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무엇인가 (1): 한류 회의론을 추억하며

K-POP은 무엇인가 (1): 한류 회의론을 추억하며

임명묵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가수 싸이가 이제는 신화가 된 <강남스타일>을 통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동안 아시아 시장에만 국한되어 있던 한국의 대중음악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고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었던 것이다. 특히 사람들은 기존 200년간 절대적인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서구에서도 강남스타일이 문화 현상으로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이미 일본, 한국, 대만 등의 국가가 산업과 경제적인 면에서는 서구의 독점적 권력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부상했고, 거대한 중국은 머지않아 판의 규칙을 새로 쓰고자 하고 있었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도 유사한 일이 생겨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일본 문화나 홍콩 문화가 제한적인 유행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으로 유행한 ‘스타일’이었으며 서구 문화라는 ‘인류 보편 문화’에 종종 등장하는 첨가물의 위상을 넘지는 못했었다. 그리고 강남스타일을 둘러싸고 펼쳐진 논쟁도 정확히 같은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핵심은 이것이 과연 그동안 아시아에서 상당한 수준의 지위를 점한 한국 대중문화, 혹은 한국 대중음악(K-POP)이 서구에도 진출한 사례로 볼 수 있냐는 것이었다. 사실 당시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한국인들의 국가적인 자부심을 고취시키면서 소위 ‘국뽕’의 필수 재료로 떠올랐지만, 관련 논의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강남스타일 돌풍이 몹시 과장되었다고 생각했고, 대중문화를 민족주의적 자긍심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보통이었다. 물론 강남스타일 신드롬에 열광하던 일반 대중들도 이것이 한국이 서구의 문화 패권에 도전하게 될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면 당시로서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코웃음 쳤을 것이 분명했다. 일반적인 인식에서 강남스타일은 ‘우스꽝스러운’ 가수인 싸이가, 밈(meme)으로 활용되기 좋은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이었다. 즉, 강남스타일은 진지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해주는 음악이 아니라 단순히 우연한 계기로 잠시 세계를 흥겹게 한 일시적 신드롬에 불과했다.

유사한 논쟁 구도가 K-POP이 서구에서 인기를 얻는다는 다른 신호들이 보일 때마다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강남스타일이 나오기 1년 전인 2011년, 기획사 SM이 프랑스 파리에서 소속 가수들을 데리고 콘서트를 개최했을 때가 대표적이었다. ‘억지 국뽕’이 아직은 유효하던 시기였기에, 한국에서는 자신들이 선망하는 서구 선진국의 시민들이 K-POP을 들으러 공연장에 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또 신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이것이 자연스럽지 않으며 ‘억지’, 혹은 과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수년 간 계속해서 반복될 K-POP 회의론의 요점은 이러했다. “아이돌 음악은 진지한 음악 콘텐츠로 간주할 수 없으며, 설령 서구인들이 그런 문화를 소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회의 마니아들 일부의 이야기지 절대 ‘주류’로 진출할 수는 없다.” 물론 이는 한국인들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한국과 대중문화 영역에서 경쟁하는 국가가 된 일본에서도 이런 시각은 일반적이었고, 간혹 한국과 아시아에 관심이 있는 서구인들 또한 마찬가지로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들은 한국 특유의 기획사 시스템으로 형성된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부자연스럽다고 간주했으며, K-POP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한국의 ‘잘못된’ 요소들을 잘 개선해야 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평을 달고는 했던 것이다.

이 날 인류 역사가 한 번 바뀌었다.

하지만 SM 파리 콘서트와 강남스타일 이후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아서, K-POP이 단순히 신드롬이거나 혹은 마니아들만의 주변적인 이야기로 덮어 놓기에는 너무 거대한 사회 문화 현상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7년에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은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는데,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선망해온 미국의 권위 있는 시상식에 문화적으로 완벽히 토착 한국인인 아티스트가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이때에도 여전히 K-POP은 그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지 못하는 마니아들만의 문화라는 식의 이야기는 계속되었지만, K-POP을 위시한 한류가 서구와 아시아를 초월하여 지구적 현상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리고 K-POP이 마니아들만의 문화를 넘어서 아예 주류 문화를 끝없이 침공한 끝에 주류 자체를 정복하게 될 것임은 시간이 알려줄 것이었다.

‘K-POP 회의론’, 혹은 ‘한류 회의론’은 한류가 실재하는 현상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조심스레 내려놨다. 대신 오래전부터 나왔던 회의론이 조금 더 고개를 들었다. 바로 ‘한류에도 끝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문화적 유행이라는 것은 끝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한류 회의론자들은 그 끝이 생각보다 일찍 올 수밖에 없으며, 어느 정도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문화 주기의 일반론과는 차이가 있었다.

한류의 ‘유통기한’을 강조하는 이런 회의론은 기본적으로 K-POP을 비롯한 한류 유행은 일시적 현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으며, 이는 회의론자들이 한국 대중문화를 해석하는 시각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그 전제는 이렇다. 세계의 보편 문화는 서구 문화, 그중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권 문화이다. 그런데 최근 급속히 부상한 아시아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아시아에서도 서구적 대중문화를 바라는 인구가 늘었고, 서구에서도 아시아적 문화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그중에서 한국은 ‘가장 서구적인 아시아 국가’로서 세련된 문화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인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한류는 사실 처음 있던 현상도 아니다. 아시아와 서구가 섞인 혼종(hybrid) 문화라는 지위는 이미 일본이, 그리고 홍콩이 차지했던 바 있었다. 그런 ‘동서 혼종 문화’가 일종의 유행에 따라서 움직인다면, 한류의 지위도 언젠가는 중화권이나 여타 아시아, 혹은 비서구 문화의 부상에 따라 자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요컨대 현대 한국의 대중문화, 소위 ‘K-컬처’가 ‘보편적 서구 문화’와 ‘특수한 지역 문화’의 교차에 불과하다면, 한류는 결국에는 거대한 메인스트림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특이 현상이라는 것이다.

일본이나 홍콩에도 그런 유행은 있지 않았냐는 질문. 영상은 뉴진스의 '원조' 스피도.

그러나 코로나 판데믹이 발발하고, 미래 한류에 대한 회의론마저도 잠잠하게 만들 거대한 폭풍이 시작되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같은 K-POP 그룹에, 나아가 한국에서 발전한 온라인 만화인 웹툰까지 아예 한국 대중문화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속적으로 엄청난 신드롬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는 세계 전역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막강한 존재감이 ‘상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 되는 문화 현상은 단순히 뜨고 지는 유행을 넘어서 훨씬 더 거대한 현상이라고 간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단발적인 뮤직비디오가 세계적 유행을 일으키거나, 특정 기획사 가수들이 유럽의 도시 하나에서 공연을 연을 벌인 것은 10년 전에는 ‘신기하고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이제 K-POP 뮤직비디오는 발매 즉시 신드롬으로 이어지고, 인기 아이돌 그룹의 월드투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다. 한류는 단순한 파도가 아니라 훨씬 깊은 곳에서 폭발하여 엄청난 규모로 세상을 덮치는 해일이었다. 이것이 정말 서구 문화와 아시아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라고 하여 자연스럽게 나타났다가 사라질 현상일까?

기존의 틀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면 무언가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이런 거대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중문화의 표층만을 훑어서는 안 된다. 실제 K-POP은 대중문화를 넘어서 정치, 경제, 사회적 차원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각국의 사회문화적 조건과 맞닥뜨리며 새로운 물결을 만들거나 혹은 기존의 권력과 충돌하고 있기까지 하다. 아시아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그렇다. 태국에서 K-POP 팬들은 시위를 주도하고, 칠레에서는 대통령 선거에 적극 참여한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지지자들과 온라인 전쟁을 벌이고, 중국에서는 사이버 상에서 대만을 향한 양안전쟁(兩岸戰爭)을 수행한다. 신유라시아주의의 대의를 외치며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 안에서는 블랙핑크의 춤을 따라 추려는 팬들이 존재한다. 이런 지구적 현상의 실체는 무엇이며, 한국이라는 문화적 변경에 가까웠던 문화권에서 어떻게 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왜 사람들은 한류, 그중에서도 K-POP에 열광하며, 그들을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들고 집단 행동에 나서게 하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것은 정말 일각의 사람들이 우려하는 대로 기획사가 조정한 산업화된 노래에 의한 바람직한 문화의 파괴라는 결말로 귀결될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K-POP이 쓰고 있는 문화의 규칙을 알아야만 한다. 대중음악이란 무엇일까? K-POP이란 무엇이며, 그 이전의 대중음악과는 무엇이 같고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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