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서구 지도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러시아를 통치하지 않을 것임은 이미 집권 1기부터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집권하자마자 발생한 모스크바의 오스탄키노 TV 타워 화재는 새 정부가 올리가르히가 장악한 언론을 제압하기 위해 벌어진 사건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푸틴이 원하는 것은 올리가르히의 언론을 시민들의 자유 언론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국가(푸틴의 정권)를 위한 언론으로 고치는 것이었다. 그 뒤 이어진 올리가르히 사냥 과정에서도 푸틴이 서방을 의식하고 있다는 신호가 종종 나타났다. 2003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석유 올리가르히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체포가 대표적이었다. 호도르콥스키와 그가 소유한 기업 유코스는 러시아 최대의 석유 기업이 되었고, 유가가 오르면서 러시아의 숱한 올리가르히 중에서 가장 정권에 위협적인 거물로 성장했다.

호도르콥스키는 여느 올리가르히와 마찬가지로 푸틴의 독재에 맞서고 러시아가 새로이 얻은 자유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정권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 또한 구신스키와 베레좁스키처럼 크렘린에 맞서면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음은 자명했다. 그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것은 푸틴으로서는 아직 감당하기 어려웠던 미국의 힘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호도르콥스키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석유 기업 유코스를 미국 석유 메이저인 엑슨모빌과 합병할 것을 선언했다. 만약 유코스의 지배구조에 엑슨모빌이 깊숙하게 개입한다면, 미국 에너지 자본과 그 뒤의 미국 정부를 방패로 삼을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푸틴 입장에서 호도르콥스키의 이런 행동은 러시아의 전략 자산인 석유를 미국에 넘겨버리는 매판 행위나 다름없었다. 엑슨모빌의 유코스 주식 매입 협상이 진행되고 있던 2003년의 어느 날, FSB 요원들은 호도르콥스키가 노보시비르스크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그를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했고, 호도르콥스키는 수감되어 다른 올리가르히들을 위한 본보기가 되어주었다.

집권 2기부터 푸틴은 서방의 인권 단체나 서방 정부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한 러시아’라는 구호 아래에서 더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2006년에 일어난 언론인 안나 폴리트콥스카야의 암살은 혼란하지만 자유로웠던 러시아가 끝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인 노바야 가제타 소속의 기자였던 폴리트콥스카야는 체첸 전쟁의 현장을 취재하면서 새로운 정권의 잔인함과 부도덕함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다. 전장 속에 들어간 폴리트콥스카야는 러시아군과 러시아에 협조하는 체첸군이 반군 진압을 위하여 민간인 피해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난민 캠프와 병원을 오가며 폴리트콥스카야는 체첸에서 푸틴의 새로운 협력자인 카디로프 부자(父子)가 자행하는 전횡, 러시아군 병사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인권 유린, 그로 인한 증오의 연쇄 작용, 민간인을 상대로 한 화학무기나 화염방사기의 사용을 꾸준히 고발했다. 그의 기사는 러시아의 비판적 지식인과 시민들, 그리고 푸틴의 러시아를 감시하는 서구 관찰자들에게도 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폴리트콥스카야의 존재는 체첸의 지도자들과 모스크바의 크렘린을 모두 분개하게 만들었다. 체첸의 러시아군을 향해 빗발치는 비난은 체첸에서 새로이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현지 지도자들에게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모스크바는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통합성을 위협하는 분리주의자들을 억압하고, 러시아를 서구의 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정상국가처럼 보이게 하고자 했다. 하지만 폴리트콥스카야의 고발은 러시아의 ‘폭력적’이고 ‘야만적’ 본성은 어디로 가지 않았으며, 서방은 러시아를 결코 믿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강화할 것이 틀림없었다. 체첸인들과 러시아의 국가 기관이 폴리트콥스카야를 제거하고자 수차례 시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체첸의 군 당국은 폴리트콥스카야를 체포하기도 했고, 그에게 살해 위협을 가하기도 했고, 독극물에 중독시켜 활동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폴리트콥스카야는 굴하지 않고 책을 발표하고 칼럼을 기고했다. 최종적인 해결책은 결국에는 암살밖에 없었다. 2006년 10월 7일, 폴리트콥스카야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괴한들의 총격으로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 그의 죽음은 푸틴의 러시아를 향한 비난을 촉발시켰지만, 크렘린은 전혀 신경쓰지 않은 것 같았다. 같은 해 11월, 영국에 망명해 있던 전직 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독살된 채 발견되었다. 그의 몸에서는 희귀 물질인 폴로늄이 검출되었는데, ‘방사능 홍차’로 유명한 바로 그 사건이었다. 리트비넨코는 푸틴이 자신의 지지를 동원하기 위해 체첸의 전쟁을 사실상 자작극으로 일으킨 것이라는 고발로 유명해진 상태였다. 폴리트콥스카야와 리트비넨코의 암살은 푸틴이 러시아의 통합성과 자신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이들을, 그들이 어디 있든 간에 제거할 수 있음을 알려준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