시도하는 바다. 이 작업을 통해서 그는 후기 소련인들의 삶에 ‘인간성’을 부여하고자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