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지구사

냉전의 지구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역작, "냉전의 지구사" 서평.

임명묵

예일대학교 교수 오드 아르네 베스타가 저술한 <냉전의 지구사>는 한국어로 현재까지 출간된 책 중에서 냉전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책일 것이다. 한국어판으로 814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인 <냉전의 지구사>는 처음 펼쳐본 순간 상당한 위압감을 주고, 목차와 내용 구성에 있어서도 그 방대함에 독자가 기가 눌리게 될 정도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냉전’이라는 관점에서 잘 인식하지 못했던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의 중동 전쟁이나 아프리카의 여러 내전들이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초강대국의 냉전이라는 틀 속으로 들어오며, 또 반대로 그런 사건들이 냉전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보여준다. 소위 ‘지구적 냉전사’를 향한 중요한 이정표를 제공한 셈인데, 그렇다면 <냉전의 지구사>는 어떤 책이며,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예일대학교 교수 오드 아르네 베스타.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베스타에 따르면 냉전은 단순히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초강대국이 전쟁을 억제하며 펼친 경쟁이 아니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지정학적 대결로 환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미국과 소련이 그 이전의 유럽 제국주의 열강과는 다른 특수한 면모가 있다고 보았다. 우선 미국과 소련은 모두 근대성을 바탕으로 비서구 세계를 ‘문명화’ 해야한다는 유럽의 ‘문명화 사명’을 나름대로 계승한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비전은 자신들의 제국 안에서만 문명화 사명을 전개했던 유럽 열강들과 달리 지구적인 근대화로 확장되었다. 이는 미국과 소련이 모두 거대한 육상 영토로 팽창하면서 타자들과 접촉하고, 자신들의 근대성 비전에 맞게 그들을 통합하고 근대화시켰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그래서 유럽 열강의 식민지 제국을 해체하고, 각 민족이 주권 국가를 이루어 민족자결의 이상을 이루는 세계를 선호했다. 다만 신생 독립국들이 근대화를 향해 나아갈 비전이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두 제국은 대립하게 되었다. 미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 무역 질서에 합류하여 비교 우위에 따라 교역을 하면서 세계가 통합되기를 원했다. 소련은 모든 피착취 계급과 피억압 민족을 대변하고 있었기에, 신생 독립국들이 자국 사회의 봉건적, 제국주의적 유산을 끊어내고 소련식 발전과 근대화 모델을 수용하기를 원했다. 새로 부상하는 탈식민 세계를 바라보는 두 제국의 비전이 차이를 보이면서, 그리고 두 제국이 모두 지구적인 비전을 가졌기 때문에, 유럽으로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를 포괄하는 ‘지구적 냉전(Global Cold War)’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지구적 냉전의 주체가 미국과 소련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 근대성을 수용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 지도자들(탈식민 지도자들)은 미국과 소련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사태를 자신들이 주도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들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이 유럽 제국을 해체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마침내 독립의 꿈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여기서 사태를 인식하는 미국과 소련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미국은 탈식민 민족주의자들이 공산주의에 경도될 것을 우려하여 유럽 제국의 질서 있는 후퇴를 관장하고자 했다. 소련은 그런 것에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기에 탈식민 지도자들의 민족 해방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독립이나 민족 해방이 지연되는 장소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소련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미국은 자신의 의심이 맞았음을 확신하며 유럽 제국, 혹은 친미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지원하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유럽 냉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력 갈등과 유혈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탈식민화의 전사들, 쿠바의 카스트로와 베트남의 보응우옌지압.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저자는 50년대, 60년대, 70년대를 거치면서 제3세계에서의 지구적 냉전이 계속해서 격화되는 과정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50년대에 냉전이 유럽을 벗어나 지구적으로 확대되었지만, 새롭게 등장한 탈식민 지도자들은 미국과 소련 양쪽의 지원을 모두 받고 싶어했으며, 유럽 식민 제국과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유지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냉전의 양대 초강대국에 끌려가고 싶지 않았기에 온건한 근대화 프로그램을 견지하면서 양측 진영에 속하지 않는 비동맹, 제3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60년대가 되면서 상황이 한층 더 격화되었는데, 이는 미국 및 서유럽과 갈등을 피하고 싶었던 소련과 달리 훨씬 호전적이고 혁명적 의지가 넘치는 국가들, 중국, 쿠바, 베트남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중국은 소련을 수정주의라 비난하면서, 제3세계 혁명 투쟁에서 중국이 선봉에 있다고 주장하며 사회주의 종주국을 자임했다. 미국의 바로 밑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쿠바는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제3세계에서의 적극적인 사회주의 수출을 꿈꾸었고,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군사 분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국제적 혁명 의지가 앞의 두 나라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민족주의적 통일 의지가 대단했던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을 수렁에 빠트리기 위해 처절한 투쟁에 나섰다. 소련은 중국의 도전에 위협감을 느끼면서, 쿠바와 베트남 같은 국가들에 불신을 심어주지 않기 위하여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의도에 반하면서도 제3세계의 사회주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는 미국으로 하여금 전세계적인 공산주의의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는 공포를 품게 만들었다.

그 다음이 바로 <냉전의 지구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의 이야기다. 1970년대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지구적인 냉전 갈등이 가장 격렬하게 분출되었던 시기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1950년대에 형성된 온건한 제3세계 지도자들, 즉 ‘반둥 정신’을 지닌 지도자들이 저조한 성과만을 내면서 지지를 상실한 것이었다. 반둥 세대를 비판한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은 훨씬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민족 해방 투쟁을 전개하고자 했고, 투쟁 자체도 훨씬 더 국제화되었다. 둘째는 베트남의 수렁에 빠진 미국의 대응 능력이 약화되면서 제3세계의 무장 투쟁이 더욱 크게 자극받은 데 있었다. 1970년대 이 갈등이 가장 전면으로 부각된 곳은 바로 아프리카였다. 저자는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여전히 식민지를 유지하고 있었던 포르투갈 제국이 붕괴하고, 소련이 후원하는 MPLA가 어떻게 쿠바군과 공조하여 공산화를 이루었는지 보여주고, 이후 에티오피아의 군주정이 무너지고 멩기스투가 이끄는 공산주의 군부가 어떻게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국내적, 대외적 위기를 불러왔는지 보여준다. 소련은 제3세계에서 혁명 투쟁이 비용이 많이 들지라도 그것이 지구적 초강대국이자 모든 피억압 민족의 후원자라는 소련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에 혁명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소련은 미국이 자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국가에서 쿠데타 조장과 군사적 개입을 통해 세력권을 공고히하는 것을 보면서, 소련도 마찬가지 활동을 하고 있을뿐이라며 이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이 미국과 동등한 위치를 주장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미소 데탕트는 결국 무너지게 된다. 유럽과 동아시아를 두고 구축된 데탕트 체제는 아프리카의 반란으로 짧게 그 역사를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사이 오가덴 전쟁에서 활약한 쿠바군 병사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80년대는 갑작스럽게 70년대에 형성된 여러 틀이 해체되면서 냉전 구도 자체의 해체로 흘러가게 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먼저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토착적 운동인 이슬람주의가 부상했고, 동아시아에서 ‘경제 기적’이 입증되면서 소련 사회주의 모델이 갖는 매력이 빠르게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더 공세적인 정책이 나타난 반면, 소련은 자국 경제의 부담, 제3세계 사회주의 건설의 저조한 성과에 대한 실망으로 지구적 냉전 개입에 갈수록 회의적이 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3세계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소련의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미국, 서유럽, 일본 자본을 찾게 되면서, 냉전은 사실상 이미 끝나게 된다.

<냉전의 지구사>는 냉전, 나아가 국제질서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은 도전해볼만한 책이다. ‘탈냉전’이 끝났다는 말이 많다. 만약 앞으로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1990년부터 2020년까지 탈냉전의 30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탈냉전의 30년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배워야하는 시대가 바로 냉전이다. 그리고 냉전을 단순히 베를린과 베트남으로 국한 짓지 않고, 쿠바, 이스라엘,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를 넘나드는 지구의 수많은 장소로 확장하는 것이 지구적 냉전사, <냉전의 지구사>의 가장 큰 학술적 의의였다. 세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대에, 한 곳의 변화가 다른 곳의 변화를 어떻게 자극하고, 존재감 없는 소국이 초강대국을 어떻게 곤란하게 만드는지를 <냉전의 지구사>를 통해서 실감나게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냉전의 지구사>에는 명확한 단점도 있다. 첫째로, 책이 지나치게, 혹은 불필요하게 방대하다는 인상을 받기 좋다. 책의 핵심적인 플롯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냉전의 지구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건의 전개를 매우 세심하게 따라가고, 다루는 공간적인 범위도 넓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지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냉전의 지구적 성격이 정말 충분히 드러났는지 고민해보면 그 점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사실 이 책은 <냉전의 지구사>보다는 <제3세계 냉전>이라는 이름이 더 적절해보인다. 그동안 잘 조명되지 않았던 제3세계에서의 변화에 집중하느라, 오히려 초강대국 본국인 미국과 소련의 이야기, 특히 제1세계와 제2세계에 속한 영국, 프랑스, 서독, 폴란드, 헝가리, 일본, 그리고 남북한과 같은 국가들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를 한 책에 다 담자면 책의 분량은 두 배, 세 배가 더 필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말로 냉전의 지구사를 알고자 하는 독자는 베스타의 책에서 머물지 않고 다른 책을 추가적으로 읽어서 시야를 다시 주변에서 중심으로 돌려볼 필요도 있다.

지나친 정치사와 순차적 사건의 나열이라는 서술 방식도 아쉬울 때가 있다. 냉전에 나서는 미국과 소련의 배경을 설명하는 1장과 2장에서 저자는 근대성을 향한 비전과 문명화 사명의 변형, 미국과 러시아의 제국적 전통을 조명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친다. 하지만 냉전의 본 무대로 넘어가면 저자는 몇월 며칠에 누가 무슨 일을 했고를 시간 순에 따라 나열하는, 전통적인, 달리 말해 굉장히 딱딱하고 재미없는 서술 방식을 고수한다. 이런 서술 스타일은 단순히 책을 읽기 버겁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인류의 총체적 경험을 규정하는 ‘시대’로서 냉전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람들의 일상 경험에서 냉전이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기술적 표준부터 대중문화, 우주경쟁에 대한 열광까지 포괄하는 냉전 시대의 ‘공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점에 대해서 궁금한 독자가 책을 펼쳐 들었다가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사이를 오가는 험악한 말과 모스크바와 쿠바 사이의 동상이몽 같은 이야기를 계속 읽게 되면 책에 상당한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냉전의 지구사>는 제3세계 문제에 관심이 많고, 국제 관계와 외교적 사건의 양상을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매우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냉전의 ‘본 무대’인 유럽에 관심이 많은 독자, 그리고 냉전의 일상과 문화까지 포괄하는 정말 하나의 시대로서 냉전을 보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가성비’가 꽤 떨어지는 독서가 될 수도 있다. 영미권에 비하면 초라한 한국 출판계라지만, 정말 좋은 책이 쏟아지는 시대에 <냉전의 지구사> 같은 벽돌책에 도전할지 말지는 독자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을 뚫고 이 책을 통독한다면 오늘날의 세계를 바라보는 데도 상당한 통찰과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이 두꺼운 책을 모두 번역하고 출간한 역자 및 출판사 관계자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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